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케아에 집결한 주교들의 다수는

동방 정제 막시미누스와 리키니우스 시절에

눈이 뽑히거나 다리 힘줄이나 팔이 잘린 자들로 구성된 고백자들이었고,

6월 초 니케아에 나타나 이 “고백자들의 군대”를 이끈 총지휘관은

리키니우스를 제압한 ‘전승자’ 콘스탄티누스였다.

고백자들의 군대가 지켜보는 앞에서 콘스탄티누스는

이집트 테베에서 참석한 주교 파프누티오스를 맞아

막시미누스의 핍박 때 뽑힌 그의 오른쪽 눈 부위에 입맞춤하며

극진한 존경을 표했다.


- 곽계일, 『니케아 신경 형성기』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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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는 힘이 세다 - 하나님의 위대한 이야기 속에서 나의 자리 찾기
폴 바스덴.짐 존슨 지음, 정효진 옮김 / 성서유니온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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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지 않은 사람들이 성경을 따분하고 케케묵은 율법 모음집 정도로 생각하기도 하지만, 사실 성경은 이야기책이다. 수천 년을 배경으로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들이 어떤 관계를 맺어왔는지를 기록한 책이 성경이다. 하지만 또 그 분량이 적지 않으니 (재미있는 책은 길수록 좋긴 하지만) 도전할 엄두가 안 나는 사람들도 있다. 특히나 청소년이나 어린이라면.


이 책은 바로 그런 이들을 위해 쓰였다. 미국 텍사스에 있는 한 교회의 공동 창립자인 두 저자는, 성경 전체에서 여덟 개의 장면을 뽑아서, 전체적인 이야기를 재구성한다. 창조와 축복(아브라함), 구출(출애굽), 선택(다윗), 경고(선지자들), 구원(예수 그리스도), 파송(사도행전), 승리(요한계시록)이라는 여덟 개의 주제는 성경 전체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핵심사항들이다.





번역자는 문장들을 마치 이야기하는 것 같은 문제로 번역을 했다. 이게 영어에서도 드러나는 특징이었을까 싶었는데, 중간 중간 나오는 유머나 예화 같은 걸 보면 뉘앙스는 비슷하지 않을까 싶다. 덕분에 책은 어른이 청소년/어린이에게 성경 이야기를 들려주는 느낌으로 읽힌다. 내용이 또 가만 보면 기독교 세계관의 이야기와도 연결되는 면이 있다. 이런 식으로 성경 이야기를 중심으로 세계관을 가르치는 것도 괜찮은 방법인 것 같다.


사실 성경을 이야기로 보고 여기에 집중하는 책들은 이미 많이 나와 있다. 마이클 고힌과 크레이그 바르톨로뮤가 함께 쓴 두 권의 책(『성경은 드라마다』, 『세계관은 이야기다』)도 이 부분에 집중하고 있고, 성경을 거대 내러티브로 보는 기독교세계관의 관점에 따르면 이런 식의 소개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 중에서도 이 책의 장점이라면 역시 쉬운 문체로, 내용을 전개하면서, 종종 청소년들(또는 넓게 잡으면 사회초년생 청년들까지)에게 맞는 적용과 질문들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점이다. 사실 교회의 청소년들에게 권해 줄만한 책 자체가 적은 우리나라 기독교 책 상황을 생각해 보면 꽤 반가운 일이다. 다양한 연령대의 성경읽기 운동을 하는 성서유니온에서 냈으니 더욱 안심.





