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 변화가 전부는 아니다 - 기후 위기를 둘러싼 종말론적 관점은 어떻게 우리를 집어삼키는가
마이크 흄 지음, 홍우정 옮김 / 풀빛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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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실히 ‘기후’는 이 시대를 상징하는 주제어 가운데 하나다. ‘기후 변화’, ‘이상 기후’라는 말이 나오더니, 어느 순간부터 ‘기후 위기’라는 말로 바뀌었고, 이제는 ‘기후 재앙’이라는 표현도 더 이상 낯설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이와 함께 파국의 날을 계산하는 카운트다운도 꽤 자주 보인다. 카운트다운 속의 남은 시간은 (당연히) 볼 때 마다 줄어드는데, 종종 그 속도가 급가속되기도 한다.


이른바 기후 종말론이 우리 시대를 덮고 있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기후 문제가 ‘전부’인 것처럼 생각하는 이들이 있다. 이런 생각이 문제인 이유는,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모든 문제의 원인을 기후로 돌리고, 기후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모든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유일한 목표인 것처럼 착각을 일으키게 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바로 그런 “기후주의”의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 쓰였다.






오늘날 기후주의는 하나의 사상이 되었다. 모든 문제를 기후의 문제로 환원시키면, 자연히 다른 것들은 보이지 않는다. 시리아에서 내전이 일어난 것도, 수많은 난민들이 유럽으로 몰려드는 것도, 미국에서 큰 산불이 자주 일어나거나, 텍사스의 전력망에 장애가 발생하고, 사람들의 수면이 부족하고, 점점 사나운 게시물을 SNS에 올리고 하는 식의 모든 문제가 다 기후 때문이라는 식이다.


하지만 이런 문제들은 단순히 기후 이상의, 훨씬 더 복잡하고 다양한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원인들이 배경에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기후주의는 이런 복잡한 배경을 단순화하고, 당연히 해결절차 역시 맹목적이 되게 만든다. 예를 들면 탄소배출량을 일정한 수치로 줄이는 것이 지금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이라는 식으로. 그 결과 저개발국가의 사람들에 부당한 억압적 조치를 가하거나, 예상치 못한 부작용으로 오히려 애초의 목표 달성을 더 어렵게 만들기도 한다. 지구적 규모의 체계는 인간이 모두 살피지 못할 만큼 너무 크기 때문이다.


기후주의는 이제 그 안에 모든 것을 담을 정도로 거대한 바구니가 되어버렸다. 이제 어떤 문제도 우리는 기후라는 용어를 사용해 치환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모습을 저자는 흥미롭게도 종교적인 용어들로 설명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기후주의자들은 마치 영지주의자들처럼 자신들만이 세상에 관한 신비한 지식을 가지고 있다고, 이 지식은 과학자라고 불리는 상급 사제들에게서 전수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앞서도 언급한 종말론적 수사는 여기에 자연스럽게 딸려 온다.


생각해 보면 당면한 기후재앙을 언급하며 진심으로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툰베리 같은 캐릭터는, 흔히 시한부 종말론을 신봉하는 사이비 종교집단 안에서도 발견되는 모습이기도 하다. 이렇게 보면 툰베리가 “과학의 소리를 들으라”며 절절히 외치는 소리는 조금 흠칫한 면이 있다.


그렇다고 저자가 기후 문제의 심각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분명 이 문제는 우리 삶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중요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를 무슨 이념을 좇듯 무지성 돌격을 하다보면 오히려 중요한 다른 문제들을 놓치게 될 수 있다는 뜻이다. 과학은 우리의 미래를 예언하는 도구가 아니다. 과학은 과거의 사례들을 종합해 현재를 설명하는 도구일 뿐이고, 그 예측은 옳을 수도 있지만 심각한 오류를 담고 있을 수도 있다.





그러면 어떻게 하자는 것일까? 저자는 “과학적 불확실성”을 우선 고려하고, 기후주의의 “시한부주의”를 완화하고 “겸손의 기술”과 “가치의 다원성”을 인정하면서 “다원적 목표”를 설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쉽게 말하면 기후문제가 ‘전부’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일부가 철석같이 신봉하는 과학의 한계를 인정하면서, 보다 넓은 시야에서 인류가 마주하는 문제를 풀어나가야 한다는 이다.


조금은 모호해 보이는 제안이긴 한데, 우선은 기후주의로 인해 좁아진 시야라는 문제를 치료하려면 조금 멀리서 문제를 바라보는 게 가장 중요하긴 하다. 또, 저자는 단순히 기후주의로부터 멀어지자는 주장만 하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 중요한 다른 문제들을 좀 더 가까이서 바라보자고 말하기도 한다. 탄소 발생량을 줄인다고 해서 전쟁이 끝나고, 난민들이 고향으로 돌아가고, 살인율이 떨어지고, 우리나라의 출생률이 올라가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기후문제에 관련해 꽤 흥미로웠던 책이다. 조금은 다른 방향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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