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로마에서는 전쟁터에서 큰 공을 세운 병사들에게 ‘관’을 수여했다. 그 중에서도 전장에 있는 풀을 엮어서 만들었다는 ‘풀잎관’은 혼자서 한 군단급 이상의 부대를 위험으로부터 벗어나게 한 공을 세운 사람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였다. 오늘날에는 머리에 관을 씌워주는 대신 가슴에 훈장을 달아주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 영화에서 주요하게 여겨지는 미군 명예훈장은 아마 고대 로마의 풀잎관과 비슷한 영예일 것이다. 영화는 마땅히 명예훈장을 받아야 할 사람이 그렇지 못한 비틀린 상황을 배경으로 한다.

 

     ​그 주인공은 베트남전쟁 당시 미군 공군항공지원대 소속의 의무병 피츠였다. 당시 미군의 한 부대가 적들의 매복에 걸려 악전고투하고 있는 상황에서, 부상자를 수송하기 위한 헬기에 타고 있던 피츠는 의무병이 실려올라오는 것을 보고 자신이 내려가 부상당한 의무병의 임무를 수행하기로 결심한다. 그는 뻔히 죽음이 예상되는 그 상황에서 여러 사람들을 구하고 전사한다.

 

     ​수많은 부대원들이 피츠로 인해 용기와 영감을 얻고, 무엇보다 생명을 구했지만, 왜인지 피츠에게는 최고훈장인 명예훈장이 아닌 낮은 등급의 훈장만이 수여되었다. 생각해 보면 대규모 아군이 큰 피해를 입은 전투는 분명 작전상의 실수나 오판이 개입되어 있을 게 분명했고, 사건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는 쪽을 원하는 사람도 있었을 게다. 훈장의 누락은 이 과정에서 매우 고의적으로 벌어진 일이었다는 것.

 

 

 

 

     안타깝지만 세상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한 것 같다. 정치적인 이유로 공은 가려지고, 과는 부풀려지기도 한다. 손톱만한 잘못으로 충분한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이들이 정치적인 공격으로 낙마하기도 하는 모습을 우리는 봐오지 않았던가.

 

     장교로 군 생활을 하면서 몇 번인가 표창장을 받은 경험이 있다. 그런데 이 표창장이라는 게 무슨 큰 훈련을 끝내거나, 아니면 그저 정기적으로 주는 식이어서, 내가 받았던 것들은 같은 병과에서 돌아가며 받는 식이었다. 진급에 아주 작은 점수가 더해지긴 하지만, 단기복무 후 전역할 예정이었던 나는 딱히 받을 필요가 없으니 다른 사람을 주라고 해도, 어차피 한 해에 같은 걸 몇 개를 받든 가점은 더 되지 않는다며 극구 받으라고 해서 받긴 했었다. 

 

     줄 이유가 없다면 안 주면 그만일 텐데, 무슨 이유 때문인지 그건 또 안 된단다. 상이 남발되면 적절한 공적평가가 이루어질 수 없고, 그러면 정말로 중요한 자리에 올라야 할 인재들이 묻히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물론 겨우 표창장 몇 개를 가지고 진급이 결정되지는 않겠지만, 이런 경향들, 말하지 않고 묻어가는 분위기들은 결코 좋은 영향을 주지는 못할 것 같다.

 

     30년이 지나는 동안에도 당시 부대원들은 피츠에게 명예훈장이 추서되도록 많은 노력을 해왔다. 생각해 보면, 상을 받아야 할 사람에게 주기 위해 노력하는 건, 그만한 공을 세우는 것 못지않게 중요한 일일 것이다. 명예와 인간의 도리라는 측면뿐만 아니라, 한 공동체가 지속되기 위해서는 이를 위해 헌신과 희생을 한 이들을 마땅히 칭송하는 게 유리할 테니까.

 

 

 

 

    한편으로 영화 속에는 전쟁으로 인한 다양한 부수적 영향들에 관한 이야기도 보인다. 최악의 전투에 참여한 후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에 시달리는 다양한 부대원들의 모습은 전쟁이 남긴 상처가 얼마나 큰지를 잘 보여준다. 전쟁을 일으킨 것은 이들이 아니지만, 군인의 의무에 따라 명령을 수행한 이들이 가장 큰 피해를 감당해야 한다는 건, 애초에 전쟁이라는 것 자체가 얼마나 모순적인 일인지를 보여준다.

 

     이와 관련해서 흥미로운 장면 중 하나는 반전운동이 한창이었던 60년대 미국에서, 베트남전에 참가했다가 돌아온 사람들을 향해 보여주던 냉소적인 반응 부분이다. 참전용사 중 한 명의 트라우마는 한 술집에서 그가 겪었던 적대적인 반응에 기인하고 있었다.

 

     물론 베트남전은 미국의 정략적 목적을 위해 비열한 속임수로 시작된 전쟁이었다(하지만 뭐 모든 전쟁이 대개 정략적 목적을 위한 이기적 판단이지 않던가). 하지만 그 전쟁에 참가해 군인으로서의 용기와 이타심, 또 맡은 임무를 수행하고자 했던 이들의 그 행동 자체는 비난받을 만한 것이 아니었는데도 사람들은 이 둘을 혼동하고 있었다. 실은 그들이 조롱하던 그런 자질들로 인해 그들의 삶이 지켜지고 있음에도 말이다.

