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남몽
황석영 지음 / 창비 / 201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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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1990년대 중반 갑자기 서울 강남 한복판에 있던 백화점 하나가 말 그대로 폭삭 주저앉았던 사건이 있었다. 이름 하여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 이 작품은 바로 그 붕괴 사건을 중심으로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지고 있는, 하지만 모두 강남이라는 특정한 지역과 연결된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려내고 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타고난 미모로 인해 눈에 띄어 고급 술집의 프리랜서 아가씨로 들어갔다가 결국 백화점 회장의 둘째 부인으로 들어가게 된 박선녀, 일제시대 일본의 끄나풀로 활동하다가 해방 이후 미 군정청과 군대의 정보기관에서 활동하며 치부한 재산으로 백화점을 세운 김진, 강남 개발이 한창 시작되려고 할 시기에 젊은 시절을 보내며 부동산업에 몸을 담아 한 재산을 톡톡히 모은 심남수, 광주에서 상경해 전국의 조직폭력계를 주름잡던 홍양태와 개발 바람에 밀려 광주(현재의 성남)의 천막촌에서 힘겹게 삶을 이어온 임판수 부부의 이야기가, 일제 강점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의 격동적이었던 한국의 근현대사를 배경으로 긴장감 있게 펼쳐진다.

  


2. 감상평 。。。。。。。

 

     새 정부 들어 가장 자주, 그리고 노골적으로 등장했던 말 가운데 하나가 ‘편향’이라는 단어였다. 그 이전 정부의 10년간을 ‘잃어버린 시간’으로 규정하고 마치 자기들이 그 10년 전에서 바로 튀어나온 것처럼 으스대며 모든 것을 이전 정부와 반대로 하는 것을 그 기치로 삼았었다. 바로 그런 일환으로 진행되었던 것 중 하나가 ‘좌편향 된 역사관’에 대한 수정이었다. 명목상으로는 편향된 역사를 균형 있게 서술한다는 것이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래로 정권을 잡았던 모든 권력자들을 긍정적으로 묘사해야한다는 또 하나의 말 같지 않은 원칙을 강제했을 뿐이었다.  

 

     이런 역사관을 가진 사람들에게서 발견되는 중요한 특징은 ‘물질에 대한 숭배’다. 지저분한 습지와 쓸모없이 버려진 땅에 높은 건물들이 들어가고, 아파트가 세워지고, 백화점이 건립되어 사람들이 많이 살게 되었으니 이게 발전이고 진화며, 이런 일들을 이룬 위대한 지도자들을 마땅히 찬양해야 한다는 것.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눈물과 땀이 흘러들어갔는지를 정당하게 평가하지는 않으면서 말이다. 이런 식의 논리는 오늘날의 뉴타운 재개발과 같은 사업들을 추진하는 데서도 동일하게 반복된다. 힘없고 가난한 원래 주민들은 푼돈을 쥐어 주고는 다 쫓아내고, 그 자리에 수억 원짜리 깨끗하고 멋진 집을 짓는다는 것이 뉴타운 계획의 본질이 아닌가.

     이 작품은 찬란한 발전의 역사로만 채색되고 있는 대한민국 근현대사의 이면을 다룬다. 작가는 뛰어난 스토리텔링으로 이 격동적이었던 시대의 이면을 담담하게 서술해 나간다. 거기에는 철거민들의 고달픈 삶이 있었고, 권력에 줄을 대어 친일행각을 감추고 승승장구해 나간 재력가도 있었다. 개발의 주변에서 부동산 투기를 통해 재산을 불린 이도 있었고, 밤의 동반자인 술과 여자, 그리고 폭력으로 개발의 현장을 지켰던 이도 있었다.

