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      

 

추운 겨울의 어느 날, 버려진 개를 데려가기 위해 혜화가 철거촌으로 향한다. 그리고 비슷한 시간, 막 전역한 한수가 집으로 향한다. 고등학생 시절 만나 아이까지 갖게 되었던 두 사람이었지만, 갑자기 유학을 간 한수로 인해 이별하게 되었고 얼마 후 태어난 아이는 죽고 말았으니 반가운 만남은 아니었다. 그러나 아이가 아직 살아 있다는 한수의 말에 혜화의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한다.

 

 

 

 

2. 감상평 。。。。。。。                         

 

 

     엄마와 나이차가 꽤나 많아 보이는 혜화였다. 그리고 얼마 후 영화를 보는 이들도 그녀 역시 입양되었음을 알게 된다. 그런 혜화였기에, 난산 끝에 태어난 아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다른 집으로 입양을 간 것이었다는 한수의 말을 듣자 마치 엄청난 크기의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것처럼 잠시 머릿속이 멍해졌다. 하지만 영화가 끝날 때까지 자신의 속마음을 말로 많이 꺼내지 않는 그녀의 모습은 상황을 더욱 쓰라린 무엇으로 만들어간다. 세밀하면서 감성적인 연출과 연기가 돋보인다.

 

 

 

     버려짐, 혹은 뒤에 남겨짐이라는 감정은 사람의 전 존재를 가장 밑바닥에서부터 불안하게 만드는 경험이다. 어디로부터 왜 왔느냐 하는 질문에 대한 답을 얻을 수 없다는 사실은 존재의 당위를 잃어버리는 것이기도 하니까. 영화 속 혜화는 그런 경험의 피해자이면서 동시에 자신이 가해자가 되기도 했다는 사실로 인해 이중의 괴로움을 품고 살아간다. 무엇을 해도 잊어버릴 수 없는 그것, 모든 것이 그것을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 같은 경험, 모두가 그 결과인 것만 같은 생각들..

 

     그런데 생각해 보면 혜화만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많은 사람들도 비슷한 불안에 빠져있지는 않나 싶다. 수십억 년 전 발생했을 거라는, 우연한 스파크로 인한 무기물들의 결합 따위로는 결코 설명될 수 없는 거니까. 시작에 관한 질문에 대한 이 만족스럽지 못한 답의 결과는 왜 살아야 하는지 그 이유의 상실이었고, 자살이 죽음의 주요 원인 가운데 하나가 되어버린 오늘날의 상황은 그 한 가지 결론이기도 하다. 답이 없는 문제는 그 자체로 대단히 불안하고 위험하다.

 

 

 

     주연을 맡은 유아인의 연기력이 인상적이다. 이 길고 조용한 영화 자체를 이끌어가는 존재였던 그녀는 이 무거운 짐을 잘 끌고 나갔다. 혜화의 복잡한 마음을 그녀의 표정과 연기에 잘 묻어나왔다. 감독의 연출력도 한몫했을 것이고. 작은 연못 위에 점점 커져가는 잔잔한 파문을 보는 것 같은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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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렐란드라 C. S. 루이스의 우주 3부작 2
C.S. 루이스 지음, 공경희 옮김 / 홍성사 / 2011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1. 요약 。。。。。。。                    

 

     전작인 『침묵의 행성 밖에서』에서 말라칸드라(화성)에 다녀왔던 랜섬은, 이제 ‘페렐란드라’라고 불리는 금성으로의 여행을 떠난다. 금성에 도착한 그는 태초의 순결함을 지니고 있는 초록빛 여인을 두고, 악한 영에 쓰인 웨스턴과 페랄란드라의 역사의 흐름을 두고 대결을 펼친다. 에덴동산에서 벌어졌던 충격적인 사건이 금성에서 재현된다.

 

 

2. 감상평 。。。。。。。                  

 

     이야기 전체에 에덴동산에서의 유혹, 대속(램섬, ransom)과 발뒤꿈치의 상함, 어두운 동굴 속에서의 사흘, 왕의 즉위와 같은 성경적 메타포가 가득한 작품이다. 저자인 루이스는 이런 신학적 주제들을 문학적 용어로 풀어내면서 매우 풍성하고 깊은 내용을 담아낸다. 흔히 조직신학 하면 딱딱한 용어들로 구성된 서술들의 집합 정도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물론 원래 그런 걸 의도한 건 아니었겠지만, 서술의 정확성을 기하려는 노력의 결과가 그런 식의 경향을 낳곤 한다. 신학이 아닌 영문학을 전공한 루이스는 이런 한계를 보다 강하게 의식하고 있었고, 그렇기에 이런 멋진 작품까지 만들어낼 수 있었다. 참 귀한 자산이다.

