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경사 바틀비 클래식 보물창고 24
허먼 멜빌 지음, 한지윤 옮김 / 보물창고 / 201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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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줄거리     

 

 

     평탄한 삶이 최고라고 여기며 살아온 화자는 변호사이다. 그는 소동에 말려들기 싫어서 채권, 권리 증서를 다루는 업무만을 맡아왔을 정도. 어느 날 그의 사무실에 바틀비라는 이름의 필경사(변호사가 처리하는 업무와 관련된 서류를 손으로 베껴 쓰는 일을 하는 사람)를 한 명 더 고용하기로 한다. 처음에는 크게 눈에 띄는 것 없이 다른 필경사들보다 더 많은 일들을 감당하던 바틀비는 글을 베껴 쓰는 일 외의 모든 것을 거절하더니 나중에는 필경 업무 마저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이 황당한 상황을 맞딱드린 변호사는 온갖 말로 그의 마음을 바꾸려고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말았고, 어느 날 아침 교회에 가려다 잠시 들린 자신의 사무실에서 바틀비가 살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변호사는 매일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며 사무실 한 구석을 차지하고 있던 그를 내보내기로 결정하지만, 바틀비는 이번에도 변호사를 떠나는 것을 거절한다. 결국 자신의 사무실을 옮기기로 결심한 변호사. 바틀비는 이전 건물 주변을 서성이며 머물다가 부랑자로 신고 돼 교도소에 갇혔고, 그곳에서 살기를 거절하고 죽음을 맞는다.

 

 

2. 감상평     

 

 

    80여 페이지밖에 안 되는 짧은 소설이지만 매우 강렬한 느낌을 준다. 모든 것을 거절하고 그냥 그 자리에 남아 있는 바틀비의 모습은, 작품 속 변호사만이 아니라 이 책을 읽는 독자의 마음까지도 충격과 당혹감으로 몰아넣는다. 도대체 왜? 바로 이 물음은 작품을 읽은 모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떠올리는 질문이고, 그 덕분인지 이 작품에 관한 다양한 해석들이 제시되고 있다. 자본주의의 발전에 따라 주변부로 밀려난 사람들의 소극적이지만 강한 저항으로 해석하기도 하고, ‘하지 않음’, 무(無)라는 데 초점을 맞춰 이를 철학적으로 해석하는 시도도 있고..

 

     바틀비가 거절할 때마다 사용했던 대답인 ‘나는 그것을 하지 않는 것을 선호합니다(I would prefer not to)’는 아주 묘한 문장이다. 보통은 I would not prefer to 로 이어지는데 작가는 일부러 이 어구의 어순을 비틀어 놓음으로써 이 거절 자체에 독자들의 관심을 환기시킨다. 하지 않음을 선호하다가 결국 사는 것까지 거부한 채, 죽음을 맞는 바틀비. 아주 여운이 길게 남는 작품.

 

 

     모든 것을 거절하고 부정하게 되면 결국 자기 존재마저 부정해야 하는 자기파괴적인 결말에 이르게 되곤 한다. 거절 자체가 해답이 될 수는 없다는 것. 모든 걸 과학이라는 잣대로 해석하고 분석하려는 유물론자들, 과학주의자들은 결국 자기 자신들의 존재마저 충분히 입증해낼 수 없는 상황에 처해버렸고, 자기가 속한 정치세력 이외의 모든 것을 부정하고 거절하는 집단은 일당독재의 길로 치달아 자기 자신의 정치적 자유마저 부정해버리는 결과에 이르게 되고 말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난 바틀비의 모습을 긍정적으로 해석하는 사람들과는 달리 좀 부정적으로 이해한다. 저항은 그 자체로 아름다운 것이 아니라 정당하지 못한 대상을 향할 때에야 좋은 것일 수 있다. 결국 아무 이유를 제시하지 않은 채, ‘하지 않는 것만을 선호’했던 바틀비는 작가의 불운한 생애와 관련해 연민의 대상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뭔가 긍정적인 무엇을 생산하거나 창조해내기엔 한계를 지니고 있지 않았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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