그렇다고 단지 청소년들을 위한 쉬운 버전의 성경 이야기의 소개 정도라고만 보면 안 된다. 콘셉트는 그게 맞지만, 어른들도 성경을 읽으며 깊이 생각해 보지 않았을 만한 질문과 통찰이 여기저기에 박혀 있다. 차분하게, 성경의 맥을 잡아보는 독서로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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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양사 해부도감 - 이능의 힘과 지식을 지닌 신비의 존재 ㅣ 에이케이 트리비아북 AK Trivia Book
가와이 쇼코 지음, 강영준 옮김 / AK(에이케이)커뮤니케이션즈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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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나 드라마, 일본 애니메이션 등을 통해서 우리나라에도 나름 알려져 있는 아베노 세이메이라는 인물이 있다. 이른바 “음양사”라고 불리는, 우리로 치면 무당쯤 되는 일을 하는데, 또 고위 관직에 있기도 한 조금은 이색적인 일을 하는 인물이다. 영화 속에서는 식신이라고 불리는 요괴를 부리고, 부적으로 저주를 내리기도 하고, 도술로 상대를 제압하기도 하는 반쯤은 신선 비슷한 느낌으로 등장하기도 하고.


이 책은 그 ‘음양사’가 누구인지, 어떤 일을 하고, 역사적으로 어떻게 살아왔는지 등을 흥미 중심으로 정리해 놓았다. 도서관에 갔다가 다른 책을 빌리는 김에 잠시 머리를 식힐 겸 빌려온 책. 그래도 나름 역사 파트에 들어가는 책인지라, 문헌 자료에 기초해 정리한 내용이니, 일본 중세 문화를 공부하는 기분으로 가볍게 읽어볼 만하다.




가장 먼저 음양사는 공식 관료였다. 중무성에 속한 음양료라는 기관에서 일하는 공무원이었던 것. 비슷한 직책은 중국에도,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일관(日官)’이라고 불렀다. 천문을 관측하고, 기상을 측정하고, 때로는 별자리 등을 통해서 일종의 운을 점치기도 했던. 점을 친다는 것을 빼면 대체로 그 당시의 과학기술관료에 가까웠는데, 또 이 점이라는 것도 약간의 우연성이 개입된다는 것을 빼면, 그 해석에 있어서는 결국 통계와 맞닿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원래는 주금사라고 불리는, 말 그대로 주술을 전문으로 하는 좀 더 무당에 가까운 조직과 관리들도 있었다. 그러나 10세기 경 이들 주금사들이 하던 일을 점차 음양사가 흡수하게 되었다고 한다.


중세 일본은 말 그대로 약육강식의 시대였다. 끊임없이 권력다툼이 일어나고, 왕은 있었으나 실권을 가진 권신들이 국정을 주물렀다. 그런 시대에 관료로서 살아남으려면 어쩔 수 없이 어딘가에 줄을 서야 했을 것이고, 그건 음양사들도 마찬가지였다. 권력다툼의 여파로 밀려나거나 목숨을 잃는 음양사들도, 반대로 권력의 지원을 받아 단숨에 최고 지위인 음양두까지 올라가는 일도 생긴다.


초반에 언급했던 세이메이 같은 인물이 그렇게 성공한 음양사인데, 그 후손들이 자기 가문의 명성을 높이기 위해 다분히 과장된 다양한 설화들을 만들어 냈다. 세이메이의 어머니가 하얀 여우가 변한 여자라든가, 그가 죽었다가 살아났다던가, 수많은 식신들을 부렸다던가 하는 전설들이 그것.





한편으로 왜 일본은 인근의 한반도나 중국 대륙과 달리 그렇게 음양사가 중요하게 여겨졌을까 하는 의문에, 저자는 흥미로운 설명을 제안한다. 기본적으로 헤이안 시대(8세기 말~12세기 말) 일본의 정치는 유교적 사고가 바탕이 되고 있었다. 그런데 유교에서 천재지변은 하늘이 통치자의 잘못을 벌하는 것으로 이해되었다. 이게 당대의 권신들에게 부담이었던 것.


그래서 그들은 천재지변을 귀신이나 원령의 저주 때문이라고 해석하는 음양사들이 필요했다. 저주는 음양사들이 나서서 제사를 하거나 다양한 조치를 취하면 해결될 일이니까. 그 책임을 최고권력자가 져야 할 필요가 사라진다는 것. 이런 이해관계 때문에 음양사라는 직책이 통치에 중요했다는 건데, 왕으로서의 책임감까지는 갖출 필요가 없었던 권신들이 선택할 만한 선택지였던 것 같다.