     당연히 작품 속에서 이 다섯 명의 주인공들은 서로와 관계를 맺는다. 술과 폭력은 늘 함께 가고 있었고, 술을 통해 여자는 부동산으로 한 몫을 챙긴 젊은이나 길고 험난한 인생을 살아왔던 재력가와 인연을 맺는다. 철거민의 딸은 재력가의 백화점에서 일을 하고, 회장의 둘째 부인과 우연히 한 자리에 매몰된다. 여기까지는 문학적 기법으로 충분히 등장할 수 있는 부분이지만, 작가의 뛰어난 점은 그 인물들이 어디까지나 표층적인 관계만을 맺을 뿐 속 깊은 관계로 이어지지 못하도록 그리고 있다는 부분이다. 강남 개발의 한복판에서 모두들 결과적으로 한 몫씩을 챙기긴 했지만, 다른 사람들과 속 깊은 관계를 맺지는 못하고 있다. 오히려 천막촌으로 이주해 와 가진 것은 직접 지은 집 한 채밖에 없는 임판수 부부야 말로 제대로 성공한 것은 아니었을까?

     각각의 인물들의 이야기의 말미에 이르면 그들 모두는 마치 꿈에서 깨어난 듯 허탈함을 느낀다. 구운몽과 같은 환몽설화는 그리 낯선 구조는 아니지만, 강남으로 상징되는 개발신화와 우리에게 익숙한 현대의 이야기라는 요소들이 잘 어우러져 새로운 감흥을 준다. 올 상반기에 읽은 소설 중 가장 재미있게 읽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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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전미궁 가이도 다케루의 메디컬 엔터테인먼트 4
가이도 다케루 지음, 권일영 옮김 / 예담 / 201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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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학은 원래 출신성분이 형편없는 존재인데도 지금은 귀부인처럼 행세하고 있어.

웃기지도 않지. 자신의 모태를 경시하는 현대 의료는 언제 어디서든 파탄에 이를 걸세.

 

1. 줄거리 。。。。。。。

 

     일본의 한 소도시에 위치한 사쿠라노미야 병원을 조사해 줄 것을 요청받은 덴마(天馬)는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자원봉사자 명목으로 병원에 들어가게 된다. 지역의 유명한 병원인 도조대학병원의 위성병원인 사쿠라노미야 병원은 도조 대학에서 더 이상 손댈 수 없는 환자들이 넘어와 마지막 나날들을 보내는 식이었다. 소위 ‘종말기 의료’를 담당하고 있는 것.

     본의 아니게 작은 사고로 인해 며칠 간 입원을 하게 된 덴마는 병원에 입원한 모든 환자가 그 병원의 직원으로 고용되고, 병원과 함께 헤키스이인이라는 종교법인(절)이 서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등, 이와오 원장과 그의 두 딸로 이루어진 가족 병원에서 벌어지는 이상한 점들에 주목을 하게 된다. 곧 얼마 되지 않는 기간에 입원 중이던 환자의 상당수가 차례로 죽음을 맞고, 덴마는 점점 병원의 비밀을 담고 있는 핵심부로 진입해 들어가기 시작한다.

  


2. 감상평 。。。。。。。

 

     등장인물과 지명, 기관의 이름이 일본어가 아니라 한국어로 되어 있다고 해도 대번에 ‘일본 이야기구나’ 하고 알아챌 수 있을 것 같은, 전형적인 일본 분위기의 작품이다. 바닷가에 세워진 요새 같은 구조의 병원이나, 가족 중심의 운영, 해부한 시체들의 장기를 담아 놓는 드럼통 같은 소재는 좀처럼 우리나라 작품들에서는 발견하기 어려운 부분들이니까. 자칫 음산한 느낌만을 줄 수도 있는 소재들이지만, 작가는 서유기 삼총사 할머니들이나 히메이야와 같은 인물을 통해 지나치게 작품이 무거워지는 것을 막아 내는 솜씨를 보여준다. 


