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셜리 클럽 오늘의 젊은 작가 29
박서련 지음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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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서련의 『더 셜리 클럽』은 사랑의 사랑에 의한 사랑을 위한 소설이다. 워킹 홀리데이로 호주로 떠난 설희는 그곳에서 일과 사랑 두 마리의 토끼를 잡는 것은 아니고 일은 빼고 사랑을 얻는다. 성격 이상한 셰어 하우스의 마스터를 만나 잘하고 있던 치즈 공장의 일자리는 빼앗겼지만 사랑으로 충만한 사람을 만나는 행운을 얻는다. 영어 이름 셜리. 멜버른 커뮤니티 페스티벌에서 셜리는 인생에 있어서 몇 번 오지 않을 대단한 만남의 기회를 갖는다.


행렬의 끝에서 나타난 사람 좋아 보이는 할머니들. 작은 현수막에는 '더 셜리 클럽 빅토리아 지부'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다. 셜리는 당연히 그 행렬을 쫓아간다. 자신의 이름도 셜리라면서. 할머니들은 카페로 올라갔고 셜리는 따라 들어간다. 셜리 클럽에 끼기 위해 기회를 엿보던 중. 운명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셜리의 표현대로 '거의 완벽한 보라색 목소리'를 가진 S였다.


셜리는 그날 '재미, 맛있는 것, 친구'를 최고로 치는 셜리 클럽의 임시-명예-회원이 될 기회를 얻었고 S의 만남도 이어갈 수 있는 시간을 가졌다. 『더 셜리 클럽』은 워킹 홀리데이의 '희망' 편이라고 박서련을 밝힌다. 모든 이들이 소설에 나오는 것처럼 따뜻하고 악의 없는 사람을 만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셜리가 만나는 사람들(몇몇을 제외하곤)은 셜리에게 기꺼이 도움의 손길을 내민다.


먼저 연락을 해주고 피자를 먹으러 가고 공항에 내렸을 때 황망해 하지 않도록 마중을 나와주고 머물 곳을 안내해 준다. 누구나 그 정도의 도움을 줄 수 있는 거 아냐. 반문할 수 있는데 사실 그렇지 않다. 악의 없는 선의를 베푸는 건 노력과 연습이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언어와 문화가 다른 낯선 곳에서 온 이방인에게는 이방인이 아니더라도 타인에게는 약간의 경계심이 우리 안에 자리 잡고 있다.


내성적인 성격의 셜리가 이름이 같은 사람들이 모인 클럽에 먼저 다가간다. 함께 하고 싶다고. 이름이 같은 것 빼고는 공통점이 없지만 그것만이라도 우리는 함께 할 이유가 충분하지 않느냐는 마음으로. 셜리라는 이름은 우리 식으로 치면 '자'나 '숙' 자로 끝나는 이름보다도 오래된 느낌의 이름이다. 자신들보다 나이가 한참이나 어린 동양인 여자가 셜리라는 이름이라고 함께 하고 싶다고 할 때 그네들은 기꺼이 리틀 셜리를 받아준다.


그리고 S. 첫 만남에서 묘한 기분을 느끼게 했던 S. 셜리는 자신에게 다가온 보라색 사랑의 느낌을 받아들인다. 표지만큼이나 핑크 핑크 한 사랑의 느낌으로 가득한 『더 셜리 클럽』. 행복한 결말로 소설의 끝내주어서. 전 세계 어느 도시에 가더라도 셜리 클럽 지부가 있어 셜리들이 마중 나와줄 것 같은 희망의 기운을 느끼게 해주어서. 연대는 거창한 게 아닌 꼭 끌어안아주고 전화를 대신 걸어 주는 일이라는 걸 알게 해주어서. 고맙고 기쁘다.


