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네 농장은 북향이다. 북쪽만 훤하게 트여 있고 나머지 세 방향은 울창한 나무숲이다. 특히 서쪽 방향은 잣나무들이 빽빽이 조림돼 있어서 농장이 다른 곳보다 서녘 해가 일찍 지는 결과를 가져왔다. 동쪽 방향은 소나무 참나무 산벚나무 느티나무 아카시나무 들이, 남쪽 방향은 흰닥나무 오리나무 참나무 들이 어지럽게 장벽처럼 들어서 있다.

K는 밭에서 일하다가 지치면 컨테이너농막에 들어가 댓자로 누운 채로 라디오 음악을 들으며 쉬곤 했는데그 날은 불현듯 남쪽 방향의 숲속을 살피고 싶어졌다. 나무들은 괜찮은데 칡덩굴이 별나게 기승을 부리는 곳이라 단 한 번도 들어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동쪽과 서쪽 숲속은 이미 여러 번 가 봤었다.

칡덩굴.

그 놈들은 남쪽 방향 숲에서부터 기어 나와 농장 안까지 기웃댄다. K의 아내가 질색하여 전년도에 낫으로 놈들을 열심히 쳐냈으나 해가 바뀌자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되살아나 있었다.

오늘 아내는 성당에 가는 날이라며 K 혼자 농장에 가게 했다. 부부가 사는 집은 농장에서 20 리 넘는 시내에 있다.

K는 아내가 남편을 위해 농막에 갖다 놓은 긴팔 남방을 걸친 뒤 등산화도 찾아 신었다. 한 손에는 낫을 쥐고서 남쪽 숲으로 조심조심 들어갔다. 깨진 바위도 많은 데다가 칡덩굴까지 어지러운 숲. 대낮인데도 어두운 숲이라 발걸음 하나 옮기기도 쉽지 않았다. 만일 아내가 있었다면 그냥 농막으로 되돌아가자고 만류했을 것 같다.

낫으로 눈앞의 나뭇가지들과 칡덩굴을 쳐 내면서 10분 쯤 걸었을까 갑자기 눅눅하면서 찬 기운이 K를 휘감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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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형극장만 아름다운 게 아니었다. 인형극장에서 보이는 풍경도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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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농사를 8년째 짓고 있다. 산속에 있는 밭이라 그런지 잡초가 극성이다. 내가 위험한 예초기까지 장만한 건 그 때문이다. 예초기로 잡초들을 깎은 지 5년째. 깨달은 사실이 있다. 잡초가 1년 내내 기승부리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정확히는 4월 중순경에서 시작되어 9월 하순까지 잡초는 기승을 부린다. 반년간이다. 9월을 지나면 잡초는 더 이상 나지 않는다. 일조량이 부족해지는데다가 날씨가 추워진 탓일 거라 추측한다.

 

지랄 맞은 코로나 역병이다. 하지만 머지않았다. 끝날 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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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장맛비에 농장에 가지 못했다. 웬일로 어제는 비가 그치며 해까지 잠시 났다. 나는 집에 가만있을 수 없어 차를 몰고 20리 넘어 있는 농장에 갔다. 역시 농장은 잡초들이 기승을 부려 얼마 안 되는 작물과 아내가 애지중지하며 키운 화초들을 쉬 찾기 어려울 정도였다. 기록적인 50일 장맛비의 결과였다.

다행히도 예초기가 작동했다. 예초기를 들고 잡초들을 쳐나가다가 순간 강렬한 통증에 작업을 중단했다. 내 왼손의 손등 한 군데에서 발생한 통증.

누가 그랬는지, 잡초더미로 달아나버려서 알 수는 없었지만 아무래도 벌의 소행 같았다. 예초기를 든 손의 높이로 봐, 그런 높이에서 뱀이 깡총 뛰면서 저지르기 만무하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나의 반응이다. 그 통증에 순간 쾌감을 느꼈기 때문이다.

 

왜 그랬을까?

하루 지나 생각해 보니 답이 나왔다. 50일이나 계속된 지루한 장맛비와, 그 이상 지루하고 답답한 코로나 사태 속에서 나는 갑갑해 죽을 뻔했다가 그 벌에 쏘였기 때문이다. 강렬한 통증은, 기나긴 갑갑한 생활을 순간 잊게 해주는 쾌감 같았다. 하루 지난 오늘 손등이 부어올라 약을 발랐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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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아침에 김 시인의 두 번째 책을 받았다. 책의 제목은 시인 체육교사로 산다는 것이다. 내 젊은 날 함께 그리고 문학회 활동을 했던 박기동 교수가 떠오를 수밖에 없는 책의 제목이다. 박 교수는 시인이면서 강원대 체육과 교수(정년퇴직)였다.

 

지난해 7월에도 김 시인한테서 시집 개망초 연대기를 선물 받았으니 벌써 두 번째다.

개망초 연대기를 읽어나가면서 나도 모르게 박기동 교수한테 불쑥 이런 문자를 보냈었다.

 

오늘 오전에 '개망초  연대기'라는 자학적인 제목의 시집을 받았다네. 김재룡 시인이 보내준 거지. 그런데 뜻밖에도 글을 아주  잘 써서 나를 소스라치게 만들었지 뭔가시집 앞쪽의 집안내력 기술은 소설가 저리 가라야.  내가 쓰던 장편도 중단하고 개망초  연대기에 잡혀 있다네.”

소설가 저리가게 글을 잘 쓰는 김재룡 시인. 이번의 시인 체육교사로 산다는 에는 과연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찬찬히 읽어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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