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젊은 날에 아폴로 싸롱이 있었다.

 

서양 가수들의 팝송만 흘러나왔던 게 아니다. 송창식의창 밖에는 비 오고요, 바람 불고요노래도 스산하게 흘러나왔는가 하면그렇다. 춘천 출신 대형 신인 가수 김추자의 님은 먼 곳에도 뜨겁게 흘러나왔다.

김추자는 사실 가수로 등장하기 전에도 그 이름이 춘천에서는 알려져 있었다, ‘춘천여고 응원단장 김추자로 말이다. 60년대 말 춘천 시내의 여러 고등학교가 참가하는 체육대회가 공설운동장에서 열리곤 했는데 그 때마다 춘천여고 응원단장으로 앞에 나서 신나는 응원 동작으로 그 이름을 떨친 게 계기다. 춘천여고에서 응원단장을 한 여학생이 한둘이 아니었을 텐데 유독 그녀만이 유명해진 건 바로 그 이름 때문이 아니었을까?

추자라는 이름이 춤을 추자의 준말처럼 여겨졌던 거다.

데뷔 처음월남에서 돌아온 김상사를 불렀을 때에는 신인 여가수인가 보다 하는 정도의 인식이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랑한다고 말할걸 그랬지하면서님은 먼 곳에노래가 나오면서 우리 고장의 대표적인 여학교 춘여고 출신이며 더구나 공설운동장 체육대회 때 화려한 몸짓을 보이던 응원단장 김추자라는 사실까지 뒤늦게 부각되었다.

딱히 즐길 거리도 없던 그 시절, 춘천의 갈 곳 없는 젊음들이 아폴로 싸롱 지하공간에땅 밑에 고인 물처럼 모여 김추자 그녀의 애절한 노래에 시름을 달랬다. 시끄러운 음악 속에서도 고고하게 시집(詩集)을 보는 여자애나, 그 여자애한테 접근했다가 낭패를 당한 내 친구 녀석이나, 괜히 한쪽 팔을 깁스하고 날마다 문 열고 등장하던 남자애나 모두 먼 곳에 있는 님을 그리고들 있었던 게 아니었을까. 모습들은 각기 달랐지만 말이다.

 

내 젊은 날에 아폴로 싸롱이 있었다.

 

이 수필에 나오는 아폴로 싸롱은 70년대 춘천 시내 한복판에 있었던 음악다방의 이름입니다. 당시 젊은이들이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서 종일 팝송과 송창식 같은 우리나라 젊은 가수들의 노래를 감상했습니다. 흡연은 허락됐지만 음주는 허락되지 않았던 나름의 멋진 음악 감상실이었습니다. ‘싸롱’이란 이름 때문에 요즈음의 젊은이들에게 오해 살 수 있어서 뒤늦게 무심이 밝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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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날 춘천미술관 2층 전시관에 들어서자, 수많은 동물이 제각기 조각배를 타고 줄지어오는 광경부터 맞닥뜨렸다. 도자(陶瓷)로 구워낸 동물들의 행렬이다. 동물들은 놀랍게도 사람처럼 표정이 있었다.

 

 

 동물들이 왜 이럴까?’

의문이 들 때 출입구 벽에 붙은등파고랑(登波鼓浪)이란 제목의 글을 보게 되었다.

 

 

바닷물을 머금어 더 이상 가라앉을 수 없는 푸른 배에 동물을 태웠다. 그전에 배는 그저 운송수단에 불과했다면 2014년부터 배는 나에게 절망이자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노 없이 배에 타고 있는 동물은 북을 치고, 횃불을 들고, 책을 들고, 마이크를 잡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하는 존재들이다. 나는 동물들을 어떠한 틀도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하나하나 만들어왔다. 음식이나 물건으로 더 많이 만나게 되는 돼지, , , , 염소, 토끼, 말 등도 저마다 생김새가 다 다르고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였다.

배를 탄 동물들은 웃으며 반란을 일으켜 희망을 향해 가고 있다.

 

 

그 옆으로는 너는 늙어봤느냐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글도 있었다. 

     


우리가 먹는 동물의 99% 이상이 공장식 축산에서 나온다. 계란 생산용 닭은 A4지 한 장 크기보다 작은 공간에서 평생을 살고 알을 낳지 못하는 수평아리 25천여만 마리는 매해 산 채로 폐기된다. 일주일에 100만 마리가 넘게 없어지는 돼지, , 소 등은 평생을 자유의지로 살아갈 수 없고 닭은 길게는 30, 돼지와 소는 15년이나 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1개월에서 3년밖에 살지 못한다.

나는 수탉이 자신의 수평아리를 업고 있는 모습과 돼지와 소가 행복하게 늙어가는 모습을 형상화하였다. 최대한 동물과 닮게 만들려고 노력하기보다는 최소한 동물들이 살고 싶은 만큼 살다가 가길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했다.

