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을 움직이는 작은 공동체, 세이비어교회
유성준 지음 / 평단(평단문화사) / 2005년 3월
평점 :
절판



"큰 규모는 실제로 효과를 반감시킵니다.

그것은 오히려 반문화적이기 때문에

깊이를 가지고 문화로의 중독을 거부하고

진정으로 복음의 증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들의 공동체에는 불리하게 작용합니다.

따라서 세이비어교회는 숫자를 통해서 오는 힘의 유혹을 의도적으로 거부합니다."

 

 

. 요약 。。。。。。。              

 

     대형 교회가 곧 좋은 교회로 여겨지고 있는 요즘, 이런 추세와는 정반대로 나가는 교회 공동체가 하나 있다. 바로 ‘세이비어 교회’이다. 세이비어 교회는 작다. 교인으로 등록된 사람이 고작 수십 명(지금은 좀 더 늘어났을지 모르겠다)에 불과하다. 하지만 그 작은 교회가 다른 수 천, 수만의 교인들이 모여 있는 교회보다 더 큰 일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저자는 세이비어 교회만의 철저한 훈련과 올바른 비전의 제시가 이 놀라운 일을 일으킨 원동력이라고 설명한다.

 

     이 책은 세이비어 교회를 탐방한 저자가 그 교회에서 받은 감동을 나누고, 교회의 몇 가지 사역들을 소개함으로써 다른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종의 교훈을 주고자 하는 목적으로 쓰였다.

 

 

 

     자원봉사자들이 무보수로 매년 7,000시간씩 봉사를 함으로써 운영되는 무료 병원인 ‘콜롬비아 로드 진료소’, 노숙자들을 돌보고 보듬어주기 위해 세운 ‘그리스도의 집’, 마약과 알콜 중독자들을 위한 ‘사마리아인의 집’, 인근의 낡은 아파트 두 동을 구입해 집이 없는 이웃들에게 저렴한 임대료로 보급하기 시작해 이제는 수십 동의 아파트를 사용할 수 있게 발전한 ‘희년 주거사역’. 빈민지역 저소득층 주민들을 위한 ‘만나 주거사역’ 등, 이름만 들어도 크고 놀라운 일들을 어떻게 그 작은 공동체가 추진하고 있었을까를 설명하는 1장과 2장이 지난 후, 저자는 잠시 논의를 밖으로 돌려서 교회사 속에서 나타난 공동체 운동의 흐름을 살피며 세이비어 교회와 같은 시도가 역사적으로 반복적으로 나타났음을 보여준다.(3장) 4장부터 6장까지는 저자가 받은 감동을 바탕으로 독자들에게 바람직한 교회관을 제시하고자 한다.

 

 

 

. 감상평 。。。。。。。          

 

     오랜만에 멋진 교회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소위 ‘성공하는 교회’, ‘부흥하는 교회’라는 이름으로 교인 숫자가 많이 늘고, 큰 건물을 지은 교회들을 소개하는 책은 많지만, 정작 성경에 나온 정신과 비전에 충실한 교회를 소개하는 책은 생각보다 드문 것이 현실인데, 이 책은 달랐다.

 

     세이비어 교회 이야기에서 무엇보다 깊은 인상을 준 것은, 교회의 외형보다 본질에 충실하고자 애쓰는 모습이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교회가 되고자 노력을 안하는 수준이 아닌, 아예 사람이 늘어나는 것 자체를 경계하는 고든 코스비 목사의 생각은 약간 충격적이기까지 했다.(물론 나는 교인이 늘어나는 현상 자체까지를 부정적으로는 보지는 않는다.)

     또 한 가지를 꼽는다면 세이비어 교회의 폭넓은 사역이다. ‘나눔과 섬김’이라는 비전 아래 이루어지는 여러 사역들은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이 세상에 실현하는 현장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세이비어 교회와 같은 시도들이 하나 둘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은 크게 고무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렇게 세이비어 교회 자체에 대해서는 많은 도전을 주는 책이지만, 책 자체로서의 구성이라는 면에서는 많은 아쉬움이 남는다. 이 책은 세이비어 교회의 사역들을 설명하는 책인가, 아니면 세이비어 교회에 관한 저자의 감상을 쓴 책인가. 저자는 이 책의 장르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잡한’ 책을 만들고 있다. 세이비어 교회의 사역에 관한 설명이 이어지다가 갑자기 저자의 감동과 의견이 나오는가 하면, 교회의 인물들의 자서전에 자신의 자서전을 끼워 넣기도 한다. 때문에 책의 흐름이 자주 끊어지는 듯 한 느낌이고, 책이 좀 가벼워 보이기도 한다.

     두 번째로 교회사에 관한 저자의 사관에는 선뜻 동의하기 어렵다. 감리교적인 배경을 갖고 있는 저자이기 때문에 감리교에 대한 호의적인 평가까지는 뭐라 하기 어렵지만(사실 감리교가 영국사회에 일으킨 혁명적인 영향력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고대의 몬타누스와 같은 인물까지 호의적으로 볼 수는 없지 않은가.

 



     책이 설명하는 내용은 참 좋지만, 저자의 약간은 성가신 개입이 몰입을 살짝 방해하는 책. 과유불급이라고 해야 하나.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