물론 이런 공식적인 음양사들은 권세 있는 사람들이나 불러서 부탁할 수 있었기에(정원도 20여 명 밖에 안 됐다고 한다), 민간에서는 비공식적인 음양사들도 활동했다고 한다. 승려이면서 음양사 노릇을 했던 일들도 있었고(법사음양사), 음양사가 하는 일들을 어깨너머로 보고 배운 하인들도 음양사 흉내를 내기 시작했다(창문사). 그러나 후자 쪽은 일종의 예능인으로, 주술성을 지닌 다양한 공연을 하면서 생계를 유지했다고.


음양사가 공식적으로 폐지된 것은 메이지 정부에서였다고 한다. 주술은 미개한 사교라고 여겼고, 또 다른 주요 업무인 달력 제작은 서양력을 가져오면서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다양한 형태로(일종의 미신이나 금기로) 오늘날에도 그 영향력은 희미하게나마 남아있다. 일단 신사문화가 생활 속 깊이 남아 있기도 하고, 다양한 운세뽑기 등등.






재미로 보기에 딱 좋지만, 이 책의 가장 큰 문제점은 판형은 작고, 글씨는 더 작다는 점이다. 기본 본문도 여느 책에 비해 1포인트 이상 작은데, 삽화와 함께 적힌 글씨는 그보다 또 작고, 삽화 영역에 들어가는 표라도 나오면 글씨는 더 작아진다. 깨알보다 작은 글씨들을 보고 있으면, 이제 슬슬 노안이 오는 나로서는 포기할 수밖에...


이 정도 내용을 담으려면 아예 판형을 키우던가, 페이지 수를 좀 더 늘려서 가독성을 좋게 했더라면 어땠을까 싶은데, 그러려면 책값이 또 올라가겠지. 근데 종이도 두꺼운 걸 쓴지라.. 적당히 타협이 안 됐으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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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6-25 22: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노란가방님 리뷰를 읽고 사볼까 생각했는데 판형이 작고 가독성이 나쁘다고 하니 읽을 엄두가 당최 생기지 않네요ㅜ.ㅜ

노란가방 2026-06-26 09:17   좋아요 0 | URL
판형은 그냥 보통 책 정도고요... 다만 글씨가 작긴 합니다. 요새 눈이 좀 침침한 듯하여....ㅜ
 
정치에 오염된 신앙의 언어
권연경 외 지음 / 야다북스 / 202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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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교회의 극우정치세력화를 비판하는 책 분야의 대표주자(?)라고 할 만한 야다북스에서 또 다른 책이 한 권 나왔다. 전에 관계자분을 만나서 잠깐 대화를 하기도 했는데, 어디까지 가려고 하는지 흥미롭게 지켜보게 되는 출판사랄까.


이번 책은 ‘단어’에 집중한다. 총 여섯 개의 챕터로 나누어져 있는데, 각각 신앙과 윤리, 예언과 선동, 정교분리, 자유와 평등, 국민저항권, 극우 기독교와 근본주의 같은 단어들을 중심으로 사회와 교계를 아울러 분석한다.


대체로 어느 정도 내용이 예측이 되는 장들 가운데 특별히 눈에 들어온 두 개의 주제가 있다. 최종원 교수가 정교분리의 역사적 맥락을 정리하는 3장과 김동춘 교수가 극우 기독교의 신학적 배경을 분석하는 6장이이다.





최종원 교수는 미국 헌법에 언급되어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정교분리’가 실은 국교의 부인에 가까웠으며, 이는 종교의 자유를 보정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설명한다. 결국 이 조항은 국가에 종교에 개입하지 말고, 나아가 종교(단체)의 자유를 충분히 보장해야만 한다는 책임을 지운다.


