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학기술한림원의 진화론 옹호 입장 발표에 관해

 

 

한국과학기술한림원에서는 2012년 9월 5일

'고등학교 과학 교과서의 진화론 내용에 대한 수정·보완 가이드라인'에서

"진화론은 과학적 반증(反證)을 통해 정립된 현대 과학의 핵심 이론 중 하나로 모든 학생에게 반드시 가르쳐야 할 내용"이라고 주장했다고 합니다.

개인적으로 흥미로운 내용의 기자회견이었는데요,

먼저 왜 이런 발표를 굳이 나와 했는지를 살펴봐야겠죠.

 

 

사건은 지난 2011년 한 단체가 교과서에 실린 시조새와 말의 진화에 관한 기술을

삭제해 달라는 청원을 교육과학기술부에 제출한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둘 모두 진화의 증거로 제시되기에는 근거가 빈약하다는 것이죠.

(시조새는 파충류와 조류의 중간단계가 아닌 독립된 종으로도 볼 수 있고,

 말의 진화를 보여준다는 화석들은 인위적인 배열로 인한 착시효과라는 게 정설)

그 뒤에 종교적 배경이 있든 없든 간에,

문제 제기 자체는 지극히 타당한 논거 차원에서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습니다.

 

 

 

↑ 둘 모두 현대 과학계에서 위에 나온 것과 같은 식으로 이해되지는 않고 있음

 

 

그런데 이번에 발표한 한림원의 가이드라인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현재 일부 과학 교과서가 시조새를 조류 또는 파충류에 가까운 유일한 중간종으로 오해하도록 서술했으나, 시조새 외에도 수각류 공룡에서 현생 조류에 이르는 과정을 보여주는 다양한 원시 조류의 화석이 존재한다"

 

"단순한 직선형으로 표현하고 있는 진화도를 관목형으로 대체해야 하며, 이런 진화도는 말 외에도 고래의 진화, 초기 양서류의 진화로도 설명할 수 있다"

 

꽤나 재미있는 대답입니다. 간단히 정리하면 이렇습니다.

1) 시조새와 말의 진화도(進化圖) 모두 기존의 설명 자체에 오해의 소지가 있는 건 맞다.

2) 하지만 진화의 다른 증거가 있으니 그 둘을 빼서는 안 된다.

 

이게 무슨 소린가요?

진화는 옳지만 현재 교과서에 실린 내용에 오류가 있다면

① 일단 사실과 다른 내용을 삭제하고,

② 그분들이 말하는 다른 증거들을 연구해 삽입하면 그만입니다.

 

틀린 건 인정하지만 삭제는 안 된다,

진화는 다른 증거로 증명될 수 있다 라뇨..

마치 어제 내가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서 한참 야단을 맞았는데,

오늘 그 일을 내가 하지 않은 게 밝혀진 거죠.

하지만 상대는 내가 했던 다른 잘못들도 있으니

어제 야단 친 걸 철회하거나 사과할 이유는 없다는 거랑 비슷합니다.

과연 내가 했다는 다른 잘못들이 정말 사실인지 확인해보는 것과는 별도로,

이런 식의 논지 전개는 완전히 논점을 벗어나는 일입니다.

 

 

 

↑ 한땐 이런 그림도 유행했었죠. 이건 이미 헤켈 생전에 조작으로 밝혀진 것.

 

 

교과서에서 그 내용들의 삭제를 요구한 사람들의 배경이 어떻든,

청원의 내용 자체는 철저하게 사실에 관한 확인을 요구하는 것인데

굳이 한림원 쪽에서는 문제를 사실 여부보다는 '배경적 이론'의 차원으로 옮겨오고 있습니다.

저로서는 고마운 일입니다.

과학자들 역시 자기들만의 패러다임, 혹은 세계관의 지배 아래 있는 사람들이란 걸

증명해주는 좋은 예가 될 테니 말입니다.

 

네, 이 문제는 찬찬히 따라가 보면

현대의 과학주의, 혹은 분석주의라는 사고방식과 맞닿아 있습니다.

어떤 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는다면,

그것 옳지 않거나, 심지어 존재하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죠.

오늘날엔 당연한 것으로 여겨지는 입장이지만,

가만히 생각해보면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를 판단하는 건 오로지 과학자들만 할 수 있다는,

대단히 독재적인 발상이기도 합니다.

누가, 언제, 어디에서 과학자들에게 진실 여부를 결정할 권리를 줬던가요?

 

그분들은 과학이 대단히 객관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할지도 모르지만,

과학은 객관적일지 몰라도, 그것을 실제로 연구하고 이용하는 ‘사람’은

절대로 객관적일 수 없습니다.

역사적으로 과학계도 다른 분야들과 마찬가지로 수많은 사기와 기만, 속임수들이 난무해 왔습니다.

요즘도 연구비 타 내기 위해 교수들이 하는 짓들을 보면 가관이죠.

(물론 전부가 그렇다는 건 결코 아닙니다. 다른 모든 분야들과 마찬가지로.)

