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주의 정치 스캔들
로날드 사이더 지음, 김성겸 옮김 / 홍성사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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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기독교적(이 책에서는 주로 기독교의 여러 신학 흐름 중 복음주의적인 것을 말한다) 정치참여란 어떤 모습일까에 관한 고민이 담겨 있는 책. 저자는 기존의 복음주의자들의 정치참여가 제대로 된 이론적, 성경적 고찰 없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대부분 실패하고 말았음을 지적하면서, 현실정치에 대한 성경적 기초를 닦는다(2).

 

     ​정치 영역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면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인들이 현실 정치에 참여할 때 어떤 부분에 강조점을 두어야 할지를 알 수 있다. 특별히 이 책에서 강조되는 것은 국가권력의 제한성, 정의의 실현(여기에는 정치적, 사법적 정의만이 아니라 경제적 정의에 대한 강조가 두드러진다), 인권과 그것을 보장하기 위한 기본권의 중요성, 그리고 인간의 자유 등이다.

 

     저자는 이런 원리들이 어떻게 성경적 신앙에서 유출되는지를 보여주면서, 나아가 그 원리를 실현하기 위해 어떤 실제적인 행동들을 할 수 있는지 까지 제시하려고 노력한다.

 

 

2. 감상평 。。。。。。。

 

     최근에는 조금씩 나아지고 있지만, 불행하게도 오랫동안 그리스도인들의 정치참여에 대한 제대로 된 기초가 갖춰지지 않았다. 지나치게 단순한 이해는 권력자들의 프레임에 휘둘리기에 딱 좋은 토양이었고, 덕분에 복음주의나 보수적 기독교인들은 당연히 우파적 정치 포지션을 취해야 하는 것 같은 분위기가 자연스러워 지기도 했다.

 

     그러나 이 책은 성경에 충실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현실정치에 임할 때에 어느 특정한 정파의 입장을 무비판적으로 지지할 수 없음을 분명히 보여준다. 국가는 분명 필요한 조직이지만, 그것은 가정이나 각종 사회단체의 역할을 대신할 수 없다. 국가의 권력은 반드시 제한되어야 하고, 인권은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겨져야 하는 것이다. 생명에 대한 존중은 안락사나 낙태에 대한 보수적인 견해를 취하게 하는 것만이 아니라, 인간다운 삶을 살기 어렵게 만드는 잘못된 사회, 경제 구조에 대항해 싸우게도 한다.

 

 

     핵심적인 원리로 돌아간 고찰은, 온갖 말장난으로부터 우리의 믿음과 삶을 지켜준다. 신앙에 충실한 삶은 우리와 같은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들과 충돌을 일으키기 보다는, 모두를 위해 좋은 길을 찾아가도록 우리의 등을 힘껏 밀어준다. 깊은 성경적 기초 위에 아주 실천적인 부분까지 두루 아우르는 폭넓은 지혜가 담긴, 꽤나 탄탄하게 쓰인 책. 이 분야에 관해 알고 싶다면 필독. 다만 서로 충돌하는 사안들에 대해서는 어쩔 수 없이 좀 덜 깊게 들어가는 면은 약간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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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하나님 - 교회는 왜 사회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는가
케네스 리치 지음, 신현기 옮김, 김홍일 감수 / 청림출판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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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1부에서 저자는 기독교의 여러 흐름들의 사회참여 역사를 간단하게 개관한다. 오랫동안 개인영혼의 구원에만 집중해왔던 복음주의도 로잔언약 이후 기독교의 대 사회적인 책임을 강조하고 있는 분위기이고, 가톨릭 역시 한 때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로 반동적 파시즘에 동조하긴 했으나 변하고 있다. 저자는 기독교의 핵심 교리 중 하나인 성육신 신앙이야 말로,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의 근본적인 통합의 가능성과 당위성을 보여주며, 따라서 기독교의 사회성은 부가적인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특징이라고 주장한다.

