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는 IBM뿐만 아니라 독일이라고 하는 국가 전체가

컴퓨터처럼 착착 손발을 맞춰 작동했기 때문에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

법률가는 법률가대로, 의사는 의사대로, 공무원은 공무원대로,

군인은 군인대로, 철도원은 철도원대로,

모두가 자기 자리에서 ‘맡은 바 임무에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 김두식, 『헌법의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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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뗏목
주제 사라마구 지음, 정영목 옮김 / 해냄 / 200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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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어느 날 한 여자가 나뭇가지로 땅에 금을 그었다. 또 다른 남자는 엄청나게 무거운 돌을 들어 바다를 향해 던졌고, 또 다른 여자는 파란 양말의 털실을 풀어내기 시작했다. 또 한 명의 남자의 주변에는 갑자기 수 천 마리의 찌르레기 떼가 따라다니기 시작했고, 마지막 남자는 홀로 땅이 움직이는 것을 느끼게 된다. 이 모든 관련 없어 보이는 사건들 이후, 이베리아 반도와 유럽 사이를 가로지르던 피레네 산맥이 마치 칼로 자른 듯 잘라져버렸다. 그리고 얼마 뒤 이베리아 반도는 말 그대로 거대한 돌뗏목이 되어 대서양을 가로지르며 이동하기 시작한다.

 

     혼란에 빠진 포르투갈과 스페인 정부와 국민들, 유럽과 아메리카의 정치인들의 모습이, 유럽의 일부분이면서도 이질적이고 독특한 역사와 전통을 가지고 있는 이베리아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결합되면서 특별한 분위기를 형성한다. 그 와중에 앞서 언급한 다섯 명의 남녀는 함께 어디론가 여행을 시작하고, 다시금 주제 사라마구만의 말의 향연이 펼쳐진다.

 

 

 

2. 감상평 。。。。。。。   

 

     이야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뭐라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 일단 여행을 떠난 다섯 명의 사람들이 서로 모이게 하는 이유도 불분명하고, 사실 그들에게 일어났던 일들은 어느 것 하나 논리적으로 설명될 수 있는 일들도 없다. 더구나 반도가 통째로 떨어져 나와 대양을 건너다니.. 여기에 이야기 속 정치인들의 과장된 헛소리들은 또 어떻고. 그냥 보면 책 전체가 부조리한 내용들로 가득 차 있는 것만 같다.

 

     이렇게 극단적으로 혼란스러운 상황은 인간성의 바닥을 드러내는 이유가 되곤 한다. 조금 더 무거웠던 작가의 전작들(‘눈먼 자들의 도시’와 그 후속작인 ‘눈뜬 자들의 도시’ 같은)에서 이런 혼란들은 늘 인간들의 잔혹함과 비열함을 드러내는 장치였다. 하지만 이 작품은 조금 다른 분위기를 보여준다. 다섯 명의 등장인물들은 끊임없이 어딘가로 향할 목적지를 설정하고, 행동의 이유들을 만들고, 그 안에서 관계를 설정하고 삶을 지속해 나가는데, 이는 혼란 속에서 길을 잃고 이리저리 휩쓸려 다니는 나머지 사람들과 대조를 이룬다. 저자의 눈이 조금 순해졌다고 할까.

 

     갑자기 엄청난 크기의 땅이 떨어져 나와 마치 배처럼 바다 위를 떠다니고, 빙빙 돌다가 방향을 바꿔 이동하는 엄청난 격변 속에서도, 이야기 말미 이베리아 반도(이제 반도가 아닌 섬이라 불러야 하는)에 사는 거의 모든 여자들은 일제히 임신으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한다. 그래도 삶은 계속될 것이라는 메시지. 그렇지, 무슨 천지격변이 발생하고, 누가 대통령이 된다고 해도 당장에 나라가 망할 것처럼 호들갑을 떨 필요는 없는 건지도.

 

 

     책에 등장하는 수많은 암시들과 인용들, 역사적 사건들을 그 자체로 이해할 수 있는 독자라면 조금 더 와 닿는 면이 많았을까. 작가의 기발한 상상력에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지만, 확실히 문화적 장벽이 느껴지는 부분도 있다. 그래도 전작들을 재미있게 읽었다면 한 번 볼만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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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빈 인 더 우즈
드류 고다드 감독, 크리스 헴스워스 외 출연 / 이오스엔터 / 201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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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휴가를 보내기 위해 외딴 오두막집으로 놀러간 다섯 명의 친구들. 모처럼 집에서 벗어나 해방감을 느끼며 제대로 놀아보려고 했지만, 시작부터 그 집은 어딘가 이상한 점이 많았다. 우연히 들어가게 된 지하실에서 오두막의 옛 주인 것으로 보이는 오래된 물건들을 발견하고, 그 중 한 일기장에 적힌 라틴어 문장을 읽자 집 주변에 숨어 있던 좀비들의 습격이 시작된다.

 

     하지만 좀비들의 습격보다 더 무서운 일이 있었으니, 다섯 명의 친구들의 모습을 처음부터 모니터로 지켜보고 있었던 어떤 사람들이 바로 그것. 스스로 인류를 위해 대단한 봉사나 하고 있는 양 떠벌리는 그들은, 친구들을 차례차례 고통과 죽음으로 몰아넣기 시작한다.