 

 

 

 

 

굳이 부정의 예를 들지 않더라도,

과학 이론 자체는 언제나 오류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귀납적인 방식을 기본 태도로 하고 있습니다.

언제라도 이제껏 드러나지 않았던 사실이 새롭게 발견될 수 있습니다.

때문에 상당수의 이론은 가설에 근거합니다.

이런 저간의 사정을 다 아실만한 분들이

‘진화는 절대로 반론의 여지가 없는 진실’이라는 투로 말씀하시니 좀 재밌습니다.

그런 식의 입장 발표 자체가 딱히 ‘과학적’으로 보이지 않으니까요.

 

여하튼 이런 생각의 연장에서

이번 삭제 청원의 배후에 ‘비과학적인 집단’이 있고,

그들이 취하고 있는 배경은 옳지 않기 때문에(이 판단은 당연히 자기들만 할 수 있고)

그들이 주장하는 내용과 논리가 옳다고 하더라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결론을 도출했는지도 모릅니다.

역으로 말하면, 자신들의 패러다임과 전제와 다른 어떤 의견도 듣지 않겠다는 말이죠.

 

다시 묻습니다.

 

누가 그들에게 어떤 것이 궁극적으로 옳고 그른지를 판단할 수 있는 권리를 줬던가요?

 

 

 

물론 저도 현대의 발전된 과학적 연구의 결과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과학계의 큰 공헌도 인정합니다.

핵무기를 비롯한 각종 살상도구들,

인간의 자유와 행복을 침해할 수 있는 온갖 기술들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과학이란 드러난 현상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데 그 역할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에 관해 그들이 사용할 수 있는 도구를 이용해

그 사안에 대한 자신들의 생각을 표명할 수 있는 것 뿐이지,

세계에 관해, 옳고 그름에 관한 절대적인 판단자가 될 수는 없는 겁니다.

하물며 상대방의 배경이나 의도까지 예상해 오버할 필요는 더더욱 없구요.

 

그런 차원에서 이번 발표는

과학자들이 얼마나 독단적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가 아닌가 싶습니다

 

 

 

 

 

 

참고로, 이번 가이드라인은 한림원이 만든 전문가협의회가 마련했다고 하는데요,

협의회 위원 11명은 과기한림원 회원 3명, 진화론 및 화석학 전문가 5명,

기초과학학회연합체 전문가 3명으로 구성됐다는 군요.

처음부터 특정 입장을 정하고 그걸 강하게 주장하기 위한

인적 구성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도 듭니다.

일 하는 건 '과학적'이라기 보단 '정치적'인 듯합니다만..

뭐 그냥 느낌인 거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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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익’이라는 개념은 상당히 추상적이기는 하지만,

‘국익이 있느냐, 없느냐?’라는 논의 자체가

파병과 전쟁이라는 특수한 관계로까지 연결되는 것은

다분히 제국주의적인 현상이다.

이익이 있어도 대부분의 국가들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는다.

여전히 대의와 명분 같은 것으로 

참전 혹은 파병 같은 일을 결정하게 된다.

 

- 우석훈, 『촌놈들의 제국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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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어렸을 때부터 고등학교까지 함께 해온 별난 친구들과 커징텅. 공부에는 딱히 관심 없이 그저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을 뿐, 학교에선 공부 안하는 애로 찍힌 지 오래다. 전교 1등을 놓치지 않는 예쁘장한 선쟈이에게 관심이 있지만, 대놓고 표현하기엔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다. 사실 커징텅은 물론 그의 친구들 모두 선쟈이를 좋아하고 있었다.

 

     우연한 기회로 선쟈이와 가까워지게 된 커징텅.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친구들은 각자 대학에 입학했고, 커징텅은 선쟈이와의 만남을 계속하지만, 사소한 오해는 늘 발생하기 마련.. 딱 그 시절, 그 무렵에만 경험할 수 있을 것 같은 풋풋한 사랑 이야기.

 

 

 

 

2. 감상평 。。。。。。。       

 

     결말이 인상적이다. 중간까지는 그냥 여자 잘 만나서 사람 된 주인공 이야기인가 싶었는데, 주인공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부터 급격히 성장해버린 두 사람과 친구들은 좀 더 복잡하고 현실적인 문제로 충돌하고 고민하기 시작한다. 단순히 향수를 자극하는 연애물이라기 보다는 착한 성장영화라고 할까. 친구들의 이야기가 좀 많이 줄어든 것 같은 느낌이 들긴 하지만, 괜찮은 구성과 전개.

 

     오히려 ‘대만판 건축학 개론’ 식으로 홍보 전략을 택했던 게 괜히 아류작 같은 느낌을 주게 만든 실수가 아니었나 싶었다. 두 영화 모두 과거를 회상하는 이야기이긴 하지만, 뭐 그런 식의 영화 전개야 수도 없이 나왔던 것이고, 분위기나 중심 주제 모두 분명 차이가 있다.

