촘스키, 고뇌의 땅 레바논에 서다
노엄 촘스키 외 지음, 강주헌.유자화 옮김 / 시대의창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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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의 저명한 진보적 학자이자 사회운동가인 노엄 촘스키가 지난 2006년 레바논을 여드레 동안 방문한 후 그에 관한 기록을 책으로 엮은 것이다책 표지에도 촘스키의 얼굴이 크게 박혀 있고제목에도 그러하니 책의 내용이 촘스키의 생각으로 채워져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총 12장으로 구성된 이 책에서 그가 직접 강연이나 원고의 형태로혹은 인터뷰로 목소리를 낸 것은 네 개 장(2, 3, 4, 7)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다른 필사들의 글로 채워져 있다물론 그 내용도 읽어볼 만한 내용들이긴 했지만살짝 아쉬운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촘스키가 이 여행을 감행한 2006년은팔레스타인 자치구역에서 실시된 선거에서 그 동안 대()이스라엘 무력투쟁에 앞장서던 하마스가 집권당으로 선택을 받은 해이다이스라엘과 미국은 이를 위협으로 여겼고자치정부 안의 내분을 조장하는 동시에 팔레스타인 자치구역인 가자 지구에 대한 무력공격을 개시한다이 때문에 발생한 팔레스타인 난민들이 바로 북쪽에 인접한 레바논으로 쏟아져 들어가게 되었고이스라엘은 이것이 레바논과 이스라엘의 국경지대의 안정을 해친다는 명분으로 레바논까지 전격적으로 침공한다.


     이 책은 이스라엘의 이 무력공격이 팔레스타인과 레바논 주민들에게 얼마나 큰 피해를 입혔는지(이 책에서 촘스키 이외의 필자들이 쓴 글은 대개 이 주제를 담고 있다), 그리고 이 비윤리적인 전쟁을 용인하고나아가 지원하고 있는 미국에 대한 비판이 주를 이룬다.


     석유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전 세계를 휘젓고 다니는 미국과그런 미국에 의존해 중동에서의 대리인으로 행동하는(그러면서 마치 미국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하던 일을 지역 단위에서 저지르는이스라엘의 모습이 인상을 찌푸리게 한다.

 


     폭격으로 무너진 집과 죽은 가족들을 두고 괴로워하는 레바논과 팔레스타인의 아이들의 얼굴을 앞에 두고는어떤 거창하고 숭고한 전쟁의 명분도 힘을 잃는다. 물론 하마스며헤즈볼라며 하는 단체들이 자신들의 주장을 크게 내기 위해 테러를 일삼았던 것은 사실이다하지만 촘스키는 바로 이 지점에서그러니까 그들 테러 조직원만이 아니라 그들과 같은 인종과 민족혹은 지역주민들까지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로 폭력과 무력행사를 하는 건 정확히 테러리즘의 논리라는 점을 지적한다.


     그리고 이런 큰 피해가 일어나는 상황에서는누가 먼저 잘못했고누구의 잘못이 더 크고 하는 걸 따지는 게 무의미해진다아무렴 어떤가앞으로 더 큰 피해와 문제를 일으킬 텐데물론 실제 정치와 외교에서는 온갖 폼을 잡다가 엄청난 피해를 서로 입은 후마지 못하는 식으로 합의를 이루는 경우가 많다일반인들은 고위 공무원들이나 외교관들이 엄청나게 탁월한 식견과 전략으로 움직인다고 생각하곤 하지만언제나 실제의 현실은 광고에 나오는 것처럼 빛나지도매끄럽지도 못한 법이다.

 


     촘스키가 방문을 했던 레바논(헤즈볼라)-이스라엘 전쟁은 결국 이스라엘군의 철수로 끝났지만여전히 레바논은 안정과는 거리가 먼 것 같다얼마 전 일어났던 베이루트시의 대규모 폭발사고도 사고지만다양한 문화적종교적 배경을 가지고 있는 레바논이라는 나라의 독특한 정치구조도 한 몫을 했던 것 같다시리아와 이스라엘팔레스타인이라는 (이유는 다르지만조금은 버거운 이웃들을 둔 것도 있고.