기사를 찾다가 읽은 박서련의 인상 깊은 워홀 에피소드. 룸메이트랑 싸워서 거리에서 울고 있었다고 한다. 교복 입은 청소년들이 박서련에게 다가와 길을 잃었냐며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라고 했단다. 실제 나이는 박서련이 많았을 텐데. 길에서 울고 있는 누군가를 그냥 지나치지 못했던 선량한 학생들. 그때 받았던 선의. 삶은 미약한 온기로 우리가 가진 냉혹함을 미지근하게 만들어준다. 요즘 울기만 하는 당신을 위한 소설 『더 셜리 클럽』. 읽고 나면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노래를 부르며 즐거운 기분을 느끼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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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해 생활
송지현 지음 / 민음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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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에서 나오는 한국 소설, 한국 에세이, 한국 시집을 많이 읽는다. 안다. 민음사에는 세계 문학과 다양한 인문 교양서도 많이 나온다는걸. 그런데도 나는 한국 작가들이 쓴 책을 주로 읽는다. 나라를 사랑하는 주관이 뚜렷하고 의식이 투철한 애국주의자, 국수주의자는 절대 아니고. 이해 가능한 범위 내에서 독서를 하는지라 내게는 한국 문학이 찰떡이다.


한국, 사랑한다. 이제서야 고백한다. 의료보험 잘 되어 있고 택배 시스템 훌륭하다. 오죽했으면 세계 여행 한 번도 안 가봤을까. 첫 월급 받은 기념으로 여권을 만들었는데 10년 동안 한 번도 안 쓰고 갱신 기한을 넘겨 버렸다. 한국을 사랑하는 것과 외국 여행 안 가본 건 무슨 상관일까 싶은데. 이왕 쓸 돈 우리나라에서 쓰자는 이상한 고집 때문이다.


여행기를 꾸준히 읽는 것으로 지식을 넓힌다. 여행을 책으로 배웠다. 책만 펼치면 방구석에서도 여행이 가능하다. 남의 고생기를 읽으며 안 가길 잘했어, 행복 회로를 돌린다. 일상의 피곤함을 독서로 달래 보는 것도 요즘 같은 시대에 현명한 방법이다. 먹는 우울증 약이 아닌 읽는 우울증 약을 받아드는 셈이다. 책 읽기란. 소설가 송지현의 에세이 『동해 생활』을 읽으며 사는 거 참 별거 아니다 하는 위로뽕 맞았다.


소설가 송지현의 첫 소설집은 안 읽고 첫 에세이를 읽었다. 조만간 읽을 게요. 『이를 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요. 『동해 생활』을 보니 해외여행 못 가니까 국내용으로 이런 기획으로 '생활 시리즈' 나오면 대박 치겠다. 여수 생활, 통영 생활, 남원 생활, 강릉 생활, 충주 생활…. 송지현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써도 되고 다른 작가가 이어받아서 써도 되고. 민음사 관계자분들이여. 나의 대박 아이디어를 받아 적으시라. 코로나 시대에 여행 못 가는 이들에게 환영받으며 베스트셀러에 진입하고….


그냥 그렇다는 거다. 우울증에 시달리고 실직하고 아빠가 빌려준 돈 대신 받은 동해 아파트가 있다는 걸 깨달은 송지현은 이케아에 가서 '나만의 집'을 꾸미기 위한 인테리어 용품을 산다. 친구와 동해에 살러 가면서 아차 엘베가 없는 집이란 걸 뒤늦게야 안다. 차분하고 문제 해결 능력이 완벽한 친구에 의해 짐을 나르면서 이 년간의 동해 생활이 시작된다.


문을 열면 바다가 보이는 집.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이영애가 전무후무한 작업 멘트인 "라면 먹고 갈래요?"를 날리며 눈을 반짝이던 이영애니까 가능했던 그 말을 듣는 유지태가 배시시 웃던 배경이 된 아파트. 송지현은 그곳으로 이사를 간다. 전입 신고를 하고 실업 급여도 받는다. 처음 한 달은 스무 시간 넘게 잠만 잤다. 스무 시간. 하루는 24시간인데. 그렇게 한 달을 보내고 동사무소에서 보내준 팸플릿을 보고 중단되었던 취미 생활을 이어 나간다.


