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오래된 시편들이 어떻게 울렸을지 알 방도가 없다.

결과적으로 이는 손실이라기보다는 이득에 가까웠다.

곡조 없이 텍스트만 남겨졌기에

시편이 새로운 다양한 작곡의 기반을 형성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풍스러운 고대 음향은 사라져 버렸다.

시편이 이렇듯 날것의 상태였기 때문에 후대 작곡가들은

오히려 음악적으로 자신들의 시대에 어울리는

새로운 음향을 입히도록 자극받을 수 있었다.


요한 힌리히 클라우센, 『신을 위한 음악』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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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저트 사전 - 그 맛있는 디저트는 어디에서 왔을까?
나가이 후미에 지음, 이노우에 아야 그림, 김수정 옮김 / 윌스타일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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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개인적으로 디저트류를 딱히 좋아하지는 않는다. 보통 디저트라고 불리는 것들은 설탕 범벅인지라, 건강을 생각해서도, 또 지나치게 단 걸 먹으면 기분이 나빠지는(?) 편이라 딱히 먹고 싶다는 생각 자체가 들지도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손에 든 건, 역시나 조금 쉬어가려는 독서 타임이었기 때문.


책은 주로 유럽 지역에서 전해지는 100가지 디저트류를 차곡차곡 설명해 담아낸다. 제목에 사전이라고 붙어 있긴 하지만, 가나다순으로(혹은 ABC순으로) 정리된 건 아니고, 시대에 따라 구분을 지어두었다. 디저트류라는 게 어디 누가 몇 년도에 만들었다는 식으로 정확히 정의되지 않은 게 많아서, 나름 알 수 있는 정보를 바탕으로 최대한 정리해두었다고 한다. 크게 중세, 근세, 근대, 현대의 항목 아래, 다양한 디저트류가 소개되어 있다.


각 항목은 그 디저트의 유래, 그리고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나아가 관련되어 알고 있으면 좋을 만한 다양한 상식, 역사적 지식 같은 것들이 담겨 있다. 그리고 이 책의 가치를 더욱 올려주는 건, 직접 손으로 그린 삽화들. 전체 항목의 4/5 정도는 그림작가가 그린 그 디저트의 삽화가 포함되어 있다.





대체로 서양의 디저트는 빵류인 것 같다. 이름도 생소한 온갖 디저트의 설명을 읽다보면, 식사를 하고서 또 이렇게 잔뜩 밀가루를 목으로 넘기고 싶을까 하는 생각이 들긴 하는데, 또 설명을 한참 읽다 보면 이건 무슨 맛일까 하는 궁금증이 생기긴 한다. 기본 재료가 대부분 밀과 꿀, 설탕, 버터에, 다양한 추가재료가 더해지는 식인데, 참 화려하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하고.


푸딩류에 관한 설명이 가장 이색적이었는데, 원래 푸딩은 영국의 선상 요리로, 오랜 항해를 하는 과정에서 식재료를 효율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남은 빵 부스러기에 고기 비계(?), 달걀물 등을 섞어 쩌낸 게 그 시초라고 한다. 재료가 꽤나 신기하다. 언젠가 영국 전통 요리 중 하나인 블랙푸딩이라는 걸 본 적이 있는데, 우리의 선지와 비슷하게 돼지 피에 이것저것을 섞어만드는 거라고 하니...


몇몇 디저트에는 흥미로운 유래가 전해진다. 예를 들면 한 귀족의 파티를 앞두고 주방에서 대판 싸워 파티시에가 그만두는 사건이 벌어졌고, 이 난감한 상황에 한 젊은 하녀가 자신의 할머니가 해 주셨다는 디저트를 만들었는데 엄청난 호응을 받았다고 한다. 귀족은 그 하녀의 이름을 이 새 디저트에 붙여주었는데, 그녀의 이름이 마들렌이었다나.


또, 파리의 주식거래소 근처에서 장사를 하던 한 파티시에가 젊은 금융가들이 편하게 먹을 수 있는 매력적인 디저트를 고민하던 중, 이왕이면 금괴 모양으로 만든 간식이라면 그 동네에서 더 호응을 얻을 거라고 생각하고 구어낸 디저트가 있다. 바로 휘낭시에인데, 그 생김새를 생각해 보면 여전히 금괴 모양인 것 같기도 하다.





큰 고민 없이 차분하게 재미로 읽어볼 만한 책. 디저트류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옆에 끼고 하나씩 찾아다니며 도장깨기를 해 보는 것도 재미있을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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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4-06-11 01:25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ㅎㅎ 저도 건강때문에 디저트류는 먹지 않지만 사진만 봐도 군침이 도네요^^
 


얼마 전 알라딘에서 이 책 서평으로 이달의 리뷰에 뽑혀 적립금을 받았더랬습니다. ㅋ

오늘은 영상으로 책 소개를 해 봅니다.

