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교황 조안 1
도나 울포크 크로스 지음, 송은경 옮김 / 예담 / 1999년 7월
평점 :
절판


        여교황. 과연 실제로 존재했는가의 여부는 둘째로 치고서라도, 상당히 흥미로운 내용임에는 틀림없다. 시오노 나나미가 쓴 다른 책에서 간단하게나마 이 이야기에 관해 접해본 적이 있어서 주제에 대해 좀 더 흥미를 갖고 읽게 되었다.

        간단한 줄거리는 이렇다. 9세기 초, 가난한 지방사제의 딸로 태어난 조안은, 어렸을 때부터 배움에 많은 관심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 시대는 여자가 공부를 하는 것 자체를 용납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이 대다수였다. 하지만 조안은 여러사람의 도움으로 배움을 시작할 수 있었고, 이후에는 남장을 하고 ‘존 안글리쿠스’라는 이름으로 수사 생활을 시작한다. 몇 차례의 위기를 겪은 그녀는, 로마로 들어오게 되고, 교황의 주치의를 거쳐 마침내 교황으로 즉위한다. 하지만 제럴드라는 오래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람과의 사랑은 그녀를 임신하도록 만들고, 종국에는 길에서 출산을 하면서 죽음을 맞는다. 이후 사람들은 그녀의 존재 자체를 부끄럽게 여겨서 그녀의 기록을 없애버렸다는 이야기다. 


        이야기 자체는 온갖 역경을 이겨내고 마침내 영광을 얻는 한 여성의 이야기이다. 저자는 이 소재를 통해서 패미니즘에 입각한 작품을 멋지게 써 내려가고 있다. 여자가 받는 사회적 억압에 대해 매우 비참하게 설명하고 있으며, 결혼을 통해서 남자에게 구속이 된다던가, 성공이라는 것은 사회에서 남성과 동등한, 또는 그보다 상위에 올라가는 것이라는 대결적 구도를 상정하고 있기도 하다. 결국 성공을 하기 위해서는 남성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논지를 읽을 수도 있었다. 

        또, 비록 이야기는 교황이라는 종교적인 소재와 밀접한 관련이 있지만, 저자가 써 내려가는 인물의 대부분은 종교와는 거리가 먼 성격을 지니고 있는 모습이다. 자연히 작품 전반에 흐르는 분위기는 기독교적이지 않다. 중세 기독교의 여러 오류나 잘못을 지적하는 것은 괜찮았지만, 아예 근본적으로 기독교에 대한 편협한 이미지만을 설정하고 있다. 

        기독교 묘사에 있어서 중세 기독교의 오류를 비판하면서, 논리적, 이성적 사고를 깡그리 무시하는 근본주의적인 기독교를 상정하고 있는데, 이것이 단지 중세적인 기독교만을 향한 비판인가 하는 질문을 하게 된다. 반대로 조안이 생각하는(따라서 긍정적으로 그려지는) 이성적 기독교는 자유주의적인 기독교계의 해석과 매우 일치되는 부분이 많다고 느껴졌다. 




        하지만 ‘열리기 어려운 시장’에 관한 설명, 혼합적인 성격의 로마를 묘사하는 부분 등은 매우 실감나게 그려지고 있다. 치안이 불안했던 당시 시장이라는 것이 얼마나 빅뉴스인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로마 역시 그러했다. 그 밖에 작품 전반에 걸쳐서 묘사되고 있는 중세의 시대상들은 매우 생동감이 넘쳤다. 

        다만, 인문주의의 영향을 받았는지, 중세에 대한 묘사가 하나같이 암울하고 부정적인 것은 좀 눈에 거슬렸다. 과연 중세는 암흑기였는가. 당시 사람들은 즐거움은 전혀 없었으며, 언제나 우울한 삶만을 영유했는가 하는 점은 충분히 가능한 질문이라고 본다. 중세에 대해 너무 단편적인 면만을 강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작품에 지나치게 현대적인 냄새가 난다는 점이 좀 불만스럽지만, 그래도 전반적으로는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던, 흥미로운 책이다.

        중세를 다룬 현대의 이야기라고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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