     2부의 세 장은, 악한 세상의 구조와 원리에 대항하는 기독교인들에게 힘을 공급해줄 수 있는 가치로서의 관상과 수도원주의를 살펴보는 데 할애되어 있다. 투쟁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그 대상으로부터 일정부분 분리가 필요한데,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도구로서 수도원전통을 제시하고 있는 것.(물론 그 위험성에 대해서도 잘 알고 경계하고 있다)

     3부는 약간 이질적인 세 개의 글이 실려 있다. 일반적인 주장과 다르게, 현대인들의 종교성은 결코 줄어들지 않고 있다(7). 다만 새로운 형태의 영성추구로 나타나고 있을 뿐인데, 저자는 그런 교회 밖 기독교인들의 영성추구를 교회가 가지고 있는 영적 지도의 전통과 연결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8). 9장은 구마의식을 다루는데, 저자는 세상의 악한 권세자들, 권력과 구조들이야말로 쫓아내야 할 마귀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마지막 4부는 기독교의 우경화에 대한 우려를 담고 있다. 파시즘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특히 근본주의적 경향을 가진 기독교인들이 이에 쉽게 동조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그런 신앙적 선택이 왜 거짓된 영성인지를 지적하면서 글을 마친다.

 

 

2. 감상평 。。。。。。。

     영국 성공회 고교회파 소속의 성직자가 쓴, 기독교 사회참여 역사에 대한 반성과 희망을 담고 있는 책. 일반적으로 기독교 사회참여를 긍정적으로 보는 책들의 경우, 성경에 실려 있는 이웃사랑과 관련된 구절들을 정리해 요약하는 식으로 그 당위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 책의 경우는 삼위일체와 성육신의 속성으로부터 이런 논리를 이끌어 낸다는 점이 독특하다. 조직신학, 혹은 교의신학자의 느낌이 강하다. 이는 오랫동안 합의된 교리를 붙잡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그 실천적 의미에 대해서는 깊이 들어가지 못했던 보수적 기독교인들에게 신선한 도전이 되지 않을까 싶은 부분.

     단순히 기도하는 한 가지 방식으로서만이 아니라, 주변 환경을 극복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집중케 하는 방식으로서의 관상의 유효성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든다. 물론 관상기도라는 것이 양날을 가지고 있어서, 자칫 저자가 언급하지 않은 영지주의의 또 한 가지 문제스스로의 힘으로 깊은 영적 단계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빠지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것과 같은 (위의 두 번째) 의미에서의 관상이라면, 기독교가 지나치게 세상과 한 몸이 되어가는 우려가 있는 오늘날, 자발적 분리와 경제라는 측면에서 다뤄져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싶다.

     어쩌면 진짜 관상이란, 어디 조용한 자리를 찾아가 하는 마음수양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캡사이신이 섞인 물대포가 쏟아지고, 진압봉이 휘둘러지는 그 현장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믿으며 용기를 잃지 않고 서 있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여야 할지도 모른다.(그 자리에 서 있는 이유가 공평과 정의라는 성경의 핵심적인 가치를 실현시키는 자리일 때 말이다. 우리는 어느 쪽에서라도 종교의 영역을 침해하고 지배하려는 정치인들의 욕망에 휘둘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물론 그럴 바에야 다른 이름을 사용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지적도 나올지도 모르지만.. 뭐 그 또한 가능한 대안 중 하나이지 않을까.

 

 

      3부의 내용은 나머지 장들과 비교해 좀 이질적이다. 사실 저자가 말하는 영적 지도와 현대인들이 추구하고 있는 뉴에이지적 영성이 어떻게 구분되는지부터가 불분명하고, 여기에는 앞서 그토록 강조했던, 정통적 교리로부터 물흐르듯 파생되는 사회 참여적인 기독교의 흔적이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또 구마의식에 관한 지극히 정치적인 해석을 담고 있는 9장 역시, 나머지 장들과 비교해 볼 때 균형감을 약간 잃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근본주의적 신앙과 파시즘을 연결 짓는 4부 역시 좀 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저자는 많은 장을 파시즘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갖는 정치적, 경제적, 지역적 특성을 할애하는 데 쓰고 있는데(개인적으로는 이런 부분들이 더 큰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 갑자기 근본주의자들은 태생적으로 그런 쪽에 쉽게 기울어진다는 논리로 전개되는 과정에 좀 비약이 있는 것 같다. 저자가 앞서 지적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근본주의적 신앙을 받아들였고, 그들이 파시즘적 사조에 쉽게 동조할 수 있다는, 그러니까 근본주의보다 앞서의 사회, 정치, 경제적 조건들이 여전히 더 큰 요인으로 제시될 수도 있다고 본다.

