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진실을 말하라.

그러나 진실의 내용 전부를 말해 주지는 말라.

진실은 조심해서 다루어야 한다.

때로는 남의 가슴에 큰 상처를 주는 칼이 되기 때문이다.

 

 

- 발타자르 그라시안, 『살아가는 동안 내가 해야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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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위한 미래인가 - 위기 이후 세계를 위한 토플러의 제언
앨빈 토플러 지음, 김원호 옮김 / 청림출판 / 2012년 10월
평점 :
절판


1. 요약 。。。。。。。     

 

     저명한 미래학자인 앨빈 토플러와 미국의 출판사 사우스엔드프레스의 관계자들이 새로운 기술적 발전이 우리의 미래를 어떻게 변화시킬까라는 주제를 두고 인터뷰 형식으로 한 대화를 책으로 엮었다. 토플러는 산업화에 기반 한 현재의 정치, 경제, 문화적 구조들은 이미 낡은 것이 되어가고 있으며, 정보를 그 핵심가치로 하는 새로운 시대는 좀 더 분권적이고, 민주적인 모습을 띄게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2. 감상평 。。。。。。。   

 

     도서관 신간 코너에 있기에 냅다 집어온 책이다. 전작인 『부의 미래』를 재미있게 읽었기도 했기에 이번 책 역시 기대감을 가지고 읽기 시작했다. 책의 전반적인 내용은 토플러가 ‘제3의 물결’이라고 부르는 정보를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산업구조가 기존의 낡은 체제를 크게 뒤흔들 것이라는 전망을 중심으로 몇 개 분야에 걸쳐 그 실제적인 모습을 예상해보는 형식이었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기대했던 것만큼 흥미롭지는 않았다. 저자가 예측하는 미래에 대한 모습은 굉장히 두루뭉술한 수준이고, 이전 책들에서 볼 수 있었던 것과 같은 날카로운 분석이나 섬세한 예측은 별로 찾아볼 수 없었다. 정보 중심의 제3의 물결에 관한 논의 역시 새로운 것은 아니었고. 찾아보니까 책의 원서는 무려 1983년에 출판된 ‘Previews and Premises’였고, 따지고 보면 30년 전에 했던 인터뷰를 이제야 출간한 것이었다. 인터뷰 당시에는 굉장히 새롭고 깊은 통찰력을 보여주었을 내용들이었을지 모르나, 지금 읽기에는 그런 장점들이 꽤나 줄어든 상황인 것도 당연했다.

 

    예컨대 2010~2020년 경에는 에너지 사용구조가 크게 달라질 것(118)이라는 저자의 예측은, 여전히 화석연료에 거의 의존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을 볼 때 조금은 많이 낙관적이었던 것이 아니었나 싶다. 비단 에너지 문제만이 아니라 저자는 전반적으로 기술의 발전이 큰 흐름에서 우리를 좀 더 나은 세상으로 이끌 것이라는 낙관적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 같은데, 책의 내용을 통해서 이런 견해에 선뜻 동의가 되지는 않는다.

 

 

     다만 큰 틀에 관한 부분에서는 저자의 통찰력이 여전히 빛을 발한다. 예컨대 좌파나 우파 모두 과거에 대한 막연한 이상화에 빠져있다는 지적과, 비슷한 맥락에서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모두 산업화에 뿌리박고 있는 (낡은) 사상일 뿐이며 미래에는 좀 다른 모습의 경제원리가 제시될 것이라는 부분 등이 그런 예들이다.

 

     아울러 저자가 30년 전에 정보사회에 맞는 산업들에 관해 제시했던 내용이 꽤나 의미있게 다가오기도 했다. 그는 새로운 기간산업들 - 통신, 바이오, 해양 엔지니어링, 소프트웨어, 정보, 전자 -을 육성하고, 교육훈련분야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학교로 대표되는 대량교육 시스템을 깨뜨려야 한다(107)고 주장한다. 그런데 2000년대에 등장한 우리나라의 어떤 정부는 취임 직후 해양수산부와 정보통신부를 해체하고 임기 내내 땅만 파는 구시대적 산업관으로 일용직만 양산하고 있고, 사회적으로는 여전히 기계적 암기가 성공을 보장하는 대량생산식 학교 교육들이 확고하게 권력을 행사하며 수백 만 명의 학생들과 학부모들 위에 군림하고 있으니, 이거 그의 예측이 우리나라에서는 틀렸다고 해야 하나 아니면 이 나라가 여전히 산업화라는 구시대적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거라고 봐야하나.

