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정재희 지음 / 믹스커피 / 2019년 5월
평점 :
제목이 참 서정적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런데 책 표지에 적힌 글이 더 이 책의 매력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평범한
우리가 만나
특별해졌다
항상
네가 있었기에
처음 느낀
외로움이
쓸쓸하지
않았다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누군가를 만나고 사랑을 하게 되면 그 사람을 닮아간다고들 합니다.
그 표현을 '색'으로 나타내서 번지고 물든다고 하니 왠지 '순수함'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림은 모든 것을 표현해준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마음이 어떤지, 입술을 다문 채 그저 그리는 것만으로 이야기할 수 있다. 그림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주관적인 시선도 거들어진다. 시선이 흩어지면 그들만의 방식으로 해석되어 가슴 깊이 새겨지겠지. 나를 표현하고 타인과 소통하는 무언의 길,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받아내는 가자아 정적인 예술, 그 끝없이 무한한 창조 작업에 나는 늘 매료된다. - page 17
사각사각.
언제나 연필 소리와 함께인 그녀에게 그와의 첫 만남이 시작됩니다.
쭈뻣쭈뻣.
두근두근.
마음은 그를 향하지만 용기는 없었던 그녀.
그런 그녀에게 다가오는 그.
그는 단지 나에게서 노랑을 보았다고 했다. - page 25
조금씩 마음의 문을 열고 다가가는 그녀의 모습.
낯선 그의 모습이 익숙함으로 바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다시 만나게 되어 좋았다. 생각을 바꾸니 그 사람이 보였다. 내면을 바라보니 그 사람이 다가왔다. 나를 만나서 좋아하는 모습, 마주보며 부끄러워하는 모습, 묻지도 않은 말을 알아서 이야기하는 솔직한 모습, 세심하진 않지만 챙겨주는 모습, 꾸밈없는 말과 꾸밈없는 눈빛까지, 모두 다. 만나보니 느껴졌다. 그를 바라보는 건 먼지 쌓인 거울을 닦아낸 후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이제야 진정으로 그 사람을 볼 준비가 되었다. - page 46 ~ 47
그렇게 그 사람과의 연애를 하면서는 빨강색이기도 하고 파랑색이기도 하는 모습이 그려집니다.
우리의 모습처럼......
특히나 이 이야기.
이름은 불러주면 효력이 나타난다. 이름을 별 의미 없이 받아들이며 지나가는 경우도 있지만, 이름은 한 사람을 나타내주는 가장 첫 번째 표현 방법이자 인생에서 중요할 수밖에 없는 표식 같은 것이다. 한 평생 단 하나의 이름으로 불리며 살 텐데 이름을 바꿈으로써 어떤 방식으로든 변화가 생긴다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니 나는 '보라'의 나날보다 '재희'의 나날들이 더 좋았다. - page 139
누군가가 내 이름을 불러줄 때 비로소 나의 '존재'가 생긴다는 것.
그래서 김춘수 시인의 <꽃>에서도 이렇게 외쳤었나봅니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준 것처럼
나의 이 빛깔과 향기에 알맞은
누가 나의 이름을 불러 다오.
그에게로 가서 나도
그의 꽃이 되고 싶다. - 김춘수의 <꽃> 중에서

그리고 어느 순간 그들은 서로에게 번지고 물들어 마침내 하나가 됩니다.
아마도 서로를 '인정'하면서 서로의 습관에 물들어가고 '우리'가 되었습니다.
따스한 온기란, 감정을 나눈 깊은 사이에서 느낄 수 있다. 인사를 하고 서로에 대해 알아가기 전에는 남도 아니고 그저 사람일 뿐이다.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닌. 그렇지만 이름을 묻고 안부를 묻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관계는 달라진다. 각자 다른 세상에 살다가도 두 세상은 맞물리게 된다. 서로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관계로. 더없이 소중해지는 관계로. 얼굴을 마주하고 눈빛을 주고받고 두 손을 마주잡고 서로를 보듬어주고 안아줄 수 있는. 36.5도의 체온을 나눌 수 있는 그런 관계로. - page 247

그렇게 그들은 '우리'라는 캔버스에 여러 색을 물들이고 있었습니다.
잠시 잊고 있었던 '우리'의 모습이 떠오르곤 하였습니다.
저 역시도 거묵거묵한 색으로 가득한 도화지에 그를 만나 조금씩 내 색도 알게 되고 다른 색들이 번져 물들고 있었습니다.
때론 어두운 색이 점으로 나타나곤 하였지만 어느새 '물'로 하여금 그 색이 흐릿해짐을 깨닫기도 하였습니다.
결혼을 하고 지금의 '우리'의 색을 보니 참으로 많은 색들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나와 그의 색이 아닌 아이들의 색도 더해지니 더 큰 도화지를 준비하고 매순간의 색에 물들어지고 있었습니다.
나중엔 어떤 색들이 있었는지 꼭 우리 가족이 모여서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져볼까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