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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판 스캔들 - 저작권과 해적판의 문화사
야마다 쇼지 지음, 송태욱 옮김 / 사계절 / 2011년 9월
평점 :
절판
1. 줄거리 。。。。。。。
18세기 영국 런던에서 일어난 한 재판에 관한 이야기다. 당시 런던의 서점운영자(당시 서점은 출판 및 유통과 마케팅 모두를 수행하고 있었다) 조합은 특정한 작품에 관한 저작권이 영구적으로 (그 권한을 저자로부터 구입한) 자신들의 소유라고 주장하면서 스코틀랜드 출신의 도널드슨이라는 업자가 싼 값에 책을 인쇄해 판매하는 것을 막으려 했다. 몇 개의 재판을 거친 후 마침내 사안은 최고재판소인 상원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게 되었다. 과연 어떤 저작물에 관한 독점적 권한은 영구적인 것인가, 아니면 일정한 단서를 두고 제한될 수 있는가.
2. 감상평 。。。。。。。
한 초등학교 교실에서 일어난 일이다. 공작시간에 한 어린 아이가 도무지 무엇을 만들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아 멍하니 앉아 있자, 선생님이 와서는 다른 친구들이 하는 걸 보고 생각해보라고 말한다. 그 아이는 이내 잘 만드는 친구 곁으로 가서 그가 만들고 있는 걸 보고 있는데, 그 친구는 아이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만드는 걸 흉내 내면 저작권을 침해하는 거야.’
어떤 작품(책, 영화, 혹은 어떤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킨 무엇이든)을 만들어낸 저작자가 그 저작물에 관한 독점적 권한을 갖아야 한다는 것은 당연한 것처럼 보인다. 그것이 공정한 일이고, 그런 금전적인 이익을 줌으로써 더 많은 작품들을 생산할 수 있도록 유인할 수 있다는 것도 맞는 말이다. 그러나 좀 다르게 생각하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오늘날처럼 각종 분야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면서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에서는, 이전에 만들어진 어떤 저작물로부터 나온 아이디어가 새로운 저작물을 만드는 일도 허다하다. 이런 상황에서 최초의 저작자의 권한을 영구적으로 보장한다면 오히려 후속적인 창작을 방해하는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저작권을 보장함으로써 더 많은 좋은 작품들이 나오게 될 것이라는 주장이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
책에 실린 재판은 주로 법리적인 논쟁들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천천히 읽다보면 오늘날 문제가 되고 있는 저작권과 관련된 여러 논거들이 이미 이 시대에 다 등장하고 있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을 읽은 후 ‘해적판’, 혹은 ‘불법복제물’을 만든 사람들을 뭉뚱그려서 일방적으로 비난할 수만은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되었다면 나름 유익한 독서를 한 게 아닐까. 요점은 정의와 불의가 아니라, 저작자와 독자 모두의 이익을 위한 적절한 선을 어떻게 합리적으로 정할 수 있는가로 보아야 한다. 지금과 같은 일방적인 매도나 범죄좌 취급은 결코 근본적인 해결책을 이끌어낼 수 없을 것이다.
한편 이런 주제에 관해 이런 연구서를 출판할 수 있는 일본의 출판계의 저력이 부럽다. 확실히 미시사는 일본 특유의 작음과도 연관이 있는 것 같다. 참, 저작권 보호에 관해 좀 더 전향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는 이 책에도 ‘독점계약’, ‘저작권법’, ‘보호’, ‘금지’와 같은 위협문구가 적혀있는 걸 보고 좀 씁쓸한 웃음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