     예컨대 우리나라의 경우, 전라도의 보수주의적 교회들은 박근혜 정권에 비판적인 입장에 서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내 경험을 볼 때, 정치적 견해는 종교의 유무나 종류와 상관없이 형성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안타까운 부분이지만, 교회가 교인들의 정치적 견해에 영향을 끼치는 것보다 교인들이 자신들에게 맞는 정치관을 갖는 교회를 만들어가는 게 더 많지 않은가? 특히 우리나라와는 달리 소위 메가처치들이 적은 영국 등 서구세계에서는 말이다.

 

 

      처음 출판된 지 제법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곱씹어 볼만한 지적들을 담고 있는 책. 특히 1, 2부의 경우는 진지하게 두고 읽어볼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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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이를 위한 마틴 루터 킹 - 자유와 평화를 꿈꾼 용감한 인권운동가 젊은이를 위한 위인 시리즈 4
울리케 벨커 지음, 신준호 옮김 / 새물결플러스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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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유명한 목회자이자 흑인인권운동가인 마틴 루터 킹의 생애를 간략하게 요약해 놓은 책이다. 열악한 처우 속에서 자라난 어린 시절, 차별 받는 흑인들을 위해 목회자가 되기로 결심하고(당시는 흑인이 선택할 수 있는 지도적 위치가 많지 않았다), 비폭력투쟁이라는 방식으로 그 목표를 위해 걸었던 길 등이 요약적으로 설명되어 있다.

 

 

2. 감상평 。。。。。。。

 

     내가 가장 좋아하는, 아니 호감을 넘어 존경하는 인물이 둘 있다. 하나는 역시 C. S. 루이스이고, 다른 하나는 바로 마틴 루터 킹이다. 루이스가 내 사고의 깊이를 깊게 해 주었다면, 킹은 내가 편안한 현실에 안주하지 않도록 계속 자극하는 인물이다.

 

      이 책은 그 중 마틴 루터 킹에 관한 책이다. 전기나 일대기라기엔 너무 짧다는 느낌이 강하고(이 정도는 그냥 인터넷 검색을 해도 충분히 얻을 수 있는 수준이 아닐까 싶을 정도..), 그냥 킹 목사가 누구인지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소개하는 정도로 보면 틀리지 않겠다. 비록 채 마흔 살이 되지 못한 채 암살을 당했지만, 생전에 그가 보여주었던 사상과 신념을 담기에 이 책은 너무 얇다.

 

      킹이 어떤 사람인지 소개하기 위해 굳이 이 책을 열어볼 필요는 없지 않을까. 당장 구글 검색만 조금 해보더라고 그가 얼마나 열정적이고 깊은 사람이었는지를 확인하기엔 충분하다. 물론 그가 보수정권의 이익에 불리하다는 것을 깨달은 미 정보당국이 말년에 퍼뜨린 흑색선전이 진실처럼 떠도는 웹페이지들도 어딘가엔 있을지 모르지만, 그런 불순물들이야 잘 걸러내면 되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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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몬: 악마의 회고록
토스카 리 지음, 홍종락 옮김 / 홍성사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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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

 

     주인공 클레이는 작은 출판사에서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얼마 전 외도를 한 아내와 헤어진 채 제법 오랜 시간 괴로워하던 그의 앞에, 어느 날 한 남자가 나타나 말을 건다. 자신의 이름을 루션이라고 소개한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쓸 것을 제안한다. 한 때 작가의 꿈을 꾸기도 했던 그는 결국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다.