     책을 다 읽고 나서도레바논에 어떤 빛이 비출 수 있을까 떠오르지 않는다극도로 현실주의적인 국제 외교전에서 약소국의 미래는 늘 이렇게 불안하고 걱정된다이미 UN도 강대국들의 이권 다툼의 장으로 전락해 버린 지 오래고그 반대급부로 지역별 블록이 강화되면서 최소한의 기사도적 용기와 명예를 기대하는 것도 사실상 불가능해져버렸고이들은또 우리는 이런 시대를 잘 살아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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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법에 없는 언어 - 생각보다 헌법은 구체적입니다
정관영 지음 / 오월의봄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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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법학을 공부하고 한동안 법과 관련된 정부기관에서 일하기도 했던 저자가왠지 추상적인 문구로 잔뜩 쓰여서 우리의 일상과 직접 관계가 없을 것 같은 헌법을 살펴보면서그 적절한 적용에 관한 고민을 담은 책그렇다고 학술적 성격의 글은 아니고세상의 이런저런 사건들을 인용하면서 쉽게 풀어낸에세이에 가깝다.

 


     서문에서 저자는 헌법정신이라는 것을 부정한다그것이 구체적인 논거를 제시하지 않고구렁이 담 넘어가듯 자기 생각이 헌법 정신에 부합한다는 식의 아전인수격 해석을 하는 데 단골로 사용되는 용어이기 때문이다사실 세종시로의 수도이전을 경국대전과 관습헌법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들어 저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으로 전 국민이 진작 확실히 알게 되었지만.


     저자는 이 책에서 헌법의 조항들을 우리 현실의 삶으로 가지고 내려오는 작업을 시도한다강원랜드 채용비리조교를 성추행한 교수한 항공사의 비행기 조종사의 턱수염 금지 조항 등 뉴스에 한 번씩 나와서 들어봤을 만한 사건의 판결들을 되짚어 보면서 헌법에 보장된 인권의 중요성을 생각해 보게 하는 1부로 시작해헌법으로도 보장된 노동 3권이 실제 법정에서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현실을 주로 다루고 있는 2다양한 형태의 소수자 차별과 평등의 문제를 다루는 3부가 이어진다책의 마지막 부분인 4부에서는 헌법에 규정된 시민들의 여러 권리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이를 실제로 뒷받침할 수 있는 법률이 제대로 만들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언젠가 법과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으로부터 우리나라 헌법이 참 잘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상식에 맞지 않는 판결들이 왜 이렇게 많으냐는 내 푸념에 대한 대답이었다지금 우리가 가지고 있는 헌법을 만들 때외국의 좋은 점들을 대폭 수용해서 꽤 준수하게 만들어졌다는 것.


     그런데 책에도 나오지만우리의 실제 생활 속에서는 그렇게 헌법이라는 게 크게 와 닿지 않는다가끔 헌법소원 같은 얘기들이 나올 때나 언급되지일반적으로는 규범적이라기보다는 이상적이고일종의 목표 정도로만 여겨지는 게 사실이다그런데 정말 헌법에는 좋은 내용들이 많았다문제는 그게 국민들의 실제 삶에 제대로 적용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책 가운데 그런 내용이 있다노동자들이 파업을 하면사용자들은 노동자들에게 천문학적인 손해배상 책임을 묻는다수억에서 수 십 억 원의 돈이 노동자들 개인에게 있을 리 없고(사장들은 다들 자기들 같은 줄 아는가 보지만이 압박감은 종종 극단적인 선택을 하도록 만든다그런데 회사에 엄청난 손해를 끼친 사용자에게 그런 징벌적 배상금을 물렸다거나소비자가 기업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때 그 금액이 높았다거나 하는 소리는 어디에서도 들리지 않는다문제는 헌법에 노동권은 보장되어 있어도사용주의 횡령권은 보장되어 있지 않은데도법원이 엉터리 법리를 동원해 사실상 헌법을 사문화시키고 있다는 것.


