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광고 카피 도감
오하림 지음 / 서교책방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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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을 살지만 내일도 어김없이 살아야 할 거란 걸 알고 있습니다. 오늘이 슬펐다면 내일은 조금 기뻐질 수 있도록 나만의 방법을 찾아내곤 합니다. 사고 싶은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았다가 아침에는 비우기. 아트박스나 모던 하우스에 들어가서 신상 물건 구경하기. 신간 책이 나왔다면 한 권씩 사기. 써 놓고 보니 모두 소비와 관련한 것들이네요. 


물건을 사는 즐거움 그러니까 소비로서 내일이 조금은 괜찮아지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아주 단순한 방법을 찾아냈지만 이는 통장 잔고 사정을 생각하면 지양해야 할 행동입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문 앞에 놓여 있는 택배 상자를 보면서 잠시 마음이 환해지는 순간에 나를 세워 놓습니다. 광고라는 걸 알면서도 영상을 보며 쓰임새를 찾아내는 저녁의 나를 어쩌지 못합니다. 


오하림의 『일본 광고 카피 도감』은 물욕을 다스리지 못하는 나를 위로해 주었습니다. 일본 광고의 문장들을 가져와 지쳐 있는 오늘의 나를 다독입니다. 괜찮아. 여행도 휴식도 소비도 너에겐 모두 필요한 일이야 하면서요. 70개의 일본 광고 카피가 실려 있으면서 이를 해석해 주는 작가의 따뜻한 마음에 감동을 받습니다. 광고의 종류도 다양해서 여러 업체에서 나를 응원해 주는 느낌이 들기도 했습니다. 


배당받은 하루치의 사회인 역할극을 끝내고 돌아와 누우면. 다들 무얼 하시나요. 이미 에너지는 바닥났습니다. 생산적인 일을 해야 한다는 갓생 영상에 자극을 받아 책상 앞에 앉으려는 생각을 해보기도 하지만 그대로 누워 있습니다. 꼭 필요하진 않은데 사고 나면 필요할 것 같은 물건을 장바구니에 담거나 다정하게도 나만을 위해 추천해주는 알고리즘 영상을 끊임없이 위로 올립니다. 


그런 저녁에. 『일본 광고 카피 도감』에 실린 광고 카피를 하나씩 읽어갑니다. 종이 위에 많은 활자를 보기는 힘들어서 딱 이 정도 분량의 문장이 적당하다고 생각하면서요. 한 줄의 문장. 제품을 홍보하기 위한 지극히 자본주의적인 문장이지만 그 안에 '사람'과 '위로'를 찾아냅니다. 그야말로 엄선한 한 줄의 문장을 지친 나에게 가져다줍니다.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될까요. 


당연하죠. 책을 읽는 우리는 이런 호사를 누리고 받을 자격이 충분합니다. 책을 읽는 저녁을 지나 어제와 같은 오늘이 찾아오죠. 버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달립니다. 배차 간격이 15분이라서요. 사람이 많아 늘 서서 가지만 그래도 오늘 버스 타기에 성공했네 작은 성취감이 듭니다. '마음에, 모험을' 어제 읽은 『일본 광고 카피 도감』에 실린 신초샤 여름 추천 도서 100선의 카피를 떠올립니다. 


출근길 버스 타기이지만 이런 한 줄이면 어떨까요? 


'어른은 모두, 여행의 도중'(JR 동일본·기차여행) 


버스에 실린 나의 모습 위로 말이죠. 마음에 모험을 담고 이 길은 여행의 도중이라는 생각을 하면 책가방을 앞으로 메지 않고 뒤로 맨 채로 서 있는 학생의 등도 예쁘게 봐줄 수 있는 거죠. 『일본 광고 카피 도감』을 읽으며 이런 문장이 갑자기 떠올랐습니다. 항상 그렇듯이 문장이 떠오르면 스쳐 가는 걸 보고만 있었는데 어쩐지 이 문장은 쓰고 싶어졌습니다. 


엄마 나는 잘 지내, 그럭저럭. 


어떤 제품의 광고 카피로 적당할까요. 생각을 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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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한 번의 삶
김영하 지음 / 복복서가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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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취업한 곳에서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집에 가면서 이런 생각을 했다. 새로 시작하고 싶어. 지금까지의 일은 지우고 다시 1부터 시작하는 거야. 생각한 대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누군가 도와주지 않았고 내가 스스로 나를 구해야 하는 일이었으니까. 다시 시작하기. 리셋 버튼을 쥔 자는 나였으므로 내가 이 삶을 책임져야 했다. 자주 번번이 도망쳤고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고들 했지만 대체로 그전보다 나은 곳이었다. 