 

     루션의 이야기는 태초의 악마들이 타락해가고, 인류 역사 속에서 어떻게 살아왔는가에 관한 내용이었고, 루션 자신도 그 타락한 악마들 중 하나였음이 곧 밝혀진다. 한 번 들으면 절대로 잊히지 않는 이야기 속에 점점 빠져들어가는 클레이. 그러나 이야기가 점점 결말을 향해 가면서 클레이 자신에게도 변화가 생기기 시작한다.

 

 

2. 감상평 。。。。。。。

 

     악마가 구술하는 자신의 이야기를 책으로 엮는 작가라는 설정은 흥미롭긴 하지만 아주 새로운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작가는 시간이 지나면서 악마의 회고록인 줄만 알았던 이야기가 사실은 주인공 자신의 이야기(정확히는 자신과 관련된 이야기)라는 좀 더 중요한 설정을 덧붙임으로써, 이 작품만의 독특함을 드러낸다.

 

     루시퍼와 함께 더 높은 곳을 향해 날아 올라가는 반역에 동참했던 루션이 완전히 실패한 후, 신이 만든 또 다른 인격적인 창조물인 진흙 인간(그는 인간을 이렇게 낮춰 부른다)’들을 관찰하면서, 신이 그들에게 보여준 놀라울 정도의 인내와 완전한 사람을 보며 질투를 한다는 이야기는 제법 흥미롭다.

 

 

     작가의 이런 서술들은 아주 가공의 것들이 아니라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저자 후기에 실려 있는 것처럼, 이 소설에 등장하는 악마에 관한 여러 설정들은 성경에서 추출된 것들이고, 대부분은 복음주의 학자들에게서도 어느 정도 받아들여지고 있는 설명들이다. 이런 노력 덕분에 이 작품은 단지 흥미를 돋우는 이야기에 그치지 않고, 일종의 신학적 교훈을 전달해주는 책으로 올라선다.

 

     이 작품에서 가장 인상적인 것은 표현력이다. 앞서 말했던 것처럼, 이 책의 많은 설정들은 성경에서 따온 것이다. 하지만 성경의 서술은 그 분량이 많지도 않을뿐더러, 서술 방식도 간략한 설명체인 경우가 대부분. 그러나 작가는 이 적은 구절들을 생생한 표현으로 되살려낸다. 성경을 이렇게 생생하게 읽어낼 수 있다면 많은 기독교인들의 신앙생활은 참 많은 면에서 달라질지도 모르겠다.

 

 

     흥미로운 구조와 생생한 표현, 그리고 바른 교훈까지.. 이 정도면 썩 괜찮은 기독교 소설이다.(대개의 경우 이 중 하나, 혹은 두 개가 부족해 아쉬움을 주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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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진 십자가 - 무엇을 따르고 무엇에 저항할 것인가
짐 월리스 지음, 강봉재 옮김 / 아바서원 / 201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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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요약 。。。。。。。

 

     저자가 이 책에서 비판하고 있는 것은 현실 순응적 기독교이다. 기독교적 가르침에 따르면 현실은 타락의 영향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현실 속에 나타는 다양한 문제들 이 책에서는 주로 빈부의 격차와 권력을 소유한 이들의 기득권 유지를 위한 폭력과 억압 등을 지적한다-은 그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가 현실에 순응하는 것은 그 자체로 심각한 존재론적 문제를 발생시킨다. 그리스도는 타락한 세상을 구하기 위해 교회를 만들었으나, 교회는 그 타락한 구조와 타협하고 연합한다면 그들의 특별함은 어디에서 찾을 수 있겠는가.

