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결코 현재에 만족하지 않는다.

과거를 불러내고 미래를 예측한다.

마치 미래가 다가오는 속도가 너무 더뎌서 재촉이라도 해보려는 듯이,

또는 너무 빨리 날아가 버린 과거를 붙들어 두기라도 할 듯이 도로 소환해 낸다.

인간은 얼마나 슬기롭지 못한지 제 몫이 아닌 시간 속을 헤매고,

반면에 유일하게 스스로 어찌해 볼 수 있는 시간에 관해서는

조금도 깊이 생각하지 않는다.


- 블레즈 파스칼, 『팡세』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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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ㅣ 고래뱃속 창작그림책
명은주 지음 / 고래뱃속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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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동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의 약 1/3을 쏟는 일이 바로 잠이다. 아주 어린 시절에는 하루의 거의 대부분을 잠으로 보내다가, 자라면서 점점 자는 시간이 줄어들어 가끔은 밤잠을 설치면서 뭔가를 하기도 한다. 늙으면 잠이 줄어든다는 말도 있지만, 사실 깨어있는 시간이라고 해서 모두 명료한 정신을 유지하고 있는 건 아니니까.. 어쩌면 다시 잠자는 시간이 늘어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잠은 꿈꾸는 시간이기도 하다. 다양한 제약들로 현실 속에서는 이루지 못했던 일들이 꿈속에서는 무의식의 도움을 받아 실제 행동으로 옮겨지기도 한다. 어떤 경우 그건 간절히 만나고 싶었던 사람들을 볼 수 있는 기회이자 기쁨이기도 하지만, 물론 악몽과 같은 일들도 있다. 어찌되었든 잠은 그렇게 인간 상상력이 활동할 수 있는 무대를 만들어 주기도 한다.


어린 시절을 떠올려 보면 그런 잠을 대체로 좋아했던 것 같지만(학생 때는 왜 이렇게..), 또 항상 잠을 좋아하지는 않았던 것 같기도 하다. 늦은 밤까지 해야 할 일(시험 공부라던가, 게임이라던가)이 있다면 잠은 언제나 늦추고 싶은 불청객이었고, 그보다 조금 어렸을 때는 사춘기와 연결되어서 죽음에 관한 감각의 한 자락을 마주하는 것 같은 두려움도 있었다. 최근엔 침대에 누워도 쉽게 잠이 들지 않아서 더 걱정이지만.



서론이 길었다. 이 책은 잠에 관한 심리적, 사회적 연구를 담은 게 아니라, 그림책이다. 큼지막한 판형에, 딱 동화 같은 그림체로, 잠이 들지 못하는 주인공의 심리를 재미있게 그려낸다.


재미있는 건 작가가 잠에 빠져 들어가는 것을 정말로 어떤 구멍 속으로 빠지는 모습으로 그려내고 있다는 부분이다. 교실이든 침대든, 심지어 버스 안에서도, 잠이 드는 사람 밑에는 어김없이 커다란 구멍이 하나씩 만들어진다. 필요할 때마다 그런 구멍을 만들어서 잠에 빠질 수 있다면 참 편할 것 같다.


그림이 귀여워서 아이들이 흥미를 가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자기 전 읽어주면 좋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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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은 없지만 욕구는 가득 - 뚜렷한 취향도 나만의 색깔도 없지만 그래도 괜찮아
이솜 지음 / 서랍의날씨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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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새 없이 말을 하고, 끊임없이 일을 벌이고, 사고 또 사면서 항상 채우지만, 또 그렇다고 사람들이 몰려드는 고시에서는 금세 지쳐버리고, 잠도 일찍 드는 작가가 쓴 에세이. 이렇다 할 분류에 딱 맞아떨어지지도, 그렇다고 뭔가에 엄청난 두각을 나타내며 인정을 받는 것도 아니지만, 뭔가를 하고 싶다는 생각만큼은 충만한 작가는, 지나친 염려와 불안, 걱정, 실패에 대한 두려움 같은 것들을 내려놓고, 하루를 잘 살아가는 게 최고라는 자신의 깨달음을 조심스럽게 내어놓는다.


사실 우리 대부분이 그렇지 않던가. 예전엔 혈액형, 요새는 MBTI(사실 이것도 예전에 유행이 한 번 돌긴 했었다)에 따라서 나를 이런저런 틀에 따라 분류하고 따로 담는 게 유행이지만, 어느 날에는 이쪽에, 또 다른 날엔 저런 사람인 듯한 기분이 드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70억이 넘는 인류를 겨우 열댓 가지의 분류로 나누는 게 애초에 말이 될 리가 없으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잘 사는 법’이 어딘가 법전이나 신전의 벽에 적혀있기라도 한 것처럼 살아가곤 한다. 모두가 그것을 따르기만 하면 좋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는 것처럼, 비슷한 꿈을 꾸고, 비슷한 목표를 향해 달려간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삶을 점점 더 팍팍해지고, 간절히 바라던 것이 어느 순간 버거워짐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 트랙에서 벗어나면 큰일이 날 것이라고 생각하니 한숨 자고 일어나서 다시 달려간다.






유통기한이 끝난 꿈이라도, 유효기간이 지난 건 아닐 수 있다는 말이 인상적이다. 작가의 어머니가 공부를 시작하셨다는 이야기와 함께 등장하는 표현인데, 이전보다 훨씬 더 바쁘게 하고 싶은 일들을 하시며 보내는 어머니도 참 멋지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어머니도 이젠 그렇게 사셔도 좋을 텐데.


결국 중요한 건, 남에게 내가 어떻게 비출까 하는 게 아니라, 내가 정말로 행복할 수 있느냐다. 물론 다른 사람들의 인정도 행복을 느끼게 만드는 한 요소이긴 하지만, 그렇게 만들어진 자의식이 제제로 우리를 지지할 수 있을 리 없다. 마치 별풍선에 목매는 BJ처럼 점점 자극적이고 꾸며낸 모습에 집착할 수밖에. 뒤에 남는 공허함은 자신의 몫이고.



요즘 들어 살면 ‘얼마나 산다고’라는 식의 생각을 종종 한다. 사람들의 눈치를 보고, 아직 일어나지도 않은 일을 미리 당겨서 걱정하고, 그렇게 삶에서 즐거운 일들은 늘 ‘언젠가’라는 뒤로 미루기만 하다가 나중에 후회하는 모습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일까. 그러고 보면 최근 내가 살고 있는 모습은 조금 답 없어 보이기도 하지만, 또 이렇게 사는 사람도 있는 거니까.


조금은 가볍게 살아다는 건 생각 없이 대충대충 시간을 보낸다는 것과 다르다. 이쪽은 삶을 좀 더 밀도 있게 살아갈 수 있는 한 가지 방식인 반면, 저쪽은 그저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는 뜻이니까.


사실 책이 뭔가 대단한 길을 알려주거나 방식을 소개해주는 건 아니다. 다만 우리 어깨를 무겁게 누르고 있는, 하지만 굳이 지지 않아도 되는 짐을 잠시 내려놓고 나를 찾는 시간을 가져보는 게 필요하다는 메시지는 충분히 도움이 된다. 책 후반부에는 살짝 무게감이 느껴지는 글도 몇 개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가볍게 읽어나갈 수 있었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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