     결국 헌법을 제대로 실현하려면 그에 맞는 조금 더 정교한 법률들이 필요하다고 저자도 말한다그러려면 국회가 열심히 일을 해야 하는데우리나라에는 그런 일을 열심히 할 수 있는 사람이 300명이 채 되지 않는다는 게 정설인지라... 국민 개개이니 헌법에 정통해서자신의 권리를 충분히 주장할 수 있게 되는 일을 바라는 게 더 빠를지도 모르지만당장 먹고 살기에도 바쁜 사람들에게 법 공부까지 하라는 사회에 정상은 아닐 테니까.


     결국 책을 다 읽고 나면뭔지 모를 허탈감허무함이 들 뿐이다헌법에 규정된 충분한 정도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현실은 들춰보았지만지금 할 수 있는 마땅한 일이 떠오르지는 않는다물론 그렇다고 한없이 덮어둘 수만도 없는 일이지만...

 


     초반에 실린 글들은 조금 현학적으로 느껴졌다법의 언어보다는 문학의 언어 느낌이 많이 든다후반부에 가면 이 부분은 조금 나아지긴 한다다양한 주제들을 담고 있다 보니 일부 내용에서는 조금 다른 생각들을 하게 된다.


     예컨대 지나가듯 서문에서 언급되는 낙태문제와 관련해 저자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는 것이 인권보장의 당연한 결과처럼 설명하지만그건 태아를 생명으로 보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또 다른 도전을 마주할 수 있다자기결정권과 생명권 중 어떤 부분이 더 무겁게 다뤄져야 할까물론 이에 대해 반대하는 헌재의 소수의견에 사용된 행동에 대한 책임 운운하는 논리에는 나도 동의하기 어렵긴 하다.


     소수자 우대정책과 관련된 논란 중 일부에서는피해를 받는 사람과 정책으로 인해 수레를 받을 사람 사이의 불일치라는 작지 않은 문제가 잇다. 그런데 저자는 이런 비판이 차별받았던 집단의 개별 구성원 모두가 우대를 받아야 정책이 정당화된다는 관점에 기초했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히 반박될 수 있다고 여기는 듯하다. 하지만 이 반박은 별로 논리적이지 않은데비판자들은 피해를 받은 사람에게 보상을 하는 것이라는 지극히 당연한 정의의 원리를 상기시키는 것이고저자의 반박은 이런 원리의 훼손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한다.

 


     엄청나게 새로운 인사이트를 준다고 말하기는 조금 어려웠던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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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3년 경제전쟁의 미래 - 환율과 금리로 보는
오건영 지음 / 지식노마드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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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튜브에서 종종 시청하는 채널의 콘텐츠가 있다요새 많이 유행하는 경제방송을 한다는 채널인데사실 그날그날의 주가 시황이라든지 추세라든지 하는 내용은 별 관심이 없지만그 중에서도 유독 챙겨보는 콘텐츠가 바로 이 책의 저자인 오건영이 등장하는 영상들이다


     생긴 건 평범한 동네 아저씨처럼 순한 외모인데일단 설명에 들어가기만 하면 누가 추임새를 넣기 전에는 쉬지 않을 정도로 줄줄 이야기가 흘러나온다최근에는 칠판에 필기까지 하면서 강의를 진행하는 것이 영락없는 일타강사 느낌이다.


     그가 하는 설명은 거시경제와 관련된 조금은 큰 이야기들이다자신은 주식이나 부동산은 잘 모른다고 몇 번이나 겸양의 표현을 하지만(사실 조금 알지도...) 일본의 금융위기유럽 재정위기우리나라의 IMF사태 등등 굵직한 경제위기들의 원인을 딱딱 떨어지게 분석하는 게 저절로 빨려 들어간다.

