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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이는 돌아올 거래 - 세월호를 기억하는 어린이문학 작가들의 2020 작품집 보름달문고 81
김하은 외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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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4월 16일에 일어난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면 자꾸만 가정을 하게 된다. 아이들에게 배 밖으로 빨리 나오라고 했으면 어땠을까. 주변에 어선이 많아서 물에 떠 있기만 해도 구할 수 있었을 텐데. 애초에 그 배를 타지 않았으면. 안타까운 마음을 숨길 수 없어 부질없는 가정법을 남발하고만 있다. 단지 수학여행을 가려던 것뿐이었다. 바쁜 일상과 고단함으로 세월호를 잊게 되진 않을까.


그런 마음이 모여 『슬이는 돌아올 거래』가 출간되었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어린이문학 작가들의 2020 작품집'이라는 부제를 달고서. 여덟 편의 작품이 실려 있다. 바람을 볼 수 있는 시. 비를 맞으며 눈물을 감출 수 있는 소설. 아이들에게 잊지 말아 달라고 부탁하는 마음이 모여 있다. 소리만 들리고 어디에 있는지 모르지만 강아지를 찾아 나서는 착한 눈망울을 가진 아이들이 있고.


이름을 기억할 수 없어 하늘나라로 가지 못하는 아이가 있다. 달 체험 여행길에서 승강장을 잘못 찾아 지구로 돌아오지 못하는 슬이. 손녀딸 지윤이가 사준 화장품을 바르며 오늘의 슬픔을 받아들이는 할머니. 양념치킨 냄새 밴 옷을 입고 나간 아빠를 기다리는 아이. 바다에 빠진 사람들의 넋을 건지러 다니는 아이와 바다거북. 모두 기다림을 간직한 채 살아가고 있다.


매일 슬플 수는 없다. 일을 해야 하고 밥을 먹어야 한다. 괜찮은 척해야 하는 순간이 더 많다. 남아 있는 자의 몫이란 그런 것이다. 살아가야 한다. 살아진다는 표현이 맞다. 참사의 원인을 밝히고 진실 규명을 해야 한다. 그래서 살아진다. 고통이 오늘을 살게 한다. 『슬이는 돌아올 거래』는 절망 속에서 피어나는 희망을 찾아가는 책이다. 왜 사람들을 구하지 못한 거야?


우리 아이들이 물으면 진실을 말해주어야 한다. 어른이기 때문에. 복자 할머니의 허전함이 아빠가 돌아오기를 바라며 자신이 있는 곳을 적어 포스트잇에 붙이는 차은이의 간절함이 바다거북이를 타고서라도 아이를 구하겠다는 일념이 진실의 세계로 가기 위해 모여 있다. 『슬이는 돌아올 거래』의 커버를 벗기면 아이들이 세월호를 추모하며 그린 그림을 볼 수 있다.


우리는 잊지 않을 거래. 별이 된 아이들에게 말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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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가는 유가
이사카 고타로 지음, 김은모 옮김 / 현대문학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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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는 4층 높이의 집 베란다 밖으로 나왔다. 살려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맨발로 옆집으로 매달리듯이 걸어갔다. 라면으로 겨우 허기를 면하고 산에 숨어 있었다. 계부에게 발견되면 다시 집으로 돌아가야 했으니까. 거리로 나온 아이는 지나가는 행인에 의해 발견되었다. 신발도 없이 온몸에 멍이 든 아이가 이상하게 보였다. 편의점으로 데리고 가서 밥을 사 먹이고 경찰에 연락했다.

집안일을 할 때만 목줄을 풀어 주었다. 하루에 밥 한 끼를 겨우 먹었다. 목줄이 잠깐 풀렸을 때 아이는 탈출을 감행했다. 집으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고 했다. 누구도 아이를 지켜주지 않았다. 혼자서 자신을 구했다. 이것은 실제 일어난 일이다. 소설이나 영화에서 다루어진 서사가 아니다. 차라리 소설의 어느 한 장면이라고 믿고 싶어질 정도였다. 영화에 그런 장면이 나오면 눈을 감게 되는 이야기였다.