 

     이야기의 초반은 성경이 말하는 낙원(혹은 에덴, 새 예루살렘)에 관한 멋진 형상언어들로 가득해 설렘을 주고, 중반은 웨스턴과 랜섬의 논쟁을 통해 죄와 악의 문제에 대한 치열한 고민을 이끌어낸다. 극 후반부의 랜섬의 모험은 다소 이탈하는 느낌도 없진 않았지만, 그리스도의 수난과 승귀에 대한 훌륭한 이미지 묘사이기도 하다.(그래도 좀 덜 어울리는 느낌도 있다)

 

     참 닮고 싶은 작가다.

 

 

     덧, 이 책을 번역해 낸 번역자 공경희 님에게도 특별한 감사를 하고 싶다. 쉽지 않은 작업이었을 게 눈에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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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key to everything is patience.

You get the chicken by hatching the egg

not smashing it.

- Arnold Glasow


인내는 모든 것의 열쇠입니다.

닭을 얻기 위해서는

달걀을 부화시켜야지, 던져 깨뜨려서는 안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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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이 어려운 것은,

개혁으로 손해를 보는 기득권층은

개혁하면 손해라는 것을 금방 알기 때문에 격렬히 반대하는 반면,

개혁으로 이익을 볼 터인 비기득권층은

개혁이 뭐가 어떻게 이로운지 몰라서 당분간은 지지하지 않고

상황을 관망하거나 미지근하게 지지하는 것이 고작이기 때문이다.

 

- 시오노 나나미, 『로마인 이야기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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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제법 규모 있는 장난감 회사를 운영하는 윌터 블랙. 어여쁜 아내와 두 아들까지 둔 그는 겉으로 보기에는 다 잘 되고 있는 것 같지만, 중요한 문제를 안고 있었다. 깊은 우울증이 그것. 오랜 기다림 끝에 아내조차 그런 그에게서 손을 놓고 말았고, 결국 집을 나온 그는 자살을 시도한다. 바로 그 순간 나타난 비버. 비버는 과거로 다시 돌아가려 하는 대신, 모든 것을 던져버리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라고 명령한다. 그의 말을 듣기로 하고 변신을 시작하는 윌터 블랙. 하지만 꼭두각시놀이를 언제까지나 계속 할 수는 없었다.

 

 

 

2. 감상평 。。。。。。。                           

     깊은 우울감에 빠져서 자신은 물론 주변 사람들에게도 큰 괴로움을 주는 우울증. 단순한 우울감의 과장된 표현으로부터, 뇌 속의 특정 기능의 장애나 호르몬의 이상과 같은 내과적 질병, 혹은 영적인 문제 등 다양한 원인이 제시되는 만큼 복잡하고, 당연히 치유도 쉽지 않은 질병이다. 영화는 바로 이 우울증을 중심 주제로 삼고 있다.

 

 

     영화 속 비버의 진짜 정체는 무엇일까? 아마도 융(Jung) 유의 (집단)무의식의 일종이 아닌가 싶다. 의식에 비해 억압되어 있는 무의식에 집중을 하고, 그것이 지시하는 방향을 정답으로 받는 것이 좋다는 이 해답은 ‘행복한 척, 다 잘되는 척 하며 평생을 사는 게 진짜 미친 것이다’라는 영화 속 한 대사에 잘 반영되어 있다. ‘척’으로 상징되는 전통적인 삶의 방식에서 벗어나 진짜 자신이 원하는 대로 자유로운 삶을 살라는 매력적인 목소리다.

 

     하지만 그건 좋게 봐서 그렇다는 거고, 결국 이런 식의 메시지는 자신이 원하는 건 아무런 거리낌 없이 하고 살아도 좋다는, 일종의 방종과 무질서를 초래할 가능성이 대단히 크다. 자아(自我)가 신(神)이 된 상태라고 할까. 그리고 인간의 사회적 차원은 그렇게 단순히 눈 한 번 감는다고 잊힐 만큼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영화 속 윌터가 결국 맞닥뜨리게 된 한계가 바로 이것이었다.)

     마침내 윌터는 비버로부터도 자유로워질 필요가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그를 진정으로 치유로 이끈 것은 결국 가족(다른 말로 하면 인간관계, 혹은 사회적 정황이 함께 하는 격려와 회복)이었다. 영화 후반부에 가서야 드러나는 진짜 주제다. 조금 진부해보이긴 해도, 원래 진리는 오랫동안 가까운 곳에 있어온 것들일 가능성이 높다. 새롭다고 해서 다 좋은 건 아니니까. 우리에게 필요한 건 모든 걸 무너뜨리고 새롭게 변화시킬 비버가 아니라 가족이다.

 

 

     조디 포스터나 맬 깁슨의 연기력이야 딴죽을 걸만 한 레벨이 아닌 게 분명하고, 감독까지 맡았던 조디 포스터의 연출력도 괜찮다. 볼만한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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