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8년경, 나는 동해안의 양양고등학교 교사였다. 어머니가 춘천의 살림들을 정리한 뒤 동생들과 함께 양양으로 내려와 내 뒷바라지를 겸해서 함께 살았다. 강원도에서는 대도시라 할 춘천에서 살다가, 좁은 시골 양양에 내려와 살자니 어머니는 말벗할 분들이 아쉬웠다. 그 때 어머니의 말벗이 된 할머니 한 분이 있었다. 당시 그분 나이 여든쯤 됐는데 뜻밖에 아주 유식한 분이었다. ‘왜정 때 이화학당을 다녔다고 했다. 그분이 3·1절이 가까운 2월말의 어느 날 어머니와 이런저런 말씀을 나누다가 이랬다.


관순이가 학교 다닐 때도 성질이 괄괄했지. 그러니 순사들한테 기죽지 않고 대든 거지.”

우연히 옆에서 그 얘기를 듣게 된 나는 놀라서 그분한테 되물었다.

할머니. 관순이라니, 유관순을 말하시는 겁니까?”

그분이 미소 지으며 말했다.

그럼. 유관순이가 내 일 년 후배였어.”

돌이켜보면 그 해 1978년은, 19193·1만세 운동이 터진 해에서부터 채 60년이 안 된 해였다. 여든 나이 그분에게 19193·1만세 운동은 한창 나이 스무 살 즈음의 생생한 사건이었다. 유관순 열사 사건을 흘러간 역사의 한 부분인 듯 여기고 있었지만 사실 얼마 지나지 않은 사건이었던 거다.

어르신들이 흔히 말하는왜정 때 말이야.’할 때의 왜정 때 역시 그리 먼 시대가 아니었다. 나라를 왜놈들에게 팔아넘기는 데 앞장선 을사오적들 얘기 또한 그리 먼 데 일이 아니다. 그들의 손자들이 자기 할아버지의 땅을 되찾겠다며 지금도 여기저기 오가고들 있다지 않는가. 수치스런 역사 또한 이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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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내 동네 부근의 작은 산을 매일 다녔다. 노년의 건강을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운동이었다. 그러면서, ‘살아 있는 움직임이라고는 한 치도 없는 삭막한 겨울 산이라 여겼다. 풀벌레는 물론이고 갖가지 야생화, 산새, 하다못해 흉측한 뱀까지 그 모습을 볼 수 없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겨울이 끝나가는 요즈음 내 생각이 잘못이었음을 깨달았다. 사철 푸른 소나무들부터 시작해서 수많은 생물들이 겨울 산에 분명히 살아 있었던 것이다.

뱀들은 분명히 어느 바위 밑 같은 데 모여 겨울잠을 자고 있을 것이며, 산새들은 잠시 다른 따듯한 데로 피신해 있을 것이며, 야생화들 특히 진달래나 철쭉은 꽃들을 피우진 않았지만 가지들마다 살아서 꽃망울을 준비하고 있었다. 오솔길 가의 하찮은 잡초들은 또 어떤가. 자신은 겨울 추위에 흔적도 없이 부스러져 버렸지만 겨울이 닥치기 전인 지난가을에 풀씨들을 사방으로 날려 몇 달 뒤의 새봄을 준비하지 않았나?

지난해 아들을 장가보내면서아비로서 할 일을 마쳤다는 감회가 밀려들던 나 자신이 떠오르는 광경이다.

별나게 추웠던 이번 겨울. 동네 부근의 자그마한 산일지언정 산의 생물들은 하나도 겨울 추위에 죽거나 사라진 게 아니었다. 갖가지 방법으로 겨울을 나고 있었다.

겨울에도 산은 살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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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새 내린 눈이 창 밖 전깃줄에 붙어 있다. 아주 습한 눈인 게 분명하다. 이런 눈을  다른 건조한 눈과 구별해 부르는 우리 말 단어가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북극지방의 에스키모들은 눈을 가리키는 단어가 수십 개라 한다. 습한 눈만을 가리키는 단어가 따로 있을 뿐만 아니라 그조차  여럿일 게 분명하다. 역시 언어는 환경의 산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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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빛 화창한 날들이 20여 일 이어지자 동네 근처 산의 눈이 대부분 녹아버렸다. 드물게 남아있는 두어 군데 눈은 이 겨울의 마침표일까, 쉼표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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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닥 실처럼 가늘고 길게 나 있는 솔밭의 오솔길. 장비 없이 오직 사람들의 발길로 만들어진 게 틀림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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