이사카 고타로의 신작 장편 소설 『후가는 유가』는 친부에게서 폭력을 당하는 쌍둥이 형제가 나온다. 큰 아이가 유가. 작은 아이가 후가. 다섯 살 때 옆방에서 후가가 맞고 있었다. 친아버지인데 무차별적으로 아들들을 때린다. 이유는 없다. 친모는 그걸 방관하고 있다. 유가는 동생을 구하고 싶다. 어린 나이인데도 그런 생각을 했다. 히어로물에는 그런 상황에 변신하면서 악당을 물리치는 영웅이 등장한다. 현실은.

사이가 나빠질 수 없는 쌍둥이. 폭력을 휘두르는 남자를 이길 수는 없었다. 단지 유가와 후가는 혼자가 아니라는 점으로 위안을 삼았다. 자신들이 다른 쌍둥이와는 다르다는 점을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느낀다. 온몸이 찌릿해지는 순간 유가와 후가의 위치가 바뀐다. 얼굴이 똑같아서 큰 문제는 없었다. 남이 눈치채지 못하게 규칙을 만들었다. 생일이 되면 오전 10시 10분부터 두 시간 간격으로 위치가 바뀐다.

특별한 능력은 아니다. 그걸로 친부의 폭력에서 벗어나지도 못했다. 여전히 폭력을 견딜 수밖에 없다. 다만 학교 동급생이 괴롭힐 당할 때 유가와 후가의 위치 이동 능력으로 때리는 애들을 골려 줄 수는 있었다. 비뚤어지지 않고 성실히 성장해 간다. 공부를 잘하는 유가는 학교로. 운동 신경이 좋은 휴가는 암굴 아줌마 밑에서 일하며 재활용 센터로.

『후가는 유가』에는 끔찍한 폭력과 방관 속에 놓인 어린아이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쌍둥이 형제가 바라보는 어른의 세계는 거짓과 무책임으로 가득했다. 일상의 평범한 행복이 무엇인지 모르고 자라는 쌍둥이. 그렇지만 그들은 둘의 힘으로 폭력을 견딘다. 특별한 순간에 벌어지는 위치 이동 능력으로 곤경에 처한 다른 누군가에게 도움을 준다. 책의 결말로 나아갈수록 가슴이 먹먹해진다.

제발 유가와 후가, 후가와 유가가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람에서. 행복을 빌어주는 일은 쉬운데 빌어준다고 해서 행복해지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부질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누군가의 행복을 바란다는 건. 4층에서 맨발로 탈출한 아이에게 과거는 잊고 행복한 현재를 살아갔으면 하고 겨우 바랄 뿐이다. 반전에 반전. 『후가는 유가』는 이사카 고타로 소설답게 뛰어난 가독성과 풍부한 이야기의 재미를 선사한다.

한 번 더 반전을 보여줘. 외쳤지만 『후가는 유가』는 쓸쓸한 결말로 끝이 났다. 끝까지 읽고 나면 제목을 계속 음미하게 될 것이다. 후가는 유가. 후가는 유가. 왜 후가의 이름이 앞에 나왔는지도 이해하게 된다. Who가? You가. 너는 누구야? 나는 너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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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 오늘의 젊은 작가 26
김병운 지음 / 민음사 / 2020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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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는 소설에 대한 배경지식 없이 읽어 나갔다. 민음사에서 나오는 '오늘의 젊은 작가' 시리즈에 속해 있다는 것. 제목이 좀 길구나. 하는 정도였다. 공상표라는 인물의 일대기를 그렸을라나. 추측하면서 읽어나갔다. 추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3부로 구성된 소설은 공상표의 마지막 필모그래피 한 줄을 위해 쓰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헬리콥터 맘 김미승의 아들 공상표의 본명은 강은성이다. 소설은 강은성이 공상표가 되기까지의 과정과 다시 본인의 이름인 강은성을 찾게 되는 이른바 '자아 찾기'의 구성을 따른다. 스타일리스트 엄마 때문에 연예인 지망생의 길을 걷게 된 공상표는 유명 감독의 영화 오디션에 덜컥 붙어 스타의 길을 걷는다. 아들이 스타로 떠오르자 엄마 김미승의 성화는 더 극성맞아진다.