이런 식인 거다. 한 번은 못 견디는 곳. 다음번은 견디는 곳. 지금은 견디는 곳에 와 있고 경험상 다음번은 못 견디는 곳일 거라서 약간 우울한 상태에 있다. 그런 거다. 인생은 둘 중에 하나를 고르거나 둘 중에 한 곳에 와 있는 거.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상태는 최상의 상태라는 걸 이제서야 깨닫는다. 김영하의 에세이 『단 한 번의 삶』을 읽으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스타 작가의 삶에서도 단 한 번의 삶은 화두로써 작용한다. 가까운 이의 죽음을 경험하고 남아 있는 자로서 느끼는 상실감에 어쩔 줄 몰라 한다. 평범한 인간이 느낄 법한 비애를 같이 경험한다. 모두 어쩔 수 없는 상태로서 지낸다. 이런 안도. 쉽게 말해 나만 힘들고 지치고 병이 날 것 같은 상태가 아니라는 확인을 책에서 받는 거다. 


나는 이제 사람이 무섭다. 이렇게 쓰니까 좋다. 사람이 무서운데 무섭다고 어디에다 말할 데가 없었는데 쓸 수 있다니. 한 번 더 적어야지. 나는 이제 사람이 무섭고 더 정확히 말하면 까다로운 사람들이 두렵다. 마침표와 띄어쓰기, 글자체에 집착하고 큰 소리로 화를 내는 사람들이. 그런 이들에게 묻고 싶다. 이 생은 단 한 번인 걸 아느냐고. 


『단 한 번의 삶』에서 김영하는 어머니의 죽음 이야기로 책을 시작한다. 알츠하이머를 앓은 어머니는 현재부터 기억을 지워 나간다. 현재의 자신이 누군지 모른 상태로 과거에서 반짝인다. 그런 어머니의 소실을 지켜보는 작가의 시선은 애틋하다. 일회용인 삶. 한 번 쓰면 재생이 힘든 키친타월 같은 삶. 그런 삶에서 죽음은 특별한 경험이 아니다. 낮이 있으면 밤이 있는 것처럼 당연한 이야기이다. 


영원히 살 것처럼 구는 사람들을 만나면 숨이 막히고 그 자리에서 도망치고 싶다. 잘못된 과거를 지워 버릴 수는 없기에(리셋 버튼을 찾을 수는 없었다.) 현재의 시간을 수리하는 방식으로 살아갔다. 고장 난 건 과거가 아닌 현재이므로 잘못을 고친다. 오직 나만이 할 수 있다. 그럴 수 있었던 건 책이 건네는 다정한 위로를 잊지 않았기 때문이다. 


죽음이 두렵지 않은 이유를 『단 한 번의 삶』의 마지막에서 김영하는 들려준다. 퉁퉁 부은 손으로 그 문장을 필사했다. 무얼 해야 좋을지 몰라 방황하는 이 삶도 나의 삶이다. 오늘의 나는 어제와 나와 달라졌고 내일의 나는 오늘의 나보다 괜찮아질 거라는 믿음 때문이라도 내게 주어진 단 한 번의 삶을 잘 마무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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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 안 써지세요? 저도요
정지음 지음 / 오리지널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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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제목 봐라. 하루치의 슬픔과 스트레스를 책 사기로 날리는 것 말고는 할 수가 없을 때 정지음의 신간 『글이 안 써지세요? 저도요』를 발견했다. 제목이 제목 한 책. 제목이 저러한데 어찌 사지 않을 수 있을까. 나또책(나 또 책 산다.) 해야지. 보통 글쓰기 책이라 함은 야너두(야 너두 할 수 있다.) 같은 대책 없는 응원의 제목 혹은 비법 전수(**완성법, **필살기) 부류의 제목을 달고 있는데. 