나도 그렇다. 무슨 일을 하려면 장비부터 사야 한다. 완벽하게 세팅된 상태에서 작업을 해야 한다. 송지현은 자신을 취미 왕이라고 소개한다. 기타를 배우려고 삼 개월 할부로 기타를 사고. 색연필 인물화를 하려고 72색 색연필을 사고. 한국화 수업을 들으려고 화선지 1000장을 사고. 사는 건 기가 막히게 잘하는데 끝까지 수업을 듣고 준전문가로 나아가지는 못한다.


『동해 생활』은 웃기고 슬프고 즐겁고 짠하고 신나고 애틋한 생활의 에피소드 모음집이다. 아홉 살 차이 나는 친동생과 송지현은 동해에서 산다. 고양이 두 마리까지도. 생활비를 이마트에 전부 탕진하면서. 친구들이 오면 망상 해수욕장으로 끌고 가고 방 하나 거실 하나인 아파트로 데려와 술자리를 이어간다. 첫 부분에 민음사에서 나오는 한국 문학을 열심히 읽는다고 썼는데. 왜 그 이야기를 했냐면.


민음사에서 나오는 한국 소설, 에세이에는 추천의 말이 좀 길게 나온다. 그게 좋다. 별거 아닌데 형식적으로 아무리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를 쓰인 평론이나 간단한 발문이 아닌 작가의 지인들이 사심을 가득 담아서 쓴 추천의 말을 읽을 수 있어서. 나는 사소한 일에 쉽게 감동을 받는지라 몇 장이 넘어가게 쓰인 추천의 말을 읽으며 그 작가의 평소 인간관계나 생활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이다.


『동해 생활』에는 송지현이 사는 동해로 놀러 간 작가 세 명 권민경, 박상영, 백은선의 글이 실려 있다. 바다색을 닮은 종이에. 우울증을 겪는 송지현을 그대로 봐주고 과잉 친절로 범벅된 위로의 말을 해주지 않으면서 같이 술을 음식을 먹는 작가 친구들. 나는 별일 없으면 지금 사는 곳을 떠나지 않을 거다. 대신 누군가가 살아간 시간의 글을 읽으며 이곳과는 다른 풍경을 엿볼 것이다. 송지현의 어떤 생활이든 파이팅! 갑자기? 응 갑자기.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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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90
오라시오 키로가 지음, 엄지영 옮김 / 문학동네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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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모습을 보면 믿기 힘들겠지만 나는 연약한 아이였다. 햇빛을 오래 보면 어지럼증을 느껴 아무 데나 앉아 있었고 환절기가 되면 아파서 학교를 쉬어야 했다. 절정에 달했던 시기는 초등학교 6학년 때였다. 계속 설사를 하고 구토를 했다. 병원에 가보았지만 딱히 나아지는 기미가 없었다. 자다가 일어나 어둠 속에 앉아 있곤 했다. 흑색의 우주 어딘가로 떨어지는 기분을 자주 느꼈다. 막막하고 암담한 느낌에 많이 울었다.


학교도 못 가고 집에만 누워 있을 때 엄마는 비밀을 하나 알려준다는 듯이 말했다. 점쟁이가 그러는데 넌 열세 살이 고비래. 열세 살 전에 죽을 수도 있는데 그걸 넘기면 오래 살 거래. 그 말을 듣고서 더 아픈 것 같았다. 곧 죽는 거 아닌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어떡하든 버티고 버텨서 장수해야 할 텐데. 불끈한 의지 대신 에라 모르겠다 하는 마음. 어쨌거나 열세 살을 넘기고 매일 걱정과 불안을 안고 살아가는 어른이 되었다.


점쟁이한테 딸의 운명을 물으러 간 엄마는 자신의 운명에 대해 뭐라고 들었을까. 아홉수를 조심하라고 했을까. 깊은 병이 들어 병원에 있을 때 엄마는 올해가 아홉수라고 자신은 곧 떠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는 모두 죽는데 나는 그걸 믿지 않았고 엄마가 떠남으로써 죽음을 실감했다. 일상에 잠재 된 알 수 없는 불안과 고독이 밀려오면 이렇게 되뇐다. 괜찮아. 아직 살아 있잖아. 다행인거지.


