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동석 시네마틱 유니버스(MCU).


흔히 마블의 초능력을 지닌 주인공들이 등장하는 영화들을 모아 하나의 세계관을 만들어 낸 걸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 줄여서 MCU라고 부르지만, 우리나라에는 같은 영어 약자가 좀 다른 걸 가리킨다. 이른바 ‘마동석 시네마틱 유니버스’라는 것. 공통적으로 마동석이라는 배우가 주연을 맡고, 압도적인 하드웨어와 힘으로 나쁜 놈들을 곤죽이 되도록 때려눕힌다는 줄거리를 가지고 있다.


사실 영화의 줄거리는 그닥 정교하지도 않다. 주인공은 험상궂게 생긴 외모와 엄청난 덩치를 가지고 있지만 실은 상냥하고 착하다는 반전 매력을 가지고 있고, 처음에는 좀 주저주저 하는 느낌이지만 일단 상대가 진짜 나쁜 놈들이라는 게 확인되는 순간 가차 없이 쓰러질 때까지 때린다. 나온 지 몇 년이 되어서 이제는 케이블 채널에도 심심찮게 방영되는 이 영화도 그런 MCU의 전형적인 영화다.


사실 작품성이랄 것도 없고, 재미라는 부분도, 한두 편을 보면 딱히 반전 같은 게 없을 거라는 게 뻔히 짐작된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꽤나 여기에 호응을 하는 이유는 뭘까? 그저 나쁜 놈들을 혼내주기 때문만은 아닌 것 같다. 물론 이 점은 꽤 중요한 요소이긴 하다. 인과응보는 우리들의 윤리적 관점을 자연스럽게 만족시켜주니까.


특히나 현실 세계에서 분명 나쁜 짓을 하고도 아무런 처벌을 받지 않거나, 매우 약한 처벌만 대충 받는 시늉을 하는 일들을(주로 ‘고가의 변호사’를 ‘구입’할 경우 높은 확률도 일어나는 이벤트다) 자주 마주하는 상황이다 보니, 이런 영화적 “허구”에 대한 열광이 어느 정도 이해가 되기도 한다.


또, 예술이라는 이름으로 뭔가를 그저 비틀기만 하면 작품이 나오는 것처럼 왜곡하는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이 워낙에 자주 영화판에 출몰하는 상황이라, 이렇게 조금은 단순하면서 분명하게 상식적인 인식을 보여주는 영화가 오히려 편안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다.





마동석의 주먹.


그런데 마동석의 폭력에는 조금 다른 면이 있다. 그는 절대로 무기를 들지 않는다. 일부 장면에서 잠시 들었을지도 모르겠지만, 전반적으로 그는 언제나 맨손으로 상대와 싸운다. 상대가 칼을 들고 있어도, 몽둥이와 총을 들고 설쳐도 언제나 그는 주먹으로 승부한다. 이 과정에서 거의 항상이라고 할 정도로 부상을 입지만, 개의치 않고 결국 상대를 들어서 매다 꽂는다.


물론 그래도 상대에 비해 비교도 안 되는 엄청난 하드웨어를 지니고 있는지라, 오히려 무기를 들고 있는 쪽이 더 위험해 보이는 게 함정. 하지만 어쨌든 상대는 이쪽보다 수가 많거나, 무기를 들고 있거나 하니까 어느 정도 균형은 맞는다고 해야 할지도. 그리고 이런 상황에서도 한두 대 맞긴 하지만 시원하게 한 방을 날리는 데서 일종의 초능력자를 보는 듯한 느낌도 준다.


우리나라는 소위 ‘정당방위’의 범위가 지나치게 좁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한밤 중 도둑이 들어와서 가족을 위협하더라도, 상대가 들고 있는 무기보다 위험해 보이는 걸 들고 공격을 하면 정당방위로 인정을 받지 못한다. 어쩌면 마동석의 맨주먹은 이런 로컬 룰을 따른 건가 싶기도 하지만, 아마도 이 정도 파워라면 맨손으로 싸워도 정당방위를 인정받기는.. 애초에 마동석은 ‘방어’하러 찾아간 게 아니잖아.







인신매매.


영화 속 악당 역인 김성오가 연기한 기태라는 인물은 여자들을 납치해 팔아넘기는 인신매매업자다. 우리나라 형법의 경우 기본적으로 사람을 팔아넘기면 7년 이하의 징역, 같은 일이라도 추행, 간음, 결혼, 영리를 위해 했다면 1년 이상 10년 이하, 노동력 갈취, 성매매, 성적 갈취, 장기 적출이 목적이었다면 2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이 규정되어 있다. 흥미로운 건 국외 이송, 즉 영화처럼 해외로 팔아넘기려고 할 경우가 따로 규정되어 있다는 건데, 이 역시 2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이다.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법에서 규정한 게 그렇다는 거고, 언제나 범죄자들 걱정으로 밤잠을 이루지 못하는 우리 사법가족들은 대부분의 경우 인신매매로 기소된 사람들에게 무죄를 선고하고 있다. 한 통계에 따르면 2013년에서 2020년 인신매매로 입건된 251건의 사건 중 검찰이 기소한 건 고작 9건이었고, 비슷한 시기 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건 5건에 불과했다.(물론 이들은 다른, 좀 더 가벼운 죄목으로 기소가 되어 처벌을 받긴 했다)


