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모킹 오레오 새소설 7
김홍 지음 / 자음과모음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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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번엔 총이었구나. 그러니까 저번엔. 김홍의 『스모킹 오레오』는 시기적으로 2020년에 출간되었고 그의 첫 책이었다. 소설집이 나오기 전이었으니 아직 그의 우주적 세계관을 접할 수 있는 공식적 문서는 『스모킹 오레오』가 처음이었다. 책은 돌고 돌아서. 왜 그렇게 어지럽게 돈대니. 한자리에 가만히 있을 순 없나. 가만히 있다고? 도는 건 지구랑 미친 사람들뿐이라고. 하긴 그것도 맞는 말이네. 


어쨌든. 비유적으로 책은 돌고 돌아서 2025년의 어느 가을에 『스모킹 오레오』가 찾아왔다.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찾은 것. 오레오를 피운다니. 호기심이 잔뜩 일었고 이기호 소설가의 추천사는 호기심을 더더욱 증폭 시켰고 가을장마가 지긋지긋하다고 느끼면서 『스모킹 오레오』를 읽었다. 


이번엔 총이었구나를 쓰지 않은 건 첫 소설을 한참 후에 읽었다는 것. 총이었고 마트였고 울음이었고 말뚝이었다. 점점 진화하는 것 같은데 연관성이 딱히 있는 것 같지는 않지만 소설이 산이 아닌 우주로 가기 위해서는 별의별 소재들이 등장해야 하니. 총이었네를 받아들여야 한다. 


줄거리는 이렇다. 그러니 고급 인력들이 간추려 놓은 줄거리를 인터넷 서점 사이트에서 클릭해서 읽으면 된다. 열심히 리뷰를 써보지만 전문 인력들이 써 놓은 책 소개 글을 읽으면 자괴감이 든다. 그래 잘 먹고 잘 살아라. 유튜브 프리미엄은 유지 못 하더라도 보험료는 꼬박꼬박 내라. 언제 어떻게 아프고 다칠지 모르니까. 


총이 있고 총이 편지를 보낸다. 총에게 자아를 심어 주고 총은 자신을 만들어서 발사하라고 말한다. 성공하면 비트코인을 주겠다고. 설계도면에 따라 총을 만들지만 이상하게도 총은 총격범을 파괴한다. 그러다가 잘못 발사된 총알은 무고한 시민 두 명을 다치거나 죽게 만든다. 그중에 오수안. 


총을 맞았고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그 후로 미각을 상실했지만 평소 먹던 오레오는 달랐다. 오레오를 먹고 바르고 피운다. 그러면서 총과 하나가 된다. 세계 평화를 지키겠다는 의리적 수호심은 없지만 총을 맞고 난 이후로 변해버린 자신이 낯설다가도 받아들이고 만다. 서울 곳곳에서 총이 발사되고 사람들이 죽는다. 오수안과 총과 관련된 다른 사람들이 모인다. 


『스모킹 오레오』는 그 뭐냐 소설적 핍진성과 개연성을 버리면 재미있게 읽어 나갈 수 있는 소설이다. 김홍의 초기작이어서 덜 황당하면서 그런대로 현실과 맞닿은 이야기로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게 한다. 왜 하필 오레오인지는 따지지 말자. 표현대로 과자답지 않은 오레오의 고전적이고 기품 있는 문양이 먹는 사람으로 하여금 고급스럽고 귀족적이게 만들지 않나. 


근본으로 따지면 하얀 크림의 오레오를 먹어야 하지만 초코 오레오가 훨씬 맛있다. 변종을 사랑한다. 다 끊을 순 있지만 과자만은 끊지 못하겠어요. 『스모킹 오레오』의 총의 상징성을 분석해야겠지만 귀찮다. 총이 있었고 자신이 총이지만 사람들이 자신을 쏘는 건 싫은 그런 총인데 자신을 없앤다고 한들 다른 총의 등장을 막을 순 없는 허약한 총이라는 거. 