 

 

Untitled 시리즈에서는 고통에서 벗어나고 싶어 각기 다른 자세로 요가를 하는 돼지의 모습을 표현 하였다.

 

 

정은혜' 작가가 도자 동물들을 통해 우리한테 말하려는 게 무언지 비로소 감이 잡혔다. 우리가 무심코 다루는(먹는) 동물들에 대해 한 번은 생각해 봐야 할 시간이었다.

그 행렬 작품 뒤로 다른 작품들이 이어졌다.

 

돼지가 사람처럼 요가 하는 갖가지 모습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다가동네 골목길에서 흔하게 보는몸이 불편한 노인네가 보행기에 기대어 간신히 걸음 걷는 모습의 작품에 이르러서는 저절로 내 발걸음이 멈춰질 수밖에 없었다. 바로 우리가 맞이해야 할 늙음의 한 모습이기 때문이다. 피할 길 없는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질곡이라니.

 

 

근처에 있는 정은혜 작가한테 깊은 고뇌의 질문보다는 가벼운 질문을 하고 싶어졌다. ‘어떻게 동물들한테 사람처럼 표정을 입힙니까!’하는 경탄의 말로 인사를 대신한 뒤 이렇게 질문했다.

여기 있는 작품들이 모두 도자라니, 그렇다면 우선 흙으로 이런 모습들을 빚은 뒤, 그것도 사람처럼 표정까지 담아 빚은 뒤붓으로 색칠하고서 그 위에 유약을 발라 가마 속에 넣어 불에 구워냈을 게 아닙니까?”

작가가 고개 끄덕여 긍정했다.

어느 곳에 있는 가마입니까?”

내가 지난 2016년 겨울에양구 백자박물관에 구경 갔다가, 도자기 하나 만들어내는 데에 드는 엄청난 노고와 그런 과정 중 필수적인 가마의 큰 규모에 놀란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작가가 미소 지으며 답했다.

집에 작은 가마가 있지요. 전기로 도자를 굽습니다.”

간이 형태의 가마가 있는 줄을 나는 처음 알았다. 내가 문외한임을 실감했다. 옆에 있는  내 아내가 어떤 염려를 말했다.

집에서 유약을 칠하고 굽는 과정이 간단치 않고 연기와 냄새도 많이 나서 힘들지요?

작가는 조용히 미소만 지었다. 전시한 작품들의 수도 많은데 작품마다 실감나는 사람 표정이라니, 나는 경탄할 뿐이었다. 문외한이라 정 작가의 작품 수준을 논할 위치는 못 되나 다만 이런 작품들을 창작해 낸 그 노고와 세심함에는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었다. 정말 대단한 분이었다.

 

 

사실 먹고 살기 편한 시대가 되면서 우리 주변의 동물들 입장에서는 그만큼 고통 받는 시대로 접어들었는지 모른다.

우리 몸의 건강을 위해 동물 살육은 불가피하다는 담론(談論)이 확고한 현실이지만내 마음은 스산해졌다. 누구나 한 번은 우리 주변의 동물들에 대해 입장 바꿔 생각해 볼 시간을 가져야 하지 않을까? 2018년 한 해가 저무는 날 춘천미술관 2층 전시관에서 가져본 생각이다.

 

https://eunesine.blog.me/

‘동물들이 왜 이럴까?’
의문이 들 때 출입구 벽에 붙은‘등파고랑(登波鼓浪)’이란 제목의 글을 보게 되었다.
『바닷물을 머금어 더 이상 가라앉을 수 없는 푸른 배에 동물을 태웠다. 그전에 배는 그저 운송수단에 불과했다면 2014년부터 배는 나에게 절망이자 희망의 상징이 되었다. 노 없이 배에 타고 있는 동물은 북을 치고, 횃불을 들고, 책을 들고, 마이크를 잡고 저마다의 방식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싶어 하는 존재들이다. 나는 동물들을 어떠한 틀도 사용하지 않고 손으로 하나하나 만들어왔다. 음식이나 물건으로 더 많이 만나게 되는 돼지, 소, 닭, 양, 염소, 토끼, 말 등도 저마다 생김새가 다 다르고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것을 강조하고 싶어서였다.

배를 탄 동물들은 웃으며 반란을 일으켜 희망을 향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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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젊은 날에 아폴로 싸롱 있었다.

 

싸롱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무대에 등장하는 배우처럼 돼 버리는 탓에, 여자애들은 대개 고개 숙인 모습으로 들어설 수밖에 없었다. 자신에게 일제히 몰리는 시선들을 의식한 행동이었다. 다만 얼굴이 아주 예쁘게 생긴 경우에는 고개를 숙이기는커녕 나 보란 듯이 똑바로 쳐들고 들어오기도 했다. 물론 극히 드문 경우였다.

