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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리에이션 루트 - 2024 제171회 아쿠타가와상 수상작
마쓰나가 K 산조 지음, 김은모 옮김 / 은행나무 / 2025년 2월
평점 :




알 수 없는 게 인생.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게 인생. 시험지에 오답만을 써 내려가는 게 인생. 이러나저러나 결괏값을 모른 채 과정에 충실할 수밖에 없는 게 인생. 자기 전 후회와 불안이 밀려와 옆으로 돌아누워 우는 게 인생. 과연 최선을 다 한 걸까 백만 스물한 번째 질문하게 만드는 게 인생. 내일 일은 내일 생각하자며 오늘 일을 미루며 괴로워하는 것도 인생.
어쩌다 와 왜 와 정말이라는 말 뒤에 인생을 붙이며 주접을 떨어본다. 어쩌다 인생이 왜 인생이 정말 인생이. 진짜 개박살 난 건 아닐 거야. 그러기엔 우주의 먼지 보다 존재감이 없는 게 너의 인생이잖아. 이상 기후와 이상 정치와 이상한 법률이 실존하는 현실에서 살아 있는 것만 해도 감사해야지. 너의 인생.
미안하다 와 죄송하다 빼고는 할 말이 없어도 살아야 한다. 2024년 아쿠타가와상 수상작인 『베리에이션 루트』는 인생을 등반에 비유한다. 좀 뻔하지 않냐고? 뻔한 비유나 소재일수록 제대로 표현해 내기 어려운 법이다. 제목 베리에이션 루트는 정해진 길이 아닌 자기만의 길을 개척하는 등산법이라는 뜻이다.
산에 오르는 행위. 어차피 다시 내려올 걸 왜 올라가지. 비생산적 비활동적 무기력 생활인은 그런 생각을 한다. 아 산이 있네. 감흥 없이 산을 대한단 말이지. 겨울 지나고 봄이 되었으니 건조해서 불이 나면 안 되는데 하는 생각 정도만을 한다. 나이가 더 들어서 할 일이 없어지면 산악회에 가입해서 제일 좋은 등산복과 장비를 갖출 수도 있을까.
『베리에이션 루트』는 등산이라는 흥미가 없는 독자여도 소설의 흥미를 갖게 만든다. 당대의 문제를 등산이라는 소재로 풀어내어 힘이 없는 현대인들을 위로한다. 힘들게 이직한지 3년 차의 직장인 하타 씨가 주인공이다. 왜 힘들었는지는 소설을 읽으면 알 수 있다. 스포 자제. 함께 주말에 등산을 하자는 권유를 받은 하타. 어쩐지 이 모임에는 자신이 참가해야 할 것 같다. 왜 그런지도 소설을 읽으면 알 수 있다.
등산복과 장비를 구입하고 정해진 루트를 따라 회사 사람들과 산을 오른다. 주말에. 이렇게까지만 놓고 보면 헉, 으으으 하는 의성어가 절로 나온다. 나의 소중한 주말에 회사 사람들과 그것도 산에 간다니. 맙소사. 하타는 어쩐 일인지 등산을 할수록 거부감이 줄어들고 상쾌함마저 든다. 그러다 회사에서도 섬 같은 존재인 메가 씨가 등산 모임에 참석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에게 호기심을 갖는다.
근속 연수 15년 차인 메가 씨는 사람들과 친분 관계를 유지하지도 먼저 다가가지도 않는다. 그저 묵묵히 일을 할 뿐이다. 메가는 정해진 루트가 아닌 베리를 한다고 한다. 그즈음 선대 회장이 물러나면서 조카인 신임 사장이 부임하면서 회사의 분위기와 사업 방향이 바뀐다. 구조조정이 있을 것이라는 말도 들려온다. 그 속에서 메가는 분위기와 소문에 휩쓸리지 않으면서 자신만의 방식으로 일을 한다.
『베리에이션 루트』는 베리로 읽으면 된다. 소설의 내용은 결코 느슨하지 않는데 등산이라는 소재 때문인지 느슨하고 느긋하게 읽어도 결말에 도달해 있다. 당장 큰일 날 것 같은데 회사일이라는 게. 베리를 하는 메가를 따라간 하타는 그곳에서 회사일 따위라는 담대함을 챙겨서 내려온다. 실체가 없는 어려움과 위기를 두고 걱정과 불안을 쏟아내면서 에너지를 바닥내는 일은 무의미하다.
눈앞에 닥친 위기만이 위기임을 메가 씨는 베리로 보여준다. 원래의 등산로도 길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풀숲을 헤치고 걸어갔기 때문에 길이 된 것이다. 자신만의 보법과 경로로 위기의 인생길을 걸어간다. 『베리에이션 루트』는 말한다. 또 어디에선가 베리를 하고 있는 메가를 만나기 위해서는 나만의 베리를 시작해야 한다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