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영화다. 특별한 소재를 특별하게 그려내는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이번에는 인버전이라는 개념을 들고 나온다. 간단히 말하면 어떤 물건과 얽혀 있는 시간을 반대로 흐르게 만드는 기술이다.(일단 여기부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런데 감독은 이런 어려운 개념을 던져놓고는 제대로 설명도 하지 않는다. 그냥 봐, 이 영화 재미있으니까 라는 식이었던 걸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수많은 물체들이 함께 섞여 있다. 그 중에서 어느 한 가지 물건만 인버전시킬 수 있는 게 어떻게 가능한지, 또, 미래에서 만들었다는 그 물건들을 과거로 보내는 과정은 어떻게 가능한지, 무엇보다 영화 속에서도 언급된, 즉 과거로 돌아가 어떤 문제를 바꿔버린다면 애초에 그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미래의 존재는 어떻게 과거로 돌아가 문제를 바꿔야겠다는 결심을 할 수 있을까 하는 타임 패러독스 같은 수많은 질문들이 나오지만, 감독은 영화 속 닐의 입을 통해 한 마디로 정리한다.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여라.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일단 영화가 이렇게 말해버리면 이제 애써 설명하고 질문하는 게 좀 우습게 느껴진다. 하지만 그게 어디 쉽게 되는 일인가. 시작은 머리를 잔뜩 자극해 놓고, 가슴으로 느끼기만 하라니... 이게 뭔가 하는 궁금증은 영화를 보는 내내 들고, 여기에 집중하느라 영화 자체가 지니고 있는 조금은 허술하고 산만한 구조를 놓칠 지경이다. 자동차가 뒤로 달리고, 총알이 거꾸로 날아다니고, 현재의 내가 과거의 나를 만나고, 그 과거의 나와의 만남이 현재를 만들어 내는, 꼬리를 문 뱀 모양의 줄거리가 지닌 허점은 어느 순간 크게 신경 쓰이지 않게 된다.
한참 시끌벅적한 이야기가 끝나고 나면, 다시 앞서 영화 속에서 반복되는 메시지가 떠오른다. 이해하려 하지 말고 그냥 받아들여라.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강력한 숙명론이다. 영화 속 주인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발에 땀이 나게 뛰어다니며 일을 만들려고 하지만, 일단 이런 숙명론에 빠져버리면, 자칫 무기력증에 빠져버릴 수도 있다. 왜 이 시점에서 감독은 이런 숙명론을 꺼내 들었을까?
어쩌면 지금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여러 가지 일들이, 마치 벽에 부딪히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기 때문은 아닐까 싶다. 영화가 제작될 당시에는 아직 없었지만, 지금 우리는 거의 1년 가까이 코로나19라는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전염병 대유행을 경험하고 있지만 여전히 근본적인 대책을 찾지 못하고 있다.
곳곳에 폭우와 기근을 만들어 내고 있는 환경재앙도 만만치 않고, 미세플라스틱이 만들어 낸 문제는 아직 제대로 터지지도 않았다. 전 세계 곳곳에 여전히 돌아가고 있는 핵발전소의 문제도 답이 없기는 마찬가지. 후처리 비용은 전혀 계산하지 않은 채 ‘값이 싸다’는 허무맹랑한 홍보문구를 붙여 도입은 했지만, 이제 우리는 그 계산서를 받아야 할 시간을 마주하고 있다. 뭘 해도 우리는 배드엔딩을 향해 가고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
그래도 다행인 건 우리의 주인공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구하기 위해 뛰어다닌다는 것. 뭐 잘 이해가 되지 않아서 성격대로 뛰어다니는 것일 뿐이거나, 그저 성격이 좋기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또 그렇게 기대하지 않은 선의와 우연처럼 보이는 사건들로 그나마 돌아가고 있는 것일지도.
보고 나서 돈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타임슬립 같은 소재는 충분히 봐 왔던 거라, 몇몇 특정항 장면들을 제외하고는 신선하다는 느낌은 좀 덜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