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네 농장은 북향이다. 북쪽만 훤하게 트여 있고 나머지 세 방향은 울창한 나무숲이다. 특히 서쪽 방향은 잣나무들이 빽빽이 조림돼 있어서 농장이 다른 곳보다 서녘 해가 일찍 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동쪽 방향은 소나무 참나무 산벚나무 느티나무 아카시나무 들이, 남쪽 방향은 흰닥나무 오리나무 참나무 들이 어지럽게 장벽처럼 들어서 있다.
K는 밭에서 일하다가 지치면 컨테이너농막에 들어가 댓자로 누운 채로 라디오 음악을 들으며 쉬곤 했는데… 그 날은 불현듯 남쪽 방향의 숲속을 살피고 싶어졌다. 나무들은 괜찮은데 칡덩굴이 별나게 기승을 부리는 곳이라 단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동쪽과 서쪽 숲속은 이미 여러 번 가 봤었다.
칡덩굴.
그 놈들은 남쪽 방향 숲에서부터 기어 나와 농장 안까지 기웃댄다. K의 아내가 질색하여 전년도에 낫으로 놈들을 열심히 쳐냈으나 해가 바뀌자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되살아나 있었다.
오늘 아내는 성당에 가는 날이라며 K 혼자 농장에 가게 했다. 부부가 사는 집은 농장에서 20 리 넘는 시내에 있다.
K는 아내가 남편을 위해 농막에 갖다 놓은 긴팔 남방을 걸친 뒤 등산화도 찾아 신었다. 한 손에는 낫을 쥐고서 남쪽 숲으로 조심조심 들어갔다. 깨진 바위도 많은 데다가 칡덩굴까지 어지러운 숲. 대낮인데도 어두운 숲이라 발걸음 하나 옮기기도 쉽지 않았다. 만일 아내가 있었다면 ‘그냥 농막으로 되돌아가자’고 만류했을 것 같다.
낫으로 눈앞의 나뭇가지들과 칡덩굴을 쳐 내면서 10분 쯤 걸었을까 갑자기 눅눅하면서 찬 기운이 K를 휘감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