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경기를 드문드문 보면서 느낀 건, 참 흑인 선수 비율이 높구나 하는 점이다. 아프리카 대표팀의 경우는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유럽 대표팀들에도, 북유럽 팀들에도 흑인선수 비율이 적지 않다.


당장 프랑스만 하더라도 무려 21명의 흑인 선수들이 포함되어 있다고 하니, 대표팀 대다수가 흑인인 셈이다. 음바페도, 뎀벨레도 다 흑인이다. 흥미로운 건 그런 프랑스에서 당장 인종차별주의 정당이 높은 지지율을 보이고 있다는 점인데... 인종주의 정당에 표를 주면서, 자국 대표팀에서 활약하는 흑인 선수들을 보면서 프랑스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는 걸까.


프랑스만이 아니다. 어지간한 유럽팀에는 흑인선수들이 잔뜩 포진해 있다. 스포츠의 미래는 흑인들에게 있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한편 남미 국가들의 경우에는 애초에 축구를 잘 하는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흑인 비중이 그리 많지 않은 것 같긴 하다. 그리고 이런 쪽에서 아직도 좀 벽 같은 게 느껴지는 건 역시 아시아 국가들. 카타르처럼 귀화자 중심으로 대표팀을 꾸리는 나라가 아니면, 흑인들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뭐 이유야 여러 가지가 있을 게다. 당장 흑인들의 이민이나 귀화가 굳이 거리가 먼 아시아쪽으로 향하지 않는다는 점(언어적 문제도 있고), 특별 귀화 같은 경우는 그에 맞는 직접적인 재정적 보상이라든지, 국제대회의 좋은 성적을 바탕으로 높은 연봉을 받을 수 있는 팀으로의 이적이라든지 하는 게 기대되어야 하는데, 아시아 국가들은 이 조건들을 충족시키기가 쉽지 않으니까. 그래도 일본만 해도 주전 골키퍼가 흑인 혼혈 선수인 걸 보면 조금씩 달라지는 것 같다는 생각도 들긴 한다.


한편 프랑스에는 공식적으로 인종에 따른 선수 분류 자체를 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꼴인데, 세지 않으면 문제가 없어질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인종차별은 그 어느 나라 못지 않게 심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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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7-09 11: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뭐 꼭 백인만이 아니라 전 세계 모든 나라 사람들은 인종차별을 하는 편이라고 생각합니다.다만 인종차별은 특히 구미권에서는 민감한 문제고 법적 제재가 있기에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인들은 살살 돌려까면서 인종 차별을 하고 미국은 좀 대놓고 하는 편이죠.
프랑스의 경우 흑인들의 경우 오랜 식민 통치를 해서 자국내 흑인들이 이민온 역사가 길어서 흑인들과 결혼하는 백인들도 많을 정도로 흑인들에게 그나마 관대한 편이고 프랑스인으로 인정하는 것 같습니다.다만 그외의 유색인종에 대한 노골적이 차별은 있는데 특히나 이슬람권 난민들이 대거 유입되면서 종교 문화적 갈등및 범죄를 일으킴으로써 유색 인종에 대한 인종 혐오가 확실히 는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

다만 프랑스는 인종차별이 심한 나라라고 말하는 것보다 국가 차별이 심한 나라라고 말하는 것이 더 맞을 듯 싶은데 자국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강해서 그런지 몰라도 유색 인종뿐만이 아니라 같은 백인이라고 해도 프랑스어궈이 아닌 백인들 예를 들면 같은 유럽권인 영국이나 독일 특히나 미국인에 대한 차별이 은근히 많다고 하네요ㅋㅋㅋ
 
복음 안에서 발견한 참된 자유
팀 켈러 지음, 장호준 옮김 / 복있는사람 / 201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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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도 한 편의 설교문 정도 될까 싶은 얇은 책이다. 저자는 인간의 왜곡된 본성이 기본적으로 공허함을 느끼고 있으며, 이를 채우기 위해 다른 사람과의 비교우위를 찾기 위해 애쓰고 있다고 말한다. 이런 노력의 종착점은 교만이다. 당연히 그것으로는 우리 삶이 본질적으로 채워질 수 없다.