오라시오 키로가의 단편집 『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는 우리의 삶을 압축하는 주제로서 작용하는 사랑, 광기, 죽음을 다룬다. 백 년도 전에 쓰인 소설은 깜짝 놀랄만한 반전을 가진 줄거리와 읽기 쉬운 현대적인 문장 표현으로 재미를 가져다 준다. 세계문학이라고 하는 작품들이 가지는 서사의 빈약함을 찾아볼 수 없다. 지루하게 이야기를 끌고 가지 않는다. 결말에서는 허를 찌르며 깔끔하게 퇴장하는 방식이다.


환상과 현실을 가볍게 넘나든다. 현실에서 동떨어진 이야기에는 감정 이입이 되지 않아 환상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소설은 손이 가지 않았다. 『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는 기묘한 환상을 몰입감 있게 풀어내는 솜씨가 훌륭하다. 납득할만한 현실적인 환상이 소설 전반에 흘러 계속 읽고 싶게 만든다. 먼저 사랑이 있다. 아니 광기가 있다. 그것도 아니다. 죽음이 있다. 이 무슨 말인가 하면 사랑, 광기, 죽음은 인생을 살아가는 인간에게 순서 없이 뒤죽박죽인 모양새로 찾아온다는 뜻이다.


한눈에 반해 연인이 되고 싶어 하지만 부모의 반대로 추억 속으로 간직해야 하는 사랑(「사랑의 계절」). 부부 사이의 사랑이 식어 서로를 미워하는 이야기로 흐를 것 같았지만 『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중에서 최고의 반전으로 끝을 맺는 「엘 솔리타리오」 속 광기.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파괴적인 방식으로 고통을 말하는 죽음(「목 잘린 닭」). 열여덟 편의 소설은 사랑, 광기, 죽음을 돌림 노래처럼 변주한다.


「뇌막염 환자와 그녀를 따라다니는 그림자」는 사랑이란 한순간의 착각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말하는 소설이다. 사랑의 이중성을 보여주면서 자연스럽게 죽음의 순간을 포착하여 들려주는 방식으로 『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는 흘러간다. 「표류」는 죽어가는 순간이란 아무런 고통도 느끼지 못하는 것임을 극한의 해방감이 찾아오는 것임을 짐작하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은 원통하고 두렵지 않을 수 있다는 약간의 위안을 준다.


사랑을 말하다가 결국엔 죽음으로 귀결되는 구조를 가진 『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 오라시오 키로가는 공포와 기괴를 절묘하게 배합한다. 서술자는 인간과 동물이 사이좋게 나눠 갖는다. 잠이 오지 않는 깊은 밤 혹시나 잠이 들면 죽게 되진 않을까 두려움에 떠는 심약한 어른의 얼굴로 기묘한 도시 전설 같은 이야기를 들려준다.


죽음에의 공포가 깊다면. 한 번쯤 죽음과 조우해 봤다면. 급작스럽게 찾아온 가까운 이의 죽음에 상처를 받았다면. 대체 죽음이란 녀석을 내 삶에 어떻게 정의 내릴 수 있을 것인지 근심해 봤다면. 『사랑 광기 그리고 죽음의 이야기』를 읽으며 죽음의 고통에 인생 전체가 함몰된 소설가의 답안을 슬쩍 베낄 수 있을 것이다. 처음부터 그대 곁으로 죽음이 찾아오지 않는다. 사랑이 시작되고 광기가 휘몰아친 다음에 죽음은 다가온다. 그러니까 죽음은 우리가 사랑했었다는 기억의 증거이다. 그 기억이면 된다. 남은 날들에 대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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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초인간 : 극장 밖의 히치 코크 - KBS <북유럽> MC 김중혁 작가 장편소설 내일은 초인간 2
김중혁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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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초인간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 『극장 밖의 히치 코크』를 읽으며 많은 잡념에 젖어 들었다. 그럴 책이 아닌데. 아카데미 극장에서 폭탄이 터지고 누가 범인인지를 밝혀 나가는 이야긴데. 이게 과연 초능력일까 기준이 애매한 능력을 가진 초인들이 사건을 풀어가는데도. 한 장 읽으며 멍. 한 장을 다시 읽으며 멍. 같은 문단을 반복해서 읽으며 멍. 재미없어서 그런 게 절대 아니다.