정지음은 다르다. 먼저 묻는다. 글이 안 써지세요? 그러고 답을 듣지 않는다. 냅다 자신의 말을 한다. 저도요. 작가인 본인도 글이 안 써진다는데 분명 글쓰기 책인데 글이 안 써진다고 먼저 말해버리는 책이라니. 참 대책 없으면서도 즐겁고 재밌다. 나만 그런 게 아니란 말이지. 나만 글쓰기가 막막하고 책상 앞에만 앉으면 나를 위해 추천해 주는 쇼핑 목록을 정신없이 보고 있는 게 아니란 말이지. 『글이 안 써지세요? 저도요』를 보는 순간 책의 제목만 읽었는데도 안도감이 들었다. 


이상한 원칙주의자 성향을 가지고 있어서 책을 읽을 땐 차례대로 읽는다. 병렬 독서는 개뿔. 직렬 독서도 제대로 못 한다. 한 권을 천천히 다 읽고 다른 책을 읽는다. 순서대로. 강박적으로. 『글이 안 써지세요? 저도요』는 달랐다. 먼저 목차를 훑어보고 그중에 내 마음을 사로잡은 챕터를 펼쳤다. 「첫 문장 노트 만들기」(121p)라는 소제목이 끌렸다. 


『글이 안 써지세요? 저도요』를 읽어보면 알겠지만 이 책은 글쓰기 비법이나 작법서를 흉내 내는 척하면서 정지음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그게 너무너무너무 좋았다. -것이다를 자주 쓴다고 밝히고(맞아. 나도 그래. 것이다라고 끝내지 않으면 불안한 것이다.) 쿠팡 상자에 반품이라는 손 글씨만 썼다고 집 안을 온통 둘러보아도 필기감 좋은 볼펜과 쓸만한 노트가 없었다는 지극히 사적인 이야기를(글쓰기 책인데 글쓰기에 관한 내용이 없어서 좋았다는 것이다.) 줄줄줄 늘어놓는다. 


친구들 이야기, 반려묘 이야기, 학창 시절 이야기.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 속에서 글과 관련한 이야기가 사알짝씩 있다. 그리하여 디게디게디게 좋다. 각 잡고 문장, 조사, 문법에 대한 진지한 글쓰기 책이었으면 텅 빈 나의 뇌가 받아들이지 못했을 것이다. 도서관에 가서 책을 골라 첫 문장을 필사해 보라는 조언. 출퇴근 시간에 휴대전화로 단어, 문장을 써 보라는 조언. 쓰다가 막히면 가만히 있지 말고 샤워를 한다거나 다른 글쓰기를 하라는 조언. 


글이 도무지 써지지 않을 때는 글의 형식을 바꿔 보라는 것도. 다 좋다. 오랫동안 쓰지 않던(정지음 작가와 다르게 나는 필기감 좋은 볼펜과 질 좋은 종이의 공책이 다량으로 있다.) 노트를 꺼냈다, 그리하여. 나는 시작이 어려운 사람이지 막상 한다고 마음먹으면 한다. 읽으려는 책의 첫 문장을 적어 보기로 결심했다. 첫 문장을 옮기다가 필이 꽂히면 첫 문단을 첫 페이지를 옮겨 보기도 하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슬프거나 화나거나 두렵거나 불안한 나의 감정을 방치하지 않으려고 한다. 일단 쓴다. 나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소중한 첫 독자인 나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머릿속에서 자기들끼리 싸우고 있는 감정을 종이로 불러 모은다. 너희들 하고 싶은 말 있으면 다 해봐. 글이 되게 해봐. 슬픔과 분노와 불안이는 이때다 하고 달려 나온다. 빈 화면에 커서가 반짝이는 틈을 주지 않는다. 글을 써서 내일을 살 수 있다면 계속 써야지 뭐 어쩌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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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피플 존
정이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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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이현의 소설집 『노 피플 존』에 실린 첫 번째 소설의 제목은 「실패담 크루」이다. 요즘 유행하는 '러닝 크루'도 아닌 '실패담 크루'라니 어떤 이야기일까 궁금했다. 호기심을 가지고 소설을 읽다가 제목을 변형해서 '거짓말 크루'라는 소설도 있었으면 했다. 실패담을 이야기하는 게 아닌 전부 거짓말을 하는 거다. 듣다 보면 거짓이라고 하는 것 같기도 한데 진실인 것 같은 이야기를 하는 모임에 대한 소설. 