 

     저자는 소위 보수적인 기독교가 그리스도의 구원을 개인적 차원으로 가둬둠으로써 제자도 없는 은혜라는 이단적인 모습으로 변질되어가고 있다고 비판한다.(95) 반면 진보적임을 자칭하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는, 계시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인 만남 같은 기독교의 독특한 기초를 가볍게 여김으로써 그들의 메시지에서 영적인 기초를 상실시켜버리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고 지적한다.(99-100)

 

     저자는 철저하게 계시에 기초하면서도(진보적 한계 극복), 그리스도를 온 세상의 주인으로 선포하는(보수적 한계 극복) 방법을 통해 이런 상황을 타계할 수 있다고 본다. 오늘날 세상의 문제는 단지 이론이나 운동으로서만 해결할 수 없으며, 영적인 차원에서의 바른 접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

 

     이것을 위해서 저자가 중요하게 여기는 해법은 공동체이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공동체인 교회는 그들의 삶을 통해 그리스도의 승리를 역사 속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낼 수 있어야 한다. 세상의 원리를 따르지 않는 새롭고 강한 공동체는 예배를 통해 얻는 내적인 힘으로(187), 파괴적인 원리를 숭배하는 이들과 맞서 싸워야 한다는 것. 이를 위해 교회는 적극적으로 분쟁의 현장 가운데로 들어가 화해와 반성, 치유의 사역을 해내야 한다.(189)

 

 

2. 감상평 。。。。。。。

 

     교회의 본질에 대한 깊은 고민이 담긴 책이다. 그 옛날 박해를 받았을지언정 조롱의 대상은 되지 않았던 기독교가, 오늘날 많은 사람들로부터 받고 있는 노골적인 빈정거림과 적대감은 분명 이례적인 상황이다. 그리고 여기에는 결국 교회다움을 잃어버린 교회라는 본질의 문제가 놓여 있다.

 

     교회의 본질이란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오랫동안 사람들은 앎과 그 실천 사이에서 오락가락해왔다. 보수적인 사란들은 바른 앎의 내용에 집중했고 진보적인 이들은 행동으로 옮기는 것의 가치를 중요하게 여겨왔다. 둘 다 틀린 말은 아니었지만, 한쪽에만 천착하는 태도는 필연적으로 문제를 일으켰다. 그 사이 양편은 서로의 부족한 점을 지적하는 데 애써왔지만, 자신들의 부족함은 충분히 성찰하지 못했다.

 

     이 책의 장점은 그리스도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의 존재론적 기초인 복음, 즉 예수 그리스도가 전한 복된 메시지에 철저하게 기초해 교회다움을 정의하려고 애쓰고 있다는 점이다. 일부는 월리스를 좌파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그가 정의하고 있는 기독교나 복음은 소위 보수적인 기독교인들이 동의하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충분히 정통적이다. (좌파니, 우파니 하는 딱지 붙이기 같은, 세속 정치인들이 권력획득을 위해 심각하게 망가뜨려놓은 틀로 교회를 재단하려는 태도야 말로 정통적이거나 복음적이지 못하다.)

 

 

     그가 발견한 복음은 사회 변혁적 복음이다. 사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아는 사람들이 아니라, 그 복음대로 사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게 제자도라는 말의 의미다. 물론 제대로 된 앎 없이, 그저 행동만 따라하면 된다는 뜻은 아니다. 그러나 복음에 부합하는 삶 없이, 복음의 내용을 쉼 없이 되뇌기만 하는 것은 더욱 심각한 지경일 것이다. 전체 그리스도인의 10%만 제자도에 충실하게 살았어도, 오늘날처럼 교회가 조롱과 무시의 대상으로 전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물론 어쩌면 지금은 이미 많이 늦었을지도 모른다. 저자가 미국의 기독교를 바라보며 40년 전에 쏟아 냈던 이 선지자적 외침이 여전히 우리나라 교회에는 절실하게 필요한 메시지라는 사실이 어이없을 정도로 슬픈 일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른 법이라는 닳고 닳은 경구가 오늘까지 전해져오는 건 분명 진실의 한 조각이 그 안에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문제는 본질로부터의 일탈이지 본질 자체가 아니라는 건 이 책에서 충분히 보여주고 있는 바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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