그런데 그 여자애는 달랐다. 누가 봐도 아주 예쁘게 생긴 얼굴인데 늘 고개 숙이며 들어왔다. 그뿐만이 아니다. 벽 옆의 빈자리를 찾아 앉은 뒤 시집(詩集)을 한 권 테이블 위에 펴 놓고 보는 모습이었다. 어둑한 실내라 벽 곳곳에 작은 전등이 설치돼 있는데 그 빛을 이용하는 것이다. 긴 머리를 정갈하게 늘어뜨리고서 시 감상에 몰두하고 있으니 지하공간의 그 누구도 말을 붙이기 힘들었다. 차 주문을 받는 종업원마저 말을 붙이지 않는다면 여자애는 아마 100% 미동도 않는 자세였을 게다.

그 여자애는 종업원한테 주문을 말하는 대신 종이쪽지에 써서 건넸다, 항상 블랙커피 한 잔에 신청 음악은 린 앤더슨의‘Rose Garden’였다. 경쾌한 리듬으로 시작되는 그 음악이 나오면 미처 그 여자애의 등장을 몰랐던 애들까지 뒤늦게 상황을 깨닫고 예쁜 그 여자애가 어디 앉았나?’둘러보았다.

싸롱에 들어오는 여자애들은 대개 둘이나 셋씩이었는데 그 여자애는 늘 혼자 들어와 시집을 보았다.

내 친구 녀석이 가만있기 힘들었다. 음악 감상은 핑계이고걸 헌팅할 속셈으로 아폴로 싸롱에 오는 녀석이라 기회를 엿봤다. 하지만 접근조차 허용치 않는 것 같은 그 여자애의 고고한 분위기에, 한 달 넘게 망설이다가 마침내 용기를 내었다. 싸롱 오기 전 나하고 운교동 동부시장 대폿집에서 막걸리 한 잔 걸친 덕이 아니었을까?

결론부터 말하겠다. 녀석은 여자애의 한 마디 말에 두 손 들었다.

모처럼 용기를 내 그 여자애한테 다가가 말을 붙이는 것 같더니 얼마 안 돼 뒤통수를 긁으며 돌아온 녀석이 내게 털어놓은 사태의 전말이다.

내가 공손하게 말을 건넸어. ‘잠깐만 대화 좀 나눌 수 없을까요?’그러자 여자애가 고개도 들지 않고 작은 소리로 이러는 거야. ‘저는 지금 책을 보고 있거든요.’그러고는 더 이상 말을 않으니 내가 두 손 들고 돌아올 수밖에.”

나는 그 말을 들으며 녀석의 낭패를 위로해주었지만 동시에 이런 의문이 들었다. ‘이렇게 음악 소리가 요란한 곳에서 시들을 감상하다니 그게 가능한 일인가? 혹시 연출이 아닐까? 자신은 외모도 아름답지만 내면의 미()도 갖췄다고 과시하고 싶어서 말이다.’

 

내 젊은 날에 친구 녀석과 예쁜 여자애와, 아폴로 싸롱이 있었다.

 

이 수필에 나오는 아폴로 싸롱은 70년대 춘천 시내 한복판에 있었던 음악다방의 이름입니다. 당시 젊은이들이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서 종일 팝송과 송창식 같은 우리나라 젊은 가수들의 노래를 감상했습니다. 흡연은 허락됐지만 음주는 허락되지 않았던 나름의 멋진 음악 감상실이었습니다. ‘싸롱’이란 이름 때문에 요즈음의 젊은이들에게 오해 살 수 있어서 뒤늦게 무심이 밝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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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 젊은 날에 아폴로 싸롱이 있었다.

 

비좁고 가파른 층계를 내려가 문 열고 들어가는 싸롱이라, 다른 데 없는 특유의 장면이 있었다. 오직 한 명씩 문 열며 나타날 수밖에 없는 장면이다.

따라서 아폴로 싸롱의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이미 와 앉아 있는 이들의 눈길을 일제히 받을 수밖에 없었다. 흐르는 음악에 심취해 있는 모습들이었으므로 작은 거동이라도 눈길을 끌 수밖에 없었는데 그렇듯 혼자 출입문을 열고 들어서는 경우야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과장되게 표현한다면 홀연 무대에 나타난 배우같았다고나 할까.