그리고 여기에서 바울의 예가 사용된다. 그는 사람들의 눈도, 심지어 자기 자신의 눈도 의식하지 않았다. 그건 자신이 완전하기 때문이 아니다. 무엇보다 그는 스스로를 죄인의 괴수라고 소개한 인물이지 않던가. 그는 아예 자기 자신에 대해 생각(판단)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이건 다른 말로 ‘겸손’이라고 할 수 있다.


바울이 그런 삶을 살 수 있었던 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그에 대한 평가를 끝내셨음을 알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그 평가가 우리가 누구인가를 결정한다.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며 살게 된다. 그리고 이럴 때 비로소 “복음 안에서의 자유”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천국과 지옥의 이혼”에서 C. S. 루이스도 비슷한 내용을 강조한다. 책 속에 등장하는 여러 캐릭터들이 끝내 천국으로 향하지 않는 이유는 자기 자신에게 너무 몰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천국의 초입에서 한 영혼은, 살인을 저지른 생전의 자기 부하직원이 천국에 있는 것을 보고는 그가 인도하는 천국에는 가지 않겠다고 외면하기까지 한다. 자기 자신에 대한 기대를 내려놓은 사람만 천국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이, 그에게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으로 느껴진 것이다.


나를 바라보고 있는 사람은 천국에 어울리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얼마나 자주 나를(혹은 나만) 신경 쓰고 있는지 모른다.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이런 실수에서 좀처럼 벗어나기 힘든데, 교회 내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갈등 상황도 결국 여기에서 비롯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우리의 시선을 나에게서 하나님에게로 돌릴 수 있을까? 아쉽게도 책에는 이 부분에 관한 실천적 도움은 그리 보이지 않는다. 저자는 우리가 바르게 깨닫기만 하면(인식론적 전환) 그런 사람이 될 것(존재론적 전환)이라는 기대인 듯하다. 물론 바른 앎은 진리를 따르는 삶에 있어서 참 중요한 일이지만, 결국 구체적인 방법론이 없다면, 극단적으로 그저 무엇을 아는 것으로 어떤 사람이 된 것인 양 착각할 수도 있다.



복음의 중심 주제에 대한 간명한 설명이 인상적이었던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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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월드컵 때도 말이 안 나왔던 건 아니었지만, 이번 월드컵은 공정성 문제로 논란들이 많이 생기는 것 같다.

애초에 이란 대표팀은 미국에서 경기를 하기로 배정되었지만, 미국은 전쟁 당사국이라는 이유로 이란 대표님의 입국을 경기 24시간 전부터만 가능하다고 제한을 걸어버렸다. 경기에서 현지 적응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면 이란 대표팀은 처음부터 굉장히 불리한 조건을 감수해야 했다. 하지만 FIFA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월드컵 직전 소말리아 국적의 심판의 입국 또한 미국은 막아버렸다. 그는 아프리카 올해의 심판으로 뽑히기도 했던 인물이었는데, 미국은 소말리아가 여행금지국가가라는 이유로, 그가 가진 외교관 여권도 인정하지 않고 입국금지를 시켰다. 결국 그는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FIFA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백미는 어제 경기에서 일어났다. 미국 대표팀의 주전 공격수가 직전 경기에서 레드카드를 받아 16강전 출전이 금지되자, 트럼프가 FIFA 회장에게 직접 전화를 해 출전금지를 1년간 유예시키는 조치를 이끌어 냈다. 트럼프는 또 이걸 자랑스럽게 공유했는데 (반사회성 인격장애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그는 이게 잘못됐다는 생각 자체를 못한다) 당연히 공정성에 대한 문제가 제기되었다. 그리고 이번에도 FIFA는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았다.

