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체 옆에 피는 꽃 - 공민철 소설집 한국추리문학선 4
공민철 지음 / 책과나무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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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부터 섬뜩하였습니다.

하지만 이 책을 읽다보면 더 섬뜩한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는 소설 속의 이야기로 치부하기엔 우리 현실의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다는 점이......

그래서 읽을 수 밖에 없는 추리소설이었습니다.

시체 옆에 피는 꽃


소설 속엔 현대 우리 사회의 모습이 그려져 있었습니다.

고독사, 학교폭력, 성범죄 등 티비를 틀면, 인터넷 검색을 하면 어김없이 보이는 그런 사건들과 연관있었습니다.

특히나 '엄마'인 저에게 유독 충격적으로 다가왔던 이야기 <엄마들>.

아이를 등하원 시키고 나면 엄마들끼리 모여서 이런저런 수다를 떨곤 합니다.

"참, 모두 그 이야기 들었어요? 이 동네 땅값이 또 뛰나봐요." - page 41

자신의 아이는 좋은 환경에서 자라기 바라는 엄마들의 마음.

이는 '환경'이 '집값'과도 연관있음에 부정할 수는 없는 진실이었습니다.


어느 날 산책로를 따라 3동 뒤편에 하늘에서 종이비행기가 하나 둘 내려옵니다.

아무래도 아이들의 장난이겠지만......

바위 위에 걸터앉은 한 여자아이의 얼굴로 갑작스럽게 날아온 비행기는 저 하늘로 데리고 가 버립니다.

그 광경을 목격하게 된 소현과 그녀의 딸 채원, 그리고 준기 엄마.

그리고 충격적인 이야기.

"저희 아파트가 내세우는 슬로건 아시죠? 도심 속 아이들이 살기 좋은 아파트입니다. 아파트 입구에도 현수막이 붙어 있는 거 보셨을 겁니다. 아파트 뒤편으로 비싼 돈 들여 산책로를 조성한 것도 다 그 사업의 일환이에요. 요 앞쪽 논이 없어지면서 도로가 확장되는 이야기 들으셨나요? 도로변을 따라서 건물들도 많이 생길 겁니다. 유동인구도 많아지겠죠. 저희들은 정말 노력했습니다. 그 동안 들인 수천만 원의 광고비, 그리고 앞으로 얻을 수억의 이익을 생각해 보세요. 저희 아파트가 이번에 경기도 살기 좋은 아파트 2위에 선정되었어요. 정부의 공공주택기금사업의 혜택을 받기로 확정이 났고요. 지금이 딱 호조를 보이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아파트 산책로에 아이가 죽어 버렸습니다. 3동 대표님 말로는 바위 위에 핀 꽃을 그리려다 실수로 떨어져 죽은 것 같다는데, 이게 소문이 나 봐요. 지금까지 쌓은 이미지가 한순간에 박살나 버립니다. 손해가 이만저만이 아니에요. 그래서 이소현 씨,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관리소장은 잠시 말을 멈추곤 다른 사람들과 눈빛을 교환했다. 그의 눈은 매섭게 빛났다.

"부탁이라니, 무슨......"

"낮에 본 일은 비밀로 해 주셨으면 합니다." - page 56 ~ 57

저 역시도 그들에게 묻고 싶었습니다.

준기 엄마, 돈이 그렇게 중요한 건가요? - page 60


하지만 진실은 언젠가 밝혀지는 법!

그렇기에 제목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꽃'이 피는 것은 아닐까 싶었습니다.


마지막에 존재하는 <시체 옆에 피는 꽃>의 이야기는 너무나도 긴 여운으로 남곤 하였습니다.

특히나 이 이야기는 연극 <시체 옆에 피는 꽃> 공연을 하면서 이 이야기는 고한읍에서 일어난 실제 사건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목에 칼이 꽂힌 시체와 꽃그림.

그리고 연극의 마지막을 장식한 이 한 마디.

할아버지, 아버지는 당신을 원망하고 증오했습니다. 평생에 걸쳐서요. 하지만 동시에 너무도 그리워했습니다. 돌아갈 수 없는 먼 곳을 보는 듯 당신에 대한 이야기를 했으니까요.

그러니까 이제 그만해 주세요. 그만하셔도 됩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제게 말씀해 주셨습니다. 1974년, 잠자던 남자의 목에 칼을 꽂아 넣은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고요. - page 399


할아버지를 찾기 위해 이 연극을 시작했습니다.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당시 열여덟 살 아버지와 동갑내기였던 어머니는 저를 버립니다. 아버지는 저를 혼자 키우셨습니다. 다섯 살 때까지 납치범의 손에 길러진 사람입니다. 친부모에게 학대를 당한 사람입니다. 청소년기부터 가출을 해 친부모와 연을 끊고 산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 손에서 저는 어떻게 자랐을까요?

역시 불행했을 거라고요? 아니에요. 저는 가슴을 펴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너무너무 즐거웠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행복했을 겁니다. 아버지는 제게 늘 말씀하셨습니다. 자신이 어렸을 때 보고 느낀 행복을 제게도 맛보게 해 주고 싶었다고요.

...

저는 당신에게, 아버지를 키워 준 할아버지에게 박기설이라는 이름으로 감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왜냐면 제 행복은 당신이 준 것이기도 하니까요.

할아버지, 할아버지는 아버지를 살인자로 만들고 싶지 않았던 거죠? 그러니까......

잠깐만요, 형사님들, 아직, 아직 극은 끝나지 않았어요.

잠깐만 기다려 주세요!

저를 지금 이곳에 서 있을 수 있게 해 준 사람이에요. 잠깐이면 돼요. 한 번만 안아 보게 해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 page 404 ~ 406

범행을 미워해도 그 사람을 미워할 수 없음에......

이 소설을 읽으면서는 가슴이 너무나 아파왔었습니다.


단순히 비판적이고 끔찍한 사건만이 있지 않았습니다.

그 사건엔 저마다의 사연이 있었고 그 사연이 밝혀지면서 비로소 한 씨앗에서 싹이 틔여 꽃이 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범죄 사실만은 대단히 나쁘고 중하게 여겨야함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될 수 밖에 없었던 환경은 그들을 바라본 우리의 시선도 한 몫을 하고 있지는 않는지 반성하게도 되었습니다.


아홉 편의 이야기를 읽고나니 가슴 한 켠에서 슬픔의 눈물로 자란 한 떨기의 꽃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할미꽃.

슬픔과 추억이라는 꽃말을 간직한 이 꽃이 유난히 생각난 이 책.

안타까운 우리의 현실도 유독 마음에 걸리는 그런 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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