그러지 말고 오레오나 한 대 피우러 가자. 오레오가 싫다면 신상 와사비새우깡이라도. 이건 피울 때 조심해야 한다. 톡 쏘는 와사비의 향 때문에 사레 걸릴 수 있거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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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당신을 찾아갈 것이다
김홍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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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읽기가 심각해질 때 (소설 읽기가 심각해질 때가 있을까. 사는 게 더 심각하지. 그럼에도) 김홍의 소설을 한 편씩 찾아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출판 순서에 상관없이 읽어도 괜찮다. 읽을수록 황당한데 황당함이 납득이 되면서 괜찮아진다. 처음으로 읽은 소설은 『엉엉』이었고 두 번째는 『프라이스킹!!!』. 위원회 3부작이라고 하던데 어떻게 된 일인지 (인생도 이렇게 엉망진창인 것 같은데 의외로 순서가 있듯이) 순서에 맞게 읽었다. 


위원회 3부작의 순서는 『엉엉』, 『프라이스킹!!!』, 『말뚝들』이다. 고급 정보 하나. 


본체가 떠나고부터 엉엉 우는 이야기(『엉엉』), 무엇이든 팔지만 다 팔지는 않는 아이러니의 끝판왕을 보여주는 이야기(『프라이스킹!!!』), 어느 날 죽은 자들의 형상화 말뚝들이 도심 곳곳에 출몰해 사람들을 울게 만드는 이야기(『말뚝들』)까지. 읽으면서 당황스럽지만 주절주절 설명하지 않는 담백함 때문에 그럭저럭 소설의 개연성 따위 생각하지 않게 해준다. 


『여기서 울지 마세요』도 특별하다. 김홍은 울음 귀신에 단단히 씌었나 보다. 『엉엉』 울라고 하는 것 같다가 『여기서 울지 마세요』 정중하게 울음을 그칠 것을 강요한다. 대놓고 『말뚝들』을 보여주면서 울어버리라고도 한다. 그러니까 울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우리가 당신을 찾아갈 것이다』는 여덟 편의 이상하고 낯선 웃음을 가진 소설이 담겨 있는 소설집이다. 개 두 마리를 공원에 유기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소설 「실화」에서부터 크리스 아저씨를 트럼펫 연주자로 기억되게 하기 위해 노력하는 소설 「우리가 당신을 찾아갈 것이다」를 지나 혁명을 꿈꾸며 나간 과장의 빈자리를 대신해 회사의 축제를 이끌어 가야 하는 「신년하례」의 황당함을 지나면 계속 황당한 유머 같은데 유머라고 할 수 있을까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드는 소설들이 계속 이어진다. 



좀 이상하고 낯설지만 소설이 납득이 가는 나 자신이 이상해진 건 아닐까 의심도 해보지만 나란 사람은 소설을 읽기 전에도 원래 이상했다는 걸 깨닫고 나면 김홍 소설이 심상치 않다고 느낄 것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에는 이입을 할 수 없는 병을 갖고 있는지라 (그러니까 개연성이 부족한) 이야기가 산으로 가거나 우주로 가거나 시공간을 넘나들면 소설을 탁하고 덮는데 김홍 소설은 산으로 우주로 시공간으로 자유자재로 배경을 바꾸는데도 그러려니 넘어가면서 재미까지 느끼게 된다. 


거짓말인데 너무 거짓말이니까 차라리 믿고 싶어지는 그런. 


인생을 날로 먹으려는 생각도 없었고 항상 열심히 살았는데 인생에게 뺨도 맞고 배신도 당하고 나서는 그러면 정신을 차렸냐 하면 그것도 아니고 정말 뭣 같네 하면서 우는 날로 사계절을 보내고 있다가 실패도 좌절도 허무함도 원래 표정이 없는 사람처럼 무표정으로 받아들이며 택배 상하차를 하고 택시 운전을 하는 인물들이 나오는 소설을 읽다 보니 아침에 귀신처럼 누워만 있진 않게 되었다는 그렇고 그런 뻔한 이야기. 