용하다는 무속인에게 아들의 예명까지 지어 바쳤을 정도의 엄마. 어느 날부터 아들 공상표는 가출과 잠적을 일삼는다. 친누나 강은진에게 공상표는 자신의 비밀을 털어놓는다. 공상표가 비밀을 털어놓기 전까지 나는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는 공상표의 기이함을 다룬 소설인 줄 알았다. 그가 왜 인기를 벗어던지고 가출을 하고 사라지는지 극적인 반전이 나올 것 같아 심장이 나대고 있었다.

공상표의 비밀이란 어렸을 때부터 자신의 성 정체성에 의구심을 품었다는 것이다. 배우를 하고 스타가 되면서도 떨치지 못했다. 남들 앞에서는 자신이 게이라는 사실을 철저히 감췄다. 그러면서 진짜 나를 잃어버리기 시작했다. 연기를 하는 자신이 진짜처럼 생각될 정도였다. 소설은 2부로 넘어가면서 공상표가 가진 상처를 보여준다. 학교 선배 김영우를 만나고 그의 단편 영화에 출연하게 된 배경을 인터뷰와 시나리와 형식으로 들려준다.

부록으로 처리된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의 마지막을 읽게 되면 공상표의 진화를 만날 수 있다. 공상표의 슬픔을 깊이 공감할 수 없더라도. 공상표의 상처 회복에 박수를 줄 수 없더라도. 그가 알을 깨고 진정한 인간으로 거듭나는 과정에 응원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 필모그래피 전에 그가 출연한 드라마나 영화의 통속성을 벗어던지고 새롭게 시작될 필모그래피를 기대해 본다.

『아는 사람만 아는 배우 공상표의 필모그래피』는 빠르게 읽히는 장점이 있는 소설이다. 소설의 제목과는 반대로 아는 사람만 아는 게 아니라 모르는 사람도 알게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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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의 위로 - 다친 마음을 치유할 레시피 여행
에밀리 넌 지음, 이리나 옮김 / 마음산책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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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실이 나기를 기다리는 동안 엄마는 우리에게 오리고기를 먹고 오라고 했다. 그 와중에도 메뉴를 정해주는 엄마였다. 다른 건 안 되고 꼭 오리고기여야 한다고 했다. 골목을 돌아가면 나오는 맛집이라면서. 동생과 나는 엄마가 일러주는 대로 가서 먹었다. 밥이 안 먹히는 상황이었는데 막상 불판 위에서 익어가는 고기를 보니 허기가 졌다. 밥시간이 아니라서 손님은 우리 밖에 없었다.

다 먹을 때쯤 병실이 났다는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는 응급실에 누워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그때 엄마의 멍한 눈빛이 떠올랐다. 딸들이 배를 채우는 동안 엄마는 혼자 있었다. 엄마만 두고 가고 싶지 않았다. 안 가면 화를 낼 것 같아 억지로 갔는데. 괜찮다고 할걸. 엄마의 눈빛을 보면서 후회가 밀려왔다. 엄마가 떠나고 애도의 날들이 이어졌다. 병원에서 함께 지냈던 시간이 불쑥 불쑥 떠오른다.