 

 

 

     휴대전화도 없고, 인터넷도 아직 널리 사용되기 이전, 한 번 연락하려면 공중전화를 찾아야 했고, 여전히 미래에 대한 옅지만 밝은 꿈을 꾸며 살았던 시절에 대한 기억을 가진 사람들이 확실히 문화시장의 주류 소비자가 됐긴 했나보다. 굳이 이런 어린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보면서도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 걸 보면 나도 꽤나 세상에 물들었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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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미국 뉴멕시코 주의 텍시코라는 작은 마을에 사는 버드는 아내와 갈라선 후 딸인 몰리와 함께 살아가고 있었다. 열심히 일해서 사랑하는 딸을 잘 키워야 하겠지만, 웬걸, 전혀 규칙적이지 못한 생활에 술 마시고 늦잠을 자다 회사에 지각을 하기에 일쑤다. 아직 초등학생인 몰리가 훨씬 더 어른스럽게 아빠를 챙기고 있는 상황..

 

     어느 날 일하던 회사에서 짤린 뒤 술을 마시다가 몰리와 약속했던 대통령 선거에 참석하지 못한 버드. 아빠를 기다리던 몰리는 결국 대신 투표 시도하지만, 마침 일어난 작은 사고로 실패하고 만다. 바로 그 투표는 역대 가장 팽팽한 선거의 향방을 가를 수 있는 한 표가 되었고, 버드는 열흘 뒤 재투표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공화당과 민주당의 두 대통령 후보가 단 한 명의 유권자를 놓고 치열한 선거운동을 시작했고, 버드는 졸지에 유명인사가 된다.

 

 

 

 

2. 감상평 。。。。。。。       

 

     설정 자체부터 흥미로웠던 영화였고, 시종일관 유쾌한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게 좋았다. 철없는 아빠와 어른스러운 어린 딸이라는 전형적인 코미디 구도에, 복잡한 일은 전혀 관심 없는 시골 아저씨가 단숨에 전국적인 유명인사가 되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는 재미난 상상력이 더해지고, 여기에 표를 얻기 위한 양당의 치열한 선거운동을 과장되게 그려내는 것으로 마침표를 찍어냈다.

 

     다만 꽤나 비중 있는 인물로 등장할 것 같았던 지방 언론사 기자 케이트 메디슨의 이야기는 영화가 진행되면서 급격히 줄어들어버렸고, 버드의 전처, 즉 몰리의 엄마를 찾아가는 여행은 좀 생뚱맞게 보일 정도로 이야기 흐름과 어울리지 않는다. 정치에 대한 풍자를 담은 가족 이야기로 영화의 방향을 설정한 건 알겠는데, 아마도 둘 사이에서 잠시 중심을 잃어버린 게 아닌가 싶은 느낌.

 

 

     영화 속에서 정치는 철저하게 쇼로 그려진다. 단 한 사람의 표로 이내 대통령이 결정된다는 조건 속에서 공화당과 민주당 모두 버드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그에게 최적화된 선거운동을 벌인다. 그가 좋아하는 음식과 노래, 취미생활을 알아내 이런저런 즐거움을 제공해 단숨에 마음을 얻으려는 1차적인 방식에서부터, 나중에는 그의 말 한 마디에 따라 공약과 선거정책의 방향을 전격적으로 바꾸기까지(민주당에서 낙태와 불법이민을 반대하고, 공화당에서 개발 대신 환경보호 정책을 채택하는 마당이니).. 국가의 운영과 진로에 대한 좋은 비전을 제시하고 사람들의 동참을 유도하기 보다는 선거 승리에만 몰두해 온갖 선심성 공약들을 남발하는 정치인들에 대한 조롱과 비꼬기가 통쾌하다.

 

     한편으로 영화는 유권자의 투표가 이런 정치상황을 바꿀 수 있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라는 점을 역설한다. 말 그대로 내 한 표로 대통령이 바뀌고, 국가의 정책이 변할 수 있는 상황을 영화는 좀 과장되게 그려내고 있는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대의민주주의의 선도국가를 자부하는 미국이지만 최근 선거참여율이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고 한다. 결국 어떻게 해도 딱히 달라지는 것은 없다는 일종의 체념을 반영한다고 할 수 있는데, 영화는 그래도 의미를 담아 던지는 한 표, 한 표가 정치를 쇼로 전락시키고 있는 그들을 통제할 수 있는 유효한 도구가 될 수 있다는 교훈을 전하려고 하는 것 같다.

 

 

     이런저런 의미가 아니라도 재미있게 볼 수 있는 영화. 일단 너무 많이 나가지 않은 게 보기 편하다. 참, 오랜만에 보는 케빈 코스트너의 모습도 반가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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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에 빠진 사람을 구하는 일은 목숨을 버릴 만한 가치가 있지만

인생의 목표로 삼을 만큼 가치 있는 일은 아닌 것입니다.

저는 모든 정치적 의무들을(군복무 의무를 포함해서)

이런 식으로 대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조국을 위해 죽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조국이 누구의 삶도 독점해서는 안 됩니다.

국가나 정당이나 계급의 일시적 요구에 무조건 굴복하는 사람은

만물 중에서도 하나님의 것임이 가장 분명한 자기 자신을

가이사에게 바치는 꼴입니다.

 

- C. S. 루이스, 『영광의 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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