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의 시대 - 기록, 살인, 그리고 포르투갈 제국
에드워드 윌슨-리 지음, 김수진 옮김 / 까치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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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시작은 한 학자의 죽음에 관한 수상쩍은 정황에 관한 내용이다. 그는 16세기 포르투갈에서 태어나 유럽인으로 살았던 다미앙 드 고이스라는 인물이었다. 다양한 일을 하던 그는 최종적으로 왕립 기록물 보관소장이라는 뭔가 있어 보이는 직책을 맡았는데, 어느 겨울 아침 여인숙 벽난로 앞에서 불에 탄 채로 발견되었다. 흥미로운 건 그의 손에 있던 문서는 타지 않았고, 또, 그가 목이 졸려 죽은 듯한 흔적도 있었다는 점이었다.


저자는 이렇게 뭔가 흥미진진한 추리소설이라도 되는 양 책을 시작했지만, 막상 책을 읽어나가다 보면 그런 기대는 금방 사라진다. 물론 인물의 행적을 추적해 가면서 서술하는 게 어떻게 보면 소설과 비슷해 보이기도 하지만, 저자는 어디까지나 인물의 행적을 남아있는 기록을 따라 정리하면서 그 행간을 나름의 개연성 있는 상상력으로 채우는 식으로 진행해 나간다. 요컨대 소설 보다는 역사책에 가깝다는 말.


다미앙과 함께 이 책의 또 다른 주인공은 루이스 드 카몽이스다. 다미앙이 뭔가 고지식하면서 학문적 의욕이 넘치는 학자풍이라면, 카몽이스는 약간은 한량 같은 느낌도 드는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다. 15세기 바스코 다 가마의 신항로 개척으로 포르투갈에서 인도까지 가는 항로가 발견되었고, 많은 포르투갈 사람들이 이 길을 따라 인도로 건너갔다. 이런저런 일들을 겪었던 카몽이스도 마침내 인도로 가 한 몫을 잡으려 했지만.. 일은 그의 뜻대로만 풀려가지 않았다.





다미앙과 카몽이스, 책은 이 두 사람의 에피소드를 교차시키며 서술이 이어진다. 왜 하필 이 두 사람이었을까? 한 명은 유럽 각지를 돌아다녔고, 다른 한 명은 아프리카를 돌아 인도에서 활동했던 인물이라 직접적인 교류가 있었던 것 같지도 않다. 다미앙이 카몽이스보다 20여 년 먼저 태어났지만 세상을 떠난 해는 비슷하고, 무엇보다 두 사람 모두 포르투갈인이라는 공통점이 있긴 하다. 그래도 공통점보다는 차이점이 더 많아 보인다.


가장 큰 차이점은 두 사람의 사후 평가다. 다미앙은 에티오피아의 기독교 역사에 관한 최초의 책을 썼다는 정도만 있을 뿐, 행적에 관한 기록도 많이 남아 있지는 않다. 반면 카몽이스의 경우 포르투갈의 국민시인에 등극할 정도로 사후 엄청난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생전 그가 여러 차례 범죄에 연루되어 수감되기도 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확실히 이례적이다. 지난 2007년 포르투갈의 공영방송국이 자국민들을 대상으로 한 여론조사에서 위대한 포르투갈인을 뽑았을 때, 카몽이스는 5위, 다미앙은 92위(그리도 뽑히긴 했다!)였다고 한다.


저자는 이런 큰 사후 평가의 차이가 조국인 포르투갈에 대한 두 사람의 태도에 있었다고 본다. 당시는 르네상스가 한창이었고, 인문주의에 입각한 학문 탐구가 교회의 권위적인 입장과 충돌하던 시기였다. 신항로 개척으로 좀 더 넓은 세계와의 접촉이 잦아지면서 유럽인들의 자기중심성도 흔들리고 있었다. 다미앙은 이런 추세에 따라 일종의 다원주의적 저작물들을 남겼고, 이는 한창 뻗어나가려는 포르투갈 정부의 입장과도 배치될 수밖에 없었다.