「실패담 크루」의 짝퉁 냄새가 풀풀 풍기겠지만 「거짓말 크루」도 나름 진정성 있는 소설이 되지 않을까. 실패와 거짓말은 묘하게 닮아 있으니까. 실패는 거짓말이라고 믿고 싶게 만들기도 하니까. 실패와 비슷한 패배라는 단어를 넣어서 만들어도 괜찮겠다. 계속 만들어 보는 거다. '패배담 크루'까지. 실패와 거짓말, 패배까지. 사람 만나는 게 힘에 부치긴 하지만 이런 크루가 결성되어 있다면 한 번쯤 참여해 보는 거다. 대체 어떤 실패와 거짓말과 패배가 존재하는지. 


『노 피플 존』에는 「노 피플 존」이 없다. 소설을 읽다 보면 발견할 수 있는 단어가 소설의 제목이 되었다. 사람 없는 구역이라니. 돈을 내고서라도 입장하고 싶다. 이력서에 쓰기에도 민망하게 최단기간 일을 한 이유는 역시나 사람 때문이었다. 원래 그 사람 성향이 그래. 무시해버려. 일만 하러 왔으니까 일만 하자. 내 안의 나는 무수히 많이 바깥의 나를 설득했다. 


몸이 아파서 더는 일을 할 수 없습니다는 핑계고(몸이 아프게 될 지경이긴 했다. 긴장과 스트레스와 신경쇠약으로) 사실은 짜증과 화를 수시로 내는 그 사람 때문에 그만두었다. 그만둔 다음날부터 일을 하게 되었는데(일 복이 타고났나 봐. 이 생에서. 나는.) 그곳과 이곳은 천지차이였다. 1분마다 전화가 걸려 오는 곳에서 하루 종일 한 통 정도의 전화가 걸려 오는 곳. 아무도 화나 짜증과 분노를 표출하지 않는 곳. (아직까지는)


얼굴 피부가 좋아지지 않는 이유 중에 하나는 스트레스도 작용했으리라. 홍당무 얼굴로 일을 하고 밥을 먹고 화장실에 가서 울었다. 『노 피플 존』에 담긴 소설을 읽어 나가면서 3개월의 시간을 다시금 돌아봤다. 소설에는 다양한 여자들이 나온다. 아홉 편의 소설 속 주인공은 여자들로 그녀들은 일을 하고 육아를 해낸다. 일만 해도 이렇게 힘에 부친데 『노 피플 존』 속 그녀들은 육아와 살림도 함께 한다.


일을 하는 어려움에도 지치거나 좌절하지 않는다. 그야말로 꿋꿋하게 해낸다. 인수인계받으면서 만난 다른 여자들(언니들)의 모습이 『노 피플 존』의 현실 인물인 것 같은 경험도 했다. 내가 지금 읽고 있는 소설 속 주인공들이 여기에 모여 있네. 능숙하게 자동차를 운전하고 전화 응대를 하고 틀린 숫자를 바로잡는다. 시간이 쌓여 만들어진 단단한 모습에 반했다. 


『노 피플 존』의 실린 소설들을 차례로 읽지 않았다. 첫 문장을 읽고 이걸 지금 내가 읽어 낼 수 있나 견적을 내보고 괜찮겠다(그만큼 몸과 마음이 지쳐 있었다는 뜻) 싶으면 읽었다. 마지막에 읽은 소설은 「언니」이다.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고민할 때 인회 언니는 두 가지 선택 안을 제시해 줄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나의 선택지만 들이미는 사람이 아니었다. 타인의 어려움을 쉽게 간파하는 인회 언니. 아직 현실에서 인회 언니 같은 사람을 만나지 못했지만 한 번쯤은 만나고 싶은 사람의 이상형을 『노 피플 존』에서 찾았다. 


이 글 『노 피플 존』의 리뷰 속에 슬쩍 끼워 넣은 나의 이야기는 실패담과 거짓말, 패배담 중 어디에 속할까. 「이모에 관하여」 속 육십 세, 흑룡강성, 유치원 교사 출신 김남이 이모를 만난다면 물어봐야겠다. 나의 이야기를 실컷 하고 투박하게 들려주는 위로나 혹은 자신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야겠다. 힘에 부쳐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씩씩하게 내일로 밀고 가는 여자들이 『노 피플 존』에 있다. 사람은 없지만 그녀들이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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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청
김혜진 지음 / 민음사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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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 쉬었음의 청년들의 비율이 늘고 있다고 한다. 실업의 이유를 묻는 말에 '그냥 쉬었다'라고 답변을 하는 것이다. 새삼 그냥의 뜻을 다시 찾아보았다. 아무리 읽어도 그냥과 쉬었다는 어울리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냥이 아니라 '어쩔 수 없이'가 아닐까. 할 수 없이 그냥이라는 이유를 붙인 거지 알고 보면 어쩔 수 없이 쉬었다는 게 맞을 것 같다. 