 


     그의 설명이 매력적인 건이런 식의 위기에 관한 설명에 꼭 따라오기 마련인 음모론이 하나도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사람이라는 건 은근히 단순해서어떤 위기가 찾아오면 희생양을 만들어서 모든 문제를 지게 하는 간단한 방식에 쉽게 빠지곤 한다


     물론 앞서 언급한 정도의 대규모 경제위기라면그 안에서 크고 작은 잘못을 저지른 개인들이 없을 리는 없지만모든 걸 그런 식으로 몰고가다보면 진짜 이유를 놓치기 쉽고그러면 다가올 또 다른 위기에 제대로 대응을 할 수 없게 되어 버린다.


     오건영은 이 위기들을 분석하는 데 환율과 금리라는 요소를 중심으로 풀어가려고 한다(다른 이유가 없다는 게 아니다). 요새는 재태크나 해외여행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 늘어서 환율이니금리니 하는 것도 뭔지는 안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이 책에서 풀려나오는 이야기들은 이 두 요소가 훨씬 더 큰 효과를 일으키는 나비의 날개짓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깨닫게 된다.

 


     책을 읽으며 저자의 탁월한 통찰력에 감탄을 하면서동시에 나랏일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툭툭 경제에 관해 던지는 말들이 얼마나 수준이 낮은지가 떠올라 씁쓸했다물론 정치인들이 경제에 관해서 박사가 되어야만 하는 건 아니지만너무 한두 가지의 요소를 가지고 전체를 본 양 호들갑을 떤달까뭐 애초에 이 나라의 정치인들은 상대방 공격하는 것 말고 제대로 된 사고를 하는 걸 보기 쉽지 않긴 하지만.


     당장 내수 규모가 작아 수출로 먹고 살아야 하는 우리나라는 북한처럼 폐쇄적인 경제로 운영할 수 없다필연적으로 개방된 상황에서 다른 경제주제들(국가와 기업들)과 상호영향을 주고받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이런 상황에서는 단지 우리 내부의 경제정책을 원칙에 맞게 쓴다고 해서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 게 아니다.


     예컨대 미국에서 금리를 올리면 우리나라에서도 금리인상 압박을 받을 수밖에 없고(안 그랬다간 자본유출이 일어나고 경기가 하강한다), 중국의 환율이 절하되면 우리나라 수출이 어려워진다사실 국력이 약한(미국에 비해선 안 약한 나라가 없겠지만나라로서는 이런 현실을 받아들이고 살 길을 찾지 않은 채 자존심이니 정당성이니 하는 문제만 가지고 나서다간 꼼짝없이 위기에 몰리고 만다.


     어차피 모든 정치인이나 관료가 경제학의 대가가 되기 어렵다면폭넓은 의견을 듣고 균형감각을 갖는 것도 좋을 것이다이왕이면 이 책의 저자 같은 사람에게 배우면 더 좋을 것 같고.(저자를 청와대 비서관으로~) 적어도 큰 그림을 그리는 데는 도움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

 


     개인적으로는 경제도 경제지만역사에 대한 경제적 분석일종의 경제사로 읽혀서(내가 역사를 좋아한다는 건 아는 사람은 알 거다흥미진진하게 읽었다저자가 쓴 다른 책들도 곧 구해서 읽어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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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 종말론적 환경주의는 어떻게 지구를 망치는가
마이클 셸런버거 지음, 노정태 옮김 / 부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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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 번역서 제목인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도 꽤 잘 지은 문구다책의 내용은 제목처럼 우리가 그동안 지구(환경)을 위해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실은 환경을 보호하는 데 큰 효과가 없는(종종 악화시키는일이었다는 것이니까.


