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줄거리 。。。。。。。                  

 

     남편을 잃고 청각 장애인 아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린다. 어느 날 우연히 살인 피해자 유가족들의 모임에서 쌍둥이 누나를 잃은 월터를 만난다. 법정을 오고가며 얼굴을 익히던 두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괴로워하고 있다는 공통점 덕분인지,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어느 덧 서로를 위로하는 사이로 발전한다.

 

 

 

2. 감상평 。。。。。。。                    

 

     살인 사건의 피해자 가족들은 큰 충격에 빠진다. 한 연구에 따르면 어떤 사람이 일생을 살아가면서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충격이 배우자의 사망이라고 하던데, 그 사망의 원인이 살해당한 것이라고 하면 그 강도가 몇 배로 증폭되지 않을까. 여기에 한 배에서 한 날 태어난 쌍둥이의 한쪽의 죽음도 결코 작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상처받은 사람의 마음은 비슷한 상처를 받아본 사람이 가장 잘 안다고, 영화는 이 비참한 상황에 빠진 두 사람이 서로를 위로하며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다. 꽤나 잔잔한 드라마.

 

     다만 영화가 생각만큼 감동적이거나 깊은 공감을 주지는 않았다. 두 사람의 나이차가 극중 가장 큰 장애물(?)로 느껴질 정도로 너무 무난했기 때문일 수도 있겠고, 자기 극복이나 어떤 성취와 같은 영화를 볼 때 기본적으로 전제하는 것들이 보이지 않아서일지도 모르겠다. 여기에 감독은 사건의 전모나 재판결과의 옳고 그름 같은 것들에는 애초부터 집중할 의사가 없었다는 듯, 그냥 둘의 관계에 몰입을 해버리니.. 월터의 어머니이자 린다의 모임(살해 피해자 유가족 모임)의 일원이기도 한 그레이스는 둘 사이의 관계를 보고 어떤 느낌이었을지 정도만 그려줬더라도, 린다의 아들인 클레이와 월터의 스토리를 조금 더 감독적으로 연출했더라도 이야기가 생생해졌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물론 영화를 좀 다르게 읽어보면 언뜻 상처 입은 남녀의 사랑 이야기로만 보이는 이 영화의 배경에도 다양한 미국적 상황이 녹아들어 있다. 총기 소유 1위 국가인 미국이니 총기사고도, 이로 인한 살인과 같은 강력범죄들도 한해에 십 수 만 건이 일어난다. 그리고 그 결과로 남겨진 슬픔 속에 남겨진 사람들의 숫자는 그 몇 배에 달할 테니, 미국인들에게 이런 주제는 좀 더 와 닿을지도 모른다. 여기에 주인공 두 남녀도 그렇듯 마음에 들면 아무데서나, 어떤 상황에서나 섹스를 해대는 태도는 성관계를 ‘단지’ 서로 좋아한다는 가벼운 표시일 뿐으로 생각하는 성 관념에 대한 미국인들의 기본적 관념의 변화를 담고 있기도 하고. 이런 상황에서 좋아하니까 좀 하자는데 별것도 아닌 걸 거절하는 상대를 강간하고 죽이는 일 따위가 얼마나 가볍게 여겨질까.

 

     배우들의 연기야 그럭저럭 볼만은 했지만, 딱히 인상적이지 못한 연출은 영화의 매력을 반감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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