나 때는 말이야. 우리 때는 말이죠. 맞으면서 일을 배웠다고.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하는 게 무서웠다. 실업급여 신청을 하기 위해 이직확인서를 제출해달라는 말에는 통화를 끊고 실업급여를 없애야 한다는 말도 스스럼없게 하는 것 역시 소름 끼쳤다. 그러니 어서 빨리 탈출해야 한다. 탈출은 지능순이라고 하지 않던가. 


왜 이런 말들을 늘어놓느냐 하면 김혜진의 장편 소설 『경청』 때문이다. 삶은 때론 내 의지와는 무관하게 흘러간다. 나의 노력과 수고를 삶은 가볍게 무시하는 순간이 찾아온다. 그동안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데 내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는데. 이런 고통과 시련을 가져다줄 수 있냐고 억울하다고 소리치고 싶게 만드는 시간이. 심리 상담사로 일하는 임해수는 자신이 뱉은 말 한마디로 삶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경험을 한다. 


『경청』은 쓰다 만 편지 모음집이다. 소설은 해수가 이성목 기자에게 쓰는 편지로 시작한다.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클릭수를 노리고 쓴 기사 때문에 자신이 받은 피해를 이야기한다. 편지의 끝은 마무리되지 못한다. 해수는 쓰다만 편지를 가지고 나가서 버린다. 편지를 쓰고 공원을 걷고  편지를 버리고 다시 공원을 걷고 편지를 쓴다. 


그날의 사건으로 해수는 익명성을 보장받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보낸다. 그런 나날 중에 산책을 하다가 고양이 한 마리를 발견한다. 밥을 주려는 캣맘과 밥을 주지 말라는 이웃 사람의 싸움을 보고 난 뒤였다. 해수는 작고 상처받은 고양이에게 다가간다. 고양이는 해수를 피한다. 다음 산책 때 우유와 닭 가슴살을 사서 고양이 앞에 내민다. 그때 한 아이가 다가와 해수에게 고양이에게 먹이 주는 방법을 알려준다. 


삶의 어느 한순간도 허투루 보내지 않은 해수는 자신이 뱉은 말 한마디로 타인의 죽음을 경험한다. 해수는 상담 센터에서 해고되었고 사람들로부터 비난을 받는다. 곁에 있던 사람마저 떠나간다. 실업 급여와 퇴직금과 그동안 모은 예금으로 그 시간을 살아간다. 어쩔 수 없이 쉬었음의 시간으로 말이다. 


도저히 억울함을 풀 길이 없는 해수는 사람들에게 편지를 쓴다. 그때 왜 자신에게 그런 말을 했는지. 당신이 알고 있는 것과 사실은 다르다고. 밤에 쓴 편지는 낮에 버려진다. 밤의 부끄러움을 낮에는 마주 보기 힘들다. 편지를 버리는 낮에 해수는 고양이 구조를 시작한다. 아이가 지어준 순무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다친 고양이를 구조하는 건 자신을 구하는 길이다. 해수의 일상은 고양이를 구해내겠다는 생의 의지가 생겨 조금씩 굴러 간다. 


소설이 가진 제목의 의미를 고찰한다. 『경청』이라. 심리 상담사 해수는 타인의 어려움을 듣는 일에 익숙하다. 잘 듣는 자로서 살아간다. 그러다 한 번 타인의 고통을 듣지 않고 그에 대해 평가를 해버렸다. 늘 잘 들어주다가 단 한 번 경청하지 않으면서 해수의 인생이 꼬인다. 


꼬인 자신의 인생을 풀기 위해서 해수는 자신 내면의 목소리를 듣는다. 밤새도록 편지를 쓸 만큼 하고 싶었던 말이 많은 해수였다. 극복이기 보다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일로써 자신을 지킨다. 소설의 마지막은 해수가 다시 오늘과 내일을 살겠다는 의지로 읽힌다. 세상에는 이런저런 사람들이 있다고. 이제 저런 사람들과는 만나지 말아야지. 인생의 교훈을 얻은 셈 치면 손해 본 시간은 아니었다. 


그렇게 책만이 나의 구원이다고 다시 한번 깨달았다. 


오직 책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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