독특한 캐릭터들과 분위기를 가지고 있는 SF 소설입니다.

저자가 무려 노벨문학상 수상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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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 옆 미술관 - 타자의 삶을 상상하는 능력
구미정 지음 / 비아토르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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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을 잘 뽑았다. 교회 옆 미술관. 뭔가 2000년대 초반 추억의 영화 중 하나였을 것 같은 제목이다. 책은 성경 속 장면과 그 장면을 그림으로 옮긴 화가들의 작품을 함께 곁들여 주면서 설명해 가는 방식을 취한다. 딱 제목 그대로. 비슷한 기획으로 나온 책도 몇 권 본 적이 있는 것 같다.


그런데 여기에 또 하나 중요한 포인트가 있다. 바로 페미니즘적 관점으로 이 작업을 진행했다는 것. 저자는 성경 속 등장하는 스물네 명의 여성들과 그들의 이야기를 그린 그림들을 소개하면서 나름의 논지를 전개해 나간다. 서문에서 저자는 “여성에 의한, 여성을 위한, 여성의 글쓰기”를 하겠다고 선언하고 있고, 저자 자신도 여성이기도 하다.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여성들에 주목해보자는 시도는 뭐라 할 이유가 없다. 개인적으로 이 부분에서 굉장히 흥미롭게 읽었던 책 가운데는, 지금은 세상을 떠난 레이첼 헬드 에반스가 쓴 “성경적 여성으로 살아본 1년”이 있었다. 또, 최근에 읽었던 레베카 맥클러플린의 “여인들의 눈으로 본 예수”도 나름 짜임새 있게 쓰인 책이었다. 거기에 이 책은 명화들을 함께 싣기까지 했으니 잘만 했다면 훨씬 더 재미있는 책이 될 법도 했다.


다만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저자가 한 잡지에 연재했던 글들을 모아놓은 것이라고 한다. 잡지의 연재되는 글의 경우 분량의 제한도 있었을 테고, 그래서 논지도 굉장히 압축적으로 전개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 때문일까. 몇몇 꼭지의 글들은 확실히 논리 전개가 좀 무리하다 싶은 경우가 보인다.


보통 각 장의 글들은 도입부와 성경 본문의 소개, 그리고 그림에 관한 언급 순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 중 도입부와 성경 본문으로의 연결이 썩 매끄럽지 못한 경우가 자주 보인다. 그래도 개중에는 알아둘 만한 상식 같은 것들도 있으니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기도 하지만, 이번엔 결론부의 주장이 살짝 비틀려 있는 경우도 보인다.


예를 들어 저자는 세례 요한의 목을 달라고 요구했던 살로메에 대해 굉장히 동정어린 시선을 보낸다. 그 어린 아이가 뭘 알았겠느냐며, 어머니의 사주에 의해 하는 수없이 세례 요한의 목을 요구한 것이라고 말이다. 그러면서 한 화가의 그림 속 살로메의 표정이 어두운 것에서 마치 엄청난 증거라도 얻은 듯 “부패한 권력”이 휘두르는 “야만적인 폭력”의 “희생자”로 그녀를 성화시킨다. 그런 살로메를 비난하는 것이 마치 희생자를 “할퀴는” 일인 양 비난까지 한다.


비단 이 항목 하나만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마리아에게서는 “순종적인 여성상”을 벗겨내려고 애쓰고, 룻과 보아스를 다룬 장의 제목에서는 ‘자매애’에 대한 찬사가 붙어 있다. 이게 맞나 약간 당황했는데, 앞서 페미니즘 관점에서 이야기를 쓰려다 보니 나온 헐거운 해석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다. 여성은 언제나 희생자이고, 피해자이고, 옳은 쪽이라는 고정관념의 발현이랄까(앞서 추천한 두 권의 책들과 이 책의 가장 큰 차이다).





물론 그렇다고 책의 내용 전체가 영 눈에 안 들어왔다는 말은 아니다. 분명 좋은 통찰을 보여주는 장들도 있었고, 이전에 생각해 보지 못했던 새로운 방향에서 본문을 비춰주는 경우도 있었다. 다만 전체적인 글의 짜임새가 좀 아쉬웠다. 다른 관점으로 보지 말라는 말이 아니다. 다만 본문에 충실하지 않으면, 그건 그냥 팬픽의 수준일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래도 잔뜩 실려 있는 컬러 도판을 보는 맛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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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우리가 약간의 역사적인 관심을 품고

유럽 지도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본다면

서서히 다른 그림이 나타나기 시작한다.

이 과정은 다소 학구적인 아이러니에서 출발한다.

‘유럽’이라는 단어의 어원에 관한 견해 중 하나는

그것이 ‘아랍’과 같은 어원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양쪽 모두 서쪽이나 암흑, 뒤처짐을 뜻하는

고대 셈어 에레브에서 왔다.


이언 아몬드, 『십자가 초승달 동맹』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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