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 어떻게 세계의 절반을 가난으로부터 구할 것인가
피터 싱어 지음, 함규진 옮김 / 산책자 / 200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는 데 이것저것 따질 필요가 없고, 

그러기 위해 상당한 손해를 보더라도 감수해야 마땅하다는 것이 

많은 사람들의 일치된 의견이었다. 

그러나 매일 수천 명의 아이들이 죽어가고 있는데, 

우리는 있으나 마나 한 물건을 사는 데 돈을 쓴다. 

이것은 부도덕한 일인가?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얼마나 책임을 져야 할까?

 

 

1. 요약 。。。。。。。

     실천윤리학자인 저자가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는 기아와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기부’를 제안한다. 저자는 우리가 가진 것 중 매우 일부만(약 5%) 기부를 하더라도 이런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으며, 그 이후에도 기부자는 이전과 같은 삶을 유지하는 데 큰 타격을 입지 않는다고 강변한다.

    기부에 관한 실제적인 연구와 발표를 지속해 온 저자답게, ‘어떻게 하면 사람들이 좀 더 많은 기부를 할 수 있을까’ 하는 부분에 관한 실질적인 내용들이 많이 담겨 있는 점이 인상적이다. 실제적인 기부문화를 권장하기 위해 기부자와 기부 액수를 공개적으로 발표할 것을 제안하며, 나아가 소득 정도에 따른 실제적인 기부의 기준을 정하는 문제를 수면 위로 드러낸다.

 

2. 감상평 。。。。。。。

     과학문명의 발전과 자유로운 무역, 그리고 민주주의라는 정치체제가 인류를 유토피아로 이끌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던 계몽주의자들 - (경제적) 자유주의자들 - (정치적) 보수주의자들의 주장은 틀렸다. 오늘날 그 어느 때보다도 이 세 가지가 많은 영향력을 끼치고 있지만,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비율의 사람들이 절대적 빈곤과 가난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니까. 모두가 자신의 이익을 위한 방향으로 선택을 이어나가다보면 최적의 삶의 조건을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인간 본성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결론임이 드러났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여전히 이런 생각의 연장선상에서 ‘수정액’을 여기저기 칠해가며 보수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자 한다. 인간의 이기심과 허영심을 적당히 만족시켜 주면서(현실을 인정하면서) 현실의 문제들을 개선할 수 있는 방법으로 ‘기부’라는 전략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다. 기부를 늘리기 위한 실제적인 방식에 관한 연구도 철저하게 이전의 ‘문제를 만들어 낸 생각들’ 안에서 찾고자 하는 것. 그리고 여기에서 저자의 한계가 발견된다.

     저자의 인간 이해는 여전히 진화론에 입각한 발전주의적 견해에 머물러 있는데, 이에 따르면 인간이 오늘날 가지고 있는 어떤 속성은 그것이 생존에 가장 적합하기 때문에 남아 있는 것이다. 예컨대 어떤 사람이 먼 지역에 사는 기아에 허덕이는 사람들보다 자기 집에 있는 아이에게 더 많은 비용을 들이고 신경을 쓰는 이유는, 그것이 자신의 종족번식의 본능에 더 이롭기 때문이다. 진화론적 이해는 곧 그런 방식이 옳은 것이라는 가치판단까지 더해준다. 문제는 이 견해는, 왜 그러면 지금 수많은 사람들이 택하고 있는 본성에 충실한 선택을 바꿔야만 하는가에 대해 딱히 대답을 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왜 생존에 가장 적합한 방식을 바꾸고 불리한 선택을 해야 하는가.(같은 방식으로 강간이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이유는 그것 자체에 어떤 이득이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진화론적 윤리학에서는 실제로 등장한다)

     이런 난점을 저자도 인식했기에, 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라는 전혀 다른 ‘감성적 논법’을 사용해서 청자들을 설득하려고 시도한다. 모두들 물에 빠진 아이를 구하는 것이 출근 시간에 조금 늦는 것 같은 약간의 손해를 충분히 감수할 수 있을만 하다고 생각하지 않느냐는 논법의 연장선상에서 기아와 빈곤으로 고통 받는 아이를 구하는 데 적은 비용이면 되는데도 사치품을 구입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식으로 주장하는 것이다. 물론 충분히 설득적인 논법이긴 하지만 모두가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 같다. 왜냐하면 그것은 이미 자연스럽지 못한(다른 말로는 충분히 일반적이지 않은) 행동이니 말이다.(만약 그랬다면 이런 책을 쓸 필요가 없었을 테고) 요컨대 저자의 전제와 주장 사이에는 일종의 ‘도약’이 필요한데, 저자는 이 점을 충분히 인지하지 못하거나, 애써 눈을 돌리도록 만드는 것으로 보인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좀 다른 인간관이 필요할 듯하다.)

 

     이런 난점들에도 불구하고 기부를 장려하고, 이를 통해 사회가 가지고 있는 악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 박수를 보낸다. 내가 가진 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려는 태도는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태도 중 하나가 아니겠는가. 결코 기계론적 인간관에서는 나올 수 없는 이 숭고한 행위가 온갖 악한 행위들 사이에서도 오늘까지 인류를 지속시킨 주된 원인일지도 모른다.

     한편으로 왜 우리나라에는 빌 게이츠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나오지 못하는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사회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위기에 몰릴 때에야 사회 환원 운운 하며 생색을 낼 줄은 알지만, 그렇게 내 놓은 돈으로 무슨무슨 장학회를 만들어 친인척을 이사장으로 앉혀 놓고 거기에서 나오는 경제적 이득은 여전히 누리는, 눈 가리기 식이기 일쑤인 모습을 우리는 좀 더 많이 봐왔으니까.

 

     우리나라도 책임 있는 부(富)에 관한 논의는 시작되었지만 아직 일반화되지는 못한 것 같다. 언젠간 이런 것들이 상식이 되는 그런 세상에서 살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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