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여자의 자서전
김인숙 지음 / 창비 / 2005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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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기억은 훼손되지 않은 채, 혹은 못한 채 아예 ‘종신’이 되어버리기도 한다는 것을,

혹은 훼손조차 기억이 된다는 걸……

 

1. 줄거리 。。。。。。。

 

     김인숙 작가가 쓴 여덟 편의 단편소설을 모은 소설집이다.
 


     돈을 위해 원치 않는 사람의 자서전을 써야 하는 한 여성 작가의 이야기(「그 여자의 자서전」), 학창시절 모두가 가까이 가고 싶어 하지 않았던 동기를 십수 년이 지난 후 다시 만난 여자의 이야기(「숨은 샘」), 어렸을 때 본 공개처형 사건에 대한 기억으로 평생을 괴로워하는 아버지와 돈을 벌기 위해 한국으로 가려고 바라지 않는 결혼까지도 감수하는 그의 딸 이야기(「바다와 나비」), 사랑했던 여자의 마지막을 지켜보지 못했다는 자책감에 이국땅에서 괴로워하는 한 사내의 이야기(「감옥의 뜰」), 자신의 의심으로 결국 떠나버린 한 여자에 대한 기억으로 슬퍼하는 트럭 운전사의 이야기(「밤의 고속도로」),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평생을 자식들을 위해서만 살아오신, 이제는 너무 늙고 쇠약해진 어머니와 함께 3박 4일간의 짧은 여행을 떠난 딸의 이야기(「짧은 여행」), 공사장 사고로 전신마비가 된 남편과 자신을 볼 때마다 신경질을 부리는 시어머니를 부양하기 위해 모텔에서 청소일하며 하루하루를 버텨나가는 한 여인의 이야기(「모텔 알프스」), 한창때의 기억을 잊지 못하고 결국 정체되어버린 한 전직 성우이자 이제는 베이비 시터가 된 어떤 여자의 이야기(「빨간 풍선」)가 담겨있다.


 

2. 감상평 。。。。。。。

 

     여덟 편의 소설을 읽었는데도 서평을 쓰려고 마음먹은 순간, 각 소설이 어떤 내용인지 정확히 구분이 안 됐다. 각각의 소설을 발표한 지면도, 연대도 달랐지만 그만큼 소설들에서 느껴지는 분위기가 비슷했기 때문이다. 책의 표지색처럼 미묘한 블루. 우울함, 상실감, 오랜 시간 동안 지속되는 그 쓴맛이 소설 전체를 감싸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읽는 김인숙의 작품이었는데, 이전에 읽었던 여류 작가들인 신경숙이나 공지영의 소설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좀 더 감상적이고, 좀 더 사색적인 느낌이라고 할까. 공지영 식의 사랑중독증에 빠진 주인공이 등장하지도 않고, 최근에 나온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의 폭넓은 공감을 유도하는 공통의 애틋함을 다루고 있지도 않았다. 물론 한 권만 가지고 전체를 다 평가하기란 어렵겠지만, 적어도 이 책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좀 과하다 싶을 만큼 자신만의 생각에 깊이 빠져있다.

     바로 이 점이 소설을 읽으면서 계속 답답한 느낌을 주는 이유가 아닌가 싶다. 여덟 편이나 되는 (단편)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들 중 누구도 다른 사람과 소통을 하고 있는 사람이 없었다. 그들은 철저하게 자기 혼자서 생각하고, 느끼고, 해석하고, 경험하고 있었다. 모두가 ‘평균 이상’의 호사를 부리며 사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한결같이 ‘비참한’ 상황에 빠져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통을 하지 못하는 그들은 철저히 외로웠고, 결국 그런 외로움은 인물들 자신들을 파괴하는 모습으로 진전될만한 위태함을 보여준다.

     모든 사람들과의 관계를 단지 ‘너와 나’로만 치환해버리는 현대인들이 겪는 가장 일상적인 질병 중 하나가 ‘우울증’이라는 사실은, 그리고 그 병이 깊어졌을 때 많은 사람들이 선택하는 것이 자기 살해라는 끔찍한 일이라는 것은 무엇을 보여주는 걸까. 결국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은 ‘우리’라는, 건전한 공동체라는 것을 보여주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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