소설이 현실을 압도하는 세상이니까. 소설을 읽으며 시간을 잊고 잘못을 지우고 후회를 날려 버리면 좋을 텐데. 자꾸 생각난다. 지난날이. 그러거나 말거나 『극장 밖의 히치 코크』는 달려간다. 계속 멍을 때릴 수 없도록 한심한 독자의 손을 잡고 이야기 속으로. 히치콕의 영화를 상영하는 오래된 극장인 아카데미에서 폭탄이 터진다. 『유니크크한 초능력자들』에 등장해 동물을 실은 자율 주행 트럭을 해킹한 재이도 그 자리에 있었다.


폭탄이 터지고 재이가 사라진다. 초인간 클랜 멤버들은 폭탄 사고와 재이의 실종이 서로 연관 되어 있음을 인지한다. 아르바이트도 잠시 내버려 두고 초인들은 모인다. 팔이 늘어나는 공상우. 도망가기 선수 민시아. 굉장한 정지 시력의 소유자 유진. 모든 소리를 귀로 듣는 한모음. 동물과 대화하는 이지우. 숫자 외우기 광 정인수. 온도 변화에 민감한 오은주. 전직 경찰 백건.


회사 일로 바쁜 오은주는 빠지고 일곱 명이 모여 사건의 진상을 파악한다. 평소에는 쓸데없는 무능력 같은데 사라진 친구를 찾고 누명을 벗겨 주는 데에는 똑 들어맞는 능력을 가진 초인들. 『유니크크한 초능력자들』에는 또 한 번 자율 주행 차가 등장한다. 인간의 개입 없이도 차가 굴러 간다니. 신나는 일일까. 혼란의 시작일까. 기술이 발달하는 일에 제동을 걸지도 않거니와 그럴 깜냥도 안 되지만 난 좀 무섭다.


사람이 운전하는 건 안 무서운가. 그게 더 무서울 수도. 도로 위의 무법자들이 워낙 많은 세상이니까. 뭐야. 다 무서우면 어쩌자는 거야. 그래서 지금까지 제가 운전면허가 없습니다. 극장에서 폭탄이 터진 건 시작의 일부이고 그 뒤에는 더 거대한 음모로 감춘 사건의 배후가 있었다. 초인들은 사이좋게 기차를 타고 서울로 간다. 서울 구경을 하면서 슬렁슬렁 때론 긴장감 있는 속도로 사건의 진상에 다가간다.


'내일은 초인간 시리즈' 계속 나오려나. 아니면 판권이 팔려 영상화가 되려나. 인물의 캐릭터가 워낙 특별하고 재미있다보니 기대된다. 무능력과 초능력 사이에서 내일이 아닌 오늘을 즐기며 살아가는 초인들.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그동안 모르고 있었을 능력이 발견되고 있지 않을까. 등이 살짝 가려우면서. 타인이 아닌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좋아하고 싫어하는지 알아가는 것. 모든 말을 다 할 수 없다면 아무 말도 하지 않을 것. 한모음을 통해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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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일은 초인간 : 유니크크한 초능력자들 - KBS <북유럽> MC 김중혁 작가 장편소설 내일은 초인간 1
김중혁 지음 / 자이언트북스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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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이 안 오는 밤이면 이런저런 생각에 빠진다. 말도 안 되는 상상. 갑자기 키가 커지고 예뻐진다면. 사진 기억력을 가져 모든 책을 한 번 쑥 훑어보기만 해도 외울 수 있다면. 벼락부자가 된다면. 외국어 능통자가 된다면. 같은. 헛웃음이 나는. 그러다 잠에 빠진다. 꿈도 꾼다. 하늘을 날아다니고 죽은 사람들을 만나 공포도 느끼지 못하고 이야기를 나눈다.