반면 카몽이스는 지극히 낭만적으로 조국을 그린다. 비록 그가 인도 현지에서 보고 들은 것은 유럽에서 보고들은 것과는 차이가 많았지만, 어쨌든 그가 남긴 시 속에서 포르투갈은 위대한 나라이자 영웅적이며 성스러운 행적으로 묘사된다. 당연히 당국자들의 인정을 받을 만했던 것. 더구나 포르투갈이 있는 이베리아 반도는, 유럽에서 가장 나중까지 레콘키스타라고 불리는 이슬람 세력과의 전투가 있었던 곳이었으니, 이런 영웅적 서사는 딱 구미에 맞았으리라.





책의 두 중심인물을 통해 저자는 15세기 유럽의 분위기, 그리고 그들이 동양을 바라보는 시선을 생생하게 되살려 낸다. 사실 이 책의 진정한 가치는 이 부분에 있다. 유럽과 인도를 쉴 새 없이 교차하며 서술하지만 혼동 보다는 철저하게 유럽의 눈으로 본 인도와 아시아의 모습이 신선하게 느껴진다.


전혀 다른 세계가 접촉했을 때, 상대의 역사와 전통을 어떤 식으로 이해하는지를 관찰하는 건 흥미로운 일이다. 기독교 세계였던 유럽의 눈으로 어떻게든 힌두교 세계인 인도를 설명하려고 애쓰는 모습이 조금 애잔하달까. 여기에 상황을 좀 더 복잡하게 만드는 건 인도에도 나름 오랜 기독교 역사가 있었다는 점 때문이다. 사도 도마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인도 교회의 전통은(실은 네스토리우스파 교단의 선교 때문으로 보이지만) 유럽의 기독교인들에게 묘한 감정을 품게 했던 것 같다.


또, 당시 실제로 활동했던 다양한 인물들을 책 속의 주인공들과 연결지어 소개하는 부분도 재미있다. 다미앙은 무려 에라스무스에게 배웠고, 인체 해부를 실시한 베살리우스나 예수회 출신으로 일본에까지 선교를 했던 사비에르의 죽음에 관한 에피소드도 보인다. 역사를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런 부분에서도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듯.


책의 말미에 반전이라면 반전일만한 내용도 살짝 보인다. 책 첫머리에 등장했던 다미앙의 죽음에 관한 진실이 카몽이스의 미발견 편지가 새로 공개되면서 밝혀진 것. 편지에서 지목된 인물은 놀랍게도 예수회의 초대 창립 멤버 중 한 명의 이름과 같았다. 그 둘이 동일인물인지는 확실치 않지만 말이다. 그래도 나름 떡밥을 회수했다고 해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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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루테이프의 다섯 번째 편지 읽기입니다.
전쟁이라는 위기를 이용해 사람을 유혹하려는 신참 악마와
오히려 위기가 자신들에게 더 큰 문제일 수 있다는 스크루테이프의 조언이 흥미롭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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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화자찬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

자기 긍정을 잘하는 사람은 대개 여유가 있다.

여유를 가질수록 우리는 어려운 문제도 쉽게 풀어나갈 수가 있다.

대단찮은 강점이라 할지라도 당당하게 드러내는 여유를 지니자.

이것이야말로 근사한 어른이 지녀야 할 중요한 태도다.


사이토 다카시, 『여전히 서툰 어른입니다』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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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인들은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으며,

기도는 살아 계신 참 하나님을 의지하고 믿는 신실한 신자들의

그날 하루 첫 번째 업무였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의 경우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하는 일은

스마트폰 확인일 가능성이 높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교제보다 다른 사람과의 ‘소통’을 당연히 더 좋아하며,

그 다른 사람 중에는 우리가 잘 알지도 못하는 이

(예를 들면 페이스북 친구 같은)도 있다.


- 마크 존스, 『예수의 기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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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신을 보는 것은 사별자가 ‘눈앞의 죽음’을 보는 것이다.

그 순간에는 죽음에 대해 철학적으로 사유하기보다는

철저하게 물리적인 사건으로서 죽음을 맞닥뜨리게 된다.

애도는 물리적 사건으로서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인정함으로써 시작한다.

사별자들은 시신이 된 그 모습만 영원히 자신의 기억 속에 남을까 두려워하지만

고인의 마지막을 봤던 사별자들은

오히려 평온하게 잠든 모습을 바라보며 위안을 얻었다고 말씀하셨다.


고선규, 『여섯 밤의 애도』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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