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의 속도
엘리자베스 문 지음, 정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7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정상인들이 다른 사람이 취하는 행동의 이유를 언제나 이해하지는 않는다.

정상인들이 행동의 이유나 의도에 대해 언쟁하는 모습을 보면 명백하다.


 




. 줄거리 。。。。。。。                    


     주인공 루는 자폐인이다. 그는 사물에서 패턴을 찾아내는 데 특별한 재능을 가졌고, 회사에서는 그런 루의 재능을 이용해 회사에서 만든 프로그램의 오류를 찾아내는 일을 맡겼고, 루는 그 곳에서 동료 자폐인들 몇 명과 함께 근무를 하고 있다. 비록 일상생활에 있어서 약간의 어려움은 있지만, 매주 수요일이면 참석하는 펜싱 클럽에서 만난 마저리라는 아가씨를 마음속으로 좋아하는 등, 루는 그런대로 사람들과의 관계를 무난하게 지속하며 생활을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루의 회사에 크렌쇼라는 새로운 상사가 부임을 하면서 위기의 징조가 나타난다. 처음부터 루와 같은 자폐인들에 대해 삐딱한 시각을 보여주던 크렌쇼는, 마침내는 그들 모두를 새로 개발된 수술대에 올려서 ‘정상인’으로 만들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는 회사 측에서 루와 동료들에게 제공하는 여러 가지 부대 서비스 비용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만약 루가 ‘정상인’이 된다면 더 이상 그런 서비스를 제공할 이유가 없어지니 말이다.

     하지만 새로 개발된 그 치료기술은 아직 한 번도 사람에게 시술된 적이 없었고, 뇌에 자극을 주는 그 방식은 어떤 치명적인 결과를 낳을 지도 알 수 없었다. 더구나 크렌쇼는 루와 그 동료들에게 새 프로젝트(뇌 시술)에 참여할 것을 해고의 위협을 하면서 강요한다. 과연 루의 미래는 어떻게 될까?

 

     

. 감상평 。。。。。。。                    

 

     자폐증이라는 병(그것은 신체의 일부에 생긴 병이지 미친 것이 아니다!)도 기억상실증과 마찬가지로 ‘낭만적인’ 병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런 식으로 문학작품과 영화 등을 통해 그려지고 있다. 기억상실증이 병 자체의 성격 때문에 그런 배지를 달게 되었다면, 자폐증의 경우는 그 병의 의도치 않은 결과 때문에 붙이게 되었다는 점에 차이는 있겠지만 말이다.(물론 병을 함께 지켜봐야 하는 가족이나 동료들에게 그것들은 생각처럼 낭만적이기만 한 것은 아니다)

     언젠가 KBS의 한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에서 자폐인들을 다룬 내용을 방영한 적이 있었다. 그 프로그램 역시 자폐인들이 가진, 특정 분야에 대한 놀랄 만큼 뛰어난 특징들에 집중하고 있었다. 한 번 보면 그대로 그림으로 옮길 수 있는 능력, 뛰어난 피아노 즉흥곡 연주 및 작곡 능력, 그냥 보기만 해도 머리가 아플 정도의 긴 수식을 빠르게 계산하는 능력, 한 도서관 전체에 꽂혀 있는 책들을 그대로 암기하는 능력 등 비자폐인들의 경우 상상할 수도 없는 능력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는 시각이었다. 영화도 마찬가지다.(‘레인 맨’을 보라) 이런 방송 프로그램 등이나 영화 등은 공통적으로 자폐인들에 대한 이유 없는 두려움이나 적대적 감정을 완화시키려는 목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역으로 그러한 시도들로 인해 자폐인들이 더욱 ‘다른’, ‘특별한’ 사람으로 비춰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엘리자베스 문의 이 책에 등장하는 주인공 루 역시 숫자와 패턴에 관한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것은 그의 증상을 설명하기 위한 한 가지 소재로만 등장할 뿐 소설 전체를 이끌어가는 핵심 소재(그래서 그를 비범한 누군가로 만드는 데 사용되는)로 다뤄지고 있지는 않다. 소설의 루는 그저 비자폐인들과는 약간 다른 방식으로 느끼고, 생각할 뿐이다. 소설은 ‘장애를 가진 자폐인이 어떻게 다른가’에 초점을 맞추기 보다는 그 반대다. 때문에 소설 속의 주인공 루는 끊임없이 장애와 비장애가 어떻게 다른가를 묻는다. 결국 그들 모두 함께 살아가는 동료들인 것이다.

 

 

     주인공 루는 자신의 경험을 통해 비자폐인들도 늘 옳기만 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는다. 비자폐인인 크렌쇼와 돈의 ‘비정상적인’ 모습은 이를 잘 보여준다. 또, 작가는 직접적인 적대행위는 아니더라도, 비장애인들이 장애인들에게 갖고 있는 편견들을 장애인의 입장에서 보여줌으로써 그녀의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나는 숨을 깊이 들이쉬고 냄새를 맡는다. 젖은 잎, 바위에 붙은 이끼, 지의, 바위 자체, 흙…… 자폐인들이 냄새에 너무 민감하다고 쓰인 논문을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아무도 개나 고양이의 민감한 후각은 거북해하지 않는다.’

     ‘자폐인들이 작은 소리에 너무 민감하다고 쓰인 논문을 읽은 적이 있다. 하지만 동물들의 경우에는 아무도 거북해하지 않는다.’

 

 

     한편, 소설적 과장을 대놓고 들이대지 않고 있다는 점은 저자의 뛰어난 글 솜씨를 잘 보여준다. 주인공 루는 마저리라는 여자를 사랑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모든 삶이 마저리에게만 매어 있는 모습은 아니라는 옮긴이의 지적은 그 한 예이다. 그것은 그의 삶의 일부이고, 그의 삶은 훨씬 더 복잡하고도 많은 문제들과 얽혀 있다. 저자는 그 모든 문제들을 균형 있게 다루고 있고, 이는 소설의 내용에 좀 더 많은 생동감을 더해 준다.

 

 

     책을 읽고 나서 자폐라는 증상에 대해 좀 더 알아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책이 가진 사회학적인 목적을 달성했다고 해야 하나? 이야기의 플롯이나 등장인물들 사이의 균형, 주인공의 심리 등 문학적인 면에서도 손색이 없는 좋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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