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테크리스타
아멜리 노통브 지음, 백선희 옮김 / 문학세계사 / 2004년 11월
평점 :
구판절판


하지만 이제 앙테크리스타에게 사랑이란 오로지 반사적인 현상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녀의 사랑은 자기로부터 떠나 자기를 향해 되돌아오는 화살이었다.

세상에서 가장 짧은 사정거리인 셈이다.

그렇게 작디 작은 영역 안에서 대체 어떻게 살아갈까?

 

[ 요약 ] 

        생전 친구라는 것은 한 번도 가져보지 못한 것만 같은, 아니 그게 사실인 소심하고 내향적인 주인공 블랑슈. 어느 날 학교에서 퀸카로 이름 높은 크리스타가 그녀에게 웃음을 던진다. 그야말로 역사적인 순간. 블랑슈는 자신도 모르는 새 그 웃음 한 번으로 크리스타에게 마음을 열게 된다. 하지만 누가 알았으랴. 그것이 그녀의 결정적인 실수인 것을.

 

        크리스타는 모든 면에 있어서 블랑슈와는 반대처럼 보였다. 그녀는 사람들 앞에서 말도 잘했고, 사랑스러웠으며, 적절한 애교와 처신법을 알고 있었다. 당연히 인기도 많았다. 어느 날 이른 오전부터 시작되는 수업을 듣기 위해 학교에 갔다가 매우 피곤해 보이는 크리스타를 만난 블랑슈는 그녀와의 짧은 대화를 통해, 그녀가 먼 동부에 살고 있다는 것과 학교에 오기 위해서는 기차를 타고 2시간이나 와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리고 내린 결정이 화요일 수업을 위해 월요일 저녁에 크리스타가 자신의 집에 와서 자도 괜찮다는 두 번째 치명적인 실수였다.

 

         크리스타가 블랑슈의 집에 머무르기 시작하면서 부터, 블랑슈의 파멸은 시작되었다. 그녀의 부모님마저 크리스타에게 반해버렸고, 크리스타는 블랑슈의 방을 마치 자신의 것인 양 사용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얼마 후 블랑슈의 부모들은 크리스타에게 아예 주중에 자신의 집에서 살아도 좋다는 말까지 해 버리고 만다! 블랑슈는 단 하나밖에 남지 않은 자신의 공간까지도 크리스타에게 뺏겨버리고 만다.

         함께 살면서 블랑슈는 크리스타가 얼마나 이기적이고, 자기애에 빠져 있는지를 알게 된다. 크리스타의 이중적 생활은 점점 블랑슈를 참을 수 없는 어려움으로 몰아넣지만, 이런 그녀를 이해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블랑슈는 이제 크리스타를 앙테크리스타(Antechrista)라고 부른다. 적그리스도(Antichrist)의 프랑스어 여성형이다.

 

        한없이 침울함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만 같았던 이 상황에서, 블랑슈는 마침내 행동을 개시하기로 결심한다. 크리스타가 그녀에게 한없이 관대하게 대하는 블랑슈의 부모님을 블랑슈 앞에서 욕하기 시작한 직후였다. 그리고 크리스타의 비밀을 알게 된 블랑슈는 이를 자신의 부모에게 말하고, 처음에는 잘 믿으려 하지 않았던 부모들도 크리스타의 오만하고도 뻔뻔스러운 대응 앞에 결국 크리스타를 버리게 된다.

 

        소설은 아직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후에도 크리스타는 자신의 타고난 매력과 말솜씨를 무기로 블랑슈와 그녀의 가족을 주변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고립시켜버린다.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그러나 블랑슈는 그런 크리스타의 도발에 결코 넘어가지 않는다. 그 곳에서 크리스타에게 분노를 표출하는 것은 도리어 그녀의 자기애를 만족시켜주는 결과이니까.

 

        결국 크리스타는 블랑슈에게 지고 만다. 그리고 어느 샌가 블랑슈는 무언가 한 단계 더 성숙해져 있었다.


 

[ 감상 ]

        대단한 심리묘사. 아멜리 노통브의 솜씨가 다시 한 번 빛을 발하는 작품이다. 갑자기 블랑슈의 삶에 깊숙이 들어와 버린 너무나도 매력적인 적 크리스타를 대하는 블랑슈의 심리 묘사는 일급 수준이었다. 이전에 ‘오후 네 시’라는 작품에서 매일 오후 찾아오는 불청객을 맞는 집주인의 심리를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예리하게 묘사했던 작가는, 이번 작품에서도 녹슬지 않은 솜씨를 발휘한다.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다음 페이지에 무슨 내용이 기록되어 있는지가 궁금해질 만큼, 소설은 긴장도를 유지하면서 내용 전개가 이어진다. 이를 위해 묘사하고자 하는 인물과 배경들에 대한 설명들 위주로 서술이 매우 절제된 채 이루어진다. 주로 주인공인 블랑슈의 심리적 상태가 서술의 대상이다. 지나치게 퍼지지 않기 때문에 글이 산만해지지 않고 집중도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나도 배우고 싶은 부분이다.

 

        다만 이야기의 끝이 마무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을 주는 것이 이 소설이 갖는 가장 큰 약점이라면 약점. 긴장감이 그냥 그대로 유지된 채 끝나버리는 모습이다. 사실 독자로서는 내용에서 한껏 고조된 긴장감이 어느 정도 풀리기를 원하는 마음이 간절하지 않겠는가. 이런 식의 열린 결말은 ‘그래서 어쨌다는 걸까?’라는 의문을 자연스럽게 떠올리도록 하면서 저마다의 결론에 대한 해석을 유도한다. 뭐 그런 효과를 의도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리 두껍지 않다. 1시간이면 무난하게 읽을 수 있으리라. 1시간 동안의 기분 좋은 긴장감을 느껴보고 싶은 사람이라면 강력 추천.

 

[ 종합평가 ]

 

난이도

★★★☆☆ 3.0

가까이에서 일어나는 이야기

흥미도

★★★★☆ 4.0

다음 페이지가 궁금해지는..

글솜씨

★★★★☆ 4.5

탁월한 심리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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