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 종말론적 환경주의는 어떻게 지구를 망치는가
마이클 셸런버거 지음, 노정태 옮김 / 부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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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말 번역서 제목인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도 꽤 잘 지은 문구다책의 내용은 제목처럼 우리가 그동안 지구(환경)을 위해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실은 환경을 보호하는 데 큰 효과가 없는(종종 악화시키는일이었다는 것이니까.


     영문 원제목은 조금 더 강렬하다. "Apocalypse Never". 오랫동안 기독교 문화권에서 살아온 서양에서, Apocalypse라는 단어는 거의 즉각적으로 세상의 종말에 관한 예언으로 알려진 성경의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을 떠올리게 한다여기서 이 단어에 큰 격변과 함께 찾아오는 종말이라는 뉘앙스가 담기게 되었는데책은 여기에 Never라는 강력한 부정어를 붙여서 그런 상황이 오지 않을 것이라고 단언한다책 속에 등장하는 환경 종말론자에 대한 반박이라는 의미가 강하다.

 





     몇 개의 장으로 구성되어 있는 이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책의 초반과 중반 대부분을 차지하는 1~9장은 이대로 두면 곧 지구환경이 파멸을 맞이할 것이라고 주장하는 종말론적 환경주의자들의 주장을 검증하면서 그것이 과학적으로 옳지 않음을 드러내는 내용이다.


     이 부분이 메시지에 대한 팩트체크라면나머지 10~12장은 그 메시지를 전하는 메신저에 대한 검증을 담고 있다어쩌면 그들의 동기에는 경제적이거나 정치적인또는 개인적인 다른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내용다만 개인적으로는 책의 전반부의 팩트체크 부분이 좀 더 인상적이다후반부의 내용은 찌라시에나 실릴만한 내용인데다가정말로 그들에게 다른 이유가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주장이 옳다면 그것을 따르는 게 맞는 거니까.

 


     환경운동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이야기들이 몇 개 있다지구 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하고대규모 기후변화가 일어나서 온갖 자연재해들로 인한 피해가 점점 커지고 있다는 이야기하지만 저자는 처음부터 이 주장에 반박을 가한다. 1920년대 이래로 자연재해로 인한 사망자수는 92퍼센트가 줄어들었고심지어 이 기간 세계의 인구는 4배로 늘고 있었음에도 그랬다는 이야기.


     환경운동가들은 경제발전과 환경문제가 서로 적대적 관계에 있는 것처럼 서술하기를 즐겨한다하지만 저자는 이 역시 실제로는 그 반대라고 말한다예를 들면 우리가 아마존이나 아프리카의 밀림원시림을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할까나무를 베지 못하게 금지하는 것으로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어찌되었건 먹고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이 과정에서 연료를 얻고(장작), 농지를 늘리거나(화전), 목장을 만들기 위한 벌목은 어차피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저자는 그 지역에 발전소(수력화력)를 건설해 주민들에게 좀 더 효율적이고 깨끗한 에너지를 공급해주고경제발전과 효율적 기술전수를 통해 좀 더 적은 땅에서 많은 소출을 얻을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대답한다물론 환경주의자들은 이 모든 것을 악으로 규정하면서 펄쩍 뛴다그들은 보호구역의 고릴라를 지키기 위해 조상 대대로 그 땅에서 살아온 사람들을 추방시키는 것이 옳다고 주장한다.


     저자는 오히려 과학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환경보호가 가능해지고 있다고 말한다흔히 환경에 가장 큰 문제를 일으키는 것 중 하나로 플라스틱을 꼽는다그러나 플라스틱이 나오기 이전 그 자리는 거북의 등껍질이나 코끼리의 상아 등이 사용되었다훨씬 싼 대체재(플라스틱덕분에 동물들에 대한 남획이 줄었다는 말이다비슷한 예로 새로운 화학제품들이 나오면서 고래 사냥은 경제성이 떨어지게 되었고결과적으로 포경금지에 관한 국제적 규제도 가능해졌다.

 





     요새 한창 유행하는 친환경 에너지도 저자는 피해가지 않는다태양열이나 풍력 같은 자연적인 힘으로 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세상에 나온 지 제법 오래 되었다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것들이 에너지 밀도가 낮아서 충분한 전기를 생산하기 어렵다는 점이다뿐만 아니라 태양열 패널이나 풍력 터빈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오히려 엄청난 규모의 환경 파괴가 일어나기도 한다는 점도 지적된다.


