춘천미술관이 크리스마스 날에도 문을 열 줄이야.
모처럼 아내와 함께‘제 11회 한복희 개인전’을 보러갔다. 한복희씨는 충남대학교에서 교수로 정년퇴임한 분이다. ‘우리 민화협회 고문’을 맡을 정도로 민화에 관한한 추종을 불허한 경지. 퇴직 후 본격적으로 민화에 전념하며 지내고 있다.
조선시대 이 고장 춘천을 그린 동화 느낌의 민화부터, 정말 다양한 민화들이 미술관에 전시돼 있었다. 그 중 무심은 병풍 그림에 눈길이 꽂혔다. 병풍 속 사물들이 원근법(遠近法)과는 전혀 무관한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사실… 가까이 있는 사물은 크게, 멀리 있는 사물은 작게 그리는 원근법이야말로 현대미술의 기본이 아니던가. 그런 원근법과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병풍 그림(특히 바둑판 그림)에 무심 눈길이 꽂힌 까닭은‘현대미술의 첨단인 입체파 그림들’이 연상됐기 때문이다. 입체파는 1914년경 파리에서 파블로 피카소와 조르주 브라크에 의해 생겨났다. 예술은 자연의 모방이라는 종래의 이론에 반발하여 원근법·단축법·모델링·명암법 등의 전통적 기법을 거부함으로써 화폭의 2차원적 평면성을 강조했다.
원근법 부정(否定)이라는 차원에서 서양의 입체파와 우리 민화가 상통할 줄이야!
원근법은 사물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방식이다. 하지만 그를 부정함으로써 사물은 우리 시선을 벗어나 본래의 정체(正體)를 되찾는다. 하긴 사물이 문제가 아니라 그 사물을 보는 우리 시선이 늘 문제였다.
이런저런 생각으로 춘천 미술관에서 시간을 보냈다. 뜻 깊은 하루였다.