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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지전 - The Front Line
영화
평점 :
상영종료
1. 줄거리 。。。。。。。
6.25 전쟁의 휴전 협상이 한창 벌어지고 있던 당시, 2년여에 달하는 협상 기간 동안에도 쉴 새 없이 전투는 계속되었다. 동부전선의 애록고지를 두고 인민군과 뺏고 빼앗기기를 수차례 반복하던 악어중대에 방첩대 소속의 강은표 중위가 파견을 나온다. 전 중대장이 가까운 거리에서 아군의 권총에 의해 죽은 것과 그 중대에서 발송된 군사우편 속의 인민군 편지에 관해 조사를 해 보라는 임무였다. 악어 중대에서 전쟁 초 헤어졌던 친구 김수혁과 재회한 강은표는 함께 전투를 수행하면서 그 중대에 얽힌 비밀에 대해 알아가기 시작한다.

2. 감상평 。。。。。。。
전역한 지 한 달 여 만에 보는 이 영화는 좀 특별한 느낌이다. 내가 3년 동안 근무했던 곳도 휴전선을 경계하는 것을 주 임무로 하던 부대였다. 끊임없이 병사들은 계단을 오르내려야 했고, 매주 한 번씩은 정신교육을 통해 적들이 왜 나쁜가를 배워야 했던 곳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병사들에겐 그저 의무로서 밤낮으로 계단을 오르내리는 것일 뿐, 무슨 숭고한 목적이 있는 건 아니었다. 대부분의 병사들은 그저 건강히, 다치지 않고 병역의무를 잘 마치는 것이 첫째가는 목표였다.
사실 전쟁을 정략(政略)의 한 수단으로 보는 전통적인 견해를 취한다면, 전쟁(휴전을 포함한)이라는 과정 전체는 대다수의 일반적인 젊은이들의 의지나 선택과는 전혀 상관없는, 정치인들과 권력자들의 놀음이다. 이 놀음은 종종 ‘노름’이 되기도 하는데, 휴전협정을 맺고서도 그것이 발효될 때까지 모든 것(이 경우 대개 ‘것’은 ‘사람’과 동의어다)을 쏟아 상대를 공격하라는 비상식적인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 어차피 잃는 것은 많지 않고 잘 하면 더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으니까 최적의 도박이다.
물론 자신의 사상을 지배적 이념으로 만들기 위해 무력까지도 동원할 수도 있다는 어이없는 주장을 하는 이들로부터 자유와 민주주의라는 소중한 가치를 지켜낸 것은 누가 뭐래도 큰 공헌임에는 분명하다. 다만 영화는 전쟁과 전투 자체가 가진 몰인간성에 대해 말하는 것 같다. 그들은 무엇을 위해 싸워야 했는가. 너무나 길어진 전쟁은 왜 싸워야 하는지 그 이유를 잊어버리게 만들었고, 대신 남은 것은 관성(慣性)적으로 주고받는 공방전뿐이었다.

시오노 나나미는 전쟁은 악이기에, 이왕 시작한 전쟁이라면 빨리 끝내는 것이 그나마 차선이라고 말한다. 3년이나 계속되었던 이 전쟁은 그런 의미에서도 최악이었다. 그렇다면 영화 속 수혁과 그의 중대원들의 행동은, 뻔히 다 죽을 줄 알면서 얼마 남지 않은 시간 동안 고지를 사수하라는 명령을 내리는 지휘관보다 옳지 않은 일이라고 할 수 있을까. 고지 하나를 빼앗기고 국경이 좀 남쪽으로 그어졌다고 이 나라가 불행해졌을까.
여전히 오늘날의 지배계층에 속하는 이들은, 이 땅의 젊은이들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다는 면에서 과거의 그들과 비슷하다. 희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 속으로 몰아넣고는 그 희생의 대가로 얻어진 단물을 마시며 즐기고 있으니까. 이런 상황에서 젊은이들이 살겠다고 나서는 것을 ‘공공’과 ‘안정’, 심지어는 ‘국격’이라는 정체불명의 단어까지 들먹이며 계속 탄다면, 결국 어떤 일이 일어나게 될지 나는 상상이 되는데 그들은 아닌가보다.

영화는 대체적으로 잘 만들어졌지만, 뭔가 여운을 주어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인지 모든 전투가 끝난 후 그려지는 몇 개의 장면은 사족에 가까웠다. 어설픈 감상주의보단 좀 더 긴 여운을 줄 수 있는 분명한 마무리가 좀 더 필요했지 않았나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