 

    명예를 받아 합당한 일들에 제대로 된 대우가 이루어지지 않는 사회는 스스로 무너질 것이다. 모든 ‘제복’이 경의를 받아야할 것은 아니지만, ‘해야 할 일을 충실히 하는 제복’은 지금보다는 더 큰 영예를 얻는 게 맞는 것 같다. 우리 사회는 이 일을 제대로 하고 있을까.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무상 보육이 시작되면서 사람들은

요즘 젊은 엄마들이 아이는 어린이집에 보내 놓고

커피를 마시고, 손톱 관리를 받고,

​백화점에서 쇼핑이나 하고 다닌다고들 했다.

​하지만 지금 대한민국에 그 정도 경제력을 갖춘 30대는 극히 일부다.

​최저임금을 받으며 식당과 카페에서 음식을 나르고,

​남의 손톱을 정리하고,

​마트와 백화점에서 물건을 파는 엄마들이 더 많다.

 

​경기 불황, 높은 물가, 열악한 노동 현상……

​삶의 어떤 고난도 남녀를 가리지 않는다는

당연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았다.

 

- 조남주, 『82년생 김지영』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절망은 슬픔과 다르다.

​슬픔은 위로받을 수 있는 고통이다.

​슬픔은 여러 좋은 것 중 하나를 잃었을 때 찾아온다.

​예컨대 직장에서 낭패를 겪었다면 가정에서 위안을 얻어 헤쳐 나갈 수 있다.

​반면에 절망은 위로받을 길이 없다.

​궁극적인 것을 잃었을 때 찾아오기 때문이다.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길을 잃어버린 사람은

달리 의지할 만한 대안이 없다.

 

- 팀 켈러, 『팀 켈러의 내가 만든 신』 중에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기억은 한 개인과 민족의 정체성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역사 교육이 그렇게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고,

지난 정권에서 그렇게 역사교과서를 바꾸려고 했던 것도 다 이유가 있었던 것.


(호불호는 있겠지만)

천 년이 넘는 시간 동안 세계에 흩어져 있던 유대인들이

다시 한 나라를 건설할 수 있었던 것도 다 이 기억 때문이었다.


제대로 기억하는 나라는 소망이 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영화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하는데, 영화 속 세상이 뭔가 익숙해 보이면서도 이질적이다. 화폐 가치는 폭락했고, 사람들은 실업으로 내몰려 시위에 나서고 있고, 사방에 빈 건물들 천지인데다, 치안도 제대로 유지되지 않는 모습이다. 상상할 수 있는 안 좋은 모습들은 다 모아놓은 것 같은데, 뭐 감독도 제대로 설명하지는 않고 있으니까.

 

 

     아무튼 이런 절망적인 상황은 이제 막 교도소에서 나온 준석(이제훈)에게서 희망을 사라지게 만들었다. 결국 그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계속 되뇌던 하와이에 가기 위해 친구들과 함께 사설도박장을 강도질하기로 결심하고 마침내 성공한다. 그러나 친구들은 곧 ‘조직’에 속한 킬러 한(박해수)에게 쫓기게 되고, 그는 마치 사냥을 하듯 친구들을 조여가기 시작한다.

 

 

 

 

     넷플릭스로 개봉한 영화인데, 평이 상당히 안 좋다. 가장 큰 이유는 이야기 구조가 허술하다는 것. 사실 그런 평가는 전혀 모른 채 보기 시작했는데, 영화가 끝날 때 즈음에 느낀 건 역시나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 영화는 좀처럼 몰입이 되지 못하고, 수없이 떠오르는 의문들에 별다른 대답도 해 주지 않은 채 얼버무리듯 끝나고 만다.

 

     ​영화에 몰입이 되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는 주인공 일행이 딱히 호감이 가지 않는다는 점 때문이다. 출소하자마자 또 다른 범죄를, 그것도 총기까지 동원하는 강도질을 계획하는 것도 황당하고, 여기에 얼토당토않은 이유를 갖다 붙이는데, 거기에 또 친구들이 설득이 된다. 허술한 계획이 또 성공하는 것도 우스운데, 그 뒤의 엉성한 대처도 한숨이 나오고... 도대체 ‘조직’에서 운영하는 도박장을 터는 데 성공했다고 해서,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게 말이 되는가.

 

 

 

 

​     캐릭터들 하나하나의 매력을 살리는 데도 영화는 실패한 것 같다. 각자의 인물과 관련된 내러티브는 빈약하기 그지없고, 그들이 저지른 일에 비하면 이 정도의 설명으로 어떤 ‘정당성’ 같은 걸 부여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심이어 영화의 반대쪽 주요 축인 ‘한’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전혀 설명이 없어서 생뚱맞은 느낌도 든다. 무슨 생각으로 스크린을 보고 있어야 하는 건데?

 

      여기에 어지간히 겉멋 잔뜩 뜬 추격/대결 장면도 웃음이 나올 정도로 어이가 없는데, 소총을 들고 아무데나 쏴대는 건 ‘람보’에서 배운 건가 싶고, 은/엄폐는 전혀 할 생각도 하지 않는 한심한 개인전술 움직임과 다음 수를 전혀 보지 못하는 듯한 판단의 연속들까지...

 

 

     이 영화의 제작에 90억이라는 거금이 들어갔다고 한다. 뭐.. 촬영 기간 일자리는 창출됐으니 좋은 건가...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