어지럽고 메스껍다고 엄마는 음식을 거의 먹지 못했다.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고 우두커니 앉아 있는 내가 배가 고플까 걱정을 했다. 뭐든 먹고 오라고 했다. 에밀리 넌의 에세이 『음식의 위로』를 읽는데 자꾸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가 해주던 요리. 엄마랑 같이 먹었던 음식. 병원에서 엄마가 먹고 오라고 했는데 귀찮아서 먹으러 가지 않았던 스테이크. 아파서 정신이 없는데도 스테이크를 먹고 오라고 했다.

『음식의 위로』는 상실을 겪은 이들에게 바쳐지는 위로 모음집이다. 오빠 올리버가 자살을 하면서 에밀리는 깊은 우울감에 빠진다. 알코올 중독이 재발했고 새롭게 꾸린 가정이 깨졌다. 약혼자는 오빠의 죽음에서 벗어나지 못한 에밀리의 슬픔을 공감하지 못한다. 술을 끊지 못하는 에밀리를 병원 응급실에 데려다준 이후 그들은 헤어지기로 한다. 집도 돈도 직업도 없는 에밀리는 술에 의지한다.

재활 센터에 가고 프로그램을 듣는다. 페이스북에 자신이 겪은 그간의 일을 올린다. 놀라운 일이 벌어진다. 에밀리를 아는 모든 이들이 댓글을 달고 위로와 공감, 지지를 해준 것이다. 자신이 있는 곳으로 오라는 친구부터 영혼을 위한 음식 투어를 시작하라는 사람까지. 그동안 겪었던 인생의 고통을 숨김없이 들려주며 에밀리가 절망에 빠지지 않도록 용기를 북돋아 준다.

에밀리는 음식에서 힌트를 얻는다. 요리에 관한 칼럼을 신문과 잡지에 기고했던 그녀였다. 음식이라면 자신이 있었다. 요리를 해서 누군가와 함께 먹는 일로 오빠 올리버의 죽음에 애도를 표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에밀리는 짐을 창고에 보관하고 언니 일레인을 만나러 간다. 재활 프로그램을 다니고 친구들을 만나러 떠난다. 무기력에 빠진 에밀리를 친구들은 결코 외면하지 않는다.

살면서 가장 힘든 시기에 사람들이 진실로 원하는 것은, 남들이 주려는 것보다 훨씬 작은 것일 경우가 많다.
(에밀리 넌, 『음식의 위로』中에서)

어둠이 내리고 곁에 아무도 없음에 눈물 흘리는 저녁이 고독해지지 않도록 에밀리를 아는 친구, 친척, 가족이 손을 내민다.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우리는 어떤 모습일 수 있는가. 죽음은 후회를 남긴다. 그와 나누었던 모든 순간을 후회라는 감정으로 내내 느껴야 하는 것이 삶의 모습이다. 더 잘해주지 못해 미안하고 더 다정하게 굴지 못해 죄송한 시간을 살아내야 하는 것이다.