결론부에서 저자는 심지어 극우 기독교의 발언이라고 하더라도, 원칙적으로 동일한 기준으로 보장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한국 교회가 제대로 말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 최종적인 주장이지만, 이제까지 야다북스에서 나온 책들의 논조와는 살짝 다른 결처럼 느껴져서 재미있었다.


이 부분은 최근 읽었던 오스 기니스의 책 『정치와 종교, 그 위험한 관계에 대하여』에서 좀 더 깊이 소개되고 있는데, 그 책의 결론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등장한다. 진실이 언제나 우리의 구미에 완전히 맞지는 않을 수 있다. 그렇다고 그걸 따르지 않는다면 우리 또한 당파성에 매몰된 극단적인 무리로 분류될 수밖에.





6장에서도 꽤 흥미로운 분석이 등장한다. 우리는 보통 극우 기독교가 대체로 신학적인 근본주의자들인 것처럼 인식해 왔다. 보수적 신학이 보수적 정치관을 낳고, 그들은 쉽게 극우로 넘어간다는 간단한 그림이다. 하지만 김동춘 교수는 이런 그림이 얼마나 단순하고 왜곡된 그림인지를 흥미롭게 풀어낸다.


우선 이미 한국교회의 신학적 자유주의화는 상당부분 진행되었으며, 개인의 자융적인 선택을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대신 교리적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게 여기는 시대가 되었다고 진단한다. 이른바 극우 기독교가 확산이 근본주의적 신앙의 증거와 매칭되지 않고 있다는 것. 저자는 근본주의적 신학보다는, 기득권 세력과 결탁해 정치권력 획득을 추구하고 있는 ‘세속주의 기독교’가 문제의 핵심에 있다고 본다. 흥미로운 분석이다.


저자는 이런 세속주의적 경향이 보수적 신앙생활을 하는 이들만이 아니라 진보 자유주의에서도 확산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럼에도 주로 진보적 신학을 갖고 있는 비판자들은 모든 문제를 근본주의 신학과 묶어 폐기하면 될 것처럼 주장한다. 번짓수를 잘못 찾은 비판이고, 당연히 그런 비판으로는 좋은 결과를 얻기 힘들다.


챕터 후반부에는 아브라함 카이퍼의 영역주권론을 붙들고서 기독교 국가를 건설하거나, 최소한 기독교가 정치적 힘을 가져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의 오류를 비판적으로 검토한다. 이 부분은 앞서 3장에서 논의했던 종교의 자유 영역과 함께 고민해야 할 부분이다. 이 역시 앞서 언급했던 오스 기니스의 책에서 어느 정도 논의된다.





이번 책은 피상적인 비판을 넘어, 문제 안으로 조금 더 깊이 들어간 느낌을 준다. 보통의 예상과 달리 실제는 경계선이 울퉁불퉁하고, 종종 여러 가지 문제가 중첩되어 있어서 복잡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낙인찍기나 정체성 정치 같은 도구들이 언제나 문제를 해결하기 보다는 갈등을 악화시키는 이유다. 소위 부수적인 피해들이 생각보다 훨씬 크기 때문.


사안의 복잡함을 이해하지 못하면, 언제나 가장 단순한 답을 붙잡기 마련이다. 내 반대쪽에 서 있는 사람들이 문제이고, 그들의 입을 막고 제거(혹은 공론장에서 배제)하는 것이 효과적인 대안처럼 여겨진다. 그러나 신앙언어의 오남용은 ‘그들’뿐만 아니라 ‘우리’에게서도 나타날 수 있음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어떤 해결책이든 그리 효과가 오래 가지는 못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은 확장된 듯한 이번 책의 일부 내용들이 조금 더 눈에 들어오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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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환자를 서류처럼 대할 것이 아니라

모든 서류를 환자처럼 대하기로 결심했다.


- 폴 칼라니티, 『숨결이 바람 될 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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