     작가의 능력은 작품의 분위기만을 수습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부분에서도 훌륭한 재능을 보여준다. 사전에 어떤 정보도 가지지 못하고 그냥 첫 장을 넘기기 시작했으나, 서너 장(章)을 넘기면서부터 이야기에 푹 빠져들게 된다. 추리소설 기법을 사용해 조금씩, 하지만 모든 정보를 독자에게 전해주면서도 다음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오랜만에 느끼는 기분 좋은 흥분감.

     작품은 충분히 재미있다. 다만 강한 일본색이 느껴지고, 시신의 해부와 장기 적출, 죽음에 관한 이와오 원장 가족들의 독특한 관점은(개인적으로도 완전히 동의하지는 않는다) 약간의 저항감이 느껴질 수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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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1~6권 세트 - 전6권 (반양장)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외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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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다른 스승 신들이 노여워한다는 것을 알지만, 나는 그들에게 말했다.

<어쨌거나 그게 진화의 방향이 아니냐?> 하고 말이다.

단단한 것이 무른 것을 이긴다. 파괴하는 자가 도피하는 자를 이긴다.

그러니까 경쟁자들을 없애 버리는 자는 싸움을 제대로 하고 있는 것이다.

 

1. 요약 。。。。。。。

 

     영계(靈溪)를 탐사하다가(『타나토노트』) 죽어 천사가 된 후(『천사들의 제국』), 마침내 신 후보생이 된 미카엘 팽송. 그는 다른 143명의 신 후보생과 함께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을 스승으로 삼아 새로운 지구를 탄생시키고 자신이 맡은 부족을 승리자로 만드는 거대한 게임에 참여한다. 하지만 타고난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는 그는 다른 후보생들과 함께 게임이 벌어지는 ‘아에덴’을 벗어나 그 ‘위’에 누가 있는 지를 찾아 나서고, 그러는 중에도 게임은 지속되면서 하나 둘 탈락자들이 늘어간다. 게임의 결말이 가까워지면서 신 후보생들 간의 긴장감은 높아지고, 팽송은 마침내 ‘9’에 이른다. 하지만 이어지는 반전..

  

 

2. 감상평 。。。。。。。

 

     사후세계에 관한 작가의 관심은 마침내 신들의 세계까지 올라갔고, 모든 것을 부정하는 데(無)까지 이른다. 모든 것이 상상의 산물일 뿐이라는 결론은 이제까지 그 ‘신들’을 우려먹으며 많은 책을 팔았던 저자의 이야기치고는 썩 특별하지도, 탁월하지도 않은 마무리였다. 최악이라고 까진 못하더라도 고심 끝에 차악(次惡)의 선택이라고나 할까. 책을 읽는 내내 독자들이 함께 고민했던 수많은 문제들과 질문들은 결론과 함께 허공으로 날아가 버렸다. 『개미』를 처음 손에 든 지 10년 만에 느끼는 저자의 상상력 고갈의 징조였다.   

   

     앞서 언급한 두 편의 작품들과 더불어 마침내 작가의 사후 세계에 대한 탐구가 드디어 끝이 났다는 점이 이 작품을 읽고 든 가장 긍정적인 느낌이었다. 사후 세계에서, 천사들의 세계, 나아가 신 후보생과 신 자체의 세계까지 나아갔으니 구조만 보면 단테의 「신곡」의 패러디라고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는데, 패러디의 수준이 원래의 그것에 비해 많이 떨어진다는 점이 아쉽다.

     기발한 상상력들이 담긴 단편집 『나무』라는 작품에서 이미 ‘어린 신 후보생들’의 이야기를 간단히 언급했던 적이 있었던 걸 생각해 본다면 이 작품에 관한 착상은 꽤나 오래 전부터 시작되었던 것 같다. 문제는 판을 너무 크게 벌인 것 같다는 점이다. 대충 단편으로 끝났을 때는 여운이나마 남을 여지가 있었지만, 여섯 권이나 될 정도로 꽉 찬 내용을 담고 있는 것도 아니라 시간이 지날수록 지루해지는 느낌이 강해졌고, 결말은 허무했다.