정말 나를 찾아왔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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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된 말 장례식 문학동네 동시집 96
김성은 지음, 박세은 그림 / 문학동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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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한 권의 책이 있습니다. 아니 여기 한 권의 시집이 있습니다. 아니 아니 여기 한 권의 동시집이 있습니다. 책은 동시집이 시집이 되기도 합니다. 제목이 무척이나 흥미롭습니다. 『못된 말 장례식』이라니요. 시인의 말에 나오는 내용처럼 서점에 간 아이는 흥미로운 제목의 책인 『못된 말 장례식』을 소중히 골라서 집으로 나옵니다. 첫 동시집을 낸 시인의 상상 속에서 벌어지는 이야기입니다. 


정작 아이였을 때는 동시집을 읽은 기억이 없네요. 무얼 하며 놀았는지도요. 책을 무척이나 좋아했는데 왜 동시집은 읽어본 적이 없는지 모를 일입니다. 그런 아이는 자랐습니다. 어엿한 어른이 된 건 아니고요. 좀 어설픈 어른이 되어 살고 있습니다. 매일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찾고 있기도 합니다. 예쁜 그림이 그려진 편지지 같은 동시집 『못된 말 장례식』을 펼칩니다. 


편지지를 사본적이 오래되었네요. 지금도 구름, 하늘, 나무, 집, 소녀가 그려진 편지지가 있겠지요. 그 편지지를 사서 『못된 말 장례식』에 나오는 시를 옮겨 적으며 내 미안하고 고마운 마음을 전달하고 싶습니다. 첫 번째 시부터 읽어갑니다. '처음엔 꿈이었어'로 시작합니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기엔 무거워서 껌으로 만들었다가 잘못 삼켜 똥이 되었습니다. 꿈은 껌으로 그리고 똥으로 마지막에는 시로 나타납니다. 놀라운 시적 흐름입니다. 


아마도 아이가 가장 궁금했을 시 「말의 장례식」은 오랫동안 나의 말생활을 반성하게 합니다. 말은 말[馬]이 아닌 말[言]입니다. 들판을 뛰어가는 그 말이 아닌 우리가 매일 하는 말이 죽습니다. 다들 믿을 수 없고 안타까워하고 후회하죠. 특히 손의 혼잣말이 인상적입니다. '손은 나만 바쁘게 생겼네. 앞으론 다 글로 써야 할 거 아냐.' 한 번 뱉은 말은 주워 담을 수 없기에 말을 할 때 신중하라고 합니다. 그런데 긴박한 상황에서는 말이 필요합니다. 손은 그걸 알고 있어 말의 죽음을 슬퍼합니다. 


『못된 말 장례식』에는 말에 관한 시들에 주목하게 됩니다. 꼭 필요한 말을 남기는 「말 꼬치」. 배배 꼬인 나의 마음을 풀어주는 다정한 한 마리를 해주는 「꽈배기 그네」. 시는 말의 그네에 태우고 나를 또 다른 어린 시절로 데리고 갑니다. 할머니와 살았던 시절과 엄마의 꿈을 응원하고 싶은 시간으로요. 어른의 시간으로 넘어온 아이는 소중한 것을 지키기 위해 과감하게 미래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로 한다고 선언합니다. 


가을이라고 하기엔 조금 덥지만 가을이 문 앞에 도착해 있는 건 맞는 것 같아요. 비가 많이 왔고 하늘은 높아졌으니까요. 문을 열어 가을을 집으로 데리고 옵니다. 잘 왔어. 오느라 많이 힘들었지. 이제부터 너의 시간이야. 너를 위해 선물을 준비했어. 『못된 말 장례식』을 건네줍니다. 책의 첫 장이 살랑하고 넘어갑니다. 가을의 얼굴에 웃음이 번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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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춤을 추세요
이서수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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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서수 작가님.


