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신학(신약) 전공자인 저자는 이 문제를 복음서를 좀 더 자세히 읽는 것으로 풀고자 한다. 복음서(와 다른 신약 저작들)의 저자들이 생각한 복음은 징벌과 그 면제라는 좁은 개념이 아니라, “이 세상에 큰 영향을 주는 좋은 일이 이미 시작되었다는 선언”이었다는 것. 여기에서 선언이란 단순히 상징적이고 공식적인 언급에 불과하다는 의미가 아니라, 실제로 그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알리는 일이라는 뜻이다.
복음서가 쓰일 당시 널리 통용되었던 ‘복음’에 관한 이해가 있다. 그것은 황제와 같은 인물들이 자신이 이룬 결정적인 승리, 혹은 어떤 업적을 널리 선전할 때 사용하던 용어였다. 이제 그 조치로 인해 장차 더 좋은 일이 확정적으로 일어날 것이고, 당연히 현재 그 사건을 마주하는 사람들의 삶을 바꿀 것이다. 저자는 기독교의 복음 또한 이런 식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문제는 오늘날 많은 교회가 초대 교회의 이 ‘선포’를 매우 ‘개인적인 차원에서의 변화’나 ‘천국에 가기 위한 방법’으로, 그리고 좋은 소식이 아니라 충고 정도로 바꾸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이렇게 만들면 복음이 갖는 애초의 역동성과 기쁨이 사라지고 대신 지루하고 부담스러운 규칙들이 양산된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