소포
제바스티안 피체크 지음, 배명자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19년 5월
평점 :
절판


이젠 하루가 멀다하고 집으로 배달되는 택배 서비스.

예전엔 어찌 살았는지 우리 삶에 뗄레야 뗄 수 없는, 심지어는 우리 아이들도 어릴 때부터

"택배 왔습니다!"

라는 소리에 반응을 한다는......


너무나 우리의 일상에서의 모습을 그려서일까.

이 소설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경고 문구!

"소포를 받아 든 순간,

악몽이 당신의 문을 두드릴 것이다!"

섬뜩하기까지 한 이 소설.

책을 펼치기가 조심스러웠습니다.

소포


시작은 이러했습니다.

엄마 아빠의 방문을 열었을 때, 엠마는 이번이 마지막이란 걸 몰랐다. - page 11

어린 엠마는 코끼리 인형을 가슴에 꼭 안고 엄마 아빠 방으로 갑니다.

"유령. 유령이 또 왔어. 내 방 옷장에. 제발 엄마 아빠가 와서 쫓아내줘. 안 그러면 아르투어가 나를 아프게 할 거야." - page 15

울먹이는 엠마에게 아빠는 오히려 화를 냅니다.

"당장 꺼져! 진짜 맞아봐야 정신을 차리지!" - page 19

어쩔 수 없이 혼자서 옷장을 확인합니다.

아르투어가 옷장 안에서 그녀에게 말을 건넵니다.

주고 받는 대화 끝에 아르투어는 오른손에 뾰족한 물건을 들고 옷장을 나섭니다.


그리곤 28년 뒤의 엠마 박사가 등장합니다.

유능한 정신과 의사이지만 어느 학회에서 자바아준 르젠호텔 1904호에서 일어난 사건 이후엔 지독한 편집증에 시달리면서 집밖으로 나갈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그런 그녀에게 '악몽'의 순간이 다가옵니다.

"하마터면 깜빡할 뻔했네요. 여기 이 소포를 대신 받아주실 수 있나요?"

살림이 신발 상자만 한 소포를 바닥에서 들어 올렸다. 엠마가 보자마자 자기에게 온 것이 아님을 직감했던 상자였고, 역시 그녀의 직감이 맞았다.

"이웃집 소포를요?"

이웃의 소포를 대신 받아주는 경솔한 짓을 하게 될 경우 야기될 결과를 상상하자 무릎이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지난번에 친절을 베풀어 치과 의사에게 온 책들을 대신 받아주었을 때처럼, 엠마는 다른 일을 할 엄두도 못 내고 몇 시간을 어두운 거실에 앉아 '언제' 일이 벌어질까, '언제' 초인종이 정적을 깨고 원치 않는 방문자가 모습을 드러낼까 초조하게 기다리고만 있을 게 뻔했다.

손에서 땀이 나고 입이 바짝바짝 마르는 동안, 엠마는 분 단위로 시계를 확인하고 나중에는 심지어 초침을 따라 초를 헤아릴 터였다. 다른 이의 물건이 마침내 집에서 사라질 때까지 계속.

그리고 소포에 적힌 수신자의 이름을 보았을 때, 소포를 대신 받아주는 일은 무엇보다도 끔찍한 일이 되었다. - page 74 ~ 75


책장이 넘겨지면 넘겨질수록 엠마는 자신이 겪은 일이 사실인지 아니면 망상인지 헷갈리기 시작하고 점점 편집증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면서 읽는 독자로 하여금 그녀가 정신병에 의해 망상을 일으키는 것인지 아니면 범인이 그녀의 근처에 있는 것인지 현실과 상상의 세계 속에서 점점 조여오는 윤곽은 손에 땀을 쥐게 하면서 진실을 향해 달려가게한, 한 편의 악몽같은 스릴이 넘친 소설이었습니다.


마지막 반전은 정말......

콘라트는 존경의 눈으로 로트 박사를 훑어보았다.

"선불교의 상징에 대해 잘 아시나 봅니다?"

"조금요."

로트 박사가 싱긋 웃어 보이고 백색 카펫의 검정 테두리를 가리켰다.

"원상, 둥근 원이라는 뜻의 선불교 상징인데, 한 번의 붓놀림으로 그려지죠. 선불교 예술가들 말로는 마음이 안정되고 균형 잡힌 사람만이 완벽한 원상을 그릴 수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런 동그라미에서 그린 사람의 마음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고 해요." - page 316


왜곡된 사랑이 집착을 만들었고 결국 광기를 일으켰던 이 소설 속 그.

그가 유리벽 뒤에서 엠마에게 전한 이 한 마디는 왜 머릿 속에서 떠나지 않고 맴도는지......

그래서 더 잔인하게만 느껴졌었습니다.

"사랑해서 그랬어, 엠마. 오직 널 사랑해서 그 모든 일을 했어." - page 341


읽고 난 뒤엔 내 주변을 살펴보기가 조금 두려웠습니다.

어느 공간에서 누군가가 날 지켜보는 건 아닌지......

그리고 오늘 나에게 온 소포를 열어보는 것도 두렵기까지 하였습니다.


우리의 일상을 그렸기에 한동안은 그 '악몽'의 여운이 남을 것만 같습니다.

다가오는 여름에 다시 이 책을 읽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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