월드컵 이전부터 FIFA의 인판티노 회장은 트럼프의 심기를 살피기 바빴다. 전범이 되어 노벨 평화상을 받기엔 애저녁에 틀려버린 트럼프에게, 자기가 처음으로 만든 "FIFA 평화상"이라는 걸 수여하기까지 했다. 누가 FIFA 따위에 "평화상" 같은 걸 줄 수 있는 권위를 부여했을까? 아니 애초에 FIFA에 그런 걸 심사할 조직이 있긴 했던 걸까?(2회 수상자가 있긴 할까 싶다) 결국 트럼프가 받은 건 문방구에서 멋대로 산 장난감 메달에 불과하지만, 자기애성 인격장애를 갖고 있는 인물에게는 그저 기꺼운 일이었던 것 같다.

세상 모든 일을 자기 뜻대로 할 수 있다는 극단적으로 과장된 품성(성경은 이런 걸 '교만'이라고 부른다)은 이미 외교나 무역 협상에서 드러난 바가 있다. 전 세계는 그의 뜻대로 모든 걸 맞춰주기 급급했고, 그럴 수록 트럼프는 더욱 고압적 자세로 다른 나라들을(심지어 자국의 반대파들을) 대했다. 이제는 스포츠의 룰도 멋대로 바꿀 수 있다고 믿기 시작했나 보다(이 정도야 작은 일이라고 였을 게다).

통화 중에서 트럼프는, 메시나 호날두가 경기에 빠지면 흥행이 되겠느냐는 말을 했다고 한다. 스포츠의 중요한 축인 공정한 경쟁보다 흥행성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인식이 반영된 건데, 쉽게 말하면 그냥 "쑈 따위"로 여겼다는 말. 물론 규칙은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그리고 그 변경은 대체로 상업적인 의도도 고려되는 게 일반적이다.

실제로 FIFA는 이번 대회부터 전후반 중간에 물 마시는 시간을 끼워넣었다. 명분은 선수들의 건강이지만, 실은 중간광고를 위한 시간을 확보해 수입을 늘리려는 계획에 가깝다. 나름 3분 정도의 중간광고는 참아줄 수 있기도 하고, 그 규정이 게임의 운영에 미친 변화가 꼭 나쁘지만은 않아서 대충 받아들이는 분위기.

하지만 그 과정도 공정해야 한다. 특정인이 특정한 국가에 유리한 방식의 일방적이고 특수한 변경을 한다면 이미 그건 스포츠가 아니다. 사실 미국 대표팀 선수들에게도 그리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 것 같은데, 결국 경기에서 미국은 벨기에 대표팀에서 4-1로 대패하고 이번 월드컵을 끝냈다. 애초에 치트키를 써서 선수와 심판을 마음대로 끼워넣고 뺄 수 있다면, 굳이 열심히 해야 할 이유를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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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히 말하건대

나사렛 목공소에서는 다리가 휘어진 탁자나

뻑뻑한 서랍 같은 것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만약 그런 일이 일어났다면,

누구도 그것이 하늘과 땅을 만드신

그 손으로 만든 물건이라고 믿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일꾼이 아무리 경건하다 하더라도

일 자체에서 진실하지 못한 것을 상쇄할 수는 없다.

무슨 일이든 그에 준하는 솜씨가 누락돼 있다면

그 자체로 살아 있는 거짓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by 도로시 세이어즈


- 벤저민 T. 퀸,월터 R. 스트릭랜드, 『다만 일에서 구하옵소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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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중한 사람이 음모론에 빠졌습니다 - 음모론의 위협으로부터 우리의 관계와 민주주의를 지키는 법
정재철 지음 / 원더박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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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도 ‘음모론’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사회적으로 큰 사건이 일어났을 때, 그 사건에 대한 공식적인 설명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 사람들은 배후의 무엇을 떠올리게 된다. 음모론 자체는 꼭 정치에 한정되지 않지만, 요새 이 개념이 더 큰 문제처럼 느껴지는 건, 역시나 정치세력과 결합해서 사람들을 선동하며 사회를 극렬한 분열로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음모론에는 보수와 진보, 좌우를 가리지 않는다. 요새는 극우 진영에서 부정선거론을 단골 소재로 우려먹고 있지만, 내 기억에 근래 들어 최초로 이런 주장의 음모론을 주장한 건 김어준이었다. 자비로 영화까지 만들어서 선거조작 의혹을 제기했었고, 비슷한 일은 세월호 사건 때도 반복되었다. 그리고 지금은 앞서 말한 대로 정 반대 진영에서 관련 음모론을 외치고 있다.