 

 

 

2. 감상평 。。。。。。。   

 

     영화는 네임벨류가 그닥 높이 않은 젊은 배우들이 등장해, 멀리 놀러 갔다가 하나씩 괴물들에게 당한다는 ‘13일의 금요일’ 유의 B급 슬래셔 무비처럼 시작한다. 하지만 이내 그런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모든 상황들을 조정하고 통제하는 하얀 옷 입은 사람들의 존재를 보여주면서 뭔가 거대한 음모가 있는 것처럼 긴장감을 조성시키는 데까지는 성공한다. 하지만 그런 그들의 행동에 당위성을 부여할만한 설정의 부재는, 그들이 스스로 말하는 것처럼 인류를 위한 거대한 계획의 일원보다는, 그냥 집단 관음증에 빠져 있는 변태들로밖에 보이지 않도록 만들었다.

 

     한편으로, 피해자들을 좁은 건물, 혹은 엄격히 제어되는 공간 안에 집어넣고, 실험으로 포장된 고통을 주며 관찰한다는 설정은 ‘큐브’ 시리즈나 ‘쏘우’를 살짝 떠올리게도 했지만, 그 영화들과 비교하기에는 심리 묘사의 수준이 너무 떨어진다.

 

 

 

     인신공양. 전 인류를 살리기 위해 다섯 명의 젊은이들을 고통스러운 죽음으로 내모는 일을 가리키는 전통적인 용어다.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하 소수의 희생은 예부터 칭송받아온 일이긴 하지만, 집단이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소수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건 좀 다른 이야기다. 이 경우 대개 그 ‘소수의 희생자’는 힘도 빽도 없는 약자들이니까 비겁한 일이 되기도 한다.

 

     수천 년, 수백 년 전이나 있었을 것 같은 이런 희생 떠넘기기는 여전히 오늘날에도 도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정보와 힘을 독점하고 있는 주류는 그렇지 못한 약자들의 희생 위에 자신들의 번영을 즐기고 있고, 공동체가 얻은 부를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자는 주장에 대해서는 이런저런 딱지를 붙이고는 분노와 증오를 드러내고 있으니 말이다. 비록 영화 속에서는 그것이 좀 더 노골적으로, 그리고 비틀린 채로 과장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인간성의 바닥을 보는 건 실제 현실에서도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란 말씀. 기술은 어떨지 모르지만, 적어도 인간성이라는 주제에 있어서만큼은 지난 수천 년의 역사를 돌이켜 보건데 사람들은 딱히 더 발전하지 못한 것 같다.

 

 

     시작부터 뭔가 엄청나게 크고 심각한 비밀이 숨겨져 있을 것처럼 무게를 잡았지만, 약간 황당하게 끝나버린 영화. 특히 영화 말미에 사방에서 쏟아져 나오는 괴수들이 등장하는 장면은 딱히 특별한 것 없이 그냥 산만함의 극치를 보여준다. 마이너 쪽의 슬래셔 무비로 갈지, 메이저 쪽의 음모이론이나 환타지로 갈지 결정을 못하고 갈팡질팡 한 게 아닌가 싶은 느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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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은 연설을 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대화에 들어오시고

우리는 그분의 대화 상대다.

 

- 유진 피터슨, 『이 책을 먹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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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자는 왜 금요일에 물고기를 먹는가 - 그리스도교의 전통과 일상
마이클 P. 폴리 지음, 이창훈 옮김 / 보누스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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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요약 。。。。。。。     

 

     기독교의 영향력을 인정하지 않고서 서양 역사를 그려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이 책은, 족히 천년 이상 ‘기독교 세계’였었던 서양의 역사와 문화 속에 얼마나 기독교적 발자취가 깊이 남아 있는지를 항목에 따라 정리해서 보여준다. 이를테면 오늘날 우리들이 마시는 카푸치노라는 커피 음료는, 터키인들이 남기고 간 커피콩 자루를 얻은 카푸친회 수도사들이 그냥 먹기에 너무 썼던 그 차에 우유 등의 첨가물을 넣었던 데서 시작되었다는 것.

 

 

2. 감상평 。。。。。。。   

 

     저자의 열성적인 노력으로 일종의 작은 백과사전 같은 책이 만들어졌다. 책에 등장하는 항목들은 시간과 달력, 휴일, 음식, 건축, 놀이, 국기와 지명 등 참 다양한 내용들을 포함하고 있다. 다만 ‘백과사전’이라는 책이 늘 그렇든, 모든 항목들마다 흥미롭거나 관심을 끌만한 내용들을 담고 있지는 않기 마련이니까.. 이 책 역시 마찬가지여서 몇몇 항목들은 분명 관심이 가는 것들도 있었지만, 또 많은 경우는 그냥 지나가는 식으로 밖에 읽히지 않았다.

 

     또 한 가지, 꼭 사전까지는 아니라도, 많은 항목들을 넣고 싶었던 저자의 욕심 때문인지, 몇몇 항목들은 좀 과도하게 ‘가톨릭’이라는 종교와의 인연을 강조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를테면 어떤 꽃이나 풀의 이름을 가톨릭 교인이 붙였다고 해서 그것이 가톨릭의 영향 때문이라고 말하는 건 좀 어렵지 않을까? 사실 그 시대 유럽에 사는 사람들은 명목상으로는 거의 전부 가톨릭 교인이었으니까 말이다. 그런 식으로라면 그 시대에 존재했던 모든 것이 다 가톨릭교와 관련이 있다고 해야 할 텐데, 뭐 그런 걸 원했던 것 아닐 것 같은데..

 

 

     기대했던 것만큼 흥미로운 내용으로 가득하지는 않았지만, 중세 기독교(사실 종교개혁 이전 시기에 있었던 일들은 굳이 가톨릭과 개신교로 구분하는 건 무의미하다)가 서양인들의 삶 전반에 얼마나 넓은 영향을 주었는지를 생각해 보게 만드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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