     책에서 저자는 가장 좋은 대안으로 원자력 발전을 제시하는데개인적으로는 이 부분이 가장 흥미로웠다탄소를 적게 배출하고대규모 환경파괴도 일어나지 않으며발전비용 역시 저렴한 원자력 발전에 대한 공포는 핵무기에 대한 공포에 의한 착시현상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사실 원자력 발전에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방사능 유출방사성 폐기물 문제도 크게 걱정할 것이 없다는 식이었는데이 부분에서 정말 그런지 의심이 생긴다.


     특히 일본 후쿠시마가 방사능 청정지역이라는 구절에서는 책의 앞 부분에서 읽어온 과학적 수치들까지 살짝 흔들리게 만드는 부분이었다지금도 종종 언론사나 개인들이 직접 방사선 측정기구를 들고 그 지역에 가서 실제 방사선량을 측정하기도 하는데저자는 누가 준 자료를 근거로 이런 태평한 소리를 하는 건지... 물론 갑상선과 관련된 암에 대한 위기의식이 실제보다 과장되었다는 점은 기억해 둘만 하다.

 





     사실 이 책에서 언급된 여러 자료와 수치들을 일일이 검증할 능력은 없다그런데 생각해 보면 반대로 이제까지 환경보호주의자들이 말해왔던 수치들을 객관적으로 검증하며 받아들인 것도 아니었다때문에 책을 읽으며 주목했던 것인과관계에 대한 논리적인 정합성 부분이었다일체의 경제발전을 위한 조치들이 환경을 파괴할 것이라는 생각은 과연 옳을까.


     10년 전만해도 아직 70억이 되지 않았던 세계 인구는 이제 벌써 80억 명에 가까워지고 있다그리고 우리가 잘 알고 있듯 그 중 상당수는 절대빈곤의 수준에 머물고 있다빈곤의 문제를 해결하려면 어느 정도 경제발전이 필요하고이 과정에서 일부 자연이 파괴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그러나 이미 인구가 이렇게 늘어난 상황에서 경제발전을 막는다면그들은 환경에 더욱 좋지 않은 방식으로(장작 사용화전과 농장을 만들기 위한 벌목 등살아갈 수밖에 없고무엇보다 생존 자체에 큰 위기를 느낄 수밖에 없다고릴라를 보호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추방하는 것은 과연 정당한 일일까?


     저자가 주장하는 핵심은 경제발전이 환경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인간의 삶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자연이 이용되는 것은 불가피하며어느 정도 경제가 발전하면 오히려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줄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이런 면에서 저자는 지극히 현실론적 주장을 하고 있다섣부른 친환경정책들(예컨대 태양열 발전이나 바이오매스 발전 같은)은 자연적인 것이 선한 것이라는 도그마에 근거할 뿐실제로는 환경에 큰 도움이 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하는 부분도 중요하고.

 


     여전히 나는 플라스틱을 줄이기 위한 생활 속 노력(플라스틱 빨대를 사용하지 않거나물병을 들고 다니거나생수 대신 정수기를 이용하거나 하는)을 할 것 같다저자는 이런 노력들이 전체 플라스틱 폐기물을 줄이는 데 큰 기여를 하기 어렵다고 말하지만그건 정말로 큰 문제들에는 손을 놓고 있으면서 작은 문제들만 크게 부각시키는 태도에 관한 비판으로 본다.


     문제는 엉뚱한 데 화력을 집중하면서 정말로 집중해야 할 부분에 신경을 쓰지 않는 태도이다부유한 나라의 환경운동가들이 선진국들의 삶의 수준을 그대로 유지하려 하면서가난한 나라들의 개발과 발전을 억누르려고 하는 건 이기적일 뿐만 아니라 문제 해결에 도움도 되지 않는 일이다.(저자는 환경문제를 방치하자는 주장을 하는 게 아니다!)


     책 말미에 자연스러움’, 혹은 자연적임에 관한 저자의 정의가 인상적이다우리는 이런저런 모양의 생태를 좋은 것으로 여기고 그대로 유지하는 것이 절대선인 양 생각할 때가 많지만지구적 규모로 보면 이미 자연은 수많은 종들이 멸종되고 새로운 생태계가 조성되곤 해왔다는 것우리가 선택한 시점의 환경만이 절대적이라고 주장하는 것 또한 인간의 오만일지도 모르겠다.


 

     환경 문제에 관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해 준 책읽어 볼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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