에밀리는 위로 음식을 찾아 떠나는 것으로 망가진 삶의 조각을 맞추기 시작한다. 사랑을 모르고 자란 아이는 사랑을 끝없이 갈구하는 일로 자신을 증명해 보이려 한다. 에밀리가 그랬다. 엄마와 아빠에게서 느낄 수 없었던 사랑의 온기를 에밀리는 음식으로부터 찾아낸다. 세상으로부터 버림받았다고 느낄 때 있는 그대로 슬픔을 드러냈다. 나의 슬픔을 사람들은 외면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위로와 용기를 주기 위한 준비가 누구든지 되어 있다. 혹시 상실로 인한 허무 때문에 자신을 괴롭히고 있진 않은지. 『음식의 위로』의 첫 장을 펼칠 힘이 있었으면 좋겠다. 놀랍고도 솔직한 슬픔의 경험이 『음식의 위로』에 있다. 책을 읽는 동안 당신의 과거가 떠올라 가슴이 아플 수도 있다. 이내 다친 마음을 다독이는 쾌활한 위로가 담긴 사유의 문장을 읽으며 건강한 오늘을 살아간다는 게 커다란 축복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고 나 혼자 남겨졌음에 견딜 수 없을 때 그와 둘러앉아 먹었던 음식을 떠올려 보라. 소박한 밥상의 기억은 그와 내가 지구별에서 잠시 함께 살 수 있었던 행운의 증거이다. 『음식의 위로』는 절망 때문에 주저앉아 있는 나를 일으켜 세우는 다정한 이가 보내온 밥상 같은 책이다. 친절한 타인이 알려주는 요리법을 읽는 것만으로도 불행한 어제는 잊고 오늘을 꿈꾸게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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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 한밤의 목소리 몬스터
김동식 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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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 괴물 이야기 모음집이라고 해서 머리 두 개 달리고 얼굴이 일그러진 애들이 나오는 줄 알았다. 조악한 상상력에 기대어서 말이다. 김동식, 손아람, 이혁진, 듀나, 곽재식이 펼쳐 놓은 괴물 이야기를 담은 『몬스터: 한밤의 목소리』에는 평범한 우리 이웃들이 등장한다. 성공한 아이돌, 정치 컨설팅 대표, 회사원, 경찰관, 해녀를 가장한 인어.

비교적 짧은 길이의 단편이라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다. 난해하고 답답한 이야기는 없다. 사건으로 바로 들어간다. 김동식의 「마주치면 안 되는 아이돌」에서 망각이라는 몬스터를 그려낸다. 성공한 아이돌을 위해서라면 매니저 팀장은 과감한 짓도 불사한다. 결말이 어떻게 될지 끝까지 궁금해지는 소설이다. 선거에서 이기기 위한 전략이라면 상대편의 약점을 끝까지 물고 늘어져야 한다. 손아람의 「킹 메이커」는 당선자를 위해서는 누군가는 괴물의 얼굴로 살아가야 함을 이야기한다.

이혁진의 「달지도 쓰지도 않게」는 가족이라는 얼굴의 몬스터를 실감 나게 보여준다. 내일까지 3천만 원을 준비하라는 장인의 전화를 받은 주인공. 그는 과연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다섯 편의 소설 중에서 가장 현실감 있는 일상의 몬스터를 그려낸다. 듀나의 「네 몸속에 웅크리고 있는 것」을 읽고 깜짝 놀랐다. 스타일리시한 외국 단편을 읽는 듯했기 때문이다.

설정과 배경이 한몫했기도 했지만 소설을 풀어가는 솜씨가 능숙했다. 나만 몰랐나. 듀나가 이렇게 잘 쓰는지. 연쇄 살인범을 추적하는 과정을 그려내면서 이면에 숨겨진 진실을 마지막에 전부 이야기해주는 친절함을 보여준다. 곽재식의 「이상한 인어 이야기」는 인어마저도 비정규직으로 살아가야 하는 한국 사회의 단면을 그린다. 무한한 능력을 가지고도 본인 명의의 핸드폰 하나 개통하지 못하는 인어.

뉴스를 보면 한숨이 나온다. 그러다 웃기까지 한다. 뉴스 보기는 예전에는 하지 않는 않는 짓 중에 하나였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나와는 무슨 상관이냐. 그냥 되는대로 살아가자 주의였다. 결정적인 계기가 있는데 쓰지는 않겠다. 꼬박꼬박 뉴스를 보고 욕을 하고 책을 읽는다. 괴물의 모습을 담았다고 해서 읽은 『몬스터: 한밤의 목소리』. 누군가는 괴물이 어디 나오는가 의문이 들지도 모르겠다.

거울을 보라. 그곳에 괴물이 있다. 본모습을 잘 감춘 채 보통 사람 역할 놀이에 심취한.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해 뉴스를 보고 책을 읽지만 이미 괴물이 되어 버렸는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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