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콜센터 상담원, 주운 씨 - 전화기 너머 마주한 당신과 나의 이야기
박주운 지음 / 애플북스 / 2020년 3월
평점 :
나 정말 통화하고 싶다.
두 달이 다 되어 가는데. 연결이 되지 않는다. 번호를 누르고 기다린다. 신호음이 들리기를 간절히. 제발. 매번 통화 중이다. 이윽고 전화는 끊어진다. 에라이. 나 정말 통화하고 싶다고. 세상 친절한 목소리로 그간의 사정을 이야기하고 답변을 듣고 싶다. 마음을 비우고 있으면 해결이 되겠지 하는 심사도 잠깐이다. 기다리면 될 거야. 속 편하게 있어라. 말이 쉽지. 연결이 되지 않을 걸 알면서도 통화 버튼을 누른다.
『콜센터 상담원, 주운 씨』를 읽었다. 이해하고 싶었으니까. 얼마나 바쁘면 계속 통화 중일까. 책을 읽으며 불안을 다스리고 현상을 수긍하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석 달만 일하겠다고 다짐하고 콜센터에 들어간 주운 씨는 어쩌다 보니 5년 넘게 일을 했다. 그전에 항공사 제주지점 용역업체에서 일을 했다. 일을 열심히 했고 지점장의 추천으로 서울에서 일할 기회를 얻었다.
두 달 만에 고비가 찾아왔고 일을 그만두었다. 석 달쯤 놀다가 구직 사이트에서 콜센터 구인 광고를 보았다. 인터넷 서점 콜센터였고 면접을 봤다. 어찌어찌 티켓 콜센터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 『콜센터 상담원, 주운 씨』는 콜센터 직원으로 일을 했던 주운 씨의 시절의 일상을 담고 있다. 흔히 진상이라고 말하는 고객과의 통화에서부터 일을 하면서 겪었던 감정 노동의 서글픔까지 담았다.
회사가 요구하는 노동의 강도는 생각보다 고됐다. 하루 80콜 이상을 받아야 하고 전화를 받지 않고 업무를 처리하는 상태인 후처리 시간을 줄여야 했다. 가장 가슴 아팠던 건 화장실을 가야 할 때였다. 관리자에게 허락을 받고 허락이 떨어지면 갈 수 있었다. 점심시간이 있음에도 지켜지지 않았다. 티켓 콜센터이므로 취소를 하면 수수료가 붙는다. 이것 때문에 고객과의 상담이 힘들었다.
『콜센터 상담원, 주운 씨』는 콜센터라는 세계를 과장 없이 현실적으로 그리고 담담하게 보여준다. 직장 동료를 만들기 어려운 곳. 신입 사원이 매번 들어오지만 얼마 버티지 못하고 그만두기 때문이다. 고객의 무리한 요구에도 쩔쩔매면서 결국 기업 이미지를 좋게 만들기 위해 받아들여야 하는 곳. 5년 넘게 근무했지만 월급은 제자리. 최저 시급이 올랐음에도 수당이 깎이기 때문이다.
주운 씨는 콜센터를 그만둔다. 그만두는 시점에 『콜센터 상담원, 주운 씨』를 펴냈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글을 썼단다. 자신이 느끼는 감정의 실체를 알고 싶어서. 남들이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차를 사고 집을 넓혀 갈 때 자신은 늘 그대로인 것 같아 불안함을 느꼈다. 콜센터에서 근무한다고 말하지도 못했다. 가벼운 우울증을 앓기도 했다. 글쓰기 수업을 듣고 블로그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새로운 꿈을 가지게 되었다. 글을 쓰는 작가가 되기로 한 것이다. 진심을 다해 응원한다. 꼭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도 말해본다. 현실에 기반한 글쓰기를 잘 해내리라는 예감이 든다. 『콜센터 상담원, 주운 씨』를 읽고서. 지금 있는 곳이 힘들고 버티기 어렵다는 마음이 들더라도 나를 놓지 말자고 주운 씨는 말한다. 상담원님, 상담원분이라고 부르는 것이 좋단다. 책 읽기는 세계의 이면을 알 수 있는 가장 탁월한 방법이다. 통화가 되지 않는 상황을 『콜센터 상담원, 주운 씨』를 읽으며 미루어 짐작해 보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