기본적으로 사법 기관들의 인식 부족이 문제다. 대표적으로 지난 2014년에 뉴스에 소개되며 공분을 일으켰던 전남 신안의 염전 노예 사건이 그렇다. 60명이 넘는 지적장애인들을 감금하고 열악한 처우에서 ‘사육’하면서 강제로 염전 일을 시킨 악덕 업주들인데(당연히 10년 동안 아무런 경제적 대가도 주지 않았다), 자기들이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을 먹여주고 재워줬다면서 무슨 자선가라도 되는 양 적반하장의 모습을 보여 더욱 분노를 샀었다.


이 정도 대규모의 인원들이 노예 노동을 했는데, 당연히 지역 경찰 같은 행정당국이 몰랐을 리 없다. 하지만 섬 특유의 폐쇄성과 형님 동생 하며 다들 동네에서 알고 지내는 특성상 적당히 눈을 감았을 거다. 그럼 이들은 제대로 처벌을 받았을까? 아니다, 대부분은 기소는 되었으나 집행유예로 실형은 면했다. 이 악마들이 무슨 공무원 시험을 볼 것도, 대기업 취직을 할 것도 아니고, 어차피 돌아가서 다시 염전을 경영할 텐데 이게 무슨 처벌이고 타격일까.


현실이 시궁창이니, 마동석 같은 캐릭터가 나서서 인신매매 조직 일당을 맨주먹으로 깨부수는 장면이 통쾌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아, 생각해 보니 여기에 무기를 들지 않고 맨주먹만을 사용하는 게 어쩌면 더 옳았다. 그 찰진 타격감은 영화를 보는 사람들 마음 속 한 구석에 있던 답답함을 깨끗하게 쓸어내 준다. 그의 영화가 매번 비슷비슷한 내용과 분위기, 전개라고 하지만, 답답한 현실이 훨씬 더 오래 반복되고 있는 게 더 문제가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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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애국주의 홍위병, 분노청년
김인희 지음 / 푸른역사 / 202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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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종종 언론에 비친 중국인들의 몰상식한 행동들을 목격하곤 한다. 물론 몰상식이 어느 한 나라나 민족의 전유물만은 아니지만, 최근 보이는 중국인들의 행동 가운데는 확실히 그 도가 지나치다 싶은 것들이 많았다.


예를 들면 사드 사태 즈음해서 중국의 어떤 사람들은 한국의 롯데마트에 들어가서 식품들을 일부러 오염시키거나 상품을 훼손시키는 과정을 영상을 찍어 올렸다. 여기까지는 정신 나간 이들의 행동이라고 치부하고 넘어갈 수도 있지만, 문제는 그런 영상을 보며 환호하고 응원하는 사람의 수가 지나치게 많았다는 점이다.


또 하나, 얼마 전 방탄소년단이 미국을 방문해서 6.25 때 함께 싸우고 희생당한 한국과 미국 양국의 희생자들에게 감사를 표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 장면을 두고 어떤 중국인들은 왜 자기들에게는 감사를 표하지 않느냐며 분노의 화살을 난사해댔다. 생각해 보면 어이없는 일인데, 당시 중공군은 국군과 맞서 싸운 적이었다. 그런 자기들에게 감사해야 한다는 발상은, 그들이 이 전쟁의 성격을 철저하게 왜곡시켜 인식하고 있다는 걸 보여준다.


이 외에도 대만국적인 연예인 쯔위가 한 예능프로그램에서 대만국기를 들고 흔들었다는 이유로 비난을 퍼붓거나 그 소속사인 SM 홈페이지를 공격해 마비시키는 행동을 저지른 적도 있었다. 개인적으론 덕분에 그 연예인에 대해서 조금 더 알게 되었지만.



이 책은 이런 일련의 행동들이 단지 우발적으로 일어난 게 아니라고 말한다. 그 배경에는 소위 ‘분노청년’이라는 중국 내 특정 세력이 짙게 개입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애국활동’에 열정적으로 뛰어드는 젊은이들이다.(명칭에 붙은 ‘분노’는 이들의 활동이 꽤나 적극적, 나아가 폭력적이라는 걸 암시한다) 문제는 이들이 말하는 ‘애국’이 진짜 애국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점이다. 사실 이건 소위 ‘극우’들의 전반적인 한계 같지만(아, 이쪽은 극좌인가).


그들은 ‘위대한 중국’의 가치를 적극적으로 알리고, 나아가 이를 훼손하는 것처럼 보이는 일제의 행동, 발언, 사상을 깨부수는 걸 목적으로 한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온갖 비논리적인 주장과 선동이 난무한다. 심지어 “중국은 제국주의적인 유전자를 갖고 있지 않기에, 중국이 일으킨 전쟁은 침략전쟁이 아니”라는 헛소리까지도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할 정도.