책은 음모론이란 무엇인지, 어떻게 음모론이 생겨나고, 사람들은 왜 그걸 믿는지, 음모론이 일으키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차근차근 살펴나간다. 그리고 아직 얼마 지나지 않은 12.3 계엄 사태를 “음모론이 촉발한 최초의 쿠데타”라고 정의하면서(이건 뉴욕타임스에서 해당 사건을 “알고리즘 중독이 촉발한 세계 최초의 반란”이라고 보도한 것에서 나온 표현인 듯하다) 음모론이 국가를 뒤흔들 수도 있음을 아울러 경고한다.


책의 말미에는 음모론에 빠진 사람들을 어떻게 되돌릴 수 있을까 하는 방법론이 제시되어 있다. 저자는 그들을 설득하려 하지 말고, 공감과 같은 감성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공감이란, 그래 네 말이 맞아 하는 식의 우쭈쭈를 하라는 뜻이 아니다. 음모론에 빠진 사람들은 점차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가 끊어지면서, 그들만의 커뮤니티에 빠져 정상적인 생활을 하기 힘들어지는데, 그럴 때 그에게 심리적 의지가 될 수 있는 존재가 있어야 음모론에서 나올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 될 거라는 말.


하지만 책에도 실려 있는 실제 예들을 보면, 그렇게 해도 좀처럼 음모론에서 빠져나오도록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책에 나온 사람들도 벗어났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수준이다) 마치 불법약물처럼, 음모론도 일단 한 번 빠지면 계속해서 금단증상에 시달리며 더 자극적인 음모론을 찾아 나서는 것일 지도 모르겠다.


그런 차원에서 음모론에 처음부터 발을 내딛지 않을 수 있는 정보 리터러시를 기르기 위한 교육이 필요하다. 책의 마지막 장에는 이 내용이 약간 실려 있는데, 사실 뭔가 뾰족한 수가 있다고 말하기는 어려운 정도다.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건강한 몸을 위해서는 매일 골고루 영양소를 섭취하고 적당한 운동을 규칙적으로 해야 한다는 말이 특별하게 느껴지지 않지만 다른 방법이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원래 건강하고 건전한 일을 위한 작업은 평범하게 느껴지는 법이다.





며칠 전, 국내 고교 야구 대회에서, 서울의 한 고등학교가 광주 소재의 학교와 시합을 하던 중, 5.18를 조롱하는 것으로 읽힐 수 있는 응원(혐오) 구호를 외친 것이 중계에 잡혀 큰 물의가 일어났다. 해당 학교는 6개월간 대회 출전 금지라는 징계가 내려졌는데 나름 합리적인 처분이었다고 본다. 문제는 그런 종류의 음모론에 기초한 혐오 정서가 진작 어린 아이들 수준으로까지 퍼져 있음이 공개적으로 드러났다는 부분이다.


심지어 어제는 대통령 직속 위원회의 총리급 부위원장이 해당 뉴스를 가리켜 표현의 자유 운운하는 멍청한 소리를 했다가 결국 자진 사퇴 형식으로 경질되는 일도 있었다. 표현의 자유와 양심의 자유는 민주 국가에서 참 중요한 요소지만, 그 자유가 명백히 허위이고 나아가 혐오를 위해 조작된 내용이라면 그것까지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주장은 어불성설이다. 결국 그런 사회에서 ‘진실’은 그 존재가 무의미해질 것이고, 결국 더 큰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집단에 의한 약육강식의 문화가, 착취와 지배의 분위기가 퍼지게 될 테니 말이다.


오늘도 여전히 음모론에 빠진 적지 않은 무리들이 어딘가에서 자기들이 뭔가 대단한 걸 지키고 있다며 길에 나와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쉽지는 않아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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