무더운 여름 잘 지내고 계시나요? 올여름은 유난히 덥고 습해서 과연 가을이 올까 의심하게 만드는 여름이네요. 아무쪼록 시원한 곳에서 건강하게 지내시길 바랄게요. 신간 소설집 『그래도 춤을 추세요』 나온 것 축하드립니다. 더위와 다른 일들 때문에 책 읽는 일이 힘들어졌을 때 작가님의 신간이 나와서 많이 반가웠습니다. 신간에는 앤솔러지 작품집에 실린 소설도 있어서 두 번 읽었는데 그 또한 행복한 일이었습니다. 결말이 바뀐 소설이 있어서 더 좋았다는 생각도 했습니다. 


작가님의 오랜 팬으로서 『그래도 춤을 추세요』가 부디 작가님에게 부와 명예를 가져다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니 꼭 그렇게 될 것 같은 책입니다. 실린 소설들 하나하나가 전부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어서요. 특히 제 모습이 많이 투영 되어 있어서 읽으면서 훌쩍거렸습니다. 


2025년 8월의 제 상황을 전부 전달할 순 없지만 소설 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어떤 어려움들을 합치면 제가 됩니다. 「이어달리기」의 재은씨 (엄마한테 먼저 말하지 않고 회사 그만둔) 와 「춤은 영원하다」의 젊은 마흔 (하루를 살아가는 것만으로도 벅찬) 「잘지내고있어」의 주연 (책임을 미루고 싶어 하는) 그리고 「청춘 미수」의 미수 (피를 흘리지 않고 한 달에 삼백만 원을 벌고 싶은)는 나이면서 우리입니다. 


「AKA 신숙자」의 딸 박미리가 고양이 퐁이를 위해 거금을 쓰는 건 이해해 볼 만한 일입니다. 아직 반려동물을 키워본 적이 없어 (키우게 되면 저는 더 극성일 것 같기도 한데 모르겠네요. 나 아닌 누군가를 책임지는 일을 할 수 있을지) 미리의 행동을 전부 이해하지는 못했어요. 오히려 숙자씨에게 감정 이입이 더 되었습니다. 돈이 있는데도 일 할 것을 강요하는 딸에게 느낀 서운함을 말이죠. 


「광합성 런치」의 차진혜는 신입사원 박이재의 퇴사를 막기 위해 점심 식대를 만 원으로 올리려고 하죠. 맞아요. 요즘 밥값 너무 올랐어요. 얼마 전에 푸드코트에 갔다가 가격을 보고 한참이나 망설였죠. 먹고 싶은 세트는 죄다 만 원이 넘었어요. 사랑을 하고 싶은데 점심 식대에 가로막힌 진혜의 내일이 해피했으면 합니다. 


친구들이 나오는 「운동장 바라보기」를 읽으며 대리만족을 느꼈습니다. 나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하해 주고 나의 비관을 타박하지 않는 친구들이 있으면 죽고 싶은 오늘이 괜찮아질 거 같아요. 먹방을 자주 보는데요. 댓글을 보고 있으면 저렇게 시켜 먹을 수 있는 재력과 저 많은 음식을 소화할 수 있다는 게 부럽다는 게 대부분이에요. 부러운 거 맞아요. 경제력과 소화력을 한꺼번에 갖춘 사람들이 이렇게나 많다니. 저는 하나도 없는데 말이죠. 「미식생활」의 나라는 계속 찾아가는 먹방을 하고 호린은 술을 줄이고 나라와 함께 사이좋게 지냈으면 합니다. 


무엇이 있으면 행복할까요? 직업? 건강한 부모님? 언제든 부르면 나오는 친구들? 고정 급여? 『그래도 춤을 추세요』를 읽으면 행복은 별게 아닌데 별것처럼 굴면서 내 곁으로 오지 않아 얄밉게 느껴집니다. 모아둔 돈이 있어서 일을 그만두는 게 아닌데도 그만둘 수밖에 없는 현실에서도 엄마와 도서관에 다니는 하루가 이제는 그리움으로 남았다니. 작가님 왜 이렇게 슬프세요.


