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하나님 - 교회는 왜 사회에 관심을 둘 수밖에 없는가
케네스 리치 지음, 신현기 옮김, 김홍일 감수 / 청림출판 / 2009년 4월
평점 :
절판


1. 요약 。。。。。。。

​

     1부에서 저자는 기독교의 여러 흐름들의 사회참여 역사를 간단하게 개관한다. 오랫동안 개인영혼의 구원에만 집중해왔던 ‘복음주의’도 로잔언약 이후 기독교의 대 사회적인 책임을 강조하고 있는 분위기이고, 가톨릭 역시 한 때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로 반동적 파시즘에 동조하긴 했으나 변하고 있다. 저자는 기독교의 핵심 교리 중 하나인 성육신 신앙이야 말로, 영적인 것과 물질적인 것의 근본적인 통합의 가능성과 당위성을 보여주며, 따라서 기독교의 사회성은 부가적인 것이 아니라 본질적인 특징이라고 주장한다.

​

     2​부의 세 장은, 악한 세상의 구조와 원리에 대항하는 기독교인들에게 힘을 공급해줄 수 있는 가치로서의 관상과 수도원주의를 살펴보는 데 할애되어 있다. 투쟁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그 대상으로부터 일정부분 분리가 필요한데, 이를 실현할 수 있는 도구로서 수도원전통을 제시하고 있는 것.(물론 그 위험성에 대해서도 잘 알고 경계하고 있다)

​

     3부는 약간 이질적인 세 개의 글이 실려 있다. 일반적인 주장과 다르게, 현대인들의 종교성은 결코 줄어들지 않고 있다(7장). 다만 새로운 형태의 영성추구로 나타나고 있을 뿐인데, 저자는 그런 교회 밖 기독교인들의 영성추구를 교회가 가지고 있는 영적 지도의 전통과 연결 지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8장). 9장은 구마의식을 다루는데, 저자는 세상의 악한 권세자들, 권력과 구조들이야말로 쫓아내야 할 마귀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

​

     마지막 4부는 기독교의 우경화에 대한 우려를 담고 있다. 파시즘이 무엇인지를 설명하고, 특히 근본주의적 경향을 가진 기독교인들이 이에 쉽게 동조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한다. 결론적으로 저자는 그런 신앙적 선택이 왜 거짓된 영성인지를 지적하면서 글을 마친다.

 

 

2. 감상평 。。。。。。。

​

     영국 성공회 고교회파 소속의 성직자가 쓴, 기독교 사회참여 역사에 대한 반성과 희망을 담고 있는 책. 일반적으로 기독교 사회참여를 긍정적으로 보는 책들의 경우, 성경에 실려 있는 이웃사랑과 관련된 구절들을 정리해 요약하는 식으로 그 당위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이 책의 경우는 삼위일체와 성육신의 속성으로부터 이런 논리를 이끌어 낸다는 점이 독특하다. 조직신학, 혹은 교의신학자의 느낌이 강하다. 이는 오랫동안 합의된 교리를 붙잡는 것을 매우 중요하게 여기면서도, 그 실천적 의미에 대해서는 깊이 들어가지 못했던 보수적 기독교인들에게 신선한 도전이 되지 않을까 싶은 부분.

​

     단순히 기도하는 한 가지 방식으로서만이 아니라, 주변 환경을 극복하고 하나님께 온전히 집중케 하는 방식으로서의 관상의 유효성에 대해서도 한 번 생각해 보게 만든다. 물론 관상기도라는 것이 양날을 가지고 있어서, 자칫 저자가 언급하지 않은 영지주의의 또 한 가지 문제―스스로의 힘으로 깊은 영적 단계에 이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에 빠지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는 것과 같은 (위의 두 번째) 의미에서의 관상이라면, 기독교가 지나치게 세상과 한 몸이 되어가는 우려가 있는 오늘날, 자발적 분리와 경제라는 측면에서 다뤄져볼 필요도 있지 않을까 싶다.

​

     어쩌면 진짜 관상이란, 어디 조용한 자리를 찾아가 하는 마음수양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캡사이신이 섞인 물대포가 쏟아지고, 진압봉이 휘둘러지는 그 현장에서 하나님의 공의를 믿으며 용기를 잃지 않고 서 있는 것을 가리키는 용어여야 할지도 모른다.(그 자리에 서 있는 이유가 공평과 정의라는 성경의 핵심적인 가치를 실현시키는 자리일 때 말이다. 우리는 어느 쪽에서라도 종교의 영역을 침해하고 지배하려는 정치인들의 욕망에 휘둘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물론 그럴 바에야 다른 이름을 사용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지적도 나올지도 모르지만.. 뭐 그 또한 가능한 대안 중 하나이지 않을까.

 

 

      3부의 내용은 나머지 장들과 비교해 좀 이질적이다. 사실 저자가 말하는 ‘영적 지도’와 현대인들이 추구하고 있는 뉴에이지적 영성이 어떻게 구분되는지부터가 불분명하고, 여기에는 앞서 그토록 강조했던, 정통적 교리로부터 물흐르듯 파생되는 사회 참여적인 기독교의 흔적이 잘 드러나지도 않는다. 또 구마의식에 관한 지극히 정치적인 해석을 담고 있는 9장 역시, 나머지 장들과 비교해 볼 때 균형감을 약간 잃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

     근본주의적 신앙과 파시즘을 연결 짓는 4부 역시 좀 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저자는 많은 장을 파시즘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갖는 정치적, 경제적, 지역적 특성을 할애하는 데 쓰고 있는데(개인적으로는 이런 부분들이 더 큰 영향을 끼친다고 본다), 갑자기 근본주의자들은 태생적으로 그런 쪽에 쉽게 기울어진다는 논리로 전개되는 과정에 좀 비약이 있는 것 같다. 저자가 앞서 지적한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근본주의적 신앙을 받아들였고, 그들이 파시즘적 사조에 쉽게 동조할 수 있다는, 그러니까 근본주의보다 앞서의 사회, 정치, 경제적 조건들이 여전히 더 큰 요인으로 제시될 수도 있다고 본다.

​

     예컨대 우리나라의 경우, 전라도의 보수주의적 교회들은 박근혜 정권에 비판적인 입장에 서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내 경험을 볼 때, 정치적 견해는 종교의 유무나 종류와 상관없이 형성되는 경우가 더 많은 것처럼 보인다. 그리고 안타까운 부분이지만, 교회가 교인들의 정치적 견해에 영향을 끼치는 것보다 교인들이 자신들에게 맞는 정치관을 갖는 교회를 만들어가는 게 더 많지 않은가? 특히 우리나라와는 달리 소위 메가처치들이 적은 영국 등 서구세계에서는 말이다.

 

 

      처음 출판된 지 제법 시간이 지났지만, 여전히 곱씹어 볼만한 지적들을 담고 있는 책. 특히 1, 2부의 경우는 진지하게 두고 읽어볼 만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