     영문 원제목은 조금 더 강렬하다. "Apocalypse Never". 오랫동안 기독교 문화권에서 살아온 서양에서, Apocalypse라는 단어는 거의 즉각적으로 세상의 종말에 관한 예언으로 알려진 성경의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을 떠올리게 한다여기서 이 단어에 큰 격변과 함께 찾아오는 종말이라는 뉘앙스가 담기게 되었는데책은 여기에 Never라는 강력한 부정어를 붙여서 그런 상황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책 속에 등장하는 환경 종말론자에 대한 반박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몇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책의 초반과 중반 대부분을 차지하는 1~9장은 이대로 두면 곧 지구환경이 파멸을 맞이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종말론적 환경주의자들의 주장을 검증하면서 그것이 과학적으로 옳지 않음을 드러내는 내용이다.


     이 부분이 메시지에 대한 팩트체크라면나머지 10~12장은 그 메시지를 전하는 메신저에 대한 검증을 담고 있다어쩌면 그들의 동기에는 경제적이거나 정치적인또는 개인적인 다른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내용다만 개인적으로는 책의 전반부의 팩트체크 부분이 좀 더 인상적이다후반부의 내용은 찌라시에나 실릴만한 내용인데다가정말로 그들에게 다른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주장이 옳다면 그것을 따르는 게 맞는 거니까.

 


     환경운동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야기들이 몇 개 있다지구 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하고대규모 기후변화가 일어나서 온갖 자연재해들로 인한 피해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이야기하지만 저자는 처음부터 이 주장에 반박을 가한다. 1920년대 이래로 자연재해로 인한 사망자수는 92퍼센트가 줄어들었고심지어 이 기간 세계의 인구는 4배로 늘고 있었음에도 그랬다는 이야기.


     환경운동가들은 경제발전과 환경문제가 서로 적대적 관계에 있는 것처럼 서술하기를 즐겨한다하지만 저자는 이 역시 실제로는 그 반대라고 말한다예를 들면 우리가 아마존이나 아프리카의 밀림원시림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나무를 베지 못하게 금지하는 것으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어찌되었건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이 과정에서 연료를 얻고(장작), 농지를 늘리거나(화전), 목장을 만들기 위한 벌목은 어차피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저자는 그 지역에 발전소(수력화력)를 건설해 주민들에게 좀 더 효율적이고 깨끗한 에너지를 공급해주고경제발전과 효율적 기술전수를 통해 좀 더 적은 땅에서 많은 소출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대답한다물론 환경주의자들은 이 모든 것을 악으로 규정하면서 펄쩍 뛴다그들은 보호구역의 고릴라를 지키기 위해 조상 대대로 그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을 추방시키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오히려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환경보호가 가능해지고 있다고 말한다흔히 환경에 가장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 중 하나로 플라스틱을 꼽는다그러나 플라스틱이 나오기 이전 그 자리는 거북의 등껍질이나 코끼리의 상아 등이 사용되었다훨씬 싼 대체재(플라스틱덕분에 동물들에 대한 남획이 줄었다는 말이다비슷한 예로 새로운 화학제품들이 나오면서 고래 사냥은 경제성이 떨어지게 되었고결과적으로 포경금지에 관한 국제적 규제도 가능해졌다.

 





     요새 한창 유행하는 친환경 에너지도 저자는 피해가지 않는다태양열이나 풍력 같은 자연적인 힘으로 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세상에 나온 지 제법 오래 되었다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것들이 에너지 밀도가 낮아서 충분한 전기를 생산하기 어렵다는 점이다뿐만 아니라 태양열 패널이나 풍력 터빈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엄청난 규모의 환경 파괴가 일어나기도 한다는 점도 지적된다.


     책에서 저자는 가장 좋은 대안으로 원자력 발전을 제시하는데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다탄소를 적게 배출하고대규모 환경파괴도 일어나지 않으며발전비용 역시 저렴한 원자력 발전에 대한 공포는 핵무기에 대한 공포에 의한 착시현상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사실 원자력 발전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방사능 유출방사성 폐기물 문제도 크게 걱정할 것이 없다는 식이었는데이 부분에서 정말 그런지 의심이 생긴다.