 

 

     새책이지만, 새로운 내용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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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 유기농의 수확량은 '1에이커 당'으로 측정했을 때

더 높게 나타나는 것으로 증명되었다.

수확량을 '농부 1인당' 생산량으로 잘못 측정하고 있는

기업형 농업에서는 대부분의 농부들이 집중화된 기계와

화학제품에 희생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기업형 농업생산의 효율성 측정 방법은 분명 왜곡되었으며,

땅과 토양에 미치는 환경 훼손과 공종 건강이라는

'외적' 보조비용을 제외시킴으로써 더욱 왜곡을 심화시키고 있다.

 

- 반다나 시바 外, 『테라 마드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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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이중 중력이 작용하는 독특한 세계.(이 설정에 대해 물리학적으로 옳으니 그르니, 뭐가 잘못됐느니 하고 따지지 말자. 영화적 장치일 뿐이다.) 정확히 반대방향으로, 그것도 매우 인접해서 작용하는 중력은 두 개의 전혀 다른 분위기의 세계를 만들어냈고, 상부 세계는 하부세계의 자원을 착취하고 통제함으로써 손쉽게 부를 쌓아가고 있었다.

 

     하부세계의 소년 아담은 어느 날 상부 세계의 에덴을 만나 사랑에 빠졌지만, 두 세계의 소통을 가로막는 사람들은 그들의 사랑 또한 용납하지 않았다. 불의의 사고로 헤어지게 된 두 사람은 10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고, 아담은 에덴을 위해 상부세계로 올라가는 모험을 결심한다.

 

 

2. 감상평 。。。。。。。     

 

     ‘만일 사랑이 중력보다 강하다면’이라는 주제가 전면에 드러난다. 중력이란 ‘모든 물체들이 가지고 있는 끌어당기는 힘이 질량에 비례하기 때문에...’ 하는 설명은 집어 치우고, 쉽게 묘사하자면 우리를 우리의 원래 세계로 끌어당기는 힘이다. 그건 우리의 배경이나 조건, 즉 타고난 신분에 가까운 무엇으로 볼 수 있는데, 이는 상부세계와 하부세계로 나뉘어 있는 영화 속 두 사회의 모습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한쪽은 부유하고 다른 쪽은 가난한, 한쪽은 착취당하고 다른 쪽은 그것으로 편안하게 누리는, 한쪽은 깨끗하고 편리하며 힘을 가지고 있지만, 다른 쪽은 더럽고 불편하며 도망을 다녀야 하는.

 

 

 

 

     그러니까 영화는 어떻게 보면 상류층 여자와 하층민인 남자 사이의 사랑이라는 매우 고전적이고 오래된 구도를 보여준다. 다만 앞의 이야기들은 문제를 개인차원의 것으로 국한시켰다면, 이 영화는 그걸 세계의 구조 차원으로의 확대를 살짝(정말 ‘살짝’만이다) 시도했다는 차이가 있겠다. 미국의 침략으로 황폐해진 이라크 출신 남자와 미국 남부 출신의 백인 하원의원의 딸이 사랑에 빠졌다고 한다면 적어도 신문의 한 꼭지 정도는 지금도 충분히 장식하지 않겠는가. 그러고 보면 판타지이긴 해도 꽤나 현실적인 영화다.

 

 

 

 

     물론 남녀 간의 사랑이라는 게 그 자체로 좋은 것이거나 반드시 이뤄져야 할 절대선(絶代善)과 같은 개념은 아니다. 하지만 무슨 한우 등급 매기듯, 재산과 학벌, 부모의 경제적, 사회적 위치 같은 것으로 사람의 등급까지 매겨 관리한다는 결혼정보업체들의 천박한 인식이 이미 사회 전체로 퍼져있는 요즘, 중력까지도 극복하고자 하는 사랑 이야기는 꽤나 예쁘게 느껴진다. 가을에 볼 만한 괜찮은 로맨스 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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