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영원한 것은 없기에
로랑스 타르디외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08년 11월
평점 :
왜 삶의 밝은 면만 기억해야 하는 걸까? 빛을 눈부시게 만드는 건 어둠인데 말이야.
1. 줄거리 。。。。。。。
십오 년 전 헤어졌던 여자에게서 어느 날 연락을 받은 뱅상. 그녀가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이었다. 오랫동안 잊고 지냈던, 아니 잊으려고 애썼던 그녀의 소식이었기에 소식을 받고도 가야할 지 잠시 고민하기도 했지만 결국 뱅상은 그녀에게로 달려간다.
언뜻 헤어진 옛 애인을 잊지 못하고 다시 불러내는 끈질긴 애착의 주인공처럼 보였던 주느비에브. 하지만 그녀의 기억을 따라 읽다보면, 그녀와 뱅상 사이의 특별한 관계와 그들 사이에 있었던 슬픔을 접하게 된다.
마침내 만난 두 사람. 주느비에브는 죽어가고 있었고, 뱅상은 그런 주느비에브를 보며 무엇을 해야 할 지 우왕좌왕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영원한 것은 없다는 사실을 차차 받아들이게 된다.
2. 감상평 。。。。。。。
너무나 큰 슬픔으로 인해 결국 서로로부터 멀어지게 된 두 사람. 영원할 것만 같았던 두 사람의 사랑은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 앞에서 결국 깨어지고 말았다. 전형적인 프랑스적 정서의 반영인지, 그들은 각각의 자리에서 슬픔에 대처하려고 했지만, 인간이 살면서 겪는 슬픔은 결코 혼자서 모두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 다른 방향으로 좀 더 철저히 혼자가 되기 위해 걸어간다. 현대의 지배적 사조 중 하나인 개인주의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비극적 결말이다.
누군가와는 나누어야 하고, 누군가의 위로를 받아야 좀 더 빨리 극복할 수 있는 슬픔이라는 정서. 그저 함께 울어주는 것만으로도 족한, 그래서 누구라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개인주의가 지배하는 세상은 점점 ‘함께’라는 의식을 갖기 어려운 지경이 되어가고 있다. 세상의 눈물은 점점 말라 가고 있어서, 우리는 누군가의 비극을 텔레비전을 통해 보면서도 얼마든지 맛있게 식사를 할 수 있을 정도다. 참 슬픈 일이다.
책 제목처럼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우주는 탄생의 그 순간부터 엔트로피의 증가과정이 끊임없이 계속되고 있을 뿐이고, 모든 것은 점점 구성되기보다는 해체되고 있다는 것이 인간 지성들의 연구 결론이다. 이런 추세를 거스르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다시 과학의 힘을 빌려 영원에 닿으려고 애를 쓰지만, 과연 그게 가능할까는 뒤로 하고라도 그렇게 되면 정말 행복할까에 대해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영원하지 못한 인간이 영원한 것을 탐낼 때, 또 얼마나 많은 것들이 희생되고 죽어가게 될지.
스스로가 영원하지 못하다는 것을 인정할 때, 인간은 겸손해지기 시작한다. 또, 슬퍼해야 할 일에 진심으로 슬퍼하는 건 아직 인간다움을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증거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감정이 사람을 지배하도록 내어버려두는 것도 썩 적절한 일은 아니다. 소설 속 등장하는 두 명의 주인공은 슬픔에 지나치게 자신을 내어맡겨, 결국 감정에 인간 자체가 매몰되는 아쉬운 선택을 해 버렸고, 그 선택은 십 수 년 동안 모두를 정체시켜버렸다. 감정에 중독되어버렸다고나 할까.
영원에 대해, 슬픔에 대해 잠시 생각해 보게 만드는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