     특히 일본 후쿠시마가 방사능 청정지역이라는 구절에서는 책의 앞 부분에서 읽어온 과학적 수치들까지 살짝 흔들리게 만드는 부분이었다지금도 종종 언론사나 개인들이 직접 방사선 측정기구를 들고 그 지역에 가서 실제 방사선량을 측정하기도 하는데저자는 누가 준 자료를 근거로 이런 태평한 소리를 하는 건지... 물론 갑상선과 관련된 암에 대한 위기의식이 실제보다 과장되었다는 점은 기억해 둘만 하다.

 





     사실 이 책에서 언급된 여러 자료와 수치들을 일일이 검증할 능력은 없다그런데 생각해 보면 반대로 이제까지 환경보호주의자들이 말해왔던 수치들을 객관적으로 검증하며 받아들인 것도 아니었다때문에 책을 읽으며 주목했던 것인과관계에 대한 논리적인 정합성 부분이었다일체의 경제발전을 위한 조치들이 환경을 파괴할 것이라는 생각은 과연 옳을까.


     10년 전만해도 아직 70억이 되지 않았던 세계 인구는 이제 벌써 80억 명에 가까워지고 있다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듯 그 중 상당수는 절대빈곤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빈곤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느 정도 경제발전이 필요하고이 과정에서 일부 자연이 파괴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그러나 이미 인구가 이렇게 늘어난 상황에서 경제발전을 막는다면그들은 환경에 더욱 좋지 않은 방식으로(장작 사용화전과 농장을 만들기 위한 벌목 등살아갈 수밖에 없고무엇보다 생존 자체에 큰 위기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릴라를 보호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추방하는 것은 과연 정당한 일일까?


     저자가 주장하는 핵심은 경제발전이 환경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인간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자연이 이용되는 것은 불가피하며어느 정도 경제가 발전하면 오히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이런 면에서 저자는 지극히 현실론적 주장을 하고 있다섣부른 친환경정책들(예컨대 태양열 발전이나 바이오매스 발전 같은)은 자연적인 것이 선한 것이라는 도그마에 근거할 뿐실제로는 환경에 큰 도움이 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는 부분도 중요하고.

 


     여전히 나는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한 생활 속 노력(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하지 않거나물병을 들고 다니거나생수 대신 정수기를 이용하거나 하는)을 할 것 같다저자는 이런 노력들이 전체 플라스틱 폐기물을 줄이는 데 큰 기여를 하기 어렵다고 말하지만그건 정말로 큰 문제들에는 손을 놓고 있으면서 작은 문제들만 크게 부각시키는 태도에 관한 비판으로 본다.


     문제는 엉뚱한 데 화력을 집중하면서 정말로 집중해야 할 부분에 신경을 쓰지 않는 태도이다부유한 나라의 환경운동가들이 선진국들의 삶의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려 하면서가난한 나라들의 개발과 발전을 억누르려고 하는 건 이기적일 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에 도움도 되지 않는 일이다.(저자는 환경문제를 방치하자는 주장을 하는 게 아니다!)


     책 말미에 자연스러움’, 혹은 자연적임에 관한 저자의 정의가 인상적이다우리는 이런저런 모양의 생태를 좋은 것으로 여기고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절대선인 양 생각할 때가 많지만지구적 규모로 보면 이미 자연은 수많은 종들이 멸종되고 새로운 생태계가 조성되곤 해왔다는 것우리가 선택한 시점의 환경만이 절대적이라고 주장하는 것 또한 인간의 오만일지도 모르겠다.


