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기독교인은 예수를 믿지 않을까?
김진 지음 / 위즈덤로드(위즈덤하우스) / 2010년 1월
평점 :
절판


물이 고이면 썩게 마련이에요.

앞에서 지적한 섬김과 치유와 쉼이 없는 교회의 모습도

모든 것이 교회 안으로 집중되어 있기 때문이에요.

교회 안에서 서로 부딪치고 있으니 문제가 아닌 것도 큰 문제로 부각되고,

그러다 보면 갈등과 싸움이 많아지는 것이에요.

지금 말씀처럼 세상에 나가서 복음과 진리로 싸우면

교회 안에서 섬김과 치유와 쉼은 자연스럽게 일어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밖에서 그렇게 힘들게 고생하다 보면

안에서는 서로 위하는 마음이 더 간절하게 생길 테니까요.

 

1. 요약 。。。。。。。

 

     ‘왜 기독교인이 예수를 믿지 않느냐’는 도발적인 질문을 100분 토론 형식으로 꾸며낸 책이다. 교회와 예수가 무슨 관계가 있느냐는 다소 소모적인 논쟁(1장)으로 이야기의 불을 붙이는 전략을 사용한 저자는, 본격적으로 2장으로 들어가면서 오늘날 기독교의 가장 큰 문제로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하지 않는, 알맹이 빠진 모습(저자는 이를 ‘붕어빵 기독교’라는 용어로 표현한다)이라고 지적한다. 3장에서는 이렇게 된 원인이 무엇인가를 짚어보고, 4장부터 6장까지는 그 결과 나타나고 있는 파열음들을 들려준다. 7장부터는 결론부로 이런 상황에서 기독교가 올바로 회복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짚어보고 있다.

 


2. 감상평 。。。。。。。

 

     이 독특한 방식의 책의 구조는 여러모로 저자에게 잘 맞았던 것 같다. 우선 문제점을 지적하고 그에 대해 일종의 변증과 발전적 제안을 한다는 책의 기본 방향에 잘 어울린다. 일반적인 서술로 진행했다면 자주 반복되는 구조로 인해 지루함을 느낄 수도 있었겠지만, 토론형식을 사용함으로써 중간중간 저자와 독자 모두의 생각과 어긋나는 발언 삽입함으로써 이런 위험에서 벗어났다. 또 이런 형식에는 일반적인 유리점도 있는데, 먼저 각각의 인물이 짧은 시간동안 발언을 해야 하기에 일부러 길게 저자 자신의 생각을 늘어놓을 필요가 없이 말하고자 하는 요지만 툭툭 던져도 된다는 것(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이것이 얼마나 서술상의 편리함인지 모두 알 것이다)과, 등장인물이 많기 때문에 혹여나 어떤 독자의 신경을 거슬리게 만드는 주장이 나와 항의를 받더라도 ‘그건 내 생각이 아니었소’라고 쉽게 빠져나갈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이런 서술 방식에는 필연적으로 따라오는 약점도 있는데, 한 명의 저자가 성격이 다른 여러 등장인물들의 입자에서 발언을 꾸미는 것이 결코 쉽지 않다는 점이다. 때문에 이야기의 후반으로 가면서 점차 등장인물들의 발언만 놓고 보면 서로 잘 구분이 되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기도 한다. 저자가 하고 싶은 부분에 가까워질수록 여유가 사라진다고 할까. 그래도 전반적으로 꽤 재미있는 시도이긴 했다.

 

     저자가 지적하는 한국 교회의 문제점들은 대부분의 신자와 비신자들이 공유하는 문제일 것이다. 저자가 생각하는 문제의 원인은 3장에 잘 나와 있는데, 성경해독력의 저하와 구원의 의미에 대한 축소, 제자도에 대한 외면, 맘몬주의 등이 그것이다.(76-77)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비교적 정확한 분석이라고 할 수 있겠다. 이는 한국 교회에서 가장 보수적인 신학을 추구하는 총신대와 가장 진보적 신앙을 천명하는 한신대 양쪽에서 모두 공부했던 저자의 독특한 이력의 영향도 있지 않았나 싶다. 이 책은 양쪽의 신학이 적어도 실천적 영역에 있어서만큼은 서로 통하는 면이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다. 내용상에서도 저자는 여섯 명의 인물들의 입장을 자유로이 오가고 있다.

     문제는 그 해결방향. 책 속에도 언뜻 언급되었듯이 쉼과 적극적인 섬김은 서로 어디쯤에서 조화를 시킬 수 있을지 그 경계를 설정하기가 쉽지 않다. 큰애 젖을 물리면 둘째가 칭얼대고, 둘째를 안으면 셋째가 울기 시작하는 것처럼. 어떤 문제에 대해 애정 없이 파상공세를 취하는 것은 늘 쉬운 법이다. 그리고 각각의 공세를 각각의 방식으로 막는 것도 어느 정도 가능하다. 문제는 그 모든 것을 모았을 때 과연 제대로 돌아갈 수 있는 모델이 나올 수 있는가 인데, 책은 이 점에 대해서는 놓쳐버리고 있다.

     또 저자가 강조하는 것 가운데 하나인 예수에 대한 믿음과 예수의 믿음을 구별하는 것도 그리 단순하지는 않은 문제다. 이는 초반부의 소모적 논쟁 중 하나인 예수와 교회를 분리할 수 있는가 와도 연결되는 문제인데, 우리가 예수에 대해 알 수 있는 것은 그의 제자들이 남긴, 나아가 교회가 보존해 온 문서들을 통해서이다. 그들은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에게 있어서 예수의 믿음과 예수에 대한 믿음은 딱히 구별되지 않았음이 분명하다. 그런데도 굳이 두 가지를 나누어 구분하려는 것은 ‘원시적인’ 신앙을 가졌던 고대 신자들에 비해 자신들이 좀 더 사실적으로 과거를 재구성해낼 수 있다는 현대 신학자들의 오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분명 오늘날 현실 기독교의 모든 면이 만족스럽지는 않다. 이를 굳이 인정하지 않으려는 태도도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격이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권위에 대한 공격에서 즐거움을 찾으려는 천박한 문화에 휩쓸려서는 곤란할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가볍게 문제를 다루지 않고 진지하고 조심스러운 접근을 하고 있는 이 책은, 교회에 애정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고민을 하는 기독교인이라면 한 번쯤 읽어볼만한 내용을 담고 있다. 목회자는 목회자대로, 신자들은 신자들대로 얻는 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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