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누헤 1
미카 왈타리 지음, 이순희 옮김 / 동녘 / 2007년 8월
평점 :
품절


그러나 나는 진실이란 어린아이의 손에 들린 칼과 같아서

오히려 쥔 쪽이 다치기 쉽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줄거리 。。。。。。。                     

 

     타고난 방랑기를 가진 시누헤. 그는 총명한 머리로 의사가 되었지만, 어느 날 만난 여자에게 마음을 빼앗기면서 자신이 가진 재산은 물론 부모님의 재산가지도 모두 탕진하고 만다. 그 과정에서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깨달은 그는, 결국 고향인 이집트에 정착해 다른 사람처럼 살지 못하고, 평생을 이곳저곳을 방랑하게 된다.

     마침 이집트에서는 새로운 파라오 아케나톤이 등극했고, 그는 아몬 신을 정점으로 하는 이집트의 사제들의 권력을 타파하고 새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아톤이라는 새로운 신을 유일신으로 선포한다. 그의 등극 시부터 함께 했던 시누헤는 또 다른 친구 호렙헴과 함께 아케나톤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애를 쓰지만, 너무나 급진적인 주장인데다가 아몬의 사제들을 중심으로 한 기득권층의 반발은 나라를 점차 혼란에 빠뜨린다.

     그런 가운데 이집트를 떠난 시누헤는, 시리아, 바벨로니아, 크레타섬을 비롯한 근동의 세계 제국들을 두루 여행하며 많은 것들을 보고 듣고 깨닫는다. 오랜만에 돌아온 이집트에서 그는 아케나톤의 개혁이 실패한 결과를 온몸으로 체험하게 되고, 자신의 삶은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돌아보게 된다.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이집트 판 김삿갓의 이야기!?

 

 

 감상평 。。。。。。。                    

 

     책 전체에서 저자의 이력(신학 전공)이 짙게 묻어난다. 이력을 읽어보면 아마도 1920년대 후반에서 30년대 초중반가지 신학을 공부했을 것으로 보이는데, 당시는 소위 ‘자유주의’라고 불리는 새로운 신학 사조가 막 일어나고 있던 시기였다. 더구나 저자의 아버지가 루터파 교회의 목사였고, 이 작품을 발표한 해가 1945년이라는 것까지 생각해 보면, 칼 바르트나 루돌프 불트만 등이 새롭게 만들어 놓은 신학을 접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책의 내용을 읽어보면 그들의 영향을 매우 크게 받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은 이집트의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사실은 성경의 이야기를 하고 있다.(아마도 저자가 택하고 있는 신학적 입장을 반영한 것이리라) 그 중에서도 불트만이 주장한 양식비평(Form Criticism)을 중심으로 삼아 전승비평(tradition Criticism) 등의 입장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 입장을 가지고 있는 학자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쉽게 말하면, ‘성경에 등장하는 여러 내용들은 그 자체로 고유한 내용이 아니라, 당시 이웃하고 있었던 여러 나라의 신화나 전설 등을 모아 재구성 한 것이다’라고 요약할 수 있다. 그들은 이를 ‘양식’이나 ‘전승’ 등을 연구함으로써 증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책에도 ‘야웨’라는 이름이 ‘지방신’으로 등장하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나온다. 또, 호렙헴은 불타는 나무를 보고, 아케나톤은 유일신을 신봉한다. 무엇보다도 책 뒷표지에 실려 있는 소개글에는 아케나톤을 모세의 ‘정신적 스승’으로 소개하고 있다. 이것들을 통해 저자는 성경에 실려 있는 많은 이야기들이 사실은 이집트나 바벨론, 시리아 등지의 신화들을 차용한 것이라는 주장을 이면에 깔고 있다.

     물론, 서로 유사한 두 가지 이상의 내용이 발견될 경우, 하나가 다른 하나로부터 그 생각을 차용했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그것은 ‘가능성’일 뿐(다른 말로 하면 처음부터 끝까지 ‘가설’일 뿐)이다. 서양의 가면과 우리나라의 탈이 그 기능이나 형태에 있어서 비슷한 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둘 중 어느 하나가 다른 것을 베꼈다고 할 수 없지 않은가. 양식비평론자들의 문제는 비슷한 건 모두 서로 연관이 있다고 생각하는 태도에 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설사 영향을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 선후관계를 정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것이다. 이 책의 중심인물 중 하나로, 모세의 정신적 스승으로 소개되고 있는 아케나톤의 재위 연대는 BC. 1352년~1336년이다. 그런데 여러 증거 상 모세의 출애굽의 연대는 BC. 1446년이다. 영향을 받았으면 모세에게서 아케나톤(또는 이그나톤)이 영향을 받았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이런저런 불만이나 이의를 잠시 뒤로 하고 작품 안으로 들어가 보면, 우선 앞서와 같은 그런 점들은 이야기를 더욱 풍요롭게 하는 좋은 재료들로 작용한다. 사실 관계야 어떻게 되었든, 크레타 섬의 미궁이나 미노타우르스, 리바이어던과 같은 소재들은 확실히 이야기꺼리로 괜찮지 않은가.

     하지만 아쉬운 점은 왠지 이야기에 잘 몰입이 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아마도 나와 80여년의 차이를 두고 살았던 저자와 족히 3,300년 전에 살았을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과 그에 따른 사고방식이 오늘을 살아가는 나의 그것과 많은 차이가 있기 때문인 듯싶다. 물론 이 말은 역사소설은 모두 재미없다는 식의 이야기는 아니다. 자신이 전생에 람세스였다고 주장하는 약간은 어이없는 작가 크리스티앙 자크의 ‘람세스’의 경우에는 유사한 시대적 배경을 가지고 있지만 몰입이 잘되니 말이다. 문제는 과거의 이야기를 얼마나 현실에 적절하게 조화를 시키느냐 하는 부분인데, 저자인 미카 왈타리는 너무 ‘그 시대의 이야기’만 하려고 하지 않았나 싶다.

     몰입의 정도와는 상관없이 작품 자체가 지니고 있는 관점이나 적용점들을 이야기할 수 있는데, 작가는 시대적 영향(1, 2차 세계대전)을 받았기 때문인지 지나치게 상황을 극단적으로 몰고 가 비관적인 결론만을 내고 있는 듯하다. 아케나톤의 개혁 작업을 전혀 현실성이 없는 망상으로만 서술해 버리니, 더 이상 이야기가 진행될 꺼리가 있겠는가. 급격한 변화는 수용할 수 있지만, 극단적 변화는 거부하는 것이 인간의 속성이다. 애초부터 개혁이나 변화를 ‘극단적인 것’으로 정의해버린 이상 저자의 이야기에서는 결코 희망의 냄새를 맡을 수 없는 것이다.
 

 

     저자의 세계관이나 글쓰기 방식 모두 썩 마음에 들지는 않았지만, 이야기에 등장하는 다양한 경험들은 고대 근동지방의 문화를 이해하는데 제법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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