     가장 좋아하던 작가였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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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데렐라는 재투성이다 - 발도르프 선생님이 들려주는 진짜 독일 동화 이야기 2
이양호 지음 / 글숲산책 / 200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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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누구나 한 번쯤은 들어봤을 ‘신데렐라’는 아마도 오랫동안 민간에서 구전되어 오던 이야기를 누군가가(그림 형제 또는 샤를 페로?) 글로 옮겨 적은 이야기일 것이다. 그렇다면 당연히 그 이야기를 오랫동안 전수하던 나라(독일)의 문화적, 역사적, 사회적 전통이 담겨 있을 터. 이 책은 신데렐라라는 옛날이야기 속에 담겨 있는 그런 단서들을 토대로 ‘옛날’ 사람들이 이야기에 담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가려는 시도다.

 

2. 감상평 。。。。。。。

 

     원래는 ‘재투성이’라는 뜻의 제목을 ‘신데렐라’라고 번역한 것은 고의적인 오역이라는 도발적인 주장이 흥미로워보였다. 어떤 이야기를 읽기 위해서는 그 이야기가 만들어질 당시의 여러 정황들에 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데 깊이 공감을 하고 있었기에, 이 책은 ‘신데렐라’라는 동화를 통해 그것을 만들었을 고대, 혹은 중세의 독일 사람들의 일상사를 명쾌하게 분석해 줄 수 있을 거라고도 생각했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난 뒤 가장 먼저 든 소감은 ‘좀 과하다’는 느낌이었다.

 

     저자는 ‘재투성이’ 이야기에 대한 지나친 주해, 혹은 주석을 시도하고 있다. 과도한 상징주의적 해석 방식을 취한 나머지, 이야기에 등장하는 작은 단어 하나도 놓치지 않고 거기에 만물을 담으려고 한다. 물론, 이야기 속 단서를 흘려보내지 않는 것은 사실을 밝혀내고자 하는 수사관이라면 반드시 가져야 할 자질이다. 하지만 그러한 ‘단서들’은 일반적으로도 인정되는 나머지 정황들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적어도 독일에서 전해지는 옛날이야기라면 독일의 역사나 문화사에 관한 연구가 고대 중국이나 아메리카의 그것보다 더 많은 연관을 맺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저자는 그런 충분한 연구 없이(혹은 연구를 했는지도 모르지만 최소한 설명은 부족하다) 바로 선문답이나 동양고전, 혹은 한국 현대시를 인용하며 근거로 제시한다. 이래서는 내 말을 잘 들어주는 사람에게 이야기를 할 때는 몰라도 대중을 상대로 말할 때는 충분히 설득하기 어렵지 않을까.

     비슷한 이야기는 모조리 연관된 것으로 이해하고 그렇게 독자를 끌고 가려는 태도(사실은 그다지 공통점이 없어 보이는 데 억지로 계통을 세우려는 것처럼 느껴진다)도 썩 만족스럽지 않다. 예컨대 독일 이야기와 고대 이집트 설화가 마치 직접적인 영향 아래 있는 것처럼 연결시키려는 부분(141)과 같은 비약이 자주 발견된다. 진화심리학 이론에 근거한 이야기 해석방식으로 보이는데, 글쎄 숟가락과 삽을 인용해 놓고 전자가 후자로 발전되었다고 대뜸 주장하는 것은 좀 문제가 있어 보인다.

