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애국주의와 고대사 만들기 동북아역사재단 연구총서 128
김인희 외 지음 / 동북아역사재단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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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특별히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동북공정”이라는 명칭을 한 번쯤 들어봤을 것 같다(물론 2000년대 초반 나온 명칭이니 그보다 나이가 적은 경우는 패스). 사실 우리말로 하면 그저 “계획”이라는 뜻일 뿐이지만, “공정”이라는 단어가 주는 어감 때문인지 왠지 뭔가 음모를 꾸민다는 느낌을 주기도 한다. 그리고 실제로 그랬다.


결과적으로 동북공정은 중국의 동북부 지역의 역사를 자국의 고대사로 편입시키려는 당국의 지도 아래 이루어진 관치 역사개조작업이었다. 문제는 그 지역과 관련된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고대사와 충돌한다는 점이었다. 예컨대 부여나 고구려 등 오늘날에는 중국의 영토였던 지역을 점유했던 우리 고대국가들마저도 중국 역사의 일부로 기술하는 식이었던 것.


그런데 이런 “역사 공정”은 이것 하나만이 아니었다. 이 책에 실려 있는 글들은 소위 삼황오제 시대의 전설적인 이야기를 역사로 편입시키고자 하는 중국 정부의 시도를 보여준다. 삼황오제란 중국 최초의 군주들을 가리킨다. 다만 군주라고는 하지만 반쯤은 신화에 가까운, 초기 군장 정도가 아닌가 싶은 존재들로, 그 실체 자체가 불분명한 이야기 속 인물들이다.





네 명의 저자들이 참여한 이 책에서는 다양한 방향에서 중국의 이 역사공정을 다룬다. 첫 머리에서 중국의 이런 공정이 시작된 계기에 톈안먼(천안문) 사태가 있었음을 지적한다. 중국공산당 지도부는 인민들의 사상교육에 대한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고, 역사를 그 주요 도구로 사용하고자 했다.


90년대 말 시작된 “하상주단대공정”에서는 이들 신화 속 인물들과 하, 상 같은 고대 국가이야기를 실제 유적들과 연결시켜 역사 속으로 편입시키려는 작업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었다. 50개가 넘는 민족들이 모여 이루어진 중국이라는 국가는 태생적으로 ‘통합’이라는 과제가 주어져 있었던 데다가, 공산당 일당독제 체제의 특성상 반체제 운동을 막기 위한 사상적 통제 작업으로서 역사가 이용되었던 것이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문한자료와 고고학적 발굴을 억지로 연결시키는 시도가 자주 보였다는 점이다. 애초에 이 작업의 의도에 정치적인 목적이 깊게 개입되어 있었기에, 학술적인 연구방법보다 정치적인 구호가 더 크게 들렸고, 결국 무리수를 둘 수밖에 없었다. 그 결과 중국 전역에 이들의 유적이 동시에 존재하거나, 같은 인물의 존재 시기가 1000년이 넘게 흩어져 있다는 식. 고고학적 발굴로 중국 각지에 존재했던 고대 유적들이 연구되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그걸 억지로 하상주나 염제와 황제 등 신화적 인물과 연결시키는 건 무리라는 뜻이다.





사실 옆에서 보기엔 조금은 우스꽝스러운 소동인 것 같지만, 막상 그 나라 사람들에게는 점점 이게 먹혀들어가고 있는 것 같다는 점이 또 우려스럽다. 소위 “분노청년”이라고 불리는, 맹목적인 쇼비니즘에 물들어 멍청한 구호나 외쳐대는 이웃나라의 2, 30대들과 우리는 과연 합리적인 관계라는 미래를 꿈꿀 수 있을까? 또, 자신들은 한 발 물러선 채, 그렇게 젊은이들이 선동당하는 것을 자신의 정치적 목적에 이용하는 현재의 공산당 권력층은 또 우리에게 어떤 해를 끼칠까.


또 한편으로,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자국우선주의에 근거해 역사수정주의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시대에, 자기가 먼저 나서서 식민 가해국에 면죄부를 주고, 패권국가에게 머리를 조아린 채 당신들은 죄가 없다고 안심하게 해 주는 우리나라의 대통령과 집권여당은 참으로 독특한 존재인 것 같다. 이들은 세계 평화를 위해 자신을 먼저 낮춰야 한다고 믿는 진정한 평화주의자들인가, 아니면 그냥 멍청이들인가.


역사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역사가 정치에 의해 이리저리 휘둘리는 게 퍽 안타깝다. 물론 고대로부터 역사 기술이라는 것이 정치적 목적과 분리될 수 없었던 영역이긴 하지만, 그렇게 기술된 기록의 해석과 정립에는 최소한의 기준과 합리적 과정이 보장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건 역사가 아니라 그냥 소설에 머물 테니까.


중국의 고대사 공정은 국제적으로 그닥 인정을 받지 못하고 있고, 상황은 변하지 않을 것 같다. 문제는 그런 중국의 인구가 수억에 달한다는 점인데, 지록위마라는 옛 말처럼, 수억 명이 우기기 시작하면.... (아, 이걸 노린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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