문학소녀는 문학백수가 되었지만 살아 있으면 문학인이 되어 있을 수도 있을 텐데. 알아요. 작가님이 슬픈 게 아니라 삶이 슬프다는걸. 어제는 싫은 사람에게서 전화와 카톡이 왔습니다. 전화는 받지 않았고 카톡도 읽지 않음으로 남겨두었습니다. 잊고 지내고 싶은 일을 자꾸 들쳐내는 사람이라 이제 차단해야겠습니다. 괜찮아 괜찮아 세뇌해놓은 마음이 무너져서 저녁과 밤에 『그래도 춤을 추세요』를 읽으며 마음을 다시 쌓았습니다. 


책이 정말 좋습니다. 『그래도 춤을 추세요』가 말이죠. 제가 이 책이 각종 문학상을 받을 수 있도록 간절한 염원을 담아 이브의 경고를 틀어 놓고 춤을 추겠습니다. 테크닉은 없고 진심만 가득한 춤사위지만 제 춤의 기운만 살짝 느껴주세요. 길을 걷다가 춤을 추고 싶어진다면 그건 제가 다른 공간에서 이상과 김동인, 이효석, 황순원, 노벨 선생을 만나 『그래도 춤을 추세요』를 건네며 춤을 췄다는 걸 거예요. 그리고 수상 소식이 들려올 겁니다. 


로또번호도 알아서 텔레파시로 보내 놓겠습니다. 


비싸더라도 수박 사서 드시고 더우니 디저트는 배달로 시켜서 드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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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 오피스 오늘의 젊은 작가 34
최유안 지음 / 민음사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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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열대야가 아니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더운 밤이지. 비가 오기 전의 어두운 하늘 그대로 밤이 되었다. 한참 전부터 읽어야지 했던 소설을 집어 들었다. 오늘은 꼭 도서관 가야지 했지만 결국 가지 않은 엔딩을 맞이한 밤. 집에도 읽을 책이 잔뜩 있으니까. 몇 장만 읽다만 책이 꽤 되니까. 다 읽고 비우고 가자. 나 스스로를 위로한다. 


최유안의 『백 오피스』의 결말이 마음에 들었다. 이야기를 어떻게 끝맺으려나 그래서 이 이야기는 무엇을 말하려나 걱정이 들긴 했지만 나는 독자니까 그건 작가가 다 만들어 놓지 않았겠어 느긋하게 읽었다. 일하는 여성들이 나오는 소설. 서로를 믿는 건 아니지만 서로를 연대하는 건 아니지만 (그럼 뭘 하는 거야 하겠지만)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여성들이 『백 오피스』에 등장한다. 


일하는 남성들은 고민하거나 의심하지 않는다. 일을 잘해낼 수 있을까 고민. 이렇게 하는 게 맞나 의심. 아이를 누군가에게 맡기고 나온 나를 자책에 빠뜨리지 않는다. 출근을 한다. 일을 한다. 퇴근을 한다. 집안일을 도와준다. 도와준다의 개념은 어디서 생겨난 걸까. 시혜적인 마음이 되어 오늘 괜찮았지 그런 마음으로 잠이 든다. 


일하는 여성들은 고민과 의심과 한숨과 자책과 눈물로 하루를 보낸다. 『백 오피스』의 강혜원 역시 그런 인물이다. 남편이 전적으로 육아를 담당하겠다고 했지만 막상 아이를 돌보지 않은 혜원을 미워한다. 육아휴직을 써서 승진 누락을 경험한 혜원은 어떻게든 버텨내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홍지영 역시 힘들게 대기업에 입사했지만 번번이 오균성과 업무 충돌을 한다. 작은 기획사에서 주도적으로 일을 하는 임강이는 자유로운 편에 속한다.


세 여성이 보여주는 일잘러의 모습. 『백 오피스』는 행사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앞모습과 뒷모습을 평등하게 보여준다. 그들이 기획한 행사는 성공리에 마무리될 수 있을까보다는 행사가 끝난 뒤 그들이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해졌다. 일은 끝나도 삶은 계속되니까. 일이 끝난 거지 삶이 끝난 건 아니니까. 유해한 낮을 살아냈다면 무해한 밤에 누워서 울든 웃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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