 

     환경 문제에 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해 준 책읽어 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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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 사회정의와 공정함의 실천에 관한 한 검사의 고뇌
프릿 바라라 지음, 김선영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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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린 시절 검사나 판사 같은 직업을 떠올리면왠지 정의를 수호하는 멋있는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떠올랐었다물론 그 때는 이런 사람들을 직접 만나 볼 기회 같은 게 아예 없었으니영화나 드라마책을 통한 간접만남을 통해서 형성된 이미지였을 거다하지만 이젠 그런 환상은 더 이상 갖고 있지 않다.


     여전히 법집행관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그들을 영웅으로 묘사하지만현실 속 그들 중 일부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직업인일 뿐이었다는 걸 이젠 너무 잘 알게 되었으니까사실 요새 나오는 창작물들 가운데는 권력에 아첨하고 성공에 목을 매는 검사들이나 기분에 따라혹은 욕망에 따라 판결을 굽게 내리는 판사들에 관한 이야기도 많아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판검사들을 당장에 없애버리는 게 가능할 리 없다인공지능이 발달하면 이들의 존재가치가 떨어질 지도 모르지만인간이 만든 프로그램에 의해 인간이 판결을 받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윤리적철학적 질문은 쉽게 대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일부에 문제가 있으니 전체를 없애버리라는 지시는 내리기 쉽지만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얼마 가지 못해 원래대로 돌아갈 뿐이다우리나라의 해경처럼.






     이 책의 저자는 뉴욕 남부지검장을 역임한 프릿 바바라이다이름에서도 살짝 느껴지지만 인도계 미국인이다인종 차별 문제가 여전히 불씨가 꺼지지 않은 나라가 미국이라지만확실히 다인종다민족 국가다운 모습이 아닌가 싶은 부분이다은근히 인종차별이 있는 우리나라라면(특히 같은 아시아인에 대한 우월의식이 널리 퍼져있는 상황에서이런 인사가 가능했을까.


     저자는 자신의 검사 재직 시절을 회고하면서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검사를 비롯한 법집행관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수사기소판결처벌이라는 법집행과정 순서에 따라 제시한다무슨 법철학을 담고 있는 게 아니라 실제 일을 하는 과정을 묘사하는지라 내용은 그리 어렵지 않다여러 실제 예들을 언급하고 있기에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 일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철학적 질문들을 감출 수는 없었나 보다예를 들면매일처럼 엄청난 사건들이 일어나는 상황 속에서(반면 수사 인력은 늘 부족한 상황이다) ‘작은’ 범죄들을 기소하지 않고 넘어가는 건 정의로운 일인지수사에 협조하기로 한 피의자들과 형량거래를 하는 일의 정당성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지 같은.


     결국 저자는 지금 행해지고 있는 관행들을 변호하는 결론에 이른다그 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 중 하나에 올랐던 인물이니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결론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책에 실린 여러 조언들은 아주 새롭거나 특별한 이야기들은 아니다피의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자신이 모르는 것이 있다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질문하고자신의 주장이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고 하는 식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들이지만여러 이유로 그렇게 하지 못할 때가 많다는 의미일까사실 문제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게 아니라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일 때가 많으니까.

 






    우리나라에선 최근 사법체계에 중요한 변화가 하나 생겼다고위공직자특별수사처라는 기관이 생긴 건데기존의 검사가 가진 기소독점권으로 인한 폐해를 완화해보고자 하는 시도 중 하나다민주주의 국가에서 기본적으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은 반드시 견제장치가 필요하다고 본다그렇지 않으면 이들은 언제라도 괴물로 변할 수 있으니까.


     다만 여기서 일하는 검사역들이라고 해서 완전무결할 수는 없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단지 시스템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은 이유다시스템을 운영하는 건 사람인데기소권을 가진 주체가 둘이 되던셋이 되던작정하고 문제를 일으키려고 하면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무슨 제도와 기관을 만들었다고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안심하는 대신시민들이 꾸준히 관심을 갖고 권력을 감시해야 그나마 부작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하지만 그 외의 독자들에게라면 그리 매력적인 면은 부족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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