이 책의 저자는 이들 ‘분노청년’의 사상적 근원에 마오쩌둥 시절의 ‘홍위병’이 있다고 진단한다. 마오쩌둥 개인을 우상화 해 숭배했던 광적 추종자들이었던 홍위병들은 대개 10대 초반의 어린 아이들이었다. 마오쩌둥은 그들을 이용해 문화대혁명을 일으켜서, 공산당 내 자신의 정적들을 제거하고 절대군주의 자리에 올랐었다.


‘분노청년’의 등장은 그들을 이용해 정권을 강화하려는 중국 내 기득권 세력들이 조장한 것이었다. 이미 중국의 교육과정에는 아주 어린 시절부터 ‘애국’을 강조하는 내용이 잔뜩 채워져 있고, 이들의 활동에 대한 법적 제재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니까.


그런데 최근에는 이들과 과격한 행동이 정권에도 어느 정도 부담이 되나보다. 시진핑은 ‘소분홍’이라는 새로운 과격 친위 팬클럽을 새로 만드는 대신, ‘분노청년’들이 일으키는 사회분열을 해소하기 위해 유교사상의 충과 효를 강조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고 한다. 중국을 하나의 큰 가족으로, 최고지도자인 시진핑을 큰 아버지로 묘사하고 있다는 것이다.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애국은 모두 무죄”라는 그들의 황당한 인식이 인상적이다. 하지만 이런 게 어디 그들만의 일인지는 모르겠다. 우리 곁에도 이런 식의 막가파식 주장을 하는 망나니들이 수두룩하게 존재하니까. 차이가 있다면 중국은 그게 이미 국가적으로 양성되고 있다는 점이고, 우리는 그 양상과정이 아직 공식적인 교육과정으로 실현되지는 않고 있다는 것뿐. 참고로 자민당의 반세기 집권이 이루어지고 있는 일본도 교육 과정에서의 극우 양성의 제도화가 거의 완성된 것처럼 보인다.


사실 책에서는 어떻게 하면 중국의 이런 ‘분노청년’과 같은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지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있지는 않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한 번 그렇게 만들어진 왜곡된 정신이 어디 바뀔 수 있을까 싶다. 정권의 이익을 위해서 만들어낸 괴물집단은 결국 자신들의 발목을 잡는 늪이 될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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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니아 연대기 해설집
콜린 듀리에즈 지음, 이용복 옮김 / 규장(규장문화사) / 200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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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제목에서 알 수 있듯, C. S. 루이스의 대표적인 아동문학인 “나니아 연대기”에 관한 다양한 부가 정보를 담고 있는 책이다. 사실 그동안 적지 않은 “나니아 연대기”의 해설집들을 읽어왔기에(이 책이 아홉 번째 책이다) 자연히 앞서 읽었던 책들과 비교를 해 보며 읽게 된다.


다른 책들과 구별되는 이 책만의 가장 큰 특징이라고 한다면, “나니아 연대기”를 가장 멀리서 분석하고 있는 책이라는 점이다. 많은 나니아 연구서들이 그 책의 내용을 분석하는 데 집중하곤 한다. 워낙에 대작이고, 당연히 할 말도 많은 지라, 다양한 주제들을 중심으로 책의 내용을 배열하고 설명한다. 그런데 이 책은 조금 다른 느낌이다.


물론 이 책도 “나니아 연대기”의 어떤 부분에 어떤 기독교적 의미가 담겨있는지 같은 내용을 담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저자가 좀 더 집중하는 부분은 소설 속 대륙의 역사와 지리, 자연환경, 그리고 “나니아 연대기”가 가지는 문학적 특성과 같은 쪽이다.


또 하나 흥미로운 부분은 이 작품이 갖는 ‘기독교적 이미지’만이 아니라 ‘이교적 이미지’에도 관심을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루이스는 이교 사상 가운데서도 진리의 한 자락이 발견될 수 있으며, 그 진정한 실현은 기독교에서 성취된다고 믿었다. 때문에 그는 자유롭게 이교 문화의 주인공들을 그의 작품에 등장시킬 수 있었다.


책의 마지막 부분은 훨씬 더 뒤로 물러 나와서, 루이스 자신과 그에게 영향을 준 인물들, 또 루이스의 다른 작품들 속에서 “나니아 연대기”와의 관련성을 찾아내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작품을 전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배경지식이 될 만한 내용들이다.


“나니아 연대기”를 좀 더 폭넓게 읽고 싶다면 도움이 될 만한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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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지역 교회는 어떻게 자신을 조직화해야 하는가?

내가 이상적으로 생각하기에는,

각 교회는 5년이나 10년마다 자신을 평가하고

특히 교회의 구조가 그 정체성을 얼마나 제대로 반영하는지

알기 위한 조사를 행해야 한다.


- 존 스토트, 『살아 있는 교회』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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