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책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02년 8월
평점 :
품절


독자여, 그대는 이제 알게 되었을 것이다

이 세계와 우주를 가장 잘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은

다른 어느 누구도 아니고 바로 그대 자신이라는 것을.

 

        독자에게 말을 거는 책이다. 수사적인 의미에서가 아니라, 책 자체가 그렇게 하고 있다. 아예 책은 독자를 ‘당신’이라고 부르면서, 자신과 대화를 할 것을 요구한다. 책은 마치 여행 가이드가 여행자를 인도하듯이 독자를 여행지로 인도한다. 그 여행은 기차나 버스를 통해 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여행이다. 공기, 흙, 불, 물의 세계를 여행하면서, 독자는 이 세상과 자신 안에 가지고 있는 여러 문제들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된다. 



        베르나르가 또 한 건 올렸구나 싶은 책이다. 독자는 책과의 대화를 통해 정신의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정신의 흐름에 따라 글을 써 내려가는 기법을 사용한다는 점에서 심리주의적인 소설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좀 더 정확히는 정신의 흐름을 유도하는 책이니, 뭐라고 해야 할까... 복잡하다. 

        책은 ‘상상의 힘’ 혹은 ‘명상’의 힘을 극대화시키는 서술로 일관한다. 이는 라마승들의 참선에 대한 서술에서 확연히 드러난다. 저자에 따르면, 신도 지도자도 필요치 않다. 오직 자신의 정신의 힘이 모든 것을 풀어나갈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이 사실을 깨닫는 순간, 그의 힘은 예측할 수 없을 만큼 강해진다. 자신의 내부에 안락한 집을 만들어 그 안에 들어가는 것만으로도 고달픈 삶에서의 피난처를 마련할 수 있다. 그리고 그 곳에는 문제의 해결책이 존재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약물이나 컴퓨터 프로그램, 고행 등을 이용해 그 상태에 도달하고자 하지만, 책은 단지 정신의 힘만으로도 가능하다고 말한다. 전반적으로 동양적인 선의 분위기가 물씬 느껴지는 부분이다. 저자 자신은 책의 서두에서 이 책의 내용은 특정의 종교나 뉴 에이지와 같은 사상을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고 밝히고는 있지만, 책의 전체에서 묻어나오는 뉴 에이지적 요소는 감추려야 감출 수 없을 것처럼 강하게 느껴진다. 마치 뉴 에이지 명상법 실천편을 읽고 있는 듯한 느낌의 책. 

 

        그럼에도 불구하고 책이 가진 또 하나의 힘과 가능성을 제대로 잡아서 대중적으로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저자의 번뜩이는 생각에 놀라게 된다. 과연 글이라는 것은 얼마나 큰 힘을 가지고 있는 것인지. 책의 곳곳에 나오는 사회의 여러 문제들에 대한 예리한 비판적 시각 역시 베르베르 특유의 날카로움이 제대로 드러나는 부분이었다. 

        하지만 책 자체가 띄고 있는 사상적 경향이 여러 면에서 내가 가진 것과 충돌을 일으키기에, 책의 문학적 시도 외에는 그리 좋은 점수를 주기는 싫었던 책.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