     저자는 ‘재투성이’ 이야기를 통해 독자들에게 일종의 준거적 틀을 제시하고자 애쓴다. ‘여기에 이렇게 언급된 것은 사실 이런 뜻인데, 그러니 너희도 이렇게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는 식이다. 여기서 당연히 나올 수 있는 질문은, 왜 그 옛날이야기에 나오는 교훈(사실 정말로 그 이야기에서 나온 것인지도 미심쩍지만. 재투성이가 좋은 옷으로 변하는 데에서 음양의 원리를 읽어내려는 식의 접근은 아무리 봐도 쉽게 인정하기 어렵다)을 따라야 하는가 라는 것이다. 그저 오래된 이야기이기 때문에? 혹은 옛 사람들의 지혜는 무조건 좋으니까?

 

     옛 이야기에 담긴 ‘사실’을 파악해 현대의 사람들에게 적용시켜보려는 시도는 매력적이었다. 하지만 그 과정이 부실하거나 충분히 체계적이지 않으면 헐거운 나사에 고정된 책장처럼 툭 건드리기만 해도 떨어질 수 있다. 책을 보면서 난 ‘온전한 모습의 신데렐라’를 도무지 만날 수 없었고, 대신 저자가 그리고 있는 이상적인 인간상만 만날 수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 거라면 좀 다른 책을 써야 하는 게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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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연변이들
로빈 브랜디 지음, 이수영 옮김 / 생각과느낌 / 200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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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게 왜 바람직하지 않아? 걔들은 착한 일을 했어.”

“맞아. 하지만 좋은 생존 전략은 아니라는 거야. 걔들은 이기적일 필요가 있어.”

  

 

1. 줄거리 。。。。。。。

     이제 고등학교에 들어간 미나는 자신이 쓴 편지로 인해 곤경에 처하게 된 교회 친구들(정확히 곤경에 처한 것은 그들의 부모들이지만)의 따돌림으로 하루하루가 힘겹기만 하다. 그 속 좁고, 이기주의적이며, 무례한 친구들은 미나가 큰 죄라도 지은 양 노골적으로 괴롭히지만, 미나는 무대응으로 일관한다.

     그런 미나의 삶에 작은 활력소를 주는 것은 셰퍼드 선생님이 가르치는 생물 시간과 그 시간 짝이 된 케이시라는 남자 아이. 교회 친구들로부터 버림을 받은 미나는, 이제 창조론을 주장하는 교회 친구들을 마음껏 비웃는 완고한 진화론자 친구들을 새로 사귀면서 조금씩 고립감에서 벗어난다.

 

2. 감상평 。。。。。。。

     이 소설은 크게 두 가지 스토리 라인이 얽혀있다. 표면적으로는(이 책의 뒷‘표지’와 소개하는 글의 주요 내용이기도 하다) 진화론과 창조론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한 소녀의 이야기가 있고, 부차적으로는 주인공이 쓴 편지로 인해 곤경에 처하게 된 교회 사람들 및 그들의 자녀들과 주인공 사이의 갈등이 있다. 엄밀히 말해 이 두 가지 갈등은 직접적인 논리적 연결고리는 가지고 있지 않지만, 작가는 이 두 이야기를 하나로 엮어서 교묘하게 한 가지 주장을 편다. ‘학교에서 친구를 괴롭히는 교회 친구들이 주장하는 창조론은 틀렸다’ 같은.

     당연히 이 소설은 ‘다윈과 기독교의 끝나지 않는 논쟁’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진화론은 과학이며(이 소설에서는 ‘과학’이라는 말과 ‘사실’이라는 말이 동의어로 사용되는데, 이런 용법은 매우 독단적이다), 창조론(혹은 지적설계론)은 ‘철학’(마찬가지로 이 책에서 ‘철학’이라는 용어는 사실이라고 말할 수 없는 논설쯤으로 여겨진다)일 뿐이라는 생각을 강하게 ‘주장’하고 있을 뿐이다.(p. 154-155) 그나마 소설 속에서는 이런 주장을 블라인드 뒤에서 말하고 있는데, 책 뒤에 붙은 해설에서는 노골적으로 사족을 붙여 놓아서 오히려 본문을 쓴 작가의 수고를 무위로 돌리고 있다.

