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해 생활
송지현 지음 / 민음사 / 2020년 8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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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에서 나오는 한국 소설, 한국 에세이, 한국 시집을 많이 읽는다. 안다. 민음사에는 세계 문학과 다양한 인문 교양서도 많이 나온다는걸. 그런데도 나는 한국 작가들이 쓴 책을 주로 읽는다. 나라를 사랑하는 주관이 뚜렷하고 의식이 투철한 애국주의자, 국수주의자는 절대 아니고. 이해 가능한 범위 내에서 독서를 하는지라 내게는 한국 문학이 찰떡이다.


한국, 사랑한다. 이제서야 고백한다. 의료보험 잘 되어 있고 택배 시스템 훌륭하다. 오죽했으면 세계 여행 한 번도 안 가봤을까. 첫 월급 받은 기념으로 여권을 만들었는데 10년 동안 한 번도 안 쓰고 갱신 기한을 넘겨 버렸다. 한국을 사랑하는 것과 외국 여행 안 가본 건 무슨 상관일까 싶은데. 이왕 쓸 돈 우리나라에서 쓰자는 이상한 고집 때문이다.


여행기를 꾸준히 읽는 것으로 지식을 넓힌다. 여행을 책으로 배웠다. 책만 펼치면 방구석에서도 여행이 가능하다. 남의 고생기를 읽으며 안 가길 잘했어, 행복 회로를 돌린다. 일상의 피곤함을 독서로 달래 보는 것도 요즘 같은 시대에 현명한 방법이다. 먹는 우울증 약이 아닌 읽는 우울증 약을 받아드는 셈이다. 책 읽기란. 소설가 송지현의 에세이 『동해 생활』을 읽으며 사는 거 참 별거 아니다 하는 위로뽕 맞았다.


소설가 송지현의 첫 소설집은 안 읽고 첫 에세이를 읽었다. 조만간 읽을 게요. 『이를 테면 에필로그의 방식으로』요. 『동해 생활』을 보니 해외여행 못 가니까 국내용으로 이런 기획으로 '생활 시리즈' 나오면 대박 치겠다. 여수 생활, 통영 생활, 남원 생활, 강릉 생활, 충주 생활…. 송지현이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써도 되고 다른 작가가 이어받아서 써도 되고. 민음사 관계자분들이여. 나의 대박 아이디어를 받아 적으시라. 코로나 시대에 여행 못 가는 이들에게 환영받으며 베스트셀러에 진입하고….


그냥 그렇다는 거다. 우울증에 시달리고 실직하고 아빠가 빌려준 돈 대신 받은 동해 아파트가 있다는 걸 깨달은 송지현은 이케아에 가서 '나만의 집'을 꾸미기 위한 인테리어 용품을 산다. 친구와 동해에 살러 가면서 아차 엘베가 없는 집이란 걸 뒤늦게야 안다. 차분하고 문제 해결 능력이 완벽한 친구에 의해 짐을 나르면서 이 년간의 동해 생활이 시작된다.


문을 열면 바다가 보이는 집. 영화 《봄날은 간다》에서 이영애가 전무후무한 작업 멘트인 "라면 먹고 갈래요?"를 날리며 눈을 반짝이던 이영애니까 가능했던 그 말을 듣는 유지태가 배시시 웃던 배경이 된 아파트. 송지현은 그곳으로 이사를 간다. 전입 신고를 하고 실업 급여도 받는다. 처음 한 달은 스무 시간 넘게 잠만 잤다. 스무 시간. 하루는 24시간인데. 그렇게 한 달을 보내고 동사무소에서 보내준 팸플릿을 보고 중단되었던 취미 생활을 이어 나간다.


나도 그렇다. 무슨 일을 하려면 장비부터 사야 한다. 완벽하게 세팅된 상태에서 작업을 해야 한다. 송지현은 자신을 취미 왕이라고 소개한다. 기타를 배우려고 삼 개월 할부로 기타를 사고. 색연필 인물화를 하려고 72색 색연필을 사고. 한국화 수업을 들으려고 화선지 1000장을 사고. 사는 건 기가 막히게 잘하는데 끝까지 수업을 듣고 준전문가로 나아가지는 못한다.


『동해 생활』은 웃기고 슬프고 즐겁고 짠하고 신나고 애틋한 생활의 에피소드 모음집이다. 아홉 살 차이 나는 친동생과 송지현은 동해에서 산다. 고양이 두 마리까지도. 생활비를 이마트에 전부 탕진하면서. 친구들이 오면 망상 해수욕장으로 끌고 가고 방 하나 거실 하나인 아파트로 데려와 술자리를 이어간다. 첫 부분에 민음사에서 나오는 한국 문학을 열심히 읽는다고 썼는데. 왜 그 이야기를 했냐면.


민음사에서 나오는 한국 소설, 에세이에는 추천의 말이 좀 길게 나온다. 그게 좋다. 별거 아닌데 형식적으로 아무리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모를 쓰인 평론이나 간단한 발문이 아닌 작가의 지인들이 사심을 가득 담아서 쓴 추천의 말을 읽을 수 있어서. 나는 사소한 일에 쉽게 감동을 받는지라 몇 장이 넘어가게 쓰인 추천의 말을 읽으며 그 작가의 평소 인간관계나 생활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 것이다.


『동해 생활』에는 송지현이 사는 동해로 놀러 간 작가 세 명 권민경, 박상영, 백은선의 글이 실려 있다. 바다색을 닮은 종이에. 우울증을 겪는 송지현을 그대로 봐주고 과잉 친절로 범벅된 위로의 말을 해주지 않으면서 같이 술을 음식을 먹는 작가 친구들. 나는 별일 없으면 지금 사는 곳을 떠나지 않을 거다. 대신 누군가가 살아간 시간의 글을 읽으며 이곳과는 다른 풍경을 엿볼 것이다. 송지현의 어떤 생활이든 파이팅! 갑자기? 응 갑자기.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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