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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 - 합본 ㅣ 메피스토(Mephisto) 13
더글러스 애덤스 지음, 김선형 외 옮김 / 책세상 / 2005년 12월
평점 :
1. 줄거리 。。。。。。。
어느 날 시(市)의 외곽순환도로 건설을 위해 자신의 집이 철거될 위기에 처한 아서. 친구였던 포드는 굴삭기 앞을 막기 위해 누워있던 그를 데리고 급히 어딘가로 가더니 곧 둘은 어떤 우주선 안으로 이동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알게 된 사실 하나. 지구가 우주 통행로를 만들기 위해 방금 철거되었다.
그 때부터 아서는 포드와 함께 은하계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가 되어 온갖 말도 안 되는 행성에서 어이없는 인물들을 만나고 황당무계한 사건들을 겪는다.
2. 감상평 。。。。。。。
시작은 좋았다. 왜 아서가 이 어이없는 은하계를 히치하이킹 하는 여행을 떠날 수밖에 없었는지 적당한 유머를 섞어 재미있게 제시했다. 하지만 일단 아서가 우주로 여행을 떠나는 순간부터 거기에는 어떤 논리적인 전개나 인과율이 배제된, 순수하게 우연과 농담으로 가득한 이야기들이 시작된다. 혹시 누군가 이 책을 한참 읽다가, 의도치 않은 심부름이나 급한 용무(이를 테면 화장실을 다녀오거나 식사를 하는 것 같은)를 보고 돌아와서 어디까지 읽었는지 기억이 안 난다면, 굳이 이전에 읽었던 곳을 찾기 위해 이야기를 앞으로 넘겨서 몇 분 동안 찾을 필요 없이 그냥 아무 데나 펴서 읽어도 괜찮다. 어차피 앞에 읽은 내용들이 정확히 기억도 나지 않을뿐더러, 다 비슷비슷한 이야기라 딱히 구별되지도 않을 테니까.
이야기 전체는 말 그대로 ‘산으로 간다’는 말이 무엇인지를 그대로 보여준다. 판타지 문학이란 게 일단 상상에 기반하고, 당연히 어느 정도는 논리적 비약이나 우연과 같은 특별한 요소가 개입될 수밖에 없다는 건 인정하지만, 일단 그렇게 새로운 세계를 창조해 낸 다음이라면 적어도 내적 논리에 따라 모순 없이 이야기가 흘러가야 한다는 게 기본적인 원칙 아닌가. 하지만 이 이야기는 그런 기본적 합의를 가볍게 휴지통에 던져버린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지긋지긋하게 반복되는 농담 따먹기와 우연의 연속뿐이었다. 초반부 몇 백 페이지 정도까지는 그런대로 참고 읽을 만했지만(종종 재미있는 부분도 있었다), 시종일관 가벼운 말장난만 반복하는 1,236페이지 짜리 이야기를 며칠에 걸쳐 읽는 건 고문 아닐까.
영국식 유머도 좋고, 하이 코미디도 좋다. 하지만 적어도 이 정도의 이야기를 담아내려면 제대로 된 스토리 하나는 넣을 만도 한데, 이건 김치전을 한다면서 정작 밀가루는 넣지 않고 김치만 들입다 팬 위에 올려놓은 꼴이다. 볶은 김치의 맛을 좋아한다면 그런대로 반찬으로 쓸 수는 있지만, 출출한 속을 달래기 위한 포만감을 주는 간식꺼리를 만들려고 했다면 실패작이다.
요샌 어지간히 내용이 잘 이해되지 않으면서도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면 자신도 그 ‘많은 사람들’ 속에 속해야 한다는 강한 소속감에 자신도 모르게, ‘철학적’이니 ‘심오한’이니 하는 수식어를 붙이기도 하나보지만(이 책에 대해 호평을 쓴 다른 리뷰어들을 향한 말은 아니다. 책에 대한 감상은 다를 수 있는 거니까.), 이 범 우주적인 농담 따먹기에는 굳이 작가도 그런 철학적 해석이 붙는 것을 원하진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