 

     말이 나온 김에 나도 이 책의 ‘위대한 예’를 따라서 사족을 좀 붙이자면, 저자는 진화와 변이 사이의 구별을 정확히 하고 있지 않은데, 진화론을 믿지 않고서는 독감 바이러스의 변종이 나타나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단정 짓는 부분이 그 예이다.(p. 95) 바이러스의 변종이 등장하는 것은 같은 종류의 생물이 가진 형질의 변이이지, 바이러스가 말이 되거나 소가 되는 진화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다. 대대로 칼을 잘 만드는 장인 가문이 있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사람들이 칼을 만드는 데 최적화 된 어떤 동물로 변할 거라는 생각은 좀처럼 믿기 어렵다. 진화의 가장 좋은 예로 등장하는 화석(cf. p. 331) 역시, 한 지층에서 발견되는 화석과 다른 지층에서 발견되는 화석이 다르다는 것은 앞선 지층에서 발생된 생물이 뒤에 발견된 생물로 변화되었다고 믿을 수도 있지만, 그저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동물들이 살았던 증거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요컨대 이 문제는 사실(이건 있었던 일 자체를 말하는 표현이다)에 관한 해석의 문제 혹은 세계관의 문제지, ‘사실’과 말도 안 되는 거짓말’(p. 154) 사이의 힘겨루기가 아니다. 사실 과학만이 진실이라는 명제는 계몽주의 시대 이래로 유구하게 흘러온, 족히 3, 400년은 이어져 온 개념이다. 하지만 이 주장의 후계자들은 후설이 지적한 것처럼 자연과학적으로 설명될 수 없는 세계는 진정한 세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오류에 빠지곤 한다.

     하지만 비교적 근래에 등장한 과학철학에서는 과학 자체가 지니고 있는 패러다임의 문제를 비교적 솔직하게 받아들인다. 증거에 의해 믿는, 증거로만 지탱되는 과학적 사실이란 하나의 허구적 개념이며, 현대의 복잡하고 좁은 과학계에서는 상호 교차 점검이라는 학문적 개념이 실제로 수행되기가 어렵다는 점을 인정하는 것이다.(철학이란 게 늘 그렇게 쓸 데 없는 거짓말을 정당화시키는 일만하는 건 아니다) 쉽게 말해 어떤 과학자가 말한 주장이 옳은지 그른지는 동료 과학자들에 의해 엄밀하게 증명될만한 시간이나 기술적 어려움이 있다는 것이다.(이와 관련해서는 『진실을 배반한 과학자들』이라는 책을 읽어보라. 쿤의 유명한 책 『과학혁명의 구조』도 좋고.)

 

     작가는 셰퍼드 선생을 진화론을 믿으면서도 기독교 신앙을 유지하는 ‘쿨 한 사람’으로 묘사하지만, 반대로 진화론자들 혹은 과학적 의견을 때려잡을 사탄 일당으로 여기지 않는 기독교인들도 있다. 소설 속 미나의 친구들이나 출석하는 교회의 목사의 행태는 물론 비난 받아야 마땅한 일이겠지만, 그런 식으로 한다면 난 마땅히 중형을 받아야 할 악질적인 무신론자나 유물론자의 예를 수없이 들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무신론자나 유물론자라는 이유만으로 비난을 받아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 건전한 상식이겠지만(그리고 이건 기독교라는 조건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그렇게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미나라는 주인공의 성장 이야기라는 측면에서는 그래도 볼만한 소설이다. 작가는 고등학교 1학년 소녀의 미묘한 심리변화를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으며(언젠가 고등학교 때 썼던 일기장을 다시 봤을 때 느꼈던 낯 뜨거움과 유사한 느낌으로 책장을 넘겼다), 주인공은 조금씩 회의하면서(물론 내가 보기엔 충분히 회의하는 것 같지 않았지만) 자라가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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