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산
아멜리 노통브 지음, 이상해 옮김 / 문학세계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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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것은 사람들이 흔히 하는 순진한 착각이다.

사람들은 텔레비전이 그들을 얼마나 추하게 만드는지 모르고 있다.





 

. 줄거리 。。。。。。。                    

 

     당연히 모든 언론들은 일제히 그 말도 안 되는 프로그램을 방송하는 방송사와 제작자들을 비난했다. 하지만 ‘타인의 고통만으로는 더는 충분치 못한 순간이 왔고, 그들에겐 고통의 쇼가 필요’하다는 책의 첫 문구처럼, 사람들은 열광적으로 프로그램을 시청한다. 허약해지고 쓸모없게 된 사람들을 골라내 죽이고, 남아 있는 사람들은 하루 종일 채찍질을 당하며 필요없는 공사에 동원되는데도, 사람들은 비난을 할 뿐 여전히 텔레비전 앞에 앉아 있다.

 

     수용소에 끌려간 사람들 중 한 명인 파노니크(CKZ 114)는 이런 반인륜적인 상황에서도 끝까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애를 쓰고, 그런 그녀의 모습은 그녀의 빼어난 외모와 함께 순식간에 시청자들의 주목을 받는다. 납치된 사람들을 괴롭히기 위해 선발된 ‘카포’들 중 하나인 즈데나 또한 그런 그녀에게 매료되면서, 이야기는 어떻게 흘러갈 지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한다.

 

     파노미크는 수용소를 나올 수 있을까? ‘집단 수용소’라는 프로그램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 감상평 。。。。。。。                    

 

     하지만 저자의 문제 제기는 단지 그런 비윤리적이며 시청률지상주의에 빠져있는 방송 제작자들만을 향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저자는 사태가 이지경이 된 더 큰 원인으로 시청자들, 대중들을 꼽는 듯하다. “이런 파렴치한 방송을 보는 이상, 시청자들이 이 방송을 만들어냈다고도 할 수 있어요”라고 말하는 파노니크의 말은 이를 잘 대변한다. 사람들은 한없이 ‘집단수용소’를 비난하지만, 동시에 너나 할 것 없이 그 프로그램의 열렬한 시청자의 역할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그들은 리모컨으로 다음에 죽게 될 사람들을 투표하기까지 한다! 그것이 스토리상의 죽음이 아니라 실제의 죽음을 의미한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아울러 위의 두 가지에 대한 고발은 자연스럽게 사회 구조적인 문제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진다. 텔레비전이라는 매체 자체가 가지고 있는 한계와 부작용들, 그리고 그것을 통해 먹고 사는 언론, 비평가들, 정치인들 모두가 비판의 대상이 된다. 저자는 단단히 화가 난 것처럼 보일 정도다.

 

 

     물론 저자는 비난만으로 책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은 아니다. 저자는 이런 문제들을 통해 진정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그것을 지키기 위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지를 묻고 있다. 거추장스럽게 꾸미는 것들이 모두 제거된 극한의 상황에 처했을 때, 정말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더 잘 드러나는 법이니 말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저자는 그에 대한 답을 분명하게 보여주지는 못하고 있다. 그 가장스러운 프로그램을 중지시킨 것은 협박과 위협이었고, 그 목적은 단지 한 개인에 대한 사랑이었다. 물론 파노미크의 작은 투쟁이 수용소 내에서 잔잔하지만 긍정적인 변화를 이끌어내기는 했지만, 여전히 문제는 남아 있고, 세상은 변하지 않았다. 이일을 어찌할꼬?

 

     아멜리 노통브의 작품은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눠질 수 있다. 하나는 ‘이토록 아름다운 세 살’로 시작하는 자전적 소설류(‘사랑의 파괴’, ‘배고픔의 자서전’, ‘공격’ 등)와 ‘살인자의 건강법’으로 시작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과 고발이 담긴 작품들(‘적의 화장법’, ‘오후 네 시’ 등)이 그것이다. 물론 이 작품은 후자 쪽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한동안 저자의 자전적 소설들만 읽으며 보냈었는데, 오랜만에 저자의 날카로운 시각을 느낄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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