그렇기에 여자애(여대생이나 대입 재수생)가 그 문을 열고 나타날 때에는 부끄러운 듯 대개 고개 숙인 모습이었다. 혹 얼굴이 아주 예뻤다면 고개 숙이기는커녕 쳐들고 나타나기도 했지만 그런 경우는 극히 드물었다. 남자애들은 그와 달리 괜히 날카로운 눈매를 짓거나 담배를 입에 물거나 한, 나름대로 터프한 모습으로 그 문을 열고 나타났다. 그런 남자애들 중 특이한 애가 하나 있었다. 한쪽 팔 전체를 하얗게 깁스한 환자 모습으로 짐짓 노려보는 표정을 지으며 나타나던 것이다.

그즈음 극장가를 누비던무법자 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시키는 장면이었다. 악당들한테 심한 폭행을 당해 몸이 온전치 못하게 된 주인공이 복수의 날을 기다리는 바로 그 장면 말이다.

그 남자애가 지하공간에 등장할 때 톰 존스의‘I WHO HAVE NOTHING' 이 처절하게 울려 퍼지던 첫날을 나는 기억한다. 아무 것도 없는 빈 털털이지만 당신에 대한 사랑 하나만은 충분하다는 가슴 아픈 외침. 하필 그 순간 한쪽 팔을 하얗게 깁스한 모습으로 등장한남자애는 팝송 내용 속 사내가 현실로 나타난 듯한 착각마저 일으켰다.

 

그 날 하루만이 아니었다.

틀어달라고 DJ에게 신청한 애들이 많았는지 한동안 아폴로 싸롱에는 ‘I WHO HAVE NOTHING' 가 수시로 울려 퍼졌던 거다. 그렇기에 그즈음 한쪽 팔을 하얗게 깁스한 채 문 열고 등장하는 남자애는 제철을 맞은 듯 자주 그런 처절한 장면을 우리들한테 보였다. 요즈음으로 치면 무법자가 등장하는 뮤직비디오영상이 반복되는 것 같았다.

순간저 녀석이 거짓으로 한쪽 팔을 하얗게 깁스하고 이 싸롱을 오는 게 아닐까?’하는 의심이 내게 퍼뜩 들었다. 깁스야, 재료를 사다가 집에서 혼자 해도 되지 않나. 왜냐면, 그래야만 남달리 터프한 사내의 등장으로 보일 테니까.

자신을 일제히 지켜보는 눈길들 중에 여자애(여대생이나 대입 재수 여자애)들의 눈길도 섞여 있으니 그런 노력을 쏟을 만했다. 안타까운 것은 아폴로 싸롱에 오는 여자애들 수가 남자애들에 비해 극히 적었다는 사실이다.

 

내 젊은 날에 아폴로 싸롱이 있었다.

 

이 수필에 나오는 아폴로 싸롱은 70년대 춘천 시내 한복판에 있었던 음악다방의 이름입니다. 당시 젊은이들이 커피 한 잔을 시켜놓고서 종일 팝송과 송창식 같은 우리나라 젊은 가수들의 노래를 감상했습니다. 흡연은 허락됐지만 음주는 허락되지 않았던 나름의 멋진 음악 감상실이었습니다. ‘싸롱’이란 이름 때문에 요즈음의 젊은이들에게 오해 살 수 있어서 뒤늦게 무심이 밝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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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천미술관이 크리스마스 날에도 문을 열 줄이야.

 

모처럼 아내와 함께11회 한복희 개인전을 보러갔다. 한복희씨는 충남대학교에서 교수로 정년퇴임한 분이다. ‘우리 민화협회 고문을 맡을 정도로 민화에 관한한 추종을 불허한 경지. 퇴직 후 본격적으로 민화에 전념하며 지내고 있다.

조선시대 이 고장 춘천을 그린 동화 느낌의 민화부터, 정말 다양한 민화들이 미술관에 전시돼 있었다. 그 중 무심은 병풍 그림에 눈길이 꽂혔다. 병풍 속 사물들이 원근법(遠近法)과는 전혀 무관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가까이 있는 사물은 크게, 멀리 있는 사물은 작게 그리는 원근법이야말로 현대미술의 기본이 아니던가. 그런 원근법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병풍 그림(특히 바둑판 그림)에 무심 눈길이 꽂힌 까닭은현대미술의 첨단인 입체파 그림들이 연상됐기 때문이다. 입체파는 1914년경 파리에서 파블로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에 의해 생겨났다.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라는 종래의 이론에 반발하여 원근법·단축법·모델링·명암법 등의 전통적 기법을 거부함으로써 화폭의 2차원적 평면성을 강조했다.

 

 

원근법 부정(否定)이라는 차원에서 서양의 입체파와 우리 민화가 상통할 줄이야!

원근법은 사물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를 부정함으로써 사물은 우리 시선을 벗어나 본래의 정체(正體)를 되찾는다. 하긴 사물이 문제가 아니라 그 사물을 보는 우리 시선이 늘 문제였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춘천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뜻 깊은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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