어제 꾼 꿈은 꿈인데 지독히 현실적이었다. 어느 사무실에 출근하러 갔다가 하루 종일 책상 청소만 했다. 먼지를 닦고 잡동사니를 옮기고 간식을 서랍에 넣어 두었다. 꿈인 걸 알면서도 좋았다. 왜 그런 게 좋은 건지, 대체. 깨고 싶지 않았다. 계속 책상 정리하게 해 줘.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평범하다 못해 무색무취의 인간이다. 자기주장? 없다. 특별한 외모? 그런 게 뭔가요? 머리는 좋은가? 네버, 이해력 완전 제로.


그저 살아 있다는 게 신기한 정도의 인간. 김중혁의 장편 소설 '내일은 초인간 시리즈' 1권인 『유니크크한 초능력자들』을 신나게 읽었다. '신나게 뛰어다니는 소설을 쓰고 싶어'다더니. 신이 나. 신이 나. 엣헴 엣헴 신이 나. 되게 되게 우울하고 심란한 요즘. 책이라도 재미있고 발랄하고 재기 넘치고 깊은 이해력 따위 요구하지 않는 걸로 읽어보자 해서 읽었다. 『유니크크한 초능력자들』은 그에 부합하는 책이다.


남들 보다 팔이 좀 길고 필요시에는 팔이 늘어난다. 한숨 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어서 노이즈 캔슬링 헤드폰을 끼고 산다. 도망치는 능력이 남들보다 뛰어나다. 동물과 대화가 가능하다. 모든 숫자를 기억한다. 온도 변화를 민감하게 감지한다. 정지 시력이 좋다. 『유니크크한 초능력자들』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초능력 목록이다. 그들을 초인간이라고 부른다. 그들이 만든 모임인 '초인간 클랜' 안에서 말이다.


초클이 아니면 그들은 나처럼 평범한 사람들이다. 아르바이트를 몇 개씩 하고 업무 전화에 시달리면서 살아간다. 그중에 팔이 긴 공상우는 동영상 사이트에서 '월드 체이스 태그' 대회를 본다. 누군가 도망을 가면 다른 누군가는 쫓는다. 처음 출전한 공상우는 우승 직전까지 간다. 그곳에서 공상우는 도망가기 선수 민시아를 만나고 정지 시력이 뛰어난 유진에 의해 초클 멤버로 제안을 받는다.


초인들은 그들이 가진 특별함을 나눈다. 특별함이라고 했지만 사실 이상함이었다. 되도록이면 눈에 띄지 않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초클에 합류하면서 이상함을 특별함으로 교환한다. 동물들을 도태 시키기 위해 자율 주행 트럭을 이용한다는 뉴스를 보면서 초인들은 계획을 세운다. 죽음의 위기에 빠진 동물을 구해 내자는, 황당하고 무계하고 왜 그래야 하는지 의문까지 드는.


유니크한 대화. 우울함과 걱정은 넣어둔 채 질주하는 서사. 세상은 이상한 특별함으로 굴러간다는 주제를 말하는 김중혁의 발랄한 어조. 『유니크크한 초능력자들』은 달리고 또 달리는 소설이다. 자율 주행 트럭을 멈춰 세우고 동물을 구해낼 수 있을까. 기울어진 세상을 반듯하게 세울 수 있을까. 내가 가진 평범함을 생각한다. 내세울 것 없는 나. 요상한 꿈을 꾸고 일어나 씻고 좀비처럼 일하러 가는 나. 가만있어 봐. 나 겁나 특별한데! 매일 일하잖아! 나도 초클에 껴 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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