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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 사회정의와 공정함의 실천에 관한 한 검사의 고뇌
프릿 바라라 지음, 김선영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12월
평점 :
어린 시절 검사나 판사 같은 직업을 떠올리면, 왠지 정의를 수호하는 멋있는 사람들이라는 이미지가 떠올랐었다. 물론 그 때는 이런 사람들을 직접 만나 볼 기회 같은 게 아예 없었으니, 영화나 드라마, 책을 통한 간접만남을 통해서 형성된 이미지였을 거다. 하지만 이젠 그런 환상은 더 이상 갖고 있지 않다.
여전히 법집행관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그들을 영웅으로 묘사하지만, 현실 속 그들 중 일부는 자신의 욕망에 충실한 직업인일 뿐이었다는 걸 이젠 너무 잘 알게 되었으니까. 사실 요새 나오는 창작물들 가운데는 권력에 아첨하고 성공에 목을 매는 검사들이나 기분에 따라, 혹은 욕망에 따라 판결을 굽게 내리는 판사들에 관한 이야기도 많아진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판검사들을 당장에 없애버리는 게 가능할 리 없다. 인공지능이 발달하면 이들의 존재가치가 떨어질 지도 모르지만, 인간이 만든 프로그램에 의해 인간이 판결을 받는 것이 과연 옳은가 하는 윤리적, 철학적 질문은 쉽게 대답하기 어려울 것 같다. 일부에 문제가 있으니 전체를 없애버리라는 지시는 내리기 쉽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얼마 가지 못해 원래대로 돌아갈 뿐이다. 우리나라의 해경처럼.
이 책의 저자는 뉴욕 남부지검장을 역임한 프릿 바바라이다. 이름에서도 살짝 느껴지지만 인도계 미국인이다. 인종 차별 문제가 여전히 불씨가 꺼지지 않은 나라가 미국이라지만, 확실히 다인종, 다민족 국가다운 모습이 아닌가 싶은 부분이다. 은근히 인종차별이 있는 우리나라라면(특히 같은 아시아인에 대한 우월의식이 널리 퍼져있는 상황에서) 이런 인사가 가능했을까.
저자는 자신의 검사 재직 시절을 회고하면서,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검사를 비롯한 법집행관들이 가져야 할 자세를, 수사, 기소, 판결, 처벌이라는 법집행과정 순서에 따라 제시한다. 무슨 법철학을 담고 있는 게 아니라 실제 일을 하는 과정을 묘사하는지라 내용은 그리 어렵지 않다. 여러 실제 예들을 언급하고 있기에 흥미롭게 읽어나갈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이 일 가운데서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철학적 질문들을 감출 수는 없었나 보다. 예를 들면, 매일처럼 엄청난 사건들이 일어나는 상황 속에서(반면 수사 인력은 늘 부족한 상황이다) ‘작은’ 범죄들을 기소하지 않고 넘어가는 건 정의로운 일인지, 수사에 협조하기로 한 피의자들과 형량거래를 하는 일의 정당성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지 같은.
결국 저자는 지금 행해지고 있는 관행들을 변호하는 결론에 이른다. 그 업계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 중 하나에 올랐던 인물이니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결론이 아니었나 싶기도 하고.
책에 실린 여러 조언들은 아주 새롭거나 특별한 이야기들은 아니다. 피의자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자신이 모르는 것이 있다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질문하고, 자신의 주장이 틀릴 수도 있다는 걸 인정하고 하는 식. 당연히 그래야 하는 것들이지만, 여러 이유로 그렇게 하지 못할 때가 많다는 의미일까. 사실 문제는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는 게 아니라, 알면서도 그렇게 하지 않은 것일 때가 많으니까.
우리나라에선 최근 사법체계에 중요한 변화가 하나 생겼다. 고위공직자특별수사처라는 기관이 생긴 건데, 기존의 검사가 가진 기소독점권으로 인한 폐해를 완화해보고자 하는 시도 중 하나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기본적으로 선출되지 않은 권력은 반드시 견제장치가 필요하다고 본다. 그렇지 않으면 이들은 언제라도 괴물로 변할 수 있으니까.
다만 여기서 일하는 검사역들이라고 해서 완전무결할 수는 없다는 걸 잊으면 안 된다. 단지 시스템만으로 문제가 해결될 것 같지는 않은 이유다. 시스템을 운영하는 건 사람인데, 기소권을 가진 주체가 둘이 되던, 셋이 되던, 작정하고 문제를 일으키려고 하면 어떻게 막을 수 있겠는가. 무슨 제도와 기관을 만들었다고 문제가 해결될 거라고 안심하는 대신, 시민들이 꾸준히 관심을 갖고 권력을 감시해야 그나마 부작용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 만한 책. 하지